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 ep41. 종말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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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동남부 테즈매니아 섬.
장막굴곡이 가장 먼저 생긴 곳이며, 동시에 장막너머의 몬스터들이 가장 먼저 쏟아지기 시작한 지역.
그나마 다행인 것은 테즈매니아 대부분이 산지지형이었고, 주민들은 해안도시와 일부 관광 유명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거주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호주 정부는 상황발생 증식 헌터협회와 긴밀히 협조하여 이미 대피를 마친 상태였다.
남한의 50%정도가 되는 거대한 땅이고, 또 국립공원이 많은 테즈매니아의 특성상 산간에 혹시 모르는 인물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일이 찾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대피처신은 모두 한 상태.
대피와 동시에 헌터협회는 그곳으로 바로 헌터들을 불렀다.
몬스터의 소탕을 위해서였다. 대피야 당연히 해야 하는 1차적 조치였고,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몬스터의 소탕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마도공학의 기술력이 연신 최고점을 찍고 있는 때에 일단 도착지만 확실히 정해져 있다면 이동거리는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헌터협회에서 각국에 심각성을 알리는 협조요청 공문을 날리자마자 각국 헌터가 속속들이 테즈매니아 섬에 도착했다.
그리고 섬에 도착한 헌터들은 하나같이 ‘아...’하며 침음성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이게 다야?”
“말도 안 돼...”
“이걸로 78만을 막는다고...?”
헌터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헌터협회에서 공지한 집결시간은 이미 5분 전에 지났다. 하지만 정해진 집결장소에 모인 헌터들은 3000여명 남짓.
심지어 그 헌터들 중 많은 수가 호주 소속의 헌터였다.
"..."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일단 태즈매니아에 모인 헌터들은 임시회의를 열었다.
3000명이 비교적 적은 수더라도 한 번에 모여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기에, 각국의 대표길드장이 국가를 대표해서 회의에 참가했다.
사실 이미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어, 회의를 하기에도 촉박한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본래라면 이런 상황에서 머리노릇을 해야 할 공략단의 임시단장 박하린이 부재한 상태였다.
때문에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방안의 얼개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협회 측에서도 분석 자료와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주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자료.
시간이 없기도 했고, 몬스터를 어떻게 공략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공략단의 역할이었기에 헌터협회는 그것에 간섭하지 않았다.
“일단은 자료를 보면 대충 지금까지 개체는 78만 정도....”
전례 없는 수치.
누군가 헌터협회에서 제공한 자료를 보고 중얼거린 그 수치에 회의장이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몬스터의 숫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득한 숫자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정도의 수. 심지어 78만은 확인된 개체 수였고, 장막 너머에서는 아직도 몬스터들이 넘어오고 있었다.
더 문제인 것은 그 몬스터들의 수준이었다.
“마수 바로 아랫급이 78만이라...”
마수에 준하는 능력을 가진 수준급의 몬스터들이 78만 개체나 출몰했다.
헌터들이 아무리 이계를 겪으며 성장했다고 해도 사실상 막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수.
“테즈매니아 섬을 포기하는 쪽이 나을 것 같네요.”
그 절박한 상황에 미국 <하쿠나마타타>의 길드장 샤를로트 피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테즈매니아를 포기한다.’는 말에 호주 대표로 참석한 헌터가 눈을 치켜뜨고 샬롯을 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너무 무심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뱉은 말은 아니었다.
사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
샤를로트 피미아는 호주 헌터의 눈초리를 무시하며 테이블 위 문서를 하나 들어보였다. 헌터 협회 측에서 제공한 자료집이었다.
“여기 개요 두 번째 장에 ‘남부 장막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모두 북단으로 이동했다. 방향에는 일관성을 보였으며 잠깐 대열에서 벗어나는 개체도 있었지만 곧바로 복귀하는 모습이 확인됨.’ 이 부분을 보면 아무래도 물을 건너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나름 합리적인 추측.
“실제로 괴수생물학자 소견에도 그렇다고 적혀있고...혹시 수면으로 이동이 불가능 하다면 차라리 테즈매니아 섬에 그냥 두는 게 나을 것 같고요.”
“그건 저희도 동의합니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는 한 보 물러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요. 샬롯 씨의 말대로라면 시간도 벌 수 있을 것 같고요.”
타국의 헌터 한명의 샬롯의 말에 동조했다.
샤를로트 피미아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일단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쏟아진 몬스터들은 테즈매니아의 북측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실제로 이따금씩 키에에엑-! 하는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기도 하는 상태.
샬롯의 주장처럼 당장 78만이라는 몬스터를 소탕하기 위한 준비가 너무 부족한 상태.
수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었고, 당장 있는 헌터 병력에 대한 정비도 되어있지 않았다.
체계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해봐야 길드 단위의 컨트롤이나 게릴라전.
공략단에서 했었던 것과 같이 한명의 리더가 단독오더를 내리는 방식의 구조를 꾸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강력한 통솔자가 있을 때에 허용되는 방식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어설프게 공략단장의 역할을 한다면, 오히려 어설픈 운용으로 내분이 일어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전과는 전투의 규모가 달랐다. 이전까지 해왔던 것이 ‘공략’이었다면, 지금부터 벌여야 하는 것은 ‘전쟁’에 더 가까운 양상.
공략단 중에서도 최일선에 있었던 특별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쟁정도 규모의 대 몬스터 전을 경험한 적이 없었으니 지금 대책없이 맞부딪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확실히 테즈매니아를 포기한다면 저희가 시간을 더 벌 수 있을 겁니다. 규모를 확인하고 체계를 더 세울 수도 있겠죠.”
임시회의실 중앙의자에 앉은 수혁이 말했다. 임시 단장 직을 맡고 있던 하린이 부재한 상태였기에, 자연스럽게 그가 대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물을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생각입니다. 말씀하셨다 시피 감지되는 에너지의 양은 마수에 준하는 수준. 그런 요령을 바라기에는 너무 강력한 적들입니다.”
"..."
"그건 그렇지. 아직도 쏟아져 나오고 있고 말이지.”
라이언 하트의 수장 리차드 4세가 동조했다.
“뭐, 방법이 있겠나. 정면으로 부딪혀서 막아내야지. 어떻게든. 반대쪽에서도 그러고 있지 않나?”
강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리차드는 어느정도 이런 사태를 생각하고 있었다.
레이놀드 셩이 발표한 고대문서의 해석을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끝이 온다면 시작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균열을 직접 겪어본 1세대 헌터 리차드의 입장에서는 몬스터가 육지를 뒤덮는 지금의 상황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를 떠올리며 지금의 상황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리차드가 말을 마치자 수혁도 그의 말을 뒷받침 해주었다.
“확실히 지금 상태에서 싸우는 게 그리 효율적이지는 못하죠.”
"..."
“하지만 지금 여기를 막아내지 못하면 나머지 5개가 연달아 터져 나갈 때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겁니다. 사실 선택지가 없어요.”
"..."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곳을 어떻게 막아내더라도 그 이후에 5개의 장막이 더 있다는 사실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준비를 하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던 것.
혹여나 첫 번째 장막을 제대로 다 처리하기 전에 다른 곳이 터져 나간다면 끝이었다.
샬롯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선택지가 없다는 수혁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예상보다 수가 훨씬 적긴 하군요. 원래는 편대를 꾸리는 방식을 생각했는데...이정도 규모라면 길드단위의 팀과 게릴라전이 나을 것 같습니다.”
수혁의 말에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 하려는 순간, 임시회의소 바깥에서 다시 한 번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키에에엑!
"...!!!"
“아니...”
이전에 들렸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울음소리였지만, 딱 한 가지 다른 게 있었다.
바로 소리의 크기.
몬스터의 소리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가까이서 들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회의소 바깥으로 나온 각국 대표 헌터들은 회의소 바깥에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게 대체...”
“78만이 이정도 숫자인줄은 몰랐군.”
“미쳤구나 진짜....”
“이, 이게 될 리가 없잖아...”
78만의 몬스터 떼. 아니 그건 더 이상 떼라는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엄청난 장관이었다.
울음소리도, 발걸음도, 속도도, 모양새도, 그리고 각자가 가진 아우라까지 몬스터 간에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그들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완벽한 무질서함에 사람들은 경외스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 짧은 새에 빠르기도 하군.”
잠깐 회의를 하는 동안 300km에 달하는 장거리를 지나 헌터들을 소집한 베이스캠프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헌터들이 패닉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78만이라는 숫자를 알고 있는 것과, 그것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까.
전의를 상실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본다면 도저히 이긴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
“이건 말도 안 돼...”
“이런게 5군데나 더...”
이미 몇몇 헌터는 다급히 자리를 피하는 중이었다.
수혁이 그들을 돌아보며 혀를 찼다.
“...답이 없군.”
국가에서 입김을 불어 넣은 것인지 아니면, 헌터들 스스로에게 ‘세계를 위해 막아야 한다’는 동기가 그닥 와닿지 않았던 것인지는 몰랐지만 참여 헌터의 수는 기존 공략단의 규모보다도 작았다.
게다가 그들 중에 몇은 도망을 가고 있는 실정.
상황이 심각했다. 사기고 뭐고 당장 부딪히는 게 가능할지조차 의심이 되는 상황.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숨이 턱막히는 중압감에 수혁은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몬스터들을 쳐다보며 내부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여유 따위는 없었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공격을 준비했다.
지직-지지직-
리차드 4세는 허공에서 느껴지는 막대한량의 에너지에 흠칫하고 놀랐다.
‘언제...’
엄청난 양의 에너지였다. 단숨에 모아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대한 에너지. 게다가 수혁은 이번에 마법진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역시 천재는 천재군.’
그의 말도 안 되는 성장에 놀라 리차드는 한 마디를 건네며 수혁을 보았다.
“저 정도의 공격이라니...뭐 메테오 같은 거라도 떨어뜨리는 건가?”
그런데 수혁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뇨.”
그도 그럴 것이, 허공에서 느껴지는 그 강대한 마나는-
“저거...제가 한 거 아니에요.”
수혁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