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28화 (28/209)

경비 업무 일지 : 3일째(3)

1. 이 세상에 비밀이 존재해선 안 된다.

2. 모두에겐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다.

3. 진리에 가장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진실을 깨닫는 것이다.

4.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

5.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위해 진실을 찾고, 비밀과 맞서 싸운다.

-진리교의 교리 中

"연구원들은 이미 탈출했군."

"예. 역시 빅 브라더 시스템을 통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최초로 국내에 도입한 빅 브라더 시스템은 이후 미국의 손을 거쳐 개량되어 전 세계의 정부에 보급되었다.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정보가 등록되어 있는 사람은 CCTV에 얼굴이 잡히는 것 만으로도 각종 신상정보들이 나열될 만큼 감시 작업에 극대화된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어 한 중년인 남성이 길을 걷고 있으면, 거리에 설치된 CCTV가 즉시 그를 인식하고 그의 생활정보기록부터 범죄기록,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이나 직업 및 수입까지 파악한다. 또한 3D 모델 투과 시스템을 이용해서 상대가 위험한 흉기를 지니고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한다. 만약 위험한 흉기를 지닌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면 즉시 경찰에게 신고가 접수되어 체포 당할 만큼 빅 브라더 시스템의 감시 체계는 대단했다.

하지만 특수 차폐막 슈트를 착용한 남자들은 코웃음 치며 CCTV를 무시하고 걸어들어갔다.

차폐막 덕분에 슈트 내부를 투과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얼굴은 완전히 가려주었고, 자동으로 음성 변조까지 해주었기 때문에 빅 브라더의 감시 체계를 완전히 피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무기를 손에 쥔 이상 '위험 인물' 이라는 보고가 이미 접수되었겠지만 상관없었다. 대한민국의 제 6 처리시설은 생각보다 보안이 취약하다는 걸 사전 조사를 통해 파악해두었으니까.

변변찮은 방위 시스템도 없고, 하필 섬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하 시설이라 내륙에서 지원이 오려면 한참은 걸린다. 넉넉 잡으면 2시간. 아무리 빨리 지원이 오더라도 1시간 안으로 오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가 시설 안으로 진입하면 원격으로 시설을 폭파시킬수도 있겠지만, 그런 아까운 짓은 하지 않겠지.'

쥴 메르세데스. 신도들 사이에선 쥴 사제님이라고도 불리는 남자는 슈트 속에서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TF라는 천인공노할 집단은 어지간해선 시설을 잘 파괴하려 들지 않는다.

어지간히 거대한 초고층 빌딩을 몇 개 합친 것 만큼이나 규모가 큰 시설을 파괴하는 순간 발생하는 막대한 피해!

은폐해둔 ES를 연구할 수 없다는 점, 핵으로 인해 파괴된 시설과 인근 부지는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막대한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는 점들 때문에 시설 파괴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실제로 진리교가 오랜 조사를 통해 확인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작전이 먹힐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자신들이 지금 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설에 진입해서 무슨 짓을 하든, TF는 쉽사리 시설을 폭파시키지 못할 터.

"진입한다."

연구원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볼 것도 없다. 애초에 처리시설에서 근무하는 떨거지 연구원들이 얼마나 대단한 연구 자료를 가지고 있겠는가.

설령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의 해킹 기술로 AI의 보안망을 뚫고 자료를 탈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시설 아래로 향하는 것이 나았다.

"폭파시켜라."

엘리베이터 앞에 선 쥴이 명령을 내리자, 미리 폭탄을 들고 대기중이던 부하 둘이 나서서 엘리베이터에 설치했다.

AI에 의해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다. AI가 관리하지 못 하는 상황일지라도 비상시에 시설 내 직원들이 운용할 수도 있기에, 침입자인 자신들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건 언어도단이었다.

설치된 폭약이 우선 엘리베이터의 문을 날려버리고, 이후 정지 상태인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폭파시켰다.

우르릉쾅쾅! 하고 엄청난 소음을 자아내며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엘리베이터. 이걸로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물론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애좀 먹겠지.

"좋아, 크레인을 준비해라."

무거운 짐차 위에 씌워져 있던 천이 내려가고, 소형 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거운 전투용 안드로이드와 인간 여럿을 아래로 내려보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한 크레인이다.

"고정 작업 끝났습니다."

"1팀부터 내려가도록."

크레인을 조작해서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킨 뒤, 크레인에 연결된 라이프라인에 몸을 맡긴 부하들이 먼저 엘리베이터 아래로 내려갔다.

저 아래에 먼저 도달한 1팀이 B40의 엘리베이터 문을 한 번 더 폭파시키자, 비로소 쥴도 안드로이드와 함께 라이프라인을 타고 움직였다.

별 다른 방해 없이 순조롭게 B40의 중간거점에 도달한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첩보원의 보고에 따르면 이 시설은 가드가 딱 한 명 뿐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가드가 근무하는 작은 사무실에도, 복도 중앙에 위치한 화장실에도 가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안으로 숨어들어갔군.'

중간거점의 천장에서 빛나고 있는 CCTV를 발견한 쥴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연구원들을 우선적으로 대피시킨 다음, 중간거점의 너머에서 농성을 하며 버틸 계획을 세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상정하고 왔다.'

쥴은 권총을 뽑아 천장 위의 CCTV를 쏴서 박살내버렸다. 일단은 방탄 CCTV였지만 폭발성 탄두의 대구경 탄환에 버틸 수는 없었다.

"예상했던대로 가드가 안쪽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격벽을 파괴해야 하니 예정대로 진행해라."

"예!"

부하 한 명이 전투용 안드로이드와 함께 중간 거점의 게이트 격벽에 다가섰다. 그리고 치약 튜브 같은 것을 이용해 격벽에 특수한 용액을 짜서 발랐다.

안드로이드는 특수한 용액이 발린 부분을 가이드 라인처럼 따라가며 절단용 토치를 작동시켰다.

부하가 일정한 선을 따라 바른 특수한 용액은 특정 금속 물질의 녹는점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화학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티타늄의 녹는점이 1,668도에 달한다면, 이 용액을 바르는 것 만으로도 녹는점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튼튼하기 짝이 없는 성벽이 한순간에 나무 판자 수준의 강도로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쥴은 격벽 옆에 서서 주먹으로 쾅쾅 두들기며 소리쳤다.

"지금 이 소리가 들리고 있겠지?! 네 놈이 믿고 있는 이 격벽도 앞으로 십 수분 뒤면 뚫린다! 너 혼자서 과연 전투용 안드로이드와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나?!"

가드 한 명의 무장이라고 해봐야 펄스라이플에 수류탄이나 섬광탄이 고작이겠지.

하지만 쥴을 따르는 10명의 신도들은 모두 전신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수류탄의 파편 정도라면 능히 막을 수 있었고, 펄스라이플의 탄환도 집중포화만 당하지 않는다면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다.

시설 경비가 다수였다면 이런 작전따윈 세우지 않았겠지만, 단 한 명뿐이라는 얘기를 듣고 즉시 작전을 입안해버렸다.

누가봐도 과할 정도의 무장이지만, 가드 한 명을 손 쉽게 처리한다면 이 시설은 자신들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전투용 안드로이드까지 두 대나 동원했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지.'

쥴은 다시 한 번 격벽 너머에서 숨 죽이고 있을 가드를 향해 소리쳤다.

"상황을 이해했다면 순순히 격벽을 열어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빼앗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싫다!"

격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청년의 목소리에 쥴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 격벽이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거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의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열어라!"

"싫다!"

"열라고!"

"싫다!"

빠드득.

"좋다! 그렇게 나온다면 이 쪽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공격하겠다!"

"싫다!"

'이 새끼가?'

쥴은 부하를 향해 좀 더 서두르라는 식으로 손짓 했다.

이 튼튼한 격벽도 안드로이드 두 대가 달려들어 절단 작업을 벌이니 생각보다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말로는 10분 이상이 걸릴 거라고 했지만, 그보다 조금 더 빨리 끝날 것 같았다.

'안에 들어가면 사지에 총알을 하나씩 박아주고 능욕해주지!'

진리교인 자신들을 상대로 맞선다는 것은 인류에게 진실을 감추는 비밀 옹호 집단(TF)의 수하나 다를 바 없다는 뜻.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진실을 찾아나서는 자신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적이라고 배웠다.

세상이 거짓된 낙원(가상현실)에 인류를 밀어넣고 있을 때, '그 분' 만큼은 진실을 깨닫고 자신들을 구원해주지 않았던가? 누구도 그 분의 의지를 방해하게 놔둘 순 없었다.

철컥. 라이플을 장착한 쥴은 서둘러 이 격벽이 뚫리기를 기다렸다. 그래야 저 가증스러운 졸개 놈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줄 수 있을테니까.

"뚫렸습니다!"

"좋아! 안드로이드부터 진입시켜!!"

몇 분이 흐른 뒤, 격벽은 간신히 안드로이드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네모난 공간이 확보되었다. 특수 용액으로 열심히 격벽의 녹는점을 낮추고, 안드로이드 두 대가 토치로 절단한 보람이 있었다.

우선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안드로이드부터 진입시킨 쥴은 자신의 헬멧과 연결된 안드로이드의 시야로 내부를 살펴보았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큰소리 뻥뻥치던 놈은 아래로 도망쳤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겁에 질려 숨어든 것이리라.

"겁쟁이놈! 결국 아래로 도망쳤군."

"싫다!"

"음?"

갑자기 안쪽에서 들려오는 짜증나는 목소리에 쥴은 안드로이드를 조작해 시야를 내렸다. 그러자 격벽 옆의 기둥 아래에 웬 풀페이스 헬멧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이 놈...! 처음부터 여기에 있지도 않았군!!'

풀페이스 헬멧에 탑재된 무전기의 스피커로 통화를 하듯이 다른 장소에서 대답을 한 것이다. 지금쯤 놈이 안쪽에서 무전기를 들고 낄낄대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개자식!'

고작 한 명인 주제에!

발견되기만 하면 즉시 벌집이 될 놈이 뭘 믿고 그리 설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쥴은 반드시 놈을 잔인하게 고문해서 영상으로 촬영한 뒤, 진리교의 선전 영상으로 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놈은 이 곳에 없다! 분명 안쪽에 숨어들었겠지만,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아는 놈이니 ES의 방에 숨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2인 1조로 움직여서 구석구석 찾아라. 이런 시설이라면 결국 숨어있을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

신경질적으로 명령을 내린 쥴은 자신도 격벽 너머로 진입했다.

그리고 괜히 짜증나서 기둥 옆에 놓여있는 헬멧을 힘껏 걷어찼다.

피잉!

"피잉?"

저 앞으로 날아간 헬멧은 하필 먼저 움직이고 있던 안드로이드의 등에 직격했고, 그 안에서 굴러나온 것은 안전핀이 뽑힌 열압력수류탄이었다.

"이런 젠장!!"

반응이 빠른 쥴과 신도들은 먼저 몸을 던져 폭발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사태 파악을 못한 안드로이드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멍청한 안드로이드의 발 밑에 떨어진 열압력수류탄은 보기 좋게 폭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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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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