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89화 (189/191)

189화. < ep41. 종말 (6) >

====================

찰랑-

강서는 자신의 몸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가볍게 풀어내었다.

강서의 몸을 묶고 있었던 만큼 쇠사슬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닥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오히려 왕좌에서 엉덩이를 떼는 쪽이 더 힘들었다.

"..."

일곱 악신이 굳이 ‘므깃도’라는 지역을 찾아 강서를 봉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봉인:윤회의 조각>은 일곱 악신이 윤회의 저주를 본따 만든 봉인진.

금제도 소용이 없었고 강서를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판단한 악신들이 강서를 영원히 봉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다 착안해낸 것이다.

이미 타인의 힘으로 억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 강서에게 스스로의 족쇄를 거는 방식을 택한 것.

그것이 바로 <봉인: 윤회의 조각>.

강서가 가장 그리워하고 가장 아쉬워했던 생애 <오도아게르>의 생을 무한 반복하는 ‘윤회의 저주’의 모방 버전이었다.

사실 봉인의 강도 자체는 이전 강서에게 가했던 8중 금제가 더 강했다.

하지만 강서의 입장에서는 ‘윤회의 조각’의 효과가 그보다 더 대단했다.

금제가 풀리며 강서가 기억을 되찾는 것보다 ‘윤회의 조각’이 완성되는 것이 더 빨랐다면.

기억을 되찾는 것이 1초라도 더 늦어졌다면, 아마 강서는 영혼의 조각조차 빼내지 못하고 그 봉인에 영원히 묶였을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빈틈없이 완벽했던 강서에게서 일곱 신이 간신히 찾아낸 구멍이었다.

강서는 숨을 한 번 깊게 몰아쉬고 왕좌에서 일어났다.

달콤한 꿈이었지만,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꿈.

강서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수행과제: 일곱 악신을 처치하라.]

시스템의 메시지를 열어 다시 한 번 되새긴, 강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그의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텁-

“아, 맞다.”

바로 가브리엘.

강서가 므깃도에 도착하기까지 신세를 졌던 가브리엘의 몸이 그대로 땅바닥에 누워있었다.

“...어쩌지.”

강서는 고민했다.

그를 장막 건너편으로 데려다줄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본신을 되찾은 강서는 완벽한 본래의 기감을 되찾았고, 다섯의 악신이 이미 장막 너머로 넘어갈 각자의 통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뜨자마자 알 수 있었다.

몬스터들을 이용해 그 개연성을 허물어 하프라인 안쪽으로 향하려고 한다는 사실도.

시간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가브리엘을 데려다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던져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세를 지기도 했고, 일반인이 혼자 있기에, 현재의 하프라인 밖은 너무 위험한 지역이었으니까.

“....아.”

고민을 하던 강서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뱉으며 가브리엘의 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몸을 들어 자신이 본래 앉아 있었던 왕좌에 앉혔다.

그리고는 자신이쓰고 있던 판다가면을 그에게 씌워주고, 쇠사슬을 둘렀다.

“완벽하네.”

강서는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가브리엘은 판다의 가면을 쓰고 쇠사슬에 묶여 왕좌에 앉아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외관은 얼추 그럴듯해 보였다.

그것이 강서가 선택한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시 한번 가브리엘을 향해 고개를 꾸벅여 감사를 표한 강서는 곧장 자리를 움직였다.

파앗-

강서가 향하는 곳은 악신의 기운이 가장 옅어지는 곳이었다.

하프라인 안으로 향하는 통로 중 가장 완성에 가까운 곳.

***

“크윽...진짜 미친 듯이 나오는 구만...”

정면에서 달려드는 몬스터의 머리를 철퇴로 후려치며 리차드가 중얼거렸다.

철퇴는 본래 리차드가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었지만, 그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벌써 리차드의 무기 자루가 부러진 것만 두 번.

미친 듯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아내며 무기의 내구도가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지잉-

몸이야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힐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무기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리차드가 지금 들고 있는 철퇴는 심지어 깜빡하고 아공간에서 빼놓지 않았던 무기였다. 쓰겠다는 고려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무기.

그런 무기를 사용해야 할 만큼 상황은 절박했다.

끄아아악!!

키엑!!

크악!

사람들의 비명과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교차하며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혼돈이고 전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몬스터가 해저를 통해 이동하지 못하도록 미리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촤아악-!

몬스터들의 해저 이동 여부가 인명피해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판단한 수혁이,

상아탑 소속의 마법사들과 마탑의 도움을 받아 하프라인 3구역과 접해있는 바다를 죄다 얼려버린 것.

눈이 닿는 지역 대부분을 km단위로 얼려버렸고,

형성된 얼음전장의 테두리에는 오르카를 포함한 많은 해상기지들이 몬스터가 나가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힘을 동원한 최선의 노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차드는 능력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었다.

치지직-

“우측 5시 방향 1차 방어선 돌파!! 몬스터들이 빠져 나갑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끄아악!!!!”

1시간여의 사투. 많은 헌터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지만, 우려했던 결과는 일어나고 말았다.

끈질기게 방어했던 헌터들의 방어선을 뚫어내고, 몬스터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든 막아!! 저거 놓치면 답도 없어진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 지금 앞에서 나오는 몬스터들도...크악!!”

“제길...”

일단 몬스터들이 한 공간을 뚫어내자 헌터들은 그대로 자리를 내어줬다. 미리 약속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헌터들만의 힘으로 물밀 듯 쳐들어오는 몬스터의 파도를 잘라내고 다시 방어선을 형성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했으니까.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에 더 더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렇게 방어선을 뚫고 나온 몬스터들 앞에 기다리는 것은 얼음 전장의 테두리를 둘러 정박하고 있는 해상기지들의 함포였다.

“전 함대-”

이미 방어선이 뚫리기 전부터 조준하고 있던 함포.

“발포!!"

위이잉-!

콰아앙!!

총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첨단 마도공학 기술이 탑재된 함포들이 일제히 불을 내 뿜었다.

가공할만한 위력의 에너지가 함포의 끄트머리에서 쏟아져 나왔고, 헌터들의 1차 방어선을 넘어온 몬스터들을 모조리 덮어버렸다.

함포의 빛줄기에는 마력이 휘감겨 있었다. 발포와 동시에 마법사들의 강화마법이 발동된 것.

그 결과는 대단했다.

“와…"

강화마법이 더해지며, 함포를 쏜 장본인들이 놀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의 에너지가 사출되었다.

함포의 직선상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소멸되어 버렸다. 시야에서 몬스터가 지워져 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파괴력에 함선에 대기하고 있던 자들은 전율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이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차 방어선에 서 있던 헌터들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심각하고 절박한 표정.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을 지워버리는 것.

“...요란하긴 하네.”

딱 거기까지였기 때문이었다.

키에에엑!

5초가 되지 않아 장막에서 그만한 수의 몬스터들이 더 튀어나왔다.

절망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잠깐의 시간을 벌어 어떻게든 헌터의 방어선은 회복되었지만, 일단 한번 뚫렸다는 것은 그만큼 헌터들의 체력이 떨어진 상태라는 것을 의미했다.

중상을 입거나 죽은 헌터의 수도 적지 않았다.

그 말은 즉슨, 다시 뚫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는 것.

끝이 있긴 한 건지조차 알 수 없는 몬스터 웨이브에서 어떻게든 시간만을 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헌터들이 그렇게까지 시간을 벌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 방어선이 ‘뚫리느냐.’의 기로에서 결정되는 댓가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준마수급의 몬스터들. 말이 쉬워 준(準) 마수지 일반인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괴물들이었다.

손짓 한 번에 썰려 나가는 정도면 양호한 최후였다.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는 말이 일반인에게는 정말로 적용될 터였으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태평양 방어선에서 막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둘째.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차드와 수혁, 그리고 델타만이 알고 있는 사실.

‘아참, 아저씨가 그랬는데 이거 막기만 하고 있어 달래요. 막기만 하고 있으면 반대쪽에서 닫을 수 있을 거라고. 어쨌든 이쪽도 알아서 잘 막아 볼 테니까 태평양 쪽도 어떻게든 막아줘요. 큰 피해 없이 끝날 수 있도록.’

호주의 테즈매니아를 뜨기 전, 하린으로부터 들은 긔뜸.

그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리고 그것을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말이 ‘판다’의 말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면 조그만 근거조차 없는 말에 어처구니 없다며 웃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항상 기대를 저버린 적 없었던 판다가 한 말이기에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세 사람이 방어선 최전선에 서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회복된 방어선은 유지되는 듯 했다.

이빨과 검이 오가고,

손톱이 갑옷을 긁는 소리가 가득해져,

어느새 죽고 죽이는 것 외에는 어떤 관심사도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만 같은 그때.

삐이-!

헌터들이 찬 스마트워치에서 일제히 경보음이 울렸다.

[주의! 남극지역 장막굴곡현상 레드단계 경보 발령!]

남극 장막굴곡의 레드단계 격상을 알리는 경보였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이미 나락까지 떨어진 기분의 헌터들이었지만, 악재는 거기서 끊기지 않았다.

“이런....”

뭐라 욕지거리를 뱉기도 전에 두 번의 알림음이 더 울렸다.

삐이-! 삐이-!

[주의! 러시아지역 장막굴곡현상 레드단계 경보 발령!]

[주의! 중동지역 장막굴곡현상 레드단계 경보 발령!]

나머지 3개의 장막굴곡현상이 동시에 레드단계로 격상되었다.

“아…"

나머지 장막굴곡현상들도 곧 몬스터가 터져 나오는 게이트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이 한 번에 일어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성과 함께, 가까스로 형성한 방어선이 밀리기 시작했다.

극한까지 몰려있던 헌터들의 스태미너에 절망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정신차려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이대로 밀리면 끝나 이 미친놈들아!!”

나름 상태가 괜찮은 몇몇 헌터들이 소리치며 주변을 일깨우려 했지만, 절망을 이기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소리를 외치는 그들부터도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의미없는 아우성과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만이 전장에 가득할 때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갑자기 몬스터들이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

몬스터들이 일제히 몸을 숙이고 조아렸으며, 헌터들을 더 공격하려 들지 않았다.

심지어는 헌터가 몬스터를 무기로 내려찍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

그 기이한 현상에 의문을 가지려던 찰나.

끄드드득-!

고체를 비트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들리며 장막의 색이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검은색으로 변한 장막의 아우라는 헌터들 모두 어디선가 경험한 적 있던 것이었다.

“검은색은 호주에서도 보지 못했던 건데...”

“잠깐...저거 아무래도....”

“설마...악신?”

검은색의 아우라는 강서가 방송을 통해 보여주었던 악신의 그것과 동일한 냄새를 풍기었다.

검은색으로 바뀐 장막과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악신의 아우라.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이야기였다.

꾸드드드득-!

다시 한번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장막의 크기가 축소되었고,

몬스터를 미칠 듯이 쏟아내던 장막의 굴곡은 사람 두어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통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싹한 기운과 함께 악신 하나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본능적인 공포심이 사람들의 몸을 속박하고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장막의 통로를 비집고 나온 악신은 한 마디를 남겼다.

“살려줘...”

너무나 의외의 말을.

"...?"

“...뭐…?"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었다.

곧바로 익숙한 팔 하나가 악신의 머리 위로 비집고 나와 머리를 다시 통로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