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2화 (2/209)

와! Task Force! (1)

-mission failed we'll get next time!!

"으아아아아아! 안 돼! 비누 소위!!"

한 자동화 공장의 설비 관리자의 직책을 달고 있는 청년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싸쥐었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구형 스마트북. 대단한 부품들이 탑재된 것 치곤 가상현실 체험 기계가 나온 이후로 퇴물로 전락해버린 비운의 제품이었다.

"다시...다시 하자. 그 구간에선 떠돌이 개를 쏘면 안 되는 거였어. 기억했어."

-mission failed we'll get next time!!

"안 쐈잖아! 안 쐈다고!!"

떠돌이 개에게 발각되는 순간 떠돌이 개가 사납게 짖고, 그러면 주변의 떠돌이 개들도 몰려든다는 사실을 청년은 알지 못 했다.

"버그인가? 아니면 저 개가 날 싫어하는 건가?"

일반인이었다면 개가 자신을 보자마자 짖었으니, 발각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청년은 자신이 발각되었고, 그로 인해 개가 짖어서 주변의 개들이 몰려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단순히 개가 자신을 싫어해서, 혹은 오래 된 게임이 버그를 일으킨 것이라는 1차원적인 생각을 했다.

"한 번만 더 해보자. 비누 소위는 반드시 살려야 해. 행보관님께서 군인은 절대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고 했어......!"

군을 전역하자마자 자동화 시설의 설비 관리자 아르바이트를 잡은 호국은 시급 천 원을 받으면서 하루 12시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절대로 에러가 발생할 일은 없지만 근로법상 자동화 시설 하나당 한 명 이상의 관리자를 고용할 필요가 있었기에, 시설의 소유주는 시급을 천 원으로 깎고 12시간 근무를 요구했다.

호국은 때마침 일자리가 필요했고, '아무것도 안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 12시간 근무 1만 2천원의 아르바이트를 받아들였다.

일당 1만 2천원 외에도 별도의 식대 5천 원과 차비 5천 원을 포함해서 1만 원을 더 받았지만, 호국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비록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전화를 통해 명령을 내리는 시설 소유주의 불량한 태도에도 불평 한 마디 내뱉지 않았다.

이런 자신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줬다는 사실 만으로도 크게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근무 시간 동안 잠을 자든, 책을 가져와서 읽든 일절 신경쓰지 않겠다는 시설 소유주의 고마운(?) 배려가 있었다.

덕분에 호국은 이른 아침부터 낡은 스마트북을 공장으로 가져와 고전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게임 타이틀은 국방의 부름 : 삽질 워페어. 놀랍게도 국산 게임이었다.

"걱정마 비누 소위. 내가 삽질 하나는 자신있어!"

스토리상 그늘 속에 몸을 숨겨 테러리스트 단체의 비밀 기지에서 탈출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호국은 벌써 들개 무리에게 다섯 번이나 죽은 참이었다.

그래서 삽질 워 페어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야삽으로 열심히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자유도가 매우 높은 게임이라 적지 침투, 탈출시에 땅굴을 이용할 수 있는 게임의 팁을 떠올렸던 것이다.

"좋아, 이제 1km 만 더 파면 탈출할 수 있어!"

자신의 캐릭터 뒤에서 총상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비누 소위를 탈출시키기 위한 호국의 몸부림은 실로 처절했다.

땅굴을 파다가 지면에 파묻힌 지뢰를 건드려 폭발하기 전 까지만 해도 그의 얼굴엔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콰아아아앙!

-mission failed we'll get next time!!

"......"

조금만 더 하면 비누 소위를 탈출 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던 호국의 시야는 검게 물들었다.

스마트북의 검은 화면을 나타난 것은 '전쟁은 총질이 아니라 삽질로 하는 것이다' 라는 모 장군의 한 줄 명언이었다. 캐릭터가 죽을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전쟁 명언 중 하나였다.

"북동쪽 루트는 지뢰가 있었구나. 기억했어. 그럼 북쪽 루트를 파보자."

들개 무리가 돌아다니고 있는 루트를 제외하면 시설 전방위의 지면에 지뢰가 파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약 4시간이 걸렸다.

-mission success!!

"보고 계십니까 가격 대위님. 제가 비누 소위를 탈출시켰습니다......!"

삽질 워페어의 전작인 삽질 오브 삽질의 비운의 주인공 가격 대위를 떠올리며, 호국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무려 40년도 더 된 게임이었지만 괜히 명작 취급을 받는 게 아니었다.

군인은 절대로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는 행보관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무사히 탈출한 호국의 캐릭터와 비누 소위는 수송 헬기에서 서로의 주먹을 부딪치며 엔딩을 맞이했다.

전역한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탓일까, 호국의 눈에선 감동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때마침 울리는 점심시간의 소리에 호국은 찌뿌둥한 허리를 펴며 일어났다.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과 공장주가 지급해준 식대로 산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울 생각이었다.

점심을 먹고나면 공장 내부를 쭉 둘러보고, 기계들의 내구성 문제나 시스템 오류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기껏해야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인 호국은 복잡한 기계들의 쓰임새나 시스템의 전문 용어들은 하나도 몰랐지만, 공장주가 지급해준 시설 관리 메뉴얼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뭘 하는 설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빨간 불이 들어오면 무조건 에러가 났다는 의미다. 그리고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ERROR 라고 뜨면 뒤에 추가되는 식별 코드에 따라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스템 모니터에 'ERROR 11' 라는 단어가 출력되면 설비의 주요 부품이 내구도 문제로 파손되었거나, 기계가 부품의 내구도 한계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멈췄다는 것이다. 메뉴얼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최고의 라면은 육개장 작은 컵이지."

호국만 사용하는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이 쪼르륵 흘러나왔다. 이마저도 공장주가 수도세를 아끼기 위해 하루에 나오는 물의 양이 정해져 있었다.

호국은 100년 전통의 육개장 작은 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풀었다. 도시락은 항상 밥과 볶음김치, 그리고 계란말이와 비엔나 소세지 조합이었다. 가끔 저녁으로 카레를 먹고나면 전날의 카레를 보온병에 담아주는 일도 있었다.

건장한 20대 청년이 국가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보람찬 기분으로 맛있는 식사를 즐긴다. 이것 만큼이나 즐거운 삶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삶을 살면서 돈도 받을 수 있다니. 이 세상에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야.'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 생명과학부 2학년으로 재학중인 여동생은 멍청한 호국과는 달리 글로벌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취직할거라며 매번 그를 깔봤지만, 호국은 여동생이 곧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생명과학부가 뭘 하는 곳이고, 또 글로벌 대기업이 얼마나 대단한지 눈곱만큼도 관심없었지만. 어쨌든 여동생이 진로를 정한 것은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막 따뜻한 육개장의 진한 국물향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정확히 젓가락을 반으로 쪼갠 호국이 면발을 흡입하려던 때였다.

공장의 모든 설비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전기마저 나가버렸다. 졸지에 캄캄한 어둠 속에 남겨진 호국은 눈알을 좌우로 굴렸다.

'내가 뭘 건드렸나? 아닌데. 공장주께서 설비는 절대 건드리지 말고 오류 사항만 보고하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건드렸는데.'

자격증을 갖춘 전문 인력이라면 모를까, 스펙이라곤 군 만기전역이 전부인 호국은 공장주에게 설비는 털끝도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를 받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공장주가 준비해준 메뉴얼에 '모든 설비 정지 및 정전 사태'에 대한 대응법은 적혀 있지 않았다.

"후르르르르릅!"

그래서 평소처럼 라면을 흡입했다.

어둠 속일지라도 도시락과 라면의 위치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젓가락의 움직임에 흐트러짐은 없었다.

"볶음김치. 라면은 무조건 볶음김치랑 먹어야 해."

아삭한 생김치나 단무지와도 궁합이 좋지만, 고소한 기름과 불맛이 베어있는 볶음김치도 라면과 잘 맞았다.

꼬들꼬들한 면을 한 젓가락 집어삼킨 다음 볶음김치를 뭉텅이로 집어서 입에 털어넣으면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다. 거기에 고슬고슬한 밥과 비엔나 소세지를 적당량 집어서 쉴틈없이 씹어 삼키면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입 안이 칼칼해지면 이 삼삼한 계란말이를......"

당근과 양파를 잘게 썰어 넣은 계란말이는 씹으면 씹을수록 담백하면서도 특유의 삼삼한 맛이 입안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렇게 라면과 반찬을 다 먹어버리면, 남은 밥을 국물에 말아 승늉처럼 들이켰다.

건장한 20대 청년의 행복한 식사는 항상 이렇게 끝났다.

"컵라면 용기는 재활용 쓰레기통에, 빈 도시락 통은 가방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호국은 정확히 쓰레기통과 가방을 찾아 뒷정리를 했다.

하지만 이대로 기다리면 분명 공장주에게 연락이 올 것 같았다. 그는 공장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종종 호국이 하는 일을 CCTV로 감시하곤 했다.

'메뉴얼에는 없었지만, 공장에 불이 꺼져 있으면 분명 나한테 책임을 물을 거야.'

근무지에서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신경쓰지 않겠다고 한 그였지만,  종종 호국에게 전화를 걸어 할 일이 없으면 설비를 쭉 둘러보던가, 먼지를 청소하라고 잔소리를 퍼붓기도 했다.

공장의 불이 꺼져 있는 걸 해결하는 것도 '잡일거리'에 해당한다면 호국의 책임이 맞았다.

'행보관님께서 말씀하셨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노동이지만, 직접 찾아서 하는 일은 자기개발이라고.'

공장의 꺼진 불과 설비도 다시 켤 수 있는 능력이라면 자랑할만한 능력이다.

공장의 모든 구조를 외우고 있는 호국은 거침없이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 발전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설비 관리의 시작은 발전기부터 켜야 한다고 메뉴얼에 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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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외곽 산업단지 일대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또 그 놈인가?! 지난 번엔 창원이더니, 이번엔 경기도군!!"

"중국 동부 연안 산업단지에서 설치던 놈이 대체 왜 한국으로 흘러들어온건지 모르겠습니다."

"낸들 알겠나? 빨리 기동타격대에게 지원 요청해! 그 놈에게 잡혀간 공장 인력들만 해도 벌써 수 백명이야!!"

동아시아 TF 지부 산하의 대한민국 감시 기지의 모니터룸은 초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지난 달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창원시 산업단지 일대의 대규모 정전 사태로 인해 공장주와 설비 관리자, 안전 점검관을 포함해서 수 백명의 인간들이 대거 실종되었다.

동아시아 TF 지부에 이 사실이 보고되었고, 몇 년 전 부터 중국의 공장단지를 타겟으로 삼아 날뛰고 있던 침식 현상이 대한민국으로 넘어갔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염병! 망할 중국 놈들!! 그 놈이 바다 넘어 이웃나라에 흘러들어올 때 까지 손가락이나 쪽쪽 빨고 있었단 말이야?!"

"국장님, 기동타격대는 현재 강원도 일대에서 '감자맨' 소탕 작전중이라고 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지원을 보내도 2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그 씨발 감자맨들은 밭에서 생감자 훔쳐먹는 것 말고 피해주는 것도 없는데 대체 왜 우르르 몰려가서 난리야?!"

"그래도 일단 침식 현상이라 쉬운 것 부터 단숨에 처리해버리자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어이구, 씨발. 호박만한 감자 머리 달고 있는 인간들 처리하려고 기동타격대 대부분이 그 쪽으로 빠진게 퍽이나 자랑거리다!"

감시기지를 총괄하고 있는 국장 김현도는 씹어뱉듯이 외치며 담배를 꼬나물었다.

기동타격대가 소탕하러 간 감자맨은 유럽에서 한 농부가 키운 감자를 일반인이 먹고, 그 인간들의 머리가 커다란 감자로 변하게 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통칭 감자맨들은 인간으로써의 의사소통 능력을 잃어버렸지만, 그 대신 인간을 습격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요리하지 않은 생감자를 밭에서 파내어 쳐먹는 것만을 중요시 했다.

커다란 감자가 작은 감자를 먹는다고 해서 감자맨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싹을 피우고, 그 싹에서 자라난 포낭이 터지며 공기중으로 포자들이 퍼져나갔다.

그 포자에 감염된 인간들 중 약 1% 확률로 감자맨 변이 증상을 일으키는데, 그게 퍼지고 퍼져서 한국에도 닿은 케이스였다.

그마저도 전 세계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소탕(clear)' 인증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지금 이런 때에 기동타격대가 감자맨들이나 잡으러 갔다니. 통탄을 금치 못할 노릇이었다.

"후우, 일단...우리 측 인원에서 구급대라도 조직해서 보내봐.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빠져나올 수도 있어."

"그 정전 미로(blackout maze)에 한 번 갇히면 그걸로 끝난 거 아닙니까? 공식 생존율은 0.1%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인마! 0.1%는 가능성이 아니냐? 세상에 완벽한 0%와 100%는 없어! 무엇보다 상층부에선 정전 미로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을 반드시 입수해야 한다는 방침인데, 우리가 그걸 포기하면 어떻게 되겠어?!"

"...즉시 구급대를 보내겠습니다."

오퍼레이터가 인원을 차출하기 위해 방송을 하는 사이, 김현도는 마른 세수를 했다.

거대한 모니터에 표시된 정전 범위는 정확히 경기도 외곽의 산업 단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지금은 죄다 자동화 공장이지만, 자동화 공장이라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설비 관리자부터 안전 점검관이 주로 공장에 상주하는데, 그들 전체는 사실 수가 많지 않았다.

문제는 자동화 공장의 널널한 근무 조건을 이용해 외부인을 불러들여 술판을 벌이거나, 도박판을 벌여서 놀고먹는 불량한 노동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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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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