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 ep39. 이강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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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본 가브리엘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졌다.
“오랜만이네요.”
“오우 shit...”
강서를 바라보는 가브리엘의 동공은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엄청난 기척의 주인공이 판다라는 사실에 놀란 것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판다를 만날지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저씨...”
하린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강서를 바라보았다.
강서의 모습은 영상에서 살짝 비추었던 그 모습과 같았다.
평소와 같은 차림에 여전한 판다가면.
실종 전 겪은 엄청난 일에도 불구하고 강서의 모습은 여전해 보였다.
강서는 엉덩방아를 찧은 가브리엘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주고 하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에요?”
강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물어오는 하린.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음...이야기 할 게 많을 것 같은데요...”
잠시 말을 끌던 강서는 가브리엘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방송 쪽 일하시는 분인가 봐요. 딱 잘됐네요.”
***
강서의 모습은, 어설프게 화면을 잡고있는 가브리엘의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강서의 생존소식에 기뻐했고, 방송을 통해 그를 보고 있었다.
[판다, 하프라인 안쪽에서 생존신고]
[KKS방송국 연이은 방송사고 끝에 희소식.]
[영웅의 귀환. 하프라인도 회복하나.]
실시간으로 써내려가는 기사들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 못했지만, 판다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만으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와 이걸 ㄹㅇ로 들어가버렸네;;
-킹린갓린;;
-살아있었네.
ㄴ믿구 있었다구...! 대장!
화면에 잡힌 강서의 모습이 너무 멀쩡하다는 것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른 강서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기쁜 일은 맞았지만 사람들이 강서가 멀쩡하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지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와 그럼 하프라인 저쪽도 살만하다는 거네.
-그 일곱 신도 처리된 거 아닌가 그럼?
-편-안;
바로 강서가 멀쩡하다는 사실 자체가, 하프라인 너머에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일곱 신이 별다른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미 처리되었을 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우연히 틀어져 있던 개인방송을 통해 사람들이 경험한 일곱 신의 적개심은 엄청났다.
마치 강서가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양 죽이려 들었고 정확한 이해관계를 알지 못하더라도 강서와 그들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강서가 처리했든 아니면 그들이 떠났든 하프라인에 더 이상 일곱 창조신이 남아 있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람들이 강서가 멀쩡하다는 사실에 안도를 한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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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뇨.”
‘일곱 신은 사라진 것이냐?’라는 하린의 질문에 대한 강서의 대답이었다.
“...네?”
하린이 잘못 들었다는 듯 반문했지만, 강서는 고개를 저어서 다시 한 번 대답이 ‘아니오’라는 사실을 확실히 했다.
“그럼...”
“아직 살아있습니다. 일곱 명 모두 다요. 그 중 한 증거가..."
강서가 허공에 있는 하늘 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있는 저 하늘 섬이고요.”
"..."
잠시간 흐르는 정적. 강서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내려올 때까지 그 정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용한 가운데 이야기를 다시 꺼낸 사람 역시 강서였다.
강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린에게 물었다.
“음...우선 시청자분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
“이곳에 대해서...그리고 그 일곱 신의 존재에 대해서요.”
“아무것도 모른다. Nothing. 릐얼로.”
능숙하지 못한 가브리엘의 말이 웃음을 자아내었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하프라인 너머에 일곱 신이 존재한다는 것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 누구도 하프라인 너머 땅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고, 할아버지를 통해 약간의 귀띔을 받은 하린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곱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하프라인을 넘어온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린 역시도 가브리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그러면 처음부터 설명을 해야할 것 같은 데. 제 얘기를 먼저 좀 해야할 것 같네요.”
“아저씨...얘기요?”
하린은 그렇게 물으며 문득, 자신이 강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름 가장 오랜 시간을 알아왔고, 실제로 하린보다 강서를 잘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그런 하린 조차도 강서의 과거 이야기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일은 언제 인지...그 이외에도 친구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법한 것들에 대해 강서는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 강서의 이야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ㄹㅇ?
-과거공개?
-이쪽 동네는 뭔가 스케일이 좀 남다를 것 같긴 한데...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판다양반.
-???: 나 때는 말이야...
-???: Latte is horse...
“우선 저는 꽤 오랜시간을 살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요.”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는 게...시간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죠. 꽤 오랜 시간...”
하린의 되물음에 잠시 아련한 눈을 했던 강서는 이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오쉽 살이냐?”
강서가 말하는 속도에 답답함을 느꼈는지 가브리엘이 갑자기 끼어들어 물었다.
강서는 가브리엘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래...오래 hunter니까 백살?”
역시 이번에도 강서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나이는 잘 모르겠고...팔십만 사천 스물 둘. 거기까지 세었어요.”
“...네? 팔십만...뭐요?”
하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당황하며 되 물었지만, 강서의 말은 자신의 나이라 80만 살이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804,022번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마 그것보다 많을 거에요. 열심히 센다고 세긴 했는데 아무래도 숫자가 좀 많아지다 보니."
덤덤하게 내뱉는 강서의 말에 하린과 가브리엘이 똑같이 입을 벌리며 턱을 내밀었다.
"..."
“what the...팔쉽만?”
얼굴에 있는 근육이란 근육은 모두 사용하며 가브리엘이 진심이냐는 듯 물어왔다.
사실 80만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말은 누가 말하더라도 장난이라고 생각할만한 말이었지만...상황이 상황이고 대상이 대상이니만큼 하린은 그 말이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애초에 강서가 장난을 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바로 이해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80만 번의 인생을 살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강서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균열이 처음 일어났을 때, 저는 갑작스럽게 제 눈앞에 나타난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구가 아니었죠. 이 모습도 아니었고.”
“이 모습이 아니었다고요? 그럼...”
“제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의 몸속에 제가 들어있었습니다. 처음엔 꿈을 꾸고있는 줄 알았죠. 균열에 빨려 들어간 것부터요.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죠.”
처음으로 듣는 강서의 이야기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때 이 시스템 메시지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본 시스템 메시지는 저에게 ‘윤회의 저주’라는 것이 적용되었다는 메시지였죠.”
“윤회의 저주요...?”
“네, 퀘스트처럼 내려지는 수행과제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그 인생을 반복하는...그런 저주였습니다.”
강서가 덤덤하게 뱉은 말에는 굉장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럼 팔십만 번이라는 건...그 인생을 반복한 횟수가 80만 번이라는...”
확인차 다시 한 번 묻는 하린에게 강서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홀리 쉿...”
나이를 가늠하는 것이 의미없을 정도의 세월. 그럴 리는 없었지만 한 인생을 1년씩만 살았다 치더라도 80만 년이라는 엄청난 길이의 세월이 되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가브리엘을 보며 강서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기는 했습니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나라를 세계를 통일한다던가 죽지 않는 왕을 죽인다던가....말도 안 되는 조건의 과제들이었거든요.”
"..."
“어떻게든 과제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세계에, 새로운 몸으로 들어와 있었고. 그렇게 수많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강서의 눈이 하늘 섬을 향했다.
“특별한 일곱 개의 생(生)이 있었죠.”
***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스스로 있게 된 일곱 신은 처음으로 ‘영원’을 얻었다.
모든 것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스러지리라는 필멸(必減)의 약속을 받을 때.
처음으로 불멸(不減)을 얻은 존재들이었다.
“특별한 일곱 개의 생애는 모두 일곱 명의 ‘창조신’을 죽이는 수행과제들이었습니다.”
강서가 말하는 창조신이 누구를 칭하는 지는 더 설명이 없어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달 여 전 강서를 미지의 공간에 묻어버린 그 존재들이리란 것은 자명한 것이었다.
“본래는 소멸시킬 수 없는 존재였죠. 각각의 방법은 다르지만 죽이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나야 하는 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 생애를 여러 번 반복해서 어떻게든-”
강서는 숨을 한 번 쉬어 말에 텀을 두었다. 그 시절의 막막함이 잠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소멸시키는 방법을 찾아 과제를 해결했습니다. 물론 제가 죽인 것은 본체가 아닌 그들을 복제해 만든 피조물이었지만...”
“복제된 존재를 소멸시켰다는 그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복제되었다고 하더라도 불멸의 특성까지 복제된 완전한 복제라서 본래라면 완전히 소멸시키는 게 불가능해야 맞았거든요.”
일곱의 창조신이 강서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안 순간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그것도 처음 느껴보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들조차 알지 못하는 불멸(不減)의 약점을 강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일곱 신들이 저를 찾아온 거고요.”
때문에 일곱 신은 강서를 죽이려 했다. 존재 자체로도 그들에게는 너무 위협적이었기 때문.
그렇게 각자의 특성이 뚜렷한 일곱의 신이 처음으로 힘을 뭉치게 되었고 강서를 찾아온 것이었다.
“사실 저도 기억을 되찾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일곱 신이 저번처럼 찾아온 일이 처음이 아니었더라고요.”
“...네?”
"20년 전에 있었던 균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