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2일째(7)
TF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원하는대로 얌전히 가상현실에 처박혀 있지 않는다면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그저 최신형 바이크를 타고 뻥 뚫린 해안가의 고속도로를 미친듯이 달리는 걸 즐기는 한량에 불과했다.
피똥을 싸도록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바이크를 사고, 장비도 하나둘 갖춰 입고, 마침내 도로 위에서 자유를 만끽할 때의 그 기분이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살아있다! 존나 살아있다고!!'
시속 150km가 넘는 속도로 바이크를 몰면서 틈날 때 마다 외치곤 했던 함성.
몰아치는 칼바람은 바람막이 라이딩 슈트와 헬멧만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설령 누구도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자유를 향한 대장정을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바이크를 타고 대한민국 팔도 전역을 바둑이처럼 발발거리며 돌아다닐 생각에 한없이 기쁘기만 했으니까.
도로 위에서 '그것'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건 청년과 대등한 승부를 겨루기 위해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최종 보스였다.
구식이긴 하지만 옛날에 빠르기로는 최고였다던 RTX 시리즈 바이크,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 문양이 새겨진 라이딩 슈트와 풀페이스 헬멧은 시대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폭주족처럼 보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청년은 마음이 동했다. 반드시 대결을 하고 싶다. 누가 더 빠르고, 도로 위의 자유를 쟁취하기에 걸맞은 남자인지 승부를 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다가가 섰고,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도 모를 신호음과 함께 다시 한 번 도로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자신의 바이크와 상대의 바이크는 수 십년의 차이가 있는 모델이었음에도 쉽사리 따돌릴 수 없었다. 오히려 완만한 코너에서 유리한 선으로 먼저 진입해 속도를 올리는 광경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질 수 없지!'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쟁취한 속도인데? 앞으로 조금이면 도로 위의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걸 눈 앞에서 뺏기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본래는 일 대 일 대결이 아니라 쭉 이어진 고속도로에서나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었던 비장의 카드, 순간가속 부스터 기능을 사용해버리고 말았다.
연료를 급격하게 사용해버리는데다 엔진에 과부하가 온다는 위험이 있었지만, 목적지인 XX 휴게소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건 자신이고 싶었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지금도 그때의 어마어마한 속도감과 공기저항력을 기억하고 있다.
상대를 제치기가 무섭게 자신이 속으로 정해두었던 골인지점에 먼저 도착하던 그 영광스러운 순간은 일생일대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 그 짓거리만 하지 않았더라면 TF인지 뭔지 하는 자들에게 붙들려 오는 일도 없었을 텐데.
"......"
그들에게서 '목격자' 라는 취급을 당하며 이름모를 시설에 감금된 청년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보냈다.
볼 일이 없을 때는 공용 화장실 하나만 존재하는 넓은 방에서 갇혀지내고, 볼 일이 있는 사람들부터 기계 팔에 붙들려서 강제로 끌려나갔다.
끌려나가기 싫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사람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마치 인형뽑기처럼 기계팔은 정확하게 사람 한 명을 붙잡아서 밖으로 끌고 나갔으니까.
어쩔 때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인간들을 끌고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남겨진 사람들은 언제 끌려나갈지 모른다는 공포에 젖어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각자에게 지급되는 영양 스틱도 먹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도로 위에서 구닥다리 폭주족과 한판 대결을 한 죄 밖에 없는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청년에게도 때가 도래했다.
벽 너머에서 기계 팔이 튀어나와 청년의 몸을 단단히 움켜잡고 밖으로 끌고 나간 것이다.
자신 역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처럼 죽겠거니 싶었는데, 웬걸. 그는 잘 꾸며진 방 안에 던져졌다.
"이게 뭐야?"
출입구나 창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꾸며졌다는 걸 반증하듯, 깔끔하면서도 운치가 느껴지는 인테리어는 청년을 당황스럽게 했다.
꼭 누군가와 마주 앉아서 차라도 한 잔 하며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 따위를 물어봐야 할 것 같은 공간이 아닌가?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인공미가 느껴지는 끔찍한 공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출입구도, 창문도 없는 이 곳에 자신을 데려다 놓은 이유를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설마 여기서 좋은 분위기를 잡고 나한테서 정보를 뜯어낼 생각인가? 근데 난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데!'
청년이 허둥지둥대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한 시간이 넘게 지났을까. 혹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출입구나 창문을 찾는 것도 포기한 청년이 벽에 기대어 있을 때였다.
반대편의 벽이 문처럼 열리면서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건 기분나쁜 점액을 줄줄 흘리고 있는 흰 피부의 인간이었다. 아니, 분명 인간의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정말 인간이긴 한 건지 의심스러운 괴물이었다.
"어, 어어어......!"
당황하고 있는 자신에게 득달같이 달려든 그것은 굶주린 맹수처럼 날뛰었다.
청년의 머리를 잡아 뜯고, 전신의 털을 하나라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양 손톱으로 할퀴거나, 이빨로 물어뜯었다.
그 과정에서 피부가 찢겨 나가든, 뼈가 부러지든 놈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청년이 방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킬킬대는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며 고문을 계속해나갔다.
"으아아아아! 그만! 제발 그만......!"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면서 목청껏 소리 질렀지만, 구원의 손길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살점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빌어먹을 괴물의 손길만 느껴질 뿐이었다.
청년의 전신의 피부를 뜯어내고 털이 한 올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그를 제쳐두고 괴물은 벽을 자연스럽게 문처럼 열었다.
그리고 청년에게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들을 모조리 버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놈의 팔을 붙잡았다.
"야. 네 눈엔 이 쓰레기의 산이 안 보이냐?"
'사람?!'
다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청년은 자신과 같은 인간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기엔 이미 체력적으로 너무나도 지친 상황이었다. 수 십 분간 미친듯이 고함을 지른 탓에 목이 나가버린 것인지 옅은 신음성을 흘리는 것 조차 힘들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해야......'
연신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 저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그 일념 하나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방 바닥을 기었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방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괴물이 끌려나갔다.
"1빠따는 너다."
청년은 간신히 열린 문 너머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했다.
자신을 이 시설로 끌고왔던 TF인지 뭔지 하는 인간들과 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푸르게 빛나는 진압봉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성인 남성인 자신의 힘으로도 어찌하지 못 했던 괴물을 문자 그대로 복날 개패듯이 두들겨 패고 있었다.
'영웅...영웅이다!'
자신을 대신하여 복수해주는 영웅의 모습을 좀 더 지켜보고 싶었건만,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린 탓에 더이상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청년은 자진모리 장단으로 들려오는 매 타작을 자장가 삼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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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막아? 막아?!"
호국은 운 나쁘게 걸려든 점액 인간을 쓰레기의 산에 파묻고 진압봉을 마구 휘둘렀다.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것 까진 어찌어찌 넘어가줄 수 있다. 세상에는 쓰레기를 절대 버리지 못 하는 호국같은 사람이나, 쓰레기를 버려야만 만족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눈 앞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데, 그 앞에서 대놓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 만큼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환경미화 안드로이드가 거리를 청소하지만, 옛날에는 늙은 분들이 환경미화원을 하며 거리를 청소했다고 배웠었다.
안드로이드나 사람이나 모두 인간들이 무분별하게 버리는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동원되었으니, 요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것이 가정교육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가정교육을 판타지로 배운 것 같은 이 머저리가 호국의 눈 앞에서 쓰레기를 버렸으니, 꼭지가 돌아버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 계속 막아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호국은 군홧발로 놈을 짓밟아 움직이지 못 하게 고정한 뒤, 사정없이 진압봉을 내려쳤다. 끽끽 대는 듣기 싫은 비명이 터져나왔지만,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평소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 그였지만, 상대가 호국이 허용하는 선을 넘었을 때는 절대로 참지 않았다.
인내심을 기르는 건 사회 구성원으로써 중요한 덕목이지만, 자신에게 향하는 이유없는 불의를 참는 건 그저 호구일 뿐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잊을리가 없었다.
"난 호구가 아니야! 호국이라고!!"
호국의 앞에 대놓고 쓰레기를 던진 시점에서 놈은 호국을 호구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놓고 뇌물을 주려 했던 그 카지노의 딜러처럼, 쓰레기에 파묻혀 켁켁 대고 있는 녀석 역시 용서할 수 없는 부류였다.
빡! 빡!
전류가 흐르는 진압봉이 놈의 몸에 닿을 때 마다 점액을 타고 흘러들어간 전류가 앙상한 몸을 마구 뒤틀리게 만들었다. 한 번씩 출력을 높여주면 아주 좋아 죽으려고 했다.
"이건 내 점심시간의 몫! 이건 내가 점심시간을 거르고 쓰레기를 치우게 만든 몫! 이건 내가 맥반석 계란도 못 먹고 쓰레기를 치우게 만든 몫! 그리고 수정과의 몫도 추가!!"
아침 댓바람부터 투명한 뚱보에게 깔려있던 것도 짜증나는데, 점심도 거르고 냄새나는 쓰레기들을 치우게 만들었으니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
거기에 쓰레기의 양이 오죽 많은가? 이정도면 작은 트럭 한 대를 동원해야 할 수준이다.
"너희들만 아니었어도 근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사우나에 들릴 생각이었다고! 나도 맥반석 계란 까먹고 싶었다고!"
업무량이 늘어났다는 건 자동적인 야근을 의미했다.
군대에선 오침이라도 주지만, 이 곳은 엄연한 바깥 사회. 오침따윈 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발생한 비탄과 억울함이 뒤섞인 부정적인 감정은 호국을 일시적으로 교도소의 교도관으로 만들어버렸다.
"후우, 후우......!"
이제는 켁켁이 아니라 끅끅대는 신음을 흘리고 있는 점액 인간을 쓰레기 더미에 처박아둔 채, 호국은 고개를 돌렸다.
다른 방들의 문이 모두 열려있었다. 복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싶어 구경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나같이 인간답지 않게 기괴한 몰골을 하고 있는 양반들 뿐이었는데, 세간에서 말하는 코스튬 플레이어인지 뭔지를 즐기는 기괴한 집단인 것이리라.
"오늘부터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놈은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줄빠따를 쳐주겠다."
그래도 쓰레기통도 없는 공간에서 쓰레기를 무작정 버리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호국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스마트 패드를 조작했다.
안전 여부 체크 말고도 가드가 따로 보고서나 제안서를 올리는 기능이 있었다.
호국이 상층부에 요구한 것은 '쓰레기통 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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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