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29화 (29/209)

경비 업무 일지 : 3일째(4)

-명예은퇴자에게 연락을 하는 건 내부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 않소?

"FCD에겐 내부 규정을 무마할 힘이 있습니다."

TF내에서 최고 기밀에 해당하는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FCD(파이널 카운트 다운)는 그 권한이 막강하기로 유명하다.

인류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고 ES와 실험체를 이용해 실험한다면, 설령 실험 내용이 비인륜의 끝을 달린다고 해도 지탄받지 않는다. 또한 TF내에서 독자적으로 연구팀과 기동타격대를 운용할 수 있는 명령권이 있으며, 비상 사태시 최우선적으로 보호를 받는 특급 서비스까지 존재한다.

물론 큰 혜택이 따르는 만큼 절대로 내던질 수 없는 의무가 함께 하고 있지만, 제임스 마커는 자잘한 것에 신경쓰는 남자가 아니었다.

"가드-079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을 겁니다. 본래 TF에서 절대로 채용할 일이 없는 인물이지만, 당신에 의해 특별 채용 추천을 받게 된 남자 말입니다."

-그 젊은 친구라면 맡은 일은 잘 할 텐데, FCD의 최고 위원 나으리께서 왜 개인적인 연락을 취하셨는지 궁금할 따름이오.

"당신이 추천한 인물이라 그런 겁니다. 조원석 대령."

-이젠 '전' 대령이오.

홀로그램 화상 통화와 연결되어 있는 상대는 제임스 마커의 삼촌뻘은 되는 연세의 노인이었다.

실제로 그는 올해 63에 달하는 노인이었는데, TF의 기동타격대 현장 지휘관에서 은퇴하고도 대한민국 군으로 들어간 일중독자였다.

TF에서 적당히 손을 써서 조원석 신원 정보를 수정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모 군 부대 행정보급관으로 신분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TF내에선 그의 복직을 희망하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닐 만큼 그의 퇴직은 너무 일렀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더이상 국가간의 전쟁이 일어날 일도 없는 군대의 행정보급관으로 썩을 인간이 아니긴 했다.

조원석이 기동타격대에서 활동한 약 20년 간의 기록에 따르면 수많은 ES 제압, 처리 작전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둔 것을 알 수 있다.

FCD 내에서도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느니, 사회에 풀어놓으면 ES처럼 되레 독이 될 인간이라며 '처리'를 희망한 자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60이 된 순간 깔끔하게 은퇴를 해서 기어들어간 한국 군대는 그리 대단치 않은 곳이었다.

군인에 대한 대우는 여전히 좋지 않았고, 지금에 이르러선 전투용 안드로이드가 없으면 국방을 책임지기도 힘들 만큼 자주국방력이 떨어졌다.

그런 곳에서 굳이 말년을 보내겠다면 딱히 위험할 것 같지도 않아 풀어뒀더니만, 웬 괴물 하나를 TF에 집어 넣었다.

"김호국에 대한 모든 정보를 조사해봤습니다만, 딱 하나. TF에서도 알아낼 수 없는 정보가 있더군요. 그의 군대 생활 기록입니다."

-그건 내가 모두 처리했소. 군 데이터베이스를 아무리 뒤져봐도 입대와 전역에 대한 기록 밖에 없겠지.

"...먼저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써준 추천장에 답이 있었지 않소이까. 그 친구는 일 잘 하고, 성격도 좋고, 한 번 배운 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고작 그런 기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지금 가드-079가 벌인 일들에 대해 들으면 당신도......"

-내게 뭘 들려주든 깜짝 놀랄 일은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시오. 설령 그 친구가 맨 손으로 ES를 제압했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

마커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비록 과거엔 기동타격대 현장지휘관으로써 최전선에 나가 TF를 위해 일했다고는 하나, 이미 은퇴한 양반 하나 잡아들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 명령만 내리면 그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자택으로 수십 명의 기동타격대 대원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옛 실력이 아주 죽지는 않았겠지만, 팔팔한 현역들이 상대라면 늙은 그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TF내에서도 '그'를 제외하면 최고 권력자에 해당하는 양반이 고민을 하고 있군. 날 잡아들여서 고문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듣고 싶을 만큼 그 친구에 대해 알고 싶은 모양인가보오?

그도 TF내에서 숱하게 비밀 작전을 지휘해봤고, FCD나 1급 수석 과학자들의 명령에 따라 더러운 짓도 해봤다. 당연히 그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마커는 당장 그를 잡아들이기보단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김호국은 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오해할까봐 미리 알려주겠소. 그 친구는 100% 인간이라오.

"그런 걸 묻고 있는 게 아닙니다."

-TF 내에서도 보나마나 그 친구가 사실은 ES가 아니냐는 얘기가 많이 나왔을 텐데, 이제와서 시치미 떼봐야 소용없소. 애초에 내가 추천장을 써서 그 친구를 TF에 입사시킨 것도 재단을 위한 배려였소만.

"그게 어디가 배려입니까? 지금 가드-079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당장 방금 전만 해도 진리교의 광신도들이 그가 근무중인 시설에 침투했다고......!"

-으하하하핫!

갑자기 영상 너머의 조원석이 폭소를 일으키자 마커는 인상을 찡그렸다.

3년 전에 그가 은퇴하기 전까지만 해도 FCD 의원들은 곧잘 그와 만나곤 했는데, 그가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좀처럼 없었다.

오히려 냉정하게 기동타격대를 지휘하는 인물인 만큼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그런데 소문의 냉혈한이 지금 자신 앞에서 박장대소 하고 있었다. 김호국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뿐인데.

-흠흠! 아, 사과하겠소.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탓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소이다.

"뻔한 결과가 예상된다?"

-그 앞뒤 가리지 않는 광신도 놈들이 대체 뭘 믿고 그 친구가 근무하는 곳에 갔는지 모르겠소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역시 가드-079에게 특별한 능력 같은 것이 있습니까? TF내에서 확보한 극소수의 초능력자들처럼?"

-선천적으로 이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극소수의 초능력자들은 그것을 '재능' 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그 친구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거라곤 아무것도 없소이다.

"특이사항에 따르면 그는 절대기억력으로 추정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만."

-헛소리. 그건 능력같은 게 아니오. 단순히 의지일 뿐이지.

"의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기억하는 절대기억력이 사실은 능력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의 의지라고 말하는 겁니까?"

-그게 반강제적인 능력일 수는 없소. 원하지 않아도 억지로 기억을 쌓게 된다는 건 고통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 친구가 기억을 하는 것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소.

"대체 그걸 어떻게 안 겁니까?"

-내가 직접 가르치다가 알았소. 그 친구는 기억을 할 수 밖에 없어서 기억하는 게 아니라, 기억을 하고 싶으니까 기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조원석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잡동사니를 몇 개 집어 갑자기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동작을 한치의 틀림도 없이 정확하게 따라할 수 있겠소?

"...보통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저글링이 탁월한 사람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그 친구는 저글링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하는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오. 내가 하는 모든 동작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할 수 있게 된 거지. 고작 그 정도의 의지만으로 모든 걸 기억하고, 모든 걸 완벽하게 따라할 수 있게 된거요.

마커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해보면 절대기억력과 가드-079의 행동에 연관성을 찾기 힘들었다.

가령 그는 군 전역자라고 하지만 어떻게 익숙치 않은 장비를 다루는 법을 한 번에 터득했을까? 고작 메뉴얼이나 참고 영상을 한 번 봤다고? 그건 절대기억능력자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단순히 기억하는 것과, 그것을 100%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난 처음에 그 친구가 인간의 탈을 쓴 스펀지라고 생각했소. 뭘 가르치든 완벽하게 기억하고, 완벽하게 터득하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다 그런 생각을 했을 거요.

"그것도 일종의 선천적인 재능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까?"

-자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현실에 홀로 남겨질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의 의지가 그런 능력을 키워냈다는 생각은 안 드시오?

극한상황에 놓인 인간이 엄청나게 대단한 능력을 각성하는 것도 아주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드-079가 현실에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외로움을 잊기 위해 모든 것을 기억하고자 마음 먹었고, 결과적으로 기억한 건 뭐든 재현할 수 있다는 능력을 얻은 것은 좀처럼 믿기 힘들다.

-다른 놈들처럼 가상현실에 들어가지도 못 하는 불쌍한 친구라 군대에서 매일 실컷 굴렸소. 남들보다 배는 더 체력 단련과 작업을 시켰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가르쳤지.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겁니까? 만약 그가 범죄자가 되기라도 한다면......!"

-세상의 모든 인류처럼 현실 도피를 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하다못해 그 현실이라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도리에 맞지 않겠소?

반박할 수 있는 말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김호국이란 인간은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쉘터 프로젝트로 전뇌세계에 이주하는 때가 도래해도, 그는 여전히 현실에 남아있게 될 테니까.

-앞서 말했지만, 그 친구는 참 좋은 친구요. 나한테 참한 손녀가 있었다면 사위로 삼고 싶을 만큼 좋은 친구지. 그러니 괜히 그 친구를 ES로 몰아가서 인류와 적대하게 되는 잘못은 부디 저지르지 않길 바라겠소.

화상 통화가 종료되기 직전, 조원석은 조금 전과는 달리 잔뜩 굳은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난 그 어떤 ES보다도 그 친구가 훨씬 무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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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 사제는 쥐새끼처럼 숨어든 가드 한 명을 찾기 위해 눈알을 부라렸다.

놈이 설치한 웃기지도 않은 부비트랩 덕분에 안드로이드 한 대가 고장나버렸다. 하필 안드로이드의 장갑이 취약한 등 뒤에서 열압력수류탄이 폭발한 탓에 손쓸 틈도 없이 고철 하나가 늘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렵사리 구한 산업용 안드로이드를 불법 개조해서 어찌어찌 군용 안드로이드에 버금가는 스펙으로 만들어놨더니, 그걸 제대로 써먹기도 전에 하나 날려버린 건 매우 뼈아팠다.

교단내에서도 TF를 상대하기 위해선 인재와 자원 확보를 최우선시 해야 한다고 성토가 나오는 마당에, 중요 자원 하나를 헛되이 낭비했다.

고작 가드가 한 명뿐인 시설에서 이런 손해를 입었으니, 설령 작전을 성공리에 끝마친다고 해도 쓴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내 죄가 그리 쉽게 사해지진 않겠지만, 놈의 목을 들고가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성이 풀리질 않아!'

슈트 내부에 탑재된 군용 블레이드로 깔끔하게 목을 절단하는 건 너무 자비롭다. 놈이 고통 속에 울부짖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그 순간까지 실컷 괴롭혀주다가, 마지막에 힘으로 목을 뽑아버릴 것이다.

살점과 신경다발, 뼈마디가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놈은 고통스러워하다가, 고통이 각인된 얼굴로 죽는 것이다.

사람이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낡은 사무실을 지나친 쥴 일행은 어렵지 않게 B41의 고위험군으로 이어지는 체크 포인트 앞에 도달했다.

기본적으로 일직선 통로인지라 오는 길에 식당과 의약품 저장고, 무기고까지 전부 뒤져봤지만 놈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예 작정하고 도망치기만 할 생각인지, 체크 포인트의 소형 격벽을 닫아두지도 않고 아래로 향한 듯 했다.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고 있군. 이 곳에서부턴 심장박동 감지기와 열감지 장비를 동시에 사용한다. A팀이 선행한다."

진리교의 전투교단원 부대에선 TF에 대항하기 위해 음지의 기술자들을 대거 끌어들여 추적과 살인에 특화된 장비들을 많이 만들었다.

슈트의 배터리가 빠르게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변변찮은 무장을 한 일반인을 상대로 심장 박동과 열을 동시에 감지하는 기능은 가히 사기적인 기술이었다.

게다가 차폐막 슈트를 입고 있는 아군에게는 통용되지 않으므로, 적과 아군을 구분하면서 적을 말살하기엔 최고의 효율을 자랑했다.

탐지 범위가 그리 길진 않지만, 벽 너머로도 상대를 감지할 수 있으니 결국은 놈의 꼬리가 밟힐 것이다.

선행 명령을 받은 A조의 2명이 먼저 B41의 고위험군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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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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