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2일째(1)
고두식 하사는 자신의 앞에서 얌전히 걷고 있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층부에서 하도 시끄럽길래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나 싶었더니, 자칫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르는 괴물과 사이좋게 라면이나 끓여먹고 있을 줄이야.
시설 경비라는 직위를 이용해 인류에게 위협적인 비밀을 몰래 엿보고 싶은 마음까지는 이해한다. 실제로 기동타격대 소속 대원이나 연구원들도 처음 ES(침식현상)와 접하고 나면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것 처럼 반응하니까.
하지만 대부분은 빠르게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이해하고, 책무를 다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연구원은 ES 연구에 사사로운 감정을 넣지 않는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실험을 통해 진행되어야 하는 연구인 만큼, 개인의 사상이나 가치관, 감정따위를 집어 넣게 되면 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동타격대에게도 그대로 통용되는 이야기인데, 단순히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이 세계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한 전투 집단이다.
필요하다면 ES에 관여하는 민간인을 처리하는 일도 서슴없어야 하며, 대를 위한 소의 희생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야 한다. 자신들은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닌, 세계를 지키기 위한 무기니까.
그런 점에서 가드-079는 여러 의미로 쓸모없는 남자였다.
위험천만한 ES의 은폐실을 제 집처럼 드나들질 않나, 자칫 은폐 상태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행동에도 조심성이 없었다. 그렇다고 또 가드의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보고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제 6 처리시설이라는 거대한 놀이공원에서 제 좋을대로 돌아다니는 애새끼에 불과했다. 그것도 사방팔방 휘젓고 다니는 민폐투성이 악동이다.
"이 놈이야?"
"예, ID 카드와 지문을 대조해봤습니다. 가드-079가 맞습니다."
고두식의 펄스 라이플 총구가 그의 등을 쿡쿡 찔러서 앞으로 밀었다.
B41의 저위험군에서 대기하고 있던 베타 부대원들이 그의 신병을 양도받아 모든 장비를 해제시켰다.
소지하고 있던 무기들은 고두식 하사가 미리 빼앗았지만, 꼴에 가드랍시고 몸에 걸치고 있는 파츠 아머와 군복도 예외없이 벗겨져야 했다.
"심문해야 하니까 적당한 자리에 앉혀. 자백제는 준비됐나?"
"처음부터 자백제를 쓰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상층부에서도 일단 생포를 최우선시 하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생포는 이미 했으니까 짬이 나는 김에 심문도 하자는 거다. 이 놈은 겉보기에 얼빵해보여도 속으로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을지 몰라.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는 게 편하다고."
소대장인 로렌 소위의 지적에 고두식은 속으로 혀를 찼다.
로렌 소위는 현장에서 구르다 들어온 고두식 하사와는 달리, TF 산하의 기동타격대 사관 학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들어온 인물이었다.
계급도 계급이지만, 인맥의 힘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기동타격대의 1개 소대를 지휘할 만큼 대단한 권력을 가진 것이다.
일반적인 군대에선 고작 소대 하나를 지휘하는 게 뭐가 대단하냐고 비웃겠지만, TF 산하의 전투 집단에선 얘기가 다르다. 1개 분대만 이끌어도 실력자로 보며, 1개 소대를 이끌면 현장 지휘관의 부관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지름길이 열린다.
경우에 따라 3개 소대에서 1개 대대를 운용하는 현장 지휘관 존 페르난도 소령이 아직 괜찮은 부관을 찾지 못 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즉 장교들은 모두 그의 부관 자리를 노리고 공적을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진급에 미친 새끼들. 애초에 이 직업은 높은 직급에 올라갈수록 더 위험해진다는 걸 모르는 건가?'
기동타격대는 사관학교에서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파견된 애송이(생도)들이 병사 직급을 맡게 된다. 그 외에 정규부대원은 모두 부사관의 직급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위에서 까라면 까라는대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야 하는 게 좀 힘들지만, 위험수당 팍팍 나오고 정신 케어를 위해 정기적인 휴가와 심리상담 복지도 빵빵했다.
그런데 유독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올라온 장교들은 뭐가 그리 부족한 건지, 더 높은 계급과 권한에 목말라 있었다. 오죽하면 공을 세우겠답시고 위험한 ES를 사살하러 나갔다가 부대 전체가 전멸해버리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로렌 소위는 의무병이 준비한 자백제 주사를 빼앗듯이 낚아채서 군복을 벗긴 가드-079의 앞에 들이밀었다.
"자, 얼간이. 이게 보여? TF에서 특별히 제조한 자백제인데 효과가 아주 뛰어나. 아무리 고된 훈련을 받은 첩보요원이라 할지라도 10초만에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술술 불어버릴 만큼 강력하지!"
가드-079는 자백제 주사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외쳤다.
"게임에서 본 적 있어요!":
"그래, 게임에서도 곧잘 나오...아니, 지금 그딴 소리를 할 때냐? 네가 이 주사를 맞는 거라고! 네가 알고 있는 모든 비밀을 이 자리에서 털어놓게 된단 말이다!"
"무슨 비밀이요?"
"하! 역시 그렇게 나오는군. 그렇게 시치미 도 소용 없다. 네가 무슨 목적으로 시설 경비가 되었는지, 왜 위험하기 짝이 없는 ES들에게 접근하는 건지,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전부 불어줘야겠어!!"
결국 그는 잠자코 팔뚝을 내민 가드-079에게 자백제를 투여했다.
수틀리면 거센 저항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등 뒤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었으나, 다행히 그가 반항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길 기대했는지 연신 자신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딱히 몸에 변화를 주는 건 아닌데.'
천진난만한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멍청해서 이러는 건지.
정신사납게 고개를 돌리고 있던 그는 결국 로렌 소위의 손에 붙들려 의자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자! 이제 말해! 넌 어떤 목적을 지니고 시설 경비가 된거지?!"
"월급 400만원에 4대 보험, 복리후생 빵빵하게 쳐주고, 근무시간 외엔 자유로운 근무환경이니까 해볼 생각 있냐고 물어봐서 하겠다고 했는데요."
"...그건 목적이 아니잖아. 네가 이 곳에 들어온 진짜 목적이 있을 거 아냐?!"
"월급 400만원에......"
"월급 얘기는 이제 됐어! 애초에 월급 400에 자처해서 목숨을 거는 멍청이가 어디 있냐?!"
"저요?"
"그래 너! 아니, 이게 아닌데. 어서 목적을 말해!"
"월급......"
로렌 소위는 마치 익룡을 연상케 하는 절규를 내지르면서 옆에 있던 사무용 책상을 엎어버렸다. 꿈에서도 듣고 싶지 않은 끔찍한 소리였다.
"후우, 후우! 좋아. 위장 취직이라면 그게 목적일 수도 있겠지.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고. 넌 대체 어떤 목적으로 ES들에게 접근한 거지?"
"가드는 시설 전체의 안전을 체크해야 한다고 메뉴얼에 써있던데요."
"그래. 하지만 넌 안전을 체크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잖아? 6-01, 6-04, 6-09, 6-10, 6-11. 모두 안전을 체크하는 것 이상으로 과도하게 접근했었어. 그 이유가 있을 것 아냐?!"
"안전을 체크하려면 직접 봐야 하잖아요."
"그렇지."
"그거예요."
"뭐?"
그는 뭘 더 물어보냐는 듯 되레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안전을 체크해야 하니까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본 거라니까요?"
"거짓말 하지마! 단순히 안전을 체크하려는 게 목적이었다면 굳이 은폐실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어! CCTV로 확인만 해도 충분하다고!!"
시스템의 고장도 시설 관리 시스템이 미리 알려주기 때문에 경비가 직접 은폐실 안에 들어가서 확인할 필요는 없다.
설령 직업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해도 은폐실 앞에서 관리봇을 호출해 안전 여부를 확인받고 그대로 체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넌 일개 가드에게 허용되는 4급 보안등급에서 한 단계 높은 등급까지 요구하며 은폐실에 기어코 들어갔지! 그게 정말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의도였다고?!"
"네."
로렌 소위는 옆에서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의무병에게 손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혈압약."
"...아, 여기 있습니다."
의무병이 혈압약을 건네주자 그는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약을 삼켰다. 어지간히도 화가 난 듯 했다.
"후우, 좋아. 자백제가 싸구려가 아니라면 지금 네가 한 말은 모두 진실이라는 얘기겠지. 어쩌면 아주 잘 조작된,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거짓일지도 모르고."
"전 거짓말 안 하는데요. 부모님이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그래, 나도 지금 네 부모 얼굴이 격하게 보고 싶어진 참이야. 널 연구 시설에 처박으면 다음엔 부모도 붙잡아서 함께 처박아줄까 진지하게 고민중이라고."
"부모님이 직장에 찾아오시는 건 좀 부끄러운데요."
"푸흡!"
결국 의무병이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로렌 소위가 찌릿 노려보자, 그는 서둘러 표정을 정리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웃음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그래, 그런 식으로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라고 훈련 받은 거겠지. 어느 조직에서 널 보냈을까? 진리교? 인류퇴화연맹? 아니면 미스터리 콜렉터?"
TF에 반하는 테러리스트 단체들의 이름이 주욱 나열되었지만, 가드-079는 이렇다 할만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이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는지 묘한 감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젠장! 이 놈에게 진짜 자백제를 투여한 게 맞는 건가?!"
"틀림없는 자백제입니다. 애초에 자백제는 연구 시설에서만 반출되는 물질이라 가짜가 있을 수 없다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이 빌어먹을 놈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지금까지 말한 게 진실인 것 같습니다만......"
"그럼 이 놈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놈이란 말인가? 정말 IQ가 84이고, 가드 업무에 충실하고, 삿된 목적 없이 이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
어딜 어떻게 봐도 그게 맞는 말이지만,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정말 그뿐인 인간이라면 벌써 한참 전에 죽고도 골백번은 죽었을 터. 그런데도 가드-079는 멀쩡하게 살아있었고, 이대로 처리시설에 처박아둬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분명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정작 그 '뭔가'가 뭔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젠장! 화딱지가 나는군. 팬티 색이라도 물어봐야 하나?"
"검은색인데요."
"안 물어봤어 미친 놈아!"
로렌 소위가 가드-079의 면상을 후려치려다 부대원들의 만류에 간신히 화를 삭혔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그는 가까이 있던 대원에게서 돗대를 빼앗아 입에 물었다. 썩어도 엘리트 양반이라 돗대를 빼앗긴 대원은 급격하게 침울해졌다.
"후우, 자세한 건 연구 시설에 보내면 알 수 있겠지. 고 하사가 먼저 위로 데리고 올라가."
"알겠습니다. 상층부에는 가드-079를 일본 연구 시설로 이송한다고 보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어차피 이 놈은 이제 세계 각지의 연구 시설들을 순회공연하면서 조리돌림 당할 텐데, 어딜 먼저 보내고 말고 따질 필요도 없지."
만약 이 자리에 상관이 있었더라면 그의 부적절한 언행에 주의를 주었겠지만, 이 곳에 있는 것은 자칭 엘리트 양반들의 명령에 따르는 것에 익숙해진 전투의 베테랑들 뿐이었다.
이 세상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권력과 재력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TF의 최종목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인류를 전뇌세계(電腦世界)로 보내서 현실에서 완전히 이탈시키는 것이다.
이를 '쉘터' 프로젝트로 명명하고, 모든 인류를 쉘터라는 이름의 가상현실 낙원에 처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쉘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류는 이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고 복구하는 것을 반복하는 ES와의 접촉도 완전히 봉쇄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이 순박하기 짝이 없는 청년을 마음껏 연구하고 고통을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고두식은 애써 사사로운 감정을 지워없애며, 반팔티에 반바지 차림인 가드-079를 끌고 나갔다.
B41과 중간거점을 이어주는 유일한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 문득 등 뒤에서 따끔거리는 기운을 느꼈다. 감각이 아니라 기운이었다.
'...살기라고?'
어떠한 목적을 지니고 살의를 품는 인간과는 다른 순수한 살기. 마치 야생의 맹수에게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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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