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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84화 (184/191)
  • 184화. < ep41. 종말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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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 한 가운데.

    하프라인과의 접경지역중 하나인 그곳에는 거대한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항공모함급보다도 1.5배는 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그 배는 헌터협회 소속의 해상기지 ‘오르카’였다.

    여러 마도공학 기술이 집약되어, 유사시 헌터에 준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해상기지.

    고위인력인 헌터가 항상 해상에서 경계를 설 수는 없기에 오르카는 헌터 대신 하프라인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태평양에서 하프라인과 접경해있는 지역을 순회하는 것이 이 오르카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리고 오르카가 맡은 하프라인 3구역.

    그곳은 지금 그 어느 때 보다도 소란스러운 상태였다.

    "..."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 시간부로 2급경보 발령!! 모든 병사들은 갑판위로 대기.”

    “색이 더 짙어 지고 있습니다!!”

    쩌저적-!

    하프라인에 세워져 있던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그곳을 대체한 신비한 장막. 본래 장벽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았던 그 장막 중앙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사격통제실. 함포는?”

    “1번, 2번, 3번 준비완료.”

    “...지금 저게 다 몬스터란 말이지..”

    각성자가 생기고 던전이 생긴 이후에도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나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한두 마리, 마수의 경우에는 등장한 적이 있었고, 신전의 차원포탈 너머에서는 몬스터가 가득한 땅도 있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지구의 바깥이었다.

    일반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염려해야할 정도의 몬스터들이 무방비로 풀려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키에에엑!!

    늘어난 고무줄처럼 휘어진 하프라인의 장막 뒤편으로 엄청난 양의 몬스터들이 보였다. 세는 것이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엄청난 수.

    당장 어떻게 장막이 그것을 버티고 있는지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몬스터 떼였다.

    때문에 오르카의 함장은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하프라인의 장막이 찢어진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미 ‘오르카’에서 자체 해결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초월하는 상황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완전히 파악한 함장이 무전기를 들었다.

    “사격 관제실, 무기 상황은?”

    함장이 무전을 친 곳은 함포의 사격을 담당하는 사격관제실이었다.

    사격 관제실의 담당 장교는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포탑상황을 보고했다.

    “...전 함포 준비완료.”

    소란스러운 바깥과 마침 갑판을 다녀온 부사관의 언질이 있었기에 무전을 받기 이전부터 이미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준비가 되어있다는 장교의 대답을 듣자마자 함장은 포탑조절을 명령했다.

    “포탑 세 개 모두 280으로 조절해.”

    “....알겠습니다.”

    정말로 내려진 포탑조정 명령.

    장교는 속으로 기도를 하며 함장이 말한 방향으로 포신을 돌리려다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함장이 명령한 280도.

    그 방향은 하프라인의 방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프라인 장막과는 정반대의 방향. 육지를 향하는 포신각도였다.

    평소 함장의 꼼꼼한 성격을 생각했을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중대한 실수.

    “...함장님, 그 방향이 아닙니다.”

    고민을 하다 가까스로 그것을 지적한 사격관제실의 담당장교.

    하지만, 함장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알아.”

    "..."

    “지금 당장 한국, 일본, 중국 순으로 사격해. 여기서 육지까지 바로 닿지는 못하겠지만, 그 영해까지는 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센스가 있다면 대충 알아듣겠지. 체계고 잘못이고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어.”

    함장의 저의를 알아차린 장교는 그대로 함포를 돌렸다.

    기이잉-!

    함장의 의도는 각국의 영해에 떨어지는 위협사격으로 곧바로 경계태세를 발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각국까지의 정보전달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영해가 공격받았는데 손을 놓고 있을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어디서 사격을 했는지를 파악하려 들 것이고 그럼 머지 않아 해상기지 오르카를 집중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한다면 각국가가 지금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함장은 생각했다.

    기존대로라면 오르카가 속한 헌터협회로 보고한 뒤에 각 국 사령부로 전달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지금 오르카에서 사격을 한다면 경보가 발령되어 각자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먼저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그 경우에 대처속도가 훨씬 빠를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쾅-!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포신이 흔들렸고, 오르카는 정말로 각국의 영해에다 포탄을 하나씩 떨어뜨려 주었다.

    “대충 알아먹겠지....”

    포신을 바라보고 있던 함장이 이번에는 스마트워치를 꺼내었다.

    그리고 헌터협회 관리국장 직통의 핫라인을 연결했다.

    뚜르르- 딸칵-

    상황의 긴박함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핸드폰을 들고 있었던 것인지, 대기음 한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받는 소리가 들렸다.

    “해상기지 ‘오르카’ 함장 잭 크루즈 대령입니다.”

    “용건은.”

    관리국장은 마른 목소리로 짤막하게 물었다.

    “오르카가 담당하고 있는 하프라인 3구역, 그 중에서도 3-1 구역에서 장막이 찢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막 너머에는 얼추 보더라도 만 마리 단위의 몬스터가 포진해 있고, 오르카의 병력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수입니다. 태평양 중앙부근 동아시아 권에서 비상 전시 준비태세를 발령하고 협회차원에서 각국의 헌터들을 소환요청 하는 쪽이...”

    “제길...”

    잭 크루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헌터협회의 관리국장은 욕지거리를 했다. 그리고 뒤이어 믿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그쪽도인가...”

    “...예?”

    오르카의 함장 잭 크루즈가 얼빠진 소리로 반문했다. 협회 관리국장은 그의 반문을 무시한 채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시간 없으니 이 말에 먼저 답해주면 고맙겠네. 몬스터가 포진해 있다는 장막의 색이 어떤가. 주황색인가? 푸른색인가? 그것도 아니면…"

    관리국장의 말에 잭 크루즈가 고개를 돌려 장막을 쳐다보았다.

    드문드문 푸른빛이 있기는 했지만 문제가 되는 늘어진 부분은 함장의 말처럼 주황색을 띠고 있었다.

    “아...예, 일단은 노란색입니다만...”

    “그래도 다행이군. 당장 오르카 띄워서 육지로 피신하게. 곧 쏟아져 나올 거야.”

    “예?”

    주황색이라고 이야기하자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대처법을 이야기해주는 헌터협회 관리국장.

    그의 말을 들으며 함장 잭 크루즈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근데 어떻게...”

    “길게 통화하지 못하니 한 번에 잘 듣게. 거기서만 터진 게 아니네. 이미 호주접경지역은 15분 전에 터져서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상태고 러시아 접경지역도 주황색 빛을 띠고 있지. 푸른색으로 시작된 장막 굴곡현상은 노란색 주황색을 거쳐 붉은 색에 달하면 몬스터들을 쏟아내.”

    어차피 해상기지 하나가지고 일반인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괜한 영웅감 가지지 말고, 당장 배부터 돌리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는 끊어졌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통화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잭 크루즈의 귓가에 삐이-하고 이명이 들려왔다.

    그만큼 관리국장과의 대화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와의 대화에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했지만 잭 크루즈는 도저히 작금의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다.

    ‘대체...’

    그의 생각이 맞고 그가 들은 것이 맞다면, 지금 지구의 상황은 가히 절망에 가까운 상황.

    하프라인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지만, 얼추 눈에 보이는 것만 추산 하더라도 한 번에 막아낼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이게 여기 하나가 아니라면...”

    상념에 빠진 체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잭크루즈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자.”

    삐이-하고 울리는 이명소리를 뚫고 들어온 그 목소리는 함장 잭 크루즈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함ㅈ..”

    “함장님!!!! 장막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불편할 정도로 날카로운 목소리.

    누구인지 찾아 볼 수 있을 만큼 정신이 있지 않았다.

    다행히 함장의 정신을 깨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잭 크루즈가 고개를 들자 그 목소리는 멈추었다.

    고개를 든 함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고개가 향한 곳은 장막굴곡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었고, 모든 병사들이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주황색.

    바글바글한 몬스터 떼를 뒤덮고 있는 장막의 색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

    마몬이 처치되었다는 소식이 시스템메세지를 통해 전파된 지 2시간 째.

    호주, 러시아, 태평양, 남극, 중동지역.

    총 5개의 지역에서 동시에 장막 굴곡현상이 나타났다.

    장막굴곡현상은, 하프라인의 장벽이 사라지며 자리한 장벽이 기이한 모양으로 틀어지며 색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장막 굴곡현상은 한가지의 현상을 동반했는데 바로 무수한 양의 몬스터 무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막이 아직 찢어지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그 너머로 보이는 몬스터 떼는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규모를 자랑했다.

    마몬이 잡혔다는 메시지를 접하고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들어가던 세계의 종말분위기는 다시 잠식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몬스터가 민간인의 안전과 생활에 침입하는 것은 균열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이십여 년 전의 균열이 다시금 떠오르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물론 균열이 있었을 때와 헌터들의 수준은 비교도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지만, 몬스터의 규모도 그 만큼 늘어나 있었다.

    가장 먼저 몬스터가 터져나온 곳은 호주였다.

    호주의 장막 굴곡현상을 발견함과 거의 동시에 장막이 터져나갔고,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그곳에서 퍼져 나왔다.

    다행이 하프라인의 장막이 있었던 곳이 호주 외곽의 섬에서도 어느 정도 떨어진 지역이어서 즉각적인 피해는 적었지만, 사실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헌터협회는 발견즉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전세계에 경보를 내렸다. 각 국가의 비상계엄단계에 해당하는 경보를 발령하도록 하고, 협조 공문을 곧바로 발송했다.

    그리고 그 공문의 주된 내용은 당면한 ‘장막굴곡현상’의 심각도가 이례없는 수준이며, 단일 국가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헌터를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다행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적극적으로 헌터협회에 협조했고, 그렇게 호주 땅으로 헌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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