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1일째(4)
"거길 네가 왜 들어가 미친 놈아!!"
태연하게 6-01의 은폐실에서 걸어나온 그는 곧바로 6-04의 은폐실로 들어갔다.
보안등급 3급 ES는 모두 '날아오르는 까마귀' 문양으로 분류되어 있다.
날아오르는 까마귀는 불길한 징조, 혹은 전란을 감지하는 성질이 있어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관리하기에 따라 재앙이 아니게 만들수도 있으므로 3급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서 2급은 3개의 머리를 가진 짐승, 1급은 불을 내뿜는 용, '논외'에 해당하는 것은 태양계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실 논외에 해당하는 것들은 대부분 은폐에 실패했기 때문에 극소수의 고위 관계자들이 아니면 그런 존재조차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안등급의 높고 낮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TF 재단에서 은폐시켜두는 것들은 인류에게 잠재적, 혹은 적극적이면서도 현재진행형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안전이 확인된 것들이 오히려 적을 정도이며, 최하위의 보안 등급인 5급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
그런데 영상 속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숨쉬는 밀림'으로 걸어들어갔다.
"우와, 저걸 보호복도 입지 않고 그냥 들어가네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 가드 메뉴얼에 '6-04의 은폐실에 들어갈 땐 보호복을 입어라' 라는 주의사항이 쓰여 있지 않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에도 김호국의 미친 짓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살아숨쉬는 밀림은 본래 아마존의 밀림 중심부에서 발견된 '절대 파괴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 자그마한 생태계 구역이었다.
그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인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밀림을 파괴하든 절대 변하는 법이 없었다.
이 사실에 의문을 느낀 TF 재단 측에서 조사관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살아숨쉬는 밀림이 태양으로부터 얻는 햇빛과 밀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체로부터 에너지를 얻어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살아숨쉬는 밀림의 생태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주변 구역을 문자 그대로 원천봉쇄하자, 얌전히 있던 식물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식물들은 조사관들을 마구 공격했으며, 차단된 햇빛과 생명체의 생명력을 그들로부터 대신 흡수했다.
그 생명력은 원천은 숲 중심에 존재하는 옹달샘의 수위 변화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옹달샘이 일정 수위 이상 낮아지면 에너지가 매우 부족하니 식물들이 날뛸 징조임을 의미했다.
반대로 에너지가 풍부한 상태라면 옹달샘이 가득 차있으며, 식물들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존 중심에 내버려두면 지구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멀쩡하게 살아있겠지만, 생명체를 탐한다는 위험성 때문에 결국 TF 재단에서 옹달샘과 주변의 식물들을 통째로 들어내서 처리시설에 보관했다.
물론 식물들이 성장할 여지를 주면 안 된다는 의견하에 토양과 진짜 햇빛은 일절 제공되지 않았다. 그저 정기적으로 처리해야할 '목격자'들을 몇 명 내주었을 뿐.
"옹달샘의 수위가 그렇게 높아보이진 않는데...저러면 위험하지 않나?"
"제 6 처리시설의 사태를 수습한지 얼마 안 되어서 영양분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당연히 은폐실에 들어가자마자 공격받았어야 정상인데......"
실제로 영상 속에선 호국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그의 뒤에서 나무 뿌리나 줄기들이 뱀처럼 스멀스멀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호국을 붙잡아서 모든 영양분을 빨아들일 기세였다.
하지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호국이 다짜고짜 덩굴을 잡아뜯거나, 나무 가지를 꺾어버리거나, 잡초들을 뽑아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귀를 찢는 듯한 살아있는 식물들의 비명이 울려퍼졌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계속 했다. 이게 녹화된 영상이라 임펙트가 약한 것이지, 실제로 지척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면 일반인은 그대로 졸도했을 것이다.
"대, 대체 뭘 하는거야? 왜 멀쩡한 식물들을......!"
"아! 뭘 한 건지 알겠습니다!"
"뭔데?"
"살아숨쉬는 밀림에 영양분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영양분이 부족한 상태 아닙니까? 그렇다면 영양분을 공급해주지 않더라도 허기를 달래줄 방법이 존재합니다."
"그게 무슨...설마?!"
"예, 가지치기와 잡초 뽑기입니다. 쓸모없는 주제에 영양분을 가져가는 것들을 깔끔하게 처리해준다면? 식물 입장에선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행위입니다."
원예 작업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과일 나무도 불필요하게 영양분이 분산될 일이 없도록 가지를 쳐주고,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의 영양분을 빼앗지 못 하게끔 잡초도 뽑아준다.
식물 입장에선 정말 몸에 들러붙어 있던 진드기들을 죄다 뽑아준 느낌이라 고마워할 것이 분명했다.
"과연...그래서였군."
호국이 6-04의 은폐실을 나가기가 무섭게 옹달샘의 수위가 조금 올라간 것을 확인했다. 영양분이 쓸데없이 분산되어 있던 현상이 해결된 것이리라.
"사실 진국은 이겁니다. 다른 부서에서도 지금 말이 많은데...무려 6-09와 접촉했습니다."
"이젠 할 말도 안 나오네. 그거 블록 하나만 잘못 쌓아도 죽는 거 아니었나?"
블록 하나라도 잘못 쌓으면 죽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단 하나도 블록을 쌓지 않으면 누가 죽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수 십개의 나무 블록으로 구성된 ES 6-09 역시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와 한국의 처리시설에 처박혔다.
본래 목적은 영국 왕실의 왕자를 암살하기 위해 어린이용 상품으로 섞여든 것이었다고 하는데, 아직 자세한 진위는 파악하지 못 했다.
하지만 블록 위에 단 하나의 블록이 쌓이기만 하면 그 형태에 제작자의 영혼이 속박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숱한 실험 끝에 블록은 최소 2개 이상이 겹쳐져 쌓여야 하며, 또한 쌓인 블록은 10분이 지나기 전에 '반드시' 무너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계를 이용해 블록을 쌓으려고 하면 블록은 세상의 그 어떤 물질보다도 무거워져서 절대 움직이지 않으며, 동물을 이용하려 하면 동물들이 블록을 기피했다. 또한 인간이 블록을 쌓은 뒤에 기계로 무너지지 않게끔 고정해보았지만, 그때는 기계가 파괴되는 것과 동시에 기계의 조작에 관여한 모든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모든 피해자들의 사인은 원인불명의 즉사.
이때문에 결국 블록은 한 사람당 하나씩 들고 옮겨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 하게끔 처리시설에 처박아둔 계기가 되었다. 다른 ES들과 마찬가지로 아직 파괴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보관만 해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김호국은 그걸 만졌다. 그것도 블록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저, 저, 저......!"
"아니 저걸...봉지에? 왜?!"
박사도, 그의 부하도 황당하다 못해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얼굴로 영상을 지켜보았다.
가드에게 지급되는 구토용 봉지에 블럭을 죄다 쓸어담은 호국은 장난감 정리 봉지라고 써넣기까지 했다. 저건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빌어먹을 악마의 블록인데!
10분이 지났지만 호국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블록의 움직임에 변화는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봉지에 담겨 있어야 했다는 것 처럼 잠잠했다. 그래서인지 이 영상을 확인한 다른 박사들도 경악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대체 어떤 원리지? 블록들이 봉지에 마구 뒤섞인 탓에 '제대로' 형태가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봉지가 꽉 묶여서 블록들의 움직임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럼 기계로 고정하려 했던 사람들이 죄다 죽어나갔을리가 없지!"
"......"
박사의 타박에 부하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이 곳에서 오랫동안 ES의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두 사람이지만, 당췌 이 상황 만큼은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정말...말이 안 됩니다."
"그래. 말이 안 돼. 어쩌면 이 상황 자체를 하나의 침식 현상으로 보고, 이 가드를 ES로 규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야."
"하지만 상층부에선 그가 이미 평범한 인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기억력이 조금 뛰어나다는 것 빼면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인간이랍니다."
"그러니까 더 말이 안 되는 거지! 어떤 미친 놈이 제 발로 3급 보안은폐실에 걸어들어가려고 해? 그것도 혼자서!"
게다가 멀쩡하게 살아나왔다. 조심성 없는 행동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건 기적중의 기적, 로또를 10번 연속으로 당첨될 수준이었다.
세계 각지의 연구시설에서 비상이 걸렸다. 어떻게든 이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을리 없는 호국은 여전히 지하 40층 아래를 탐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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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42의 저위험군에서 고위험군으로 내려온 호국은 ES 6-10의 은폐실 앞에 당도했다.
"오, 라스베가스."
날아오르는 까마귀 문양과 함께 ES 6-10이라고 새겨진 안내판이 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신기하게도 안내판에는 '한탕하고 싶은 자들의 방'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도박판은 아무튼 라스베가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은폐실의 입구는 화려한 서양식 건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문이었다. 온갖 화려한 장식과 손잡이까지도 공을 들인 듯한 고풍스러운 느낌. 장인정신이 물씬 풍겨나왔다.
보안 카드를 갖다대는 터치패널이 옥의 티였지만.
임시로 3급 보안등급이 부여된 보안카드를 갖다대니 짜라란 짜라란 쿵짝짝 쿵짝짝~ 하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면서 문이 저절로 열렸다.
내부 공간은 호국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넓었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조명과 온갖 도박 기계,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벽 한 쪽에 주욱 늘어선 슬롯머신들부터, 룰렛 게임과 카드 게임을 별도로 즐길 수 있는 판이 진짜 카지노의 풍경과 판박이였다.
물론 카지노는 커녕 하우스에도 들러본 적 없는 호국은 FPS 게임을 통해 이런 존재를 알고만 있었다. FPS 게임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카지노였으니까.
카지노는 보통 불법을 저지르는 악당들의 본거지이거나, 주인공 일행이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곳으로 활용된다.
일이 잘못되면 불법 조직의 수하들이 즉시 총을 뽑아들고, 주인공 일행은 '젠장! 일이 잘못됐다!'라는 상투적인 대사를 내뱉으면서 반격을 가하는 시츄에이션을 많이 봤다.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면 이 곳은 굉장히 넓고 화려했지만, 호국을 제외한 손님이라곤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나 시끄러운 효과음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좋다. 사람이 없으면 마음껏 둘러볼 수 있으니까.
호국은 부모로부터 노력없이 허황된 재물을 탐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도박은 커녕 친구들과 내기조차 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박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스마트북으로 다운 받은 옛 시대의 유물들 중에 도박 게임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쉬운 건 땅따먹기부터 어려운 건 포커까지. 게임으로 온갖 도박을 체험해본 호국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러자 음료수를 놔두는 구멍에서 곱게 접혀진 쪽지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판돈을 걸어야만 게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호국은 난감했다. 게임처럼 실제 판돈이 들지 않는 공짜 도박을 체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애초에 돈도 없고."
중간 거점에 놔두고 왔던 캐리어에 지갑이 있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호국은 연한 하늘색의 가드용 보안 카드와 제주도 감귤맛 초콜릿을 꺼냈다. 확실히 돈은 아니었다.
상했을지도 모르는 감귤맛 초콜릿 몇 개를 구멍 속으로 던져넣자, 신기하게도 구멍이 저절로 닫혔다.
잠시 후, 테이블 테두리에 설치된 LED 전등이 반짝반짝 발광하면서 게임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호국이 앉은 테이블에서 주최되는 게임은 집중이라는 게임이었다. 일본에선 신경쇠약이라고도 부르는 장르의 캐쥬얼한 게임이었다.
잘 섞은 52장의 플레잉 카드를 한 장씩 뒤집어서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뒤, 게이머들이 돌아가면서 2장씩 뒤집어 가며 같은 숫자의 카드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 주 목표다.
예를 들어 클로버 2와 다이아 2를 한 번에 찾았다면 점수를 얻고, 추가로 두 장의 카드를 또 뒤집을 수 있다. 계속해서 찾아낸다면 계속 카드를 뒤집을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숫자 찾기에 실패한다면 그 카드는 다시 뒤집히고, 상대에게 턴이 돌아간다.
뒤집혔던 카드가 많을수록, 그리고 기억력이 좋은 게이머일수록 유리한 것이 바로 집중 게임이다.
게임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테이블은 거대한 터치 패널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카드 자체를 인간이 조작할 수 없게끔, 오로지 컴퓨터의 RNG 시스템에 의해 구성된 최신예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이 시작되자 호국은 문득 자신의 맞은편에 한 명의 사내가 앉아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회색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있는 중년 신사였다. 멋들어지게 기른 콧수염과 한 쪽 손에 비스듬히 들고 있는 시가 담배, 모자의 챙 아래로 살짝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만난 사람에겐 인사를 하라고 배웠으니 인사를 했다.
그러자 상대방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전 하나를 호국에게 던져주었다.
호국이 아무리 멍청해도 동전의 의미를 모르진 않았다. 즉시 하늘 높이 튕겨 올려서, 떨어지는 동전을 잡았다.
"저는 문양을 고를게요."
그렇다면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숫자를 고른다.
손을 열어 확인해보면, 동전은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선공이 주어진 것이다.
중년 신사는 시가를 한 모금 빤 후에 느긋한 손동작으로 카드 두 장을 골랐다. 다이아 5와 하트 6이 나왔다.
차례를 넘겨받은 호국도 당장 자신과 가까운 자리에 있는 카드들 부터 두 장을 골랐다. 운이 좋게도 다이아 9와 클로버 9가 나왔다.
한 번의 기회가 추가되었기에 이어서 하트 2와 스페이드 6을 뽑았다.
"에이."
상대가 빙긋 웃으며 하트 6, 스페이드 6 조합을 가로챘다. 확인된 조합은 2개, 짝이 없는 카드도 2장.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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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