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ep41. 종말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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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자신이 한 게 아니라는 수혁의 말에, 리차드가 고개를 돌려 허공을 쳐다보았다.
기감으로만 느낄 수 있었던 막대한 기운은 점점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리차드가 우스갯소리로 말한 메테오였지만, 정말 운석이라도 떨어지리라는 듯, 시야에 잡히는 모든 하늘이 그곳을 중심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렇게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전장에 있는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대체 누가...”
리차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수혁 이외에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꼽자면 샤를로트 피미아와 그의 동생 델타 피미아가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신체를 강화해서 싸우는 타입.
허공에 뭘 소환하거나 에너지를 변환하여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리차드와 눈을 마주친 델타피미아가 어깨를 으쓱여 보여 자신도 모르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위험해.'
수혁도, 피미아 남매도 아니라는 것은, 본래 이곳에 도착해 있던 헌터가 아닌 제3의 인물이라는 의미.
그것이 꼭 아군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순간 리차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수많은 던전을 다니며 강화된 그의 기감이 말하고 있었다.
괴성을 지르며 몰려오고 있는 78만의 몬스터 떼도 분명 위협적일 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허공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더 위험하다고 말이다.
파삭-!
[<아티팩트: 리스트릭 피어스>가 파괴됩니다.]
[<아티팩트: 리스트릭 피어스>의 디버프 효과가 제거됩니다.]
마력억제를 위해 착용하고 있던 귀걸이 아티팩트를 부숴트리며, 리차드는 온몸에 마력을 퍼트렸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쩌적 쩌저적-!
리차드가 자세를 낮추며 방패를 들어 올리자 지면이 그를 중심으로 갈라졌다. 순간 가해진 막대한 압력에 지층이 찌그러진 것이다.
그리고 그 갈라짐이 멎자마자-
파앗!
리차드의 몸이 날아올랐다. 그의 몸이 쇄도하는 곳은 당연히 기운이 느껴지는 허공의 중심.
구름으로 형성된 소용돌이의 중심이었다.
사실 에너지의 양을 가늠하자면, 그건 일개 개인의 헌터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리차드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탱커형 헌터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 하더라도, 백이면 백 무리라고 할 정도의 막대한 에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차드가 뛰어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고유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불패(不敗).
1대1 전투상황에서 1회에 한정하여 패배에 저항할 수 있는 리차드의 사기적인 고유능력.
그것이 있다면 상대가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버텨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꾸드득!
점차 에너지와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리차드는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어차피 부딪혀야 한다면 정면으로 부딪히는 쪽이 나았다.
혹시나 빗겨맞는다면 막지도 못하고, 불패(不敗)도 소모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한번을 하더라도 확실하게.'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리차드의 몸이 에너지의 지척에 도달했다.
마력의 반은 온몸으로 퍼트려 세포 하나하나를 기민하게 활성화시켰고, 공중에서 저항을 최대로 할 수 있도록 마력을 미리 산개해 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막아내는 것.
무엇인지 모를 그 기운의 덩어리를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차드의 눈썹이 순간 여덟 팔(八)자로 휘었다. 구름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리차드 아저씨 비켜요!!”
“...뭐?”
소리와 함께 소용돌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간 리차드.
그 소용돌이 속에는 검손잡이를 쥔 채 오른손으로 기운을 잔뜩 불어넣고 있는 하린이 있었다.
“이거 저도 한 번밖에 못 써요 비켜요!!”
하린의 다급한 말에 리차드는 주먹을 우측으로 휘둘러 허공을 가격했다. 동시에 마력을 뽑아내어 자신의 몸이 향하는 궤도를 틀었다.
간신히 하린의 뒤쪽으로 이동한 리차드.
리차드가 뒤로 이동하자마자 안 소용돌이 안에서 휘몰아치던 마력이 일순간 응축되었다. 마력들이 집중된 곳은 하린이 들고 있는 검.
대기를 가득 메우며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던 마력들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하린의 검집 안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소용돌이치던 구름이 사라지며 하린의 모습이 드러났다.
"..ㅈ...ㅓ.."
".....ㅎ..ㄹ"
"..ㅇ....."
드러난 하린의 모습을 보며 아래있는 헌터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뭐라 이야기했지만, 그 목소리는 하린에게까지 닿지 않았다.
일순간 마력이 응축되며 하린 반경의 10m가량이 진공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의! 마력의 응집량이 최대에 달했습니다.]
[주의! 5초 내에 마력을 해제하거나 출력하지 않으면, 폭발합니다.]
그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하린은 몸을 움직였다.
파앗!
아니, 움직였다는 말보다는 사라졌다가 나타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빛보다 빠르게 움직인 하린의 움직임은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하린이 도착한 곳은 헌터들이 늘어선 베이스캠프 라인보다도 50m가량 앞쪽.
테즈매이아 땅에서 가장 몬스터들과 가까운 곳이었다.
파도같이 밀려오는 몬스터 떼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하린은 허리를 틀어, 검을 더 깊숙이 잡았다.
[주의! 3초 내에 마력을 해제하거나 출력하지 않으면, 폭발합니다.]
체중을 앞으로 싣고, 허리는 한껏 돌아가 검격의 범위를 확보했으며, 오른손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검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세는-
[주의! 당장 마력을 해제하거나 출력하지 않으면, 폭발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쯤은 감탄했을 너무나 익숙한 자세였다.
[<스킬: 오도아게르의 공간절삭>이 싱크로율에 의해 강제로 실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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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이 내그은 검격을 보며 벌어진 헌터들의 입은 다물어 질줄을 몰랐다.
소리조차 없이 그어진 그 완벽한 검격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단순히 닿은 부분을 베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하린의 검이 ‘향했던’모든 공간이 위와 아래로 분리되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검격.
그것은 강서가 일전에 행했던 것보다도 완벽한 것이었다.
금제로 인해 위력이 줄어들며 <가로베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소개된 그 검격의 원래 이름이자 완성본.
<스킬: 오도아게르의 공간절삭>이 하린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아."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정적만이 이어지던 와중 탄성과 함께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하린이었다.
“허리를 조금 더 틀어야 했는데...아쉽네요. 그쵸?”
[주의! <싱크로율: 99.3%>위력이 소폭 감소합니다.]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하린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의 메시지를 치워버렸다.
채우지 못한 0.7%로 인해서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쉽다는 하린의 말을 들은 리차드는 어이 없다는 듯 헛웃음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허허...친구는 닮는다더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격에서 아쉬움을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완벽한 검격이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 검격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말도 안 돼...”
“그 많은 수를 한번에...”
하린이 그은 검격은, 끝없이 몰려오던 몬스터의 파도를 반으로 갈랐다.
모세의 기적처럼 그 무리를 양쪽으로 흩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개체 하나하나를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나누어버린 것이다.
확인된 것만 따졌을 때 78만에 달하는 몬스터 떼를 단번에 몰살시켜버린 검격을 보이고 아쉽다니.
“...이렇게 만들어 놓고 아쉽다니...판다님도 그렇게는 말 안 하겠어요.”
어느새 다가온 수혁이 하린이 만들어낸 장면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90% 이상…’
말 그대로 몰살이고, 괴멸이었다.
일반적인 크기에서 거리가 먼 개체가 이동수단을 잃어버린 채 꿈틀거리고 있다 뿐이었지, 하린의 검격이 가르지 못한 개체는 없었다.
“그런가요? 제가 연습을 많이 하긴 했죠. 훗. 한번 하고 나면 탈진 상태가 되긴 하지만.”
하린은 미소와 함께 브이를 지어 보였다. 몬스터들이 잘려나간 그로테스크한 배경과 하린 특유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울렸다.
“하린씨. 하프라인 너머에 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언제 넘어왔데.”
뒤늦게 도착한 피미아 남매가 하린에게 물었다.
“지금 넘어왔어요. 마몬을 처치하고 원래 더 있을 예정이었는데 아저씨가 강제로 보내버렸어요.”
하린이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럼 판다님은 아직...”
“네, 너머에 있고 아무래도 그쪽은 완전히 맡겨야 할 것 같아요. 직접 겪어보니까 수준이 너무 달라서...”
강서가 있던 하프라인 바깥을 떠올린 하린이 고개를 흔들며 진저리쳤다.
마몬과 강서의 대결은 하린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경지의 것이었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너무 많은 격차가 있었다.
특히 움직임만으로 차원의 틈새를 비집는 것을 보며 하린은 자신이 비벼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은 상태였다.
"...도저히 와닿지 않는군. 80만 마리를 한 번에 썰어버린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물론 듣는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만큼 어이없는 수준이라는 거죠. 그쪽은 깔끔하게 아저씨한테 맡길 수밖에 없어요. 격이 다르다는 부분도 있지만...이쪽도 상황이 여유롭지도 않으니까요.”
하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리차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하린이 몬스터 90프로를 썰어버리며 상황이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여유롭지는 않았다.
나머지 10%의 상처입은 몬스터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고, 장막의 상처에서는 아직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하프라인 반대쪽을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매번 혼자...빚을 지기만 하는구만.”
“그러게요....저 건너편은 애초에 갈 수가 없으니까.”
리차드4세와 샬롯이 중얼거렸고,
“언능 다 패버리고 갚으면 되지.”
델타는 그렇게 이야기했으며.
수혁은 아직 받아야 할 게(?) 많다고 작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편치않은 마음을 달랬다. 그 모습을 보며 하린은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강서가 꽤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짝-!
“우선은 움직이죠. 그런 생각은 나중에 직접 만나서들 하시고요.”
하린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띠링-!
[속보! 태평양 장막굴곡현상 레드단계로 격상.]
스마트 워치에 알림음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