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1일째(2)
"들어갈게요."
타인의 방에 들어갈 때는 항상 노크와 자신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예의라고 배웠다.
거대한 은행 금고 같은 격벽 너머의 공간이 과연 방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호국은 스마트 패드를 든 채 환한 백열등 전구가 비추고 있는 ES 6-01의 방으로 들어갔다.
호국이 방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격벽이 쿵!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혔다. 입구 근처를 비롯해 정사각형의 방 사면에 부착된 CCTV들이 모두 붉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 계셨네요."
6-01의 방은 조금 과장해서 자그마한 풋살 축구장과 비슷한 넓이를 자랑했다. 속 편하게 뛰어다녀도 될 수 있을 만큼 넓은데다 사물이라곤 달랑 의자 하나 뿐인 공간이었다.
정작 그 의자 위에도 몇 겹에 달하는 구속구와 체인, 그리고 동작 감지형 폭탄을 달고 있는 한 남성이 앉아 있어, 실질적으로 호국이 앉을 곳은 매끄러운 흰 타일의 바닥 뿐이었다.
남자의 전신은 얼굴을 제외하면 구속구와 피묻은 넝마조각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이렇게나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인 것에 비해, 그의 근처에 다가가면 코를 찌르는 듯한 썩은내가 진동했다.
하지만 김호국이 누구인가? 상관의 명령이라면 마스크 한장 끼고 하수도에 기어들어가 오물을 치울 수도 있는 남자다.
메뉴얼과 명령에 따르면 자다가도 복이 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라, 호국은 태연하게 그의 앞으로 걸어들어갔다.
"불편하신 곳이 있나요? 식사는 하셨나요? 화장실은 다녀 오셨나요?"
호국은 군인이었던 시절, 대민지원에 나가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들을 상대했던 경험을 토대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머리가 전부 벗겨진데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보기 흉한 검버섯이 보였기 때문에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이라고 멋대로 착각한 것이다.
남자는 여지껏 감고 있었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흰자위의 중심에 나타난 것은 핏빛처럼 붉게 물든 눈동자였다. 80억이 넘는 인구 중에서도 굉장히 보기 드물다는 레드 아이.
하지만 호국은 그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의자에 앉아있는 그의 주변을 돌면서 신체 상태를 체크했다.
"벨트가 너무 꽉 조여 있지 않나요? 좀 느슨하게 해드릴까요?"
20대 청년의 힘으로도 옴짝달싹하지 않을 만큼 구속구는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것을 단순히 허리띠와 비슷한 벨트라고 착각한 호국이 풀어보려 애를 썼지만, 벗겨지는 커녕 더욱 옥죄였다.
하는 수 없이 구속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을 포기한 그는 가드의 지급품 중 하나인 물티슈를 꺼내들었다.
보통은 피나 땀을 닦는 용도로 사용되지만, 호국은 물티슈로 남자의 벗겨진 머리를 맨들맨들해질 때 까지 닦았다. 백열등의 환한 불빛을 반사할 수 있을 만큼 닦은 후에야 겨우 만족했다.
"흠...식사도 안 하신 것 같은데."
그의 눈에 비친 남자는 비쩍 마른 노인이었다. 하루 한 끼나 먹었을까 의심스러울 만큼 피골이 상접했는지라, 호국은 그가 밥을 먹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오늘 ES 6-01님께 식사가 제공 됐나요?"
-......
"식사 제공이 아직 안 됐어요? 화장실도 안 보냈고? 그러면 안 되는데."
자고로 집에서 기르는 개 돼지도 밥은 먹여가면서 일을 시킨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밥을 먹이기는 커녕 화장실조차 보내주지 않았다니? 의자에서 구린내가 올라올 때 까지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호국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군대조차 군인의 식사와 생리 현상 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여전히 시스템으로부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호국은 하는 수 없이 스마트 패드에 안전 사항들을 하나씩 체크해나갔다.
그리고 가드 개인이 자신의 관찰 의견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공란에 'ES 6-01에게 식사 지급과 화장실 이용이 이루어지지 않았음' 이라고 적었다.
이는 각 시설의 연구원들에게 연구 기록과 함께 보고된 뒤,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상층부로 발송되는 시스템이었다.
그걸 알리가 없는 호국은 영 못 마땅한 얼굴로 안전 점검을 끝마친 뒤, 다시 6-01을 돌아보았다.
6-01은 여전히 붉게 빛나는 눈으로 호국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목을 물어뜯고, 흘러넘치는 피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싶어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일단 아래 쪽을 전부 둘러본 다음 돌아와서 화장실에 보내드릴게요."
화장실은 중요한 문제다. 먹는 구멍이 있다면 싸는 구멍도 있는 법이니까.
얌전히 의자에 앉아있는 6-01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인 호국은 굳게 닫혀있는 격벽을 주먹으로 쾅쾅 두들겼다. 빨리 다음 행선지로 가야하니 문을 열어달라는 신호였다.
곧이어 둔중한 격벽이 열렸다. 호국은 다시 복도로 나섰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격벽은 6-01의 방과 복도 사이의 공간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는 몰랐을 것이다.
이 방에 직접 들어온 사람들 중 99.99%가 죽어나갔음을.
그가 살아나가기 전 까지는 100%의 사망율을 자랑했음을.
호국이 떠난 뒤에도 6-01은 한동안 눈을 감지 않았다. 사방의 모든 흰 타일이 뒤집히며 각종 기계 팔들이 튀어나와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그 순간까지도, 결코 눈을 감지 않았다.
이미 12년 간이나 이어진 고문(torture)이다. 이제는 자신의 살점만 정확히 찢어발기고, 태우면서, 녹여 없애는 기계팔들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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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서비스가 영 아니네."
호국은 6-01의 방을 둘러본 직후, 이 곳의 시설이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알았다.
식당은 있는데 화장실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공간이 존재하질 않나, 사람을 가둬두고선 식사도 제공하지 않고 침대에서 재우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서비스직에 안드로이드들이 나서면서 요양원의 노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사건따위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이 곳은 겉보기엔 최신식 시설처럼 보여도 아직 그런 점이 많이 부족했다.
사람이 없으면 안드로이드라도 쓰면 될 일인데, 그런 기색은 없었다.
'높으신 분들의 복잡한 사정같은 건 잘 모르지만, 군대에서 배운 게 맞다면 이건 틀림없이 공금 횡령이겠지.'
어중간한 계급의 사람들이 항상 이것저것 빼돌리는 행위는 의외로 군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작게는 군인의 부식부터, 간이 커지면 군용차량의 연료나 군수품 따위를 빼돌리기도 한다. 이 경우도 비싼 안드로이드를 쓰기엔 아까우니까 공금을 몰래 횡령한 게 아닐까 싶었다.
"다음은 6-04."
복도를 한참이나 걸어 도착한 곳은 6-01을 가둬두는 거대한 격벽과는 다르게, 척 봐도 오래되어 녹슬고 낡아보이는 자그마한 철문이 6-04 방의 문이었다.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문양은 녹슨 흔적 때문에 지워져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6-04라는 숫자만은 선명했는데, 최근에 누가 다녀가면서 새로 페인트 칠만 한 것 처럼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 앞의 문은 별도의 잠금 장치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손잡이를 비틀기만 하면 쉽게 열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구조를 자랑했다.
슬쩍 복도의 CCTV를 올려다 본 호국은 다음 안내 방송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안내방송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방에서 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냈으니, 다음 방부터는 알아서 해보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래, 이게 바로 직장이지.'
뛰어난 신입에게는 어느 정도 자유를 줘서 능동적인 업무 처리를 유도한다.
그러다 모르는 게 있으면 즉각 질문하게 해서 잘 가르친 다음, 하나를 배우면 둘을 할 수 있게 되는 에이스 부하를 키워내는 것이다. 호국은 이런 분위기를 선호했다.
들뜬 마음으로 6-04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번에는 후덥지근한 열기가 안 쪽에서부터 후욱 밀려왔다.
순식간에 풀페이스 헬멧에는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군복에 파츠 아머까지 착용하고 있는 호국의 몸은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땀범벅이 됐다.
그야말로 아마존의 밀림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습도! 철문이 왜 녹이 슬어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식물원?'
바깥의 SF풍 복도와는 달리, 6-04의 방은 지하 시설에 존재하는 환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식물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족히 10m는 될 법한 천장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광원, 그 아래로 무럭무럭 자란 괴상한 나무와 꽃들이 방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특히 절경인 것은 홀로 우뚝선 나무와 그 아래에 형성된 자그마한 옹달샘이었다.
흙따윈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타일 바닥에 제멋대로 뿌리를 내린 식물들과,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도 모를 옹달샘은 호국의 호기심을 마구마구 자극했다.
'좀 심하게 습한 것만 빼면 딱히 이상한 건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가드의 업무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수풀과 나무를 일일이 헤쳐서 공기 순환 장치의 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시스템이 온전하게 작동해야만 문제가 없는 것이니, 귀찮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전부 살폈다.
길게 자란 덩굴이 천장의 등을 뒤덮으려 하고 있었기에, 손으로 잡아 당겨서 천장으로부터 떼어놓았다.
덩굴이 뜯겨 나올 때 마다 묘하게 끼익, 끼익 하고 거슬리는 소리가 새어나왔으나, 메뉴얼에는 '이상한 소리를 체크하시오' 같은 건 없었다.
한때 제초 작업의 에이스로 불렸던 호국은 두 팔 걷어부치고 식물들의 손질에 나섰다.
이 곳은 완벽한 식물원이었지만, 일부 나무들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에 아래의 풀과 꽃들이 제대로 빛을 받지 못 하는 상황이었다. 직접 햇빛을 받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아쉬운대로 가지치기만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불필요한 잔가지는 꺾고!"
끼이이이이이익!
"불필요한 잡초들도 뽑고!"
꺄아아아아아악!
이상하게 뿌리가 꿈틀대는 잡초들을 한데 모은 호국은 구토용 봉투에 모두 담아 꽉 묶었다.
피비린내와 살점이 흩어진 광경을 자주 보는 가드들은 매일 같이 구토를 하기 때문에, 1인당 5개씩 구토용 봉투를 매일 지급받았다.
그걸 쓰레기 봉투로 착각한 호국은 이상한 식물원에서 뜯어낸 덩굴 더미와 잡초들을 모두 담아 나왔다. 그것 외엔 별 다른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역시나 안전 점검은 모두 이상 없음으로 체크했다.
호국이 철문을 닫고 나오기 전 까지 6-04의 방에선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이 미친듯이 울려퍼졌다.
이 세상에는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도 있는데, 비명을 지르는 비명식물도 없겠냐는 것이 호국의 생각이었다.
"자, 다음은 6-09!"
연신 꿈틀대는 봉투를 붕붕 휘두르며, 호국은 땀을 뚝뚝 흘리면서 B41의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6-09의 방은 앞선 두 개의 방들과는 달리, 보안 카드를 갖다대면 자동으로 열리는 미닫이 형식의 철제 문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문 위에 부착된 두꺼운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 곳에는 아주 희미한 불빛을 내뿜는 작은 전구 하나만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 법한 구체, 원뿔체, 정육면체의 목재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문득 호국은 저 장난감들로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육면체 몇 개를 벽처럼 쌓은 뒤에, 그 위에 원뿔체를 올려두고 '이건 성이다!' 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구체 장난감을 던져서 정교하게 쌓은 성을 무너뜨리고 싶다. 왠지 장난감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강렬한 충동은 마치 사흘을 넘게 굶은 다음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눈 앞에 둔 것과 비슷했다. 눈 앞의 음식과 저 장난감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당장 방으로 뛰어들어가서 목재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굶주린 허기를 달래기 위해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것은 별반 다를 것 없으리라.
호국은 자연스럽게 6-09의 방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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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