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72화 (172/191)
  • 172화. < ep38. 그것도 모르십니까. (3) >

    ==============================

    영상을 보고 하린이 놀란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연히 화면 속에 판다 가면과 함께 강서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것.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부가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모습이 하프라인 장막 너머에 있다는 점 그 자체 때문이었다.

    “하프라인...”

    “네, 장막에 생긴 파동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프라인 안쪽으로 진입하는 단서가 될 수 있겠죠.”

    하린의 중얼거림에 메인작가 박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프라인 안쪽에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놀랄만한 일이었다.

    사실 하프라인은 지금 넘어가고자 해도 넘어갈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

    처음 하프라인이 무너져 내렸을 때, 헌터협회에서는 탐사대를 파견했다.

    일반인의 통제를 막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을 명분으로 직접 하프라인을 넘겠다는 헌터들을 막아가며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헌터협회는 탐사대가 얻어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강서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이 더 격렬하게 하프라인 너머의 정보에 대해 요구했지만, 그 때에도 헌터협회는 탐사대가 가져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 탐사대가 하프라인을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하프라인 너머로 파견시키려 했던 탐사대였지만, 장막 너머로 진입하는 순간-

    [권한이 없습니다.]

    권한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출입을 통제당했던 것.

    다만, 그들이 그 메시지와 함께 지구 각 곳으로 흩어졌기에 곧바로 헌터협회 측에서도 그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헌터협회의 경비를 뚫고 하프라인에 도달한 한 개인 헌터에 의해서 탐사대와 관련된 사실이 밝혀지고, 그 <권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권한을 통과한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권한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심지어 하린 조차도 같은 메시지를 받으며 장막 안에서 쫓겨났으니, 그 누구도 장막 안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여기서부터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이건 아직 우리 프로그램 유일한 진행자인 한지유씨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은 건데요...”

    “...무슨 부탁인데요?”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메인 작가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하린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어 뱉은 말은 하린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해주세요. 게스트로.”

    “...네?”

    ***

    2041년 2월 7일 오후 10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133회 방송시간이 되었다.

    직전의 한 주는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터넷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리 좋은 이야기들로 화제가 된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은 한지유의 ‘판다 죽음’ 발언에 대한 논란이었다.

    -진짜 어떻게 덧붙이나 보자.

    -ㄹㅇㅋㅋ 프로그램 매장 각.

    인터넷의 여론이 최악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여론에 ‘그것이 모르십니까’팀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기 위해 방송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모르십니까. 논란 속에서도 결방없이 방송진행.]

    [빠른 사과일지, 아니면 국민과 척을 지는 대담한 결정일지.]

    [시청률을 노린 노이즈마케팅일 가능성 다분. 잇다른 비난.]

    쉽게 말해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

    지난 한 주간 여론에 더해진 감정은 그것이 모르십니까 팀이 어떤 말을 꺼내더라도 비난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133회를 기다리는 여러 글들 중에는 우스갯소리로 133회분을 예상하는 글도 있었다.

    제목: 그것도 모르십니까 133회차 예상

    글쓴이: 무당 김봉팔

    (정적과 함께 검은 화면)

    사. 과. 문

    KKS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팀에서는 지난 방송분(132회차)에 논란이 되었던 ‘판다는 죽었습니다.’ 발언에 대해 한지유씨와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이신 ‘판다’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항상 시청해주시는 시청자분들과 판다님을 기다리시는 많은 국민 여러분의 다친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다른 시각을 보여드리기 위한 노력이 과해지다 보니 실수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에 성실히 따라주셨을 뿐인 한지유씨와 그의 팬 분들에게도 사과드립니다.

    다시 한 번 판다님과, 시청자, 국민 여러분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매번 트는 ‘그몰’ 긴장감 브금 또라라라 두라루라 ㅇㅋ?)

    또각또각-

    (걸어 나오는 한지유와 평소보다 2초 오래하는 90도 인사)

    “안녕하십니까.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한지유입니다. 먼저 지난 방송분에 했던 경솔한 발언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드립니다.”

    (다시 고개 숙이고 대충 핑계 45초간)

    “그래서 오늘은 2041년까지 저희 ‘그것이 모르십니까’가 쉴 새 없이 달려온 시간과,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을 만나보는 2040 송년 특집으로...”

    이 이후에 감성 팔고 귀신 같이 134회차 예고 ㅇㅈ?-ㅋㅋㅋㅋㅋㅋㅋㅇㅈ

    -한 화 다 봐 버렸자너 꺼-억

    ㄴ한 시간짜리 방송 30초 컷zzzzz

    -이대로만 하면 봐준다 ㄹㅇ

    ㄴㄹㅇ해프닝으로 웃으며 넘기는 거 쉽가능이 자너

    웃자고 올린 글이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과 같이 ‘그것도 모르십니까’가 사과문과 함께 시작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론이 여론이다 보니 132회차에서 이야기했던 ‘판다는 죽었다.’는 주장을 그대로 가져가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물쩡 넘어가기에는 논란이 너무 컸고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사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음.

    프로그램 앞에 배정된 광고들이 모두 지나가고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방송시간이 되자,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평소와 같은 BGM이 흘러나왔다.

    사회자인 한지유의 말에 긴장감을 더해주기 위한 장치.

    그리고 어김없이 한지유의 구두소리와 함께 스튜디오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니 뭐야, 이걸 뻔뻔하게 그냥 방송한다고?

    -와 뒤통수가 얼얼한걸?

    -너넨 오늘로 종영이다 ㄹㅇ 시청자를 얕봐?

    “안녕하십니까 한지유입니다.”

    잠시 고개를 숙이는 한지유.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저희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132회차 방송분이 한 주 동안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 주간 따가운 시선을 제가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저희의 주장에 반대하고 계신데요.”

    잠시 말에 텀을 둔 한지유.

    “저희 그것도 모르십니까 팀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대로 방송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저희가 억지로 주장을 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 한 분의 관련자를 모시고 그분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한지유가 그렇게 이야기한 뒤에 카메라가 줌아웃해 화면 안에 다른 사람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하린이었다.

    “안녕하세요. 현재 임시로 협회 공략단장을 맡고 있는 헌터 박하린이에요.”

    -응?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하린좌가 그몰에 나온다고? 왜?

    하린은 항상 판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피해왔다. 어쩌다 질문을 받더라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일 뿐 어떤 뚜렷한 입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린을 설득할 것이다.’라는 한지유의 말이 사실 그대로라면, 하린은 한지유의 반대의견. 곧 ‘판다가 살아있다.’쪽에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입장을 밝힌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먼저, 박하린씨는 평소에 판다님에 관련해서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는데 오늘 특별히 밝히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한지유의 질문.

    한지유는 하린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판다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꼬박 한 달이 넘은 시점. 살아 있다면 아직 나타나지 못할 이유가 없었으리라. 그저 쉬고 있다기엔 평소의 판다를 보았을 때 말도 안 되는 일.

    게다가 방송에 하린이 출연한 것으로, 최측근이었던 하린조차 그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이 확실시 되었다.

    '...'

    한지유는 도리어 판다를 존경하기 때문에, 그를 더 이상 영웅으로 잡아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도리어 그의 이름을 훼손하는 일이고, 그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더더욱 자신의 의견에 확신을 가지려 했다.

    “아저씨가 살아있다고 확신하거든요.”

    흠칫-

    하지만 그런 한지유가 하린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왜 대본에...’

    대본에 없는 말이었다.

    대본에는 ‘사실 아직도 고민은 되지만 이제는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라는 한지유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발언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한지유가 놀란 이유가 단순히 대본에 없는 말을 한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본에 없는 말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하린의 목소리에 담긴 흔들림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거의 <신념>이라 칭할 수 있는 굳건한 믿음.

    판다가 죽었을 거라 확신하고 확신했던, 한지유 조차도 그 말을 듣는 순간 흔들릴 뻔할 정도의 신념. 그건 거의 사실의 경지에 다다른 믿음이었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깨운 한지유는 작가진을 바라보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생방송을 고집하는 ‘그몰’에서는 대본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바로 방송사고로 이어진다.

    대본에는 전혀 쓰여있지 않은 말을 하는 하린을 보며 어떻게 하냐는 눈짓을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눈짓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으쓱-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메인 작가 박지영. 그는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르겠다는 듯 한지유에게서 눈을 피했다.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여실히 드러난 한지유의 얼굴에 시청자들도 반응했다.

    -음?

    -뭐지? 뭔가 미묘한...

    -한지유 시선이 카메라 밖으로 향하는 데...

    당황한 한지유는 대본으로 돌아오려 했으나 하린이 그것을 말렸고, 작가진은 그런 한지유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저는 아저씨가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이번 기회로 살아 있다는 확신이 들어 나오게 된 거에요.”

    “아니...이거 미리 이야기 된...”

    “물론 지금까지의 정황만 보면 살아있지 않다는 한지유씨의 추측이 맞겠지만,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세요.”

    “아니...”

    -ㅋㅋㅋㅋ이거 맞다이임?

    -실전 전투각?

    -ㅋㅋㅋㅋㅋㅋㅋㅋ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카메라가 순간 돌아가 촬영장 한쪽에 뭉쳐 딴청을 피우고 있는 작가진을 잡았다. 평소와 같았다면 그건 방송사고일 테지만 사실은 철저히 유도된 스냅샷이었다.

    작가진이 한지유와 미리 협조된 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

    메인 작가 박지영을 비롯한 작가진들이 미리 짜놓은 구조였다. 물론 판다의 영상을 ‘그몰’에서 최초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면죄부를 받을 터였지만, 그렇게 되면 수면위로 올라와 있는 한지유만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것이 뻔했다.

    때문에 다같이 살 수 있는 방안으로 몰래카메라의 형태를 만든 것이었다.

    한지유는 마치 아무것도 모른 채 몰래카메라를 당한 것 뿐이라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우선 영상부터 보세요. 한지유씨”

    그렇게 하린의 말과 함께 영상이 하나틀어졌고,

    그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수와 함께 세계를 뒤흔들었다.

    .

    .

    .

    .

    -OM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