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82화 (182/191)
  • 182화. < ep40. 마몬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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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칵-

    기자회견장의 셔터 소리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여든 기자의 수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한 국가가 아니라 세계단위에서 주목하는 건이었기 때문에, 각국의 기자들이 모여들었고, 그 수가 감당이 되지 않아, 국회 정론장을 빌릴 정도로 규모있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레인놀드 셩이었다. 강서가 보여준 ‘기르가스족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고대문헌을 통해 입증한 장본인.

    그가 그 이후에 일어날 이야기들을 분석하여 발표하겠다 했기 때문에 이리 많은 기자들이 모인 것이었다.

    본래라면 셔터소리를 무시하고 그저 진행했을 테지만, 평소와 비교하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엄청난 양의 셔터소리였다.

    레이놀드 셩이 입을 떼더라도 그게 들릴까 싶을 정도.

    때문에 기자회견의 진행을 맡은 인물은 손을 들어 기자들의 공격적인 셔터질에 제재를 가했다.

    “잠시.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셔터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레이놀드 셩이 테이블 가운데 앉아 있었다. 잦아든 셔터소리에 이제 말을 해도 되겠다 싶었는지, 레이놀드 셩은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제가 연구한 자료 때문입니다.”

    찰칵- 찰칵-

    간신히 잦아든 셔터소리가 레이놀드 셩의 한마디에 다시금 불타올랐다. 레이놀드 셩이 진행자를 잠시 바라보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린 레이놀드 셩은 말을 계속했다.

    “제가 이번에 말씀드릴 연구자료는, 여러분이 바라시는 데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과거 고대 문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파트를 분석한 것입니다.”

    찰칵-

    “현재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시내산에서 미슐이 내려와 우상으로 보이는 것을 부순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강서가 보여준 모습에서 실제로 보았으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 다음.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카메라로 송출되고 있는 지금, 화면 안에서는 강서와 하린이 시내산을 오르고 있었다.

    오르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을 죽일 수 있다는 그 방법은 도대체 무엇인지 사람들은 그것이 궁금한 것이었다.

    “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여러분들이 먼저 아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레이놀드 셩은 숨을 한번 들이 쉰 다음 말을 이었다.

    “과거 고대문헌들을 분석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점이 있습니다. 제가 분석한 고대 문헌은 ‘경전 크루안’, ‘경전 싯타르’를 비롯해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계신 대중 종교의 경서부터 학계에서도 그리 다루어지지 않는 ‘하만 동굴 벽화’의 구결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다양합니다.”

    “제가 시행한 분석 방식은, 가장 복원, 보존율이 뛰어난 경전 싯타르에 기반하여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을 발췌하고 그 이외의 내용을 제외한 것입니다. 그럼...”

    레이놀드 셩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직접 가져온 듯한 노트를 펼쳐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우상의 파괴가 마칠 때에, 한 자가 시내산에 오르니, 그가 독처(獨處)하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천천히 거기에 적혀져 있는 글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놀드 셩이 글을 읽어나갈수록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웅성웅성.

    "...음?”

    “이거 뭔가 말이...”

    “어!”

    사람들이 레이놀드 셩이 읽는 글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대장장이요. 신을 섬기는 자요, 마왕의 아들이요. 창을 다루는 자요. 용을 죽이는 자며, 요술을 부리는 자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고, 가장 낮아 부려지는 자였다가 가장 높은 곳에서 부리는 자니라.”

    레이놀드 셩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

    그 단어들의 종합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누구나 그를 알지만, 누구도 그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니. 이 자를 아는 이는 세계의 일곱 조각뿐이니라.”

    레이놀드 셩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강서의 모습이 더욱 확고히 변하고 있었다.

    “이건...판다...”

    한 기자가 중얼거리자, 레이놀드 셩이 그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예, 맞습니다. 이 고대 문헌들은 과거의 일들 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이제 일어날...아니,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일을 예언하여 기록한 것 같습니다.”

    .

    .

    .

    .

    .

    .

    .

    .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조금의 변화였다.

    하지만 단순히 고대의 문헌, 한 종교의 경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미래의 일을 함께 담고 있다는 레이놀드 셩의 발표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이 단순히 미래의 일이 아니라, 실제 눈앞에서 이루어져 전 세계가 같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이놀드 셩의 발표 결과, 고대 문헌들에서는 공통적으로 한 사람이 산에 오를 것을 기록하고 있었고, 그를 형용하는 많은 문장들은 모두 강서를 떠올리게 했다.

    레이놀드 셩이 내놓은 문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강서 이외에는 이미 죽은 자나 아니면 살아있는 자나 다른 인물이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에 내용의 주인공이 강서인 것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타당성은 충족되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었다.

    기대감이 한 껏 차오른 상태에서 레이놀드 셩이 이야기한 미래는 이러했다.

    “그가 산에 오르매, 그 산 정상에서 세계의 한 조각을 마주하니라. 그가 누구도 알지 못한 태초의 비밀을 열어 조각을 소멸시키니, 그것이 끝의 시작이니라. 이것이 태초 이후 가장 큰 전쟁이니 전쟁의 종착지는 므깃도가 되리라.”

    ***

    강서는 별다른 말없이 미슐의 뒤를 따라 시내산을 올랐다.

    미슐은 힐끔하고 강서와 하린을 쳐다보았지만 상관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슐을 따르는 이는 하린과 강서밖에 없었다.

    애초에 기르가스족 입장에서는 지도자인 미슐 이외의 사람이 그 산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죽음 자처하는 일.

    과거에는 실제로 오르다 죽은 사람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래서 원래라면 시내산을 오르는 것을 미슐이 말렸을 터였지만, 미슐은 이미 기르가스족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다. 자

    신들을 인도하는 신인 마몬을 져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강서와 하린이 따라 오르는 것을 그냥 두었던 것이었다. 어차피 심판받아 죽을 목숨이라 생각했기에.

    “먼저 죽고 싶은 게로군.”

    그저 한마디 중얼거릴 뿐.

    강서는 미슐의 중얼거림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걷기를 두어 시간.

    하린의 눈에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산에 비해 시내산의 정상은 뾰족하지 않았다. 마치 잘려 나간듯한 모양의 정상.

    꼭대기에 얼마간 평평한 지역이 존재하는지 아래서 올려다보아서는 제대로 정상이 다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산의 머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곳까지 도착하는 데에는 정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미슐을 따라 강서와 하린이 도착한 시내산의 정상에는 제단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제단이라고 하기에는 어느 정도 손색이 있는 초라한 돌제단이었지만, 형태만큼은 얼추 갖추고 있었다.

    길다란 석판을 둘러 널찍하게 세워진 돌담. 그것은 틀림없이, 이곳에 거할 마몬을 위한 돌제단이었다.

    미슐은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제단 앞으로 걸어갔다. 그 발걸음에는 처음 시내산에 오르기 전의 힘이 더 이상 서려있지 않았다.

    “마몬이시여...”

    미슐은 자신이 정상까지 사용하며 올라온 지팡이를 제단에 가로로 올려놓았다.

    미슐이 지팡이를 올려놓고 한걸음 물러서자. 비어있는 제단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궁-!

    동시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며 제단을 향해 하나의 빛무리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건 그때...”

    하린이 그 빛무리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빛은 분명 본적이 있는 색이었다.

    바로 강서가 처음 봉인당할 때에 나타났던 일곱 창조신 특유의 어두운 아우라.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태초에 절제와 탐욕의 신이 모두 한 신이었다는 강서의 말을 입증하듯 그 빛은 검은 빛무리와 놀라울 정도로 순백의 색을 가진 밝은 빛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저게 원래 절제와 탐욕의 신 마몬의 색입니다.”

    강서의 말과 함께 제단에 내려앉은 흑백의 빛무리는 점점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미슐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기르가스족을 심판하시옵소서. 저들은 육체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다.”

    미슐이 마몬을 다시 찾아온 것은 그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영혼만은 멸하지 마시옵소서.”

    심판받아 마땅한 기르가스족의 죄를 사죄하고 죽은 후에 받을 심판 만큼은 면하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미슐이 고개를 조아리고 그 말을 마치자 빛무리가 완전히 마몬의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형상화된 마몬의 눈은 그런 미슐을 향해있지 않았다.

    마몬의 눈은 오직 강서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강서가 강서인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강서 또한도 마몬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강서는 마몬과 눈을 마주친 채로 미슐을 불렀다.

    “미슐씨.”

    "....?"

    지금 당장은 이해 안 가실 테지만, 지금은 아래로 내려가시는 게 좋을...”

    강서는 그렇게 말을 꺼내다가 갑자기 미슐의 옷깃을 잡아 뒤쪽으로 당겼다.

    "으....?!"

    미슐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미슐의 몸이 뒤로 당겨지자마자 미슐이 있던 자리에 흑백의 빛이 쏘아졌다.

    마몬이 벌인 짓이었다.

    “왜 그러지? 어차피 한 점에 불과한 미물일 텐데.”

    “...내려가세요.”

    강서는 미슐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미슐의 깃을 뒤로 던지듯 놓았다.

    턱 터덕-

    바닥에서 몇바퀴를 구른 미슐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실제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태였지만, 그의 몸은 이미 시내산의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자신이 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시내산을 내려가는 미슐을 뒤로한 채 강서와 마몬의 눈싸움이 계속되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저 자가 태초의 마몬입니다.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영원(事違)을 얻은 일곱 존재 중 하나죠.”

    “정말 여기까지 왔군...”

    강서를 바라보던 마몬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우리 이외에 영원과 같은 권능을 가진 자가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 한낱 미물에 불과했던 존재가...”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순간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며, 강서와 마몬 둘의 신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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