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2화 (12/209)

경비 업무 일지 : 1일째(7)

ES 6-11의 방은 매우 특이한 구조를 자랑했다.

일반적으로 방이란 것은 문이 존재하고, 또 환기를 위해 창문이나 구멍이 필수적이다. 지하에선 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기 순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곳은 그 정도가 심했다.

우선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대한 철제 박스들이 벽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전자레인지를 수 십 개씩 모아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 자그마한 박스 안에는 하얀 깃털을 자랑하는 닭들이 앉아 있었다.

딱 봐도 사육장이라는 걸 알 수 있으나, 공기 순환 시스템이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에 사육장 특유의 구린내가 진동하는 일은 없었다.

다른 방 처럼 공기 순환 시스템이 몇 개 안 되었더라면, 아마도 이 곳은 어마어마한 닭똥 냄새와 동물의 잡내로 미어터졌으리라.

"어디 보자...6-11은 뽑기 알을 낳는 닭을 모아둔 특수 사육장이다?"

방 안 쪽의 벽에 부착된 안내문에 따르면 6-11에 존재하는 닭의 수는 총 24마리이며, 한 마리당 하루에 하나, 즉 24개의 알을 얻을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닭은 1번부터 24번까지, 정확히 1시간 기준으로 알을 하나씩 낳았는데, 24개의 알을 모두 얻기 위해선 반드시 당일 오전 0시 0분 1초부터, 당일 24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모양이다.

닭들이 순차적으로 낳은 알들은 모두 굉장하거나, 아니면 아주 평범하거나, 혹은 그에 못 미치는 수준의 저질스러움을 모두 갖추었다고 한다.

즉 이론상 모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24개의 알을 하루마다 얻을 수 있는 셈.

하지만 호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닭장도 평범한 닭장으로 변했다.

"와...여기 시설 사람들은 매일 달걀 프라이를 먹을 수 있겠네."

그것도 한 시간 마다 알을 하나씩 얻을 수 있다니. 원한다면 달걀 프라이, 반숙, 완숙, 계란찜, 계란말이, 계란빵, 심지어 마요에그까지! 모든 달걀 요리를 섭렵하는 게 가능한 꿈의 공간이었다.

호국은 6-11-1, 그러니까 가장 첫 번째 닭이 들어있는 작은 우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실례지만 달걀 하나만 주십시오."

"꾸우우우욱."

닭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하얀 깃털 아래로 황금빛 달걀이 슬쩍 보였지만, 호국은 강제로 달걀을 빼앗거나 하진 않았다.

군대에서 심심찮게 짬타이거나 멧돼지에게 짬밥을 주면서 동물들이 인간의 어떤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경험한 바 있다.

작은 동물들에겐 인간이 마치 거인처럼 보이기 때문에 작은 행동 하나에도 깜짝 놀라며, 특히 큰 소리로 고함을 칠 경우 굉장히 공격적으로 변헀다.

닭은 한 번도 키워본 적 없었지만, 달걀을 품고 있는 암탉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호국도 알 수 있었다. 조금 과한 비유이긴 해도, 임산부에게서 태아를 빼앗아가는 것 만큼 잔인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수 없이 두 번째 닭에게 시선을 옮겨 재차 질문했다.

"실례지만 달걀좀......?"

"꾸우우우우욱."

닭은 꼬끼오! 나 꼬꼬꼬꼬, 하고 울 때도 있지만, 비둘기처럼 소리를 애써 삼키는 듯한 소음도 자아냈다. 이 경우 그다지 손대지 않는 게 좋다.

결국 두 번째 닭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닭까지 모두 달걀을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손이라도 집어넣으면 당장 쪼아주겠다는 양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닭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달걀을 손에 넣고 싶다. 나중에 쉬기 위해 중간거점으로 돌아간다면, 라면을 끓일 때 달걀을 꼭 넣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지하 시설에 대형 마트가 있을리 만무하니, 호국도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다. 라면에 달걀, 그리고 김치와 식은밥은 우주의 진리와도 같으니까.

'6-11은 하나같이 까다로운데...달걀을 얻을 방법이 없을까?"

인간의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인다면야 제깟 가축들이 뭘 어쩌겠느냐마는, 달걀 하나 얻겠답시고 닭을 핍박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너무 추하지 않은가.

"...그래, 받고 싶은 게 있다면 먼저 줘야지."

닭장이 위치한 반대편 벽에 사료를 요청하는 빨간 버튼과 사료가 떨어지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보아하니 이 곳은 따스한 온기와 쾌적한 환경을 구성하고 있지만, 닭들이 모이를 먹은 흔적은 없었다. 알 낳느라 에너지를 써버렸는데 인간이 달걀을 달라고 하면 당연히 화날 법도 하다.

호국이 빨간 버튼을 꾹 누르자 위에서 덜컹, 덜컹 하고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벽의 덮개를 열어보니 잘게 갈아놓은 붉은 빛의 사료들이 한가득 있었다. 사료치곤 살짝 끈적끈적하고, 붉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옆에 있던 바가지로 적당량을 퍼서 닭들의 앞에 붉은 사료를 쏟아 놓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닭들이 사료를 쪼아먹었다.

"닭이 나보다 잘 먹고 잘 사네."

닭 팔자가 상 팔자라고, 사료 더미에서 툭 떨어진 눈알을 도로 주워 되돌려 놓은 호국은 다시 닭장에 다가갔다.

"이제 달걀 하나만 가져가도......?"

"꼬꼬꼬꼬."

1번 닭이 슬쩍 자리를 비켜서 황금빛 달걀을 내주었다.

'아싸, 오늘 저녁은 무조건 라면이다!'

재빨리 달걀을 가져온 호국은 흐뭇한 얼굴로 6-11의 방을 빠져나왔다.

카지노에서 실컷 노는 사이에 점심도 걸렀기 때문에 슬슬 배가 고파지던 참이었다.

자신이 챙겨온 캐리어에 어머니가 싸준 냉장 김치와 라면이 몇 개인가 있었으니, 오늘 저녁은 라면 말고 다른 건 생각할 수 없었다.

때깔 하나는 기가 막히는 달걀을 고이 주머니 속에 넣고, 6-11의 방은 안전하다는 체크를 했다.

그래도 살짝 양심이 찔렸기 때문에 기타 의견에 양심 고백을 했다.

-저녁에 라면 끓여먹으려고 달걀 하나 가져감

이렇게까지 했으니 고작 달걀 하나로 사람을 족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 그럼 시간도 늦었겠다...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올라가자. 6-01 할아버지 밥도 차려줘야지."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게 먹을 것으로 사람 차별하는 일이다. 자기 입만 입이고, 남 입은 주둥이라면 그건 짐승만도 못한 생각이다.

중간거점의 초소에 이전 경비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레인지와 식기, 정수기가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큰 냄비에 라면 몇 개 넣어서 끓인 다음, 김치와 달걀을 넣어서 마무리를 해주면 자신과 할아버지가 나눠먹기엔 충분할 것 같았다.

'햇반도 있으면 좋겠는데.'

호국은 되돌아가는 길에 CCTV를 바라보며 시스템을 호출했다. 때마침 재부팅이 끝난 시스템은 어느새 시설 전체가 폐쇄된 것을 파악했다.

-가드-079.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아! 6-10에서 저한테 뇌물을 주려고 한 여자를 체포하려고 했는데, 그건 실패했어요."

-그럼 현재 시설이 폐쇄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아뇨. 그런데 폐쇄가 뭐죠?"

-누구도 들어오지 못 하고, 나가지도 못 한다는 뜻입니다.

"몰랐는데요."

-...TF 측에서 기동타격대를 파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가드-079는 비상 메뉴얼 5번에 의거해 즉시 중간거점으로 올라가 게이트를 개방하십시오.

"비상 메뉴얼 5번...높으신 분들이 행차할 때는 무조건 문을 열어라?"

-맞습니다. 직급이 높은 쪽이 전부 해결해줄 것이니 게이트를 개방하면 됩니다.

관리봇은 재부팅 과정에서 호국의 심리를 미리 파악해두었다.

메뉴얼에 살고 메뉴얼에 죽는다. 행동은 무조건 FM이며 융통성이 없다. 반대로 메뉴얼에 기재된 사항이 아닌 상황에 직면할 경우, 통제를 벗어나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즉 호국을 장난감처럼 쉽게 다루고자 한다면 메뉴얼을 상기시키면 된다. 단 존재하지 않는 메뉴얼이면 안 된다. 그가 메뉴얼을 짧은 시간만에 전부 외워버렸다는 건 관리봇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어서 움직이십시오.

"명령에 따라야죠!"

비상 메뉴얼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호국도 모르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음을 의미한다.

자신은 안전 점검을 하는 동안 어떤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기에, 다짜고짜 등 뒤에 메고 있던 펄스 라이플부터 뽑아들었다.

'나한테 뇌물을 준 범죄자가 있다고 해서 비상 사태가 터졌을리는 없고. 누가 침입했나? 아니면 탈출?'

어느 쪽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상층부에서 호국의 기행을 면밀히 조사하려는 목적이었을 뿐.

그걸 알리가 없는 호국은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B41까지 올라간 뒤, 저위험군의 체크 포인트를 통과해서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중간거점의 거대한 성벽같은 게이트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누가 침입하지도, 탈출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지하 40층 아래에서 터진 일이 아닌 듯 했다.

'내 임무는 지하 40층을 지키는 거니까 위 쪽은 신경쓸 필요 없겠지.'

39층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한들, 거기까지 호국이 신경쓸 일은 아니었기에 잠자코 라면이나 끓이기로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관리봇도 그를 39층 위로 올려보낼 방법이 없어, 인간이 느끼는 '답답함'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드 메뉴얼은 대부분 상급자가 행차하면 상급자의 명령에 따른다, 시설을 지킨다, 조사 및 안전 점검의 전반적인 작업을 수행 한다 등의 내용만 기재되어 있다.

이는 철저하게 하급자의 의무만을 작성한 것이라, 하급자에게만 강요하는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메뉴얼이다.

TF에선 시설 경비를 수동적인 노예로 보지, 능동적인 인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근본적인 문제였다.

관리봇이 즉석에서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시설 경비는 필요시 39층 위로 올라가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 라는 추가 메뉴얼을 작성한 뒤, TF 본부에 전송했다.

윗분들의 결재가 이루어지는대로 새로운 의무사항이 가드 메뉴얼에 추가될 것이다.

하지만 관리봇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호국은 40층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곤, 신나게 라면을 끓여서 다시 아래로 가져갔다.

지금껏 모든 연구원과 기동타격대, 그리고 시설 경비는 40층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식사를 한 적은 있어도, 본인들이 원해서 식사를 가지고 내려간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 끔찍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하로 굳이 기어들어가서 식사를 할 만큼 미친 인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래로 내려가기 직전, 호국이 관리봇에게 했던 질문은 아직도 CPU를 혼란스럽게 했다.

햇반은 없냐는 그의 질문은 관리봇이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햇반 검색. 햇반은 동양인의 주식인 쌀을 조리하여 가공처리 한 뒤, 밀폐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인스턴트 식품의 일종. 왜 가드-079가 본 시스템에게 햇반의 행방을 물었는지 이해할 수 없음. 햇반을 찾는 인간의 행동을 검색. 인간은 더러운 오물이나 비위가 상하는 광경을 목격할 시 '빨리 내 햇반과 숟가락을 가져와라!' 라고 발언함. 인간은 더러운 광경을 보면서 햇반을 먹는 습성이 있다는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

관리봇이 AI답지 않게 꾸물대는 사이, 시설의 일시적인 폐쇄를 해제한 기동타격대가 내부로 진입했다.

그들은 제 6 처리시설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관리하는 19~38층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곧장 40층으로 내려왔다.

호국이 급하게 라면을 들고 내려가느라 게이트는 활짝 열려있는 상태였다. 지금 당장 ES가 뛰쳐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기동타격대 알파-3, 베타-75, 감마-21의 중간거점 접근을 확인. 현장지휘관 존 페르난도 소령의 접근권한이 허가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중간거점의 게이트가 열려 있다고 해서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허가받지 않은 인물이나 ES가 통과할 경우, 감지센서를 통해 비허가 인원이 통과하였음을 알리고 코드 레드를 발령한다.

물론 현장지휘관씩이나 되는 인물이 그런 실수를 할리가 없었다.

존 소령은 관리봇의 접근 허가 방송이 나오기가 무섭게 부대원들을 셋으로 나눠 아래로 진입했다.

감마 부대는 중간거점 바깥에서 대기, 베타 부대는 41층 저위험군에서 대기, 그리고 존 소령이 직접 이끄는 알파 부대는 목표인 가드-079를 찾아서 그를 심문하고, 필요시 체포하여 밖으로 끌고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머지 않아 그들이 보게 될 광경은 구속구가 해제된 6-01이 가드와 라면을 나눠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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