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 ep38. 그것도 모르십니까.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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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S방송국의 시사교양국.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팀 회의실 한 구석에 메인 작가와 서브작가 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가 있었고, 복도도 발걸음 소리 하나 나지 않고 조용했다.
“어휴...”
두 사람은 김밥을 한 줄씩 손에 쥐고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큐튜브 창이 떠 있었다.
큐튜브 창을 통해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지난 주에 방영한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132회 방송분. 그 중에서도 한지유의 ‘판다는 죽었다.’ 발언이 나온 파트였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한 시청자가 영상을 편집하여 큐튜브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객관적인 사실을 우리는 바로 인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이 점심시간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던 이유는 정확히 그것 때문이었다.
‘판다는 죽었다.’라고 이야기한 한지유의 발언에 대한 반응.
-예, 일단 이 프로는 죽은 게 확실하구요?
-미친 거 아냐? 킹멩이 맞고싶음?
-아직 전문가들도 이렇다 저렇다 말을 피하고 있는데 세미 시사프로그램에서?
자리를 비운 다른 사람들도 정말 밥을 먹으러 간 게 아니라 바람을 쐬고 숨이라도 한 번 돌리기 위해 억지로 나간 것.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더 격렬했다.
-다음 시간에 뭐 내놓는지 보고, 얼토당토 않는 말 씨부리면 갈아 엎어 버려야지. ^^
-또 하나 폐지 되겠자너~
사실 시사프로그램 입장에서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었다.
평가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쪽 분야는 시청률이 먼저 절박하기 때문.
그 부분에서는 이번 사태가 ‘그것도 모르십니까.’에 나름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당장 다음 시청률이 이전 보다 더 나올 것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아니,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실제로 죽었다고 해도 말을 이렇게 하면 안 되죠. 많은 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내가 볼 때 이건 그냥 노이즈 마케팅이에요. 근데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린 거지.]
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이 댓글로 그냥저냥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큐튜브에서 활동하는 여러 대형 방송인들이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발언을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게다가 들리는 소문으로는 타 방송국 시사 팀에서 그것도 모르십니까 팀의 이번 발언에 대한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찌라시까지 퍼질 정도.
“뭐 이렇게 될 걸 모르진 않았지만...”
메인작가가 양손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아직 식지 않은 뜨거운 감자. 판다를 건드리는 것은 확실히 섣부른 행위였다.
“그러게 제가 하지 말자고 했잖아요.”
“어이구, 니가 언제?”
“네? 제가 분명히.”
“‘판다는 죽었습니다.’라는 인트로로 시작하자고 한 건 그럼 누군데?”
“그건 이왕 할거면 제대로 하는 게 좋으니까 방송소재가 결정된 후에 멘트만 짠 거고요...”
뒤늦게 발을 빼보려는 서브 작가를 째려보며 메인작가가 비꼬았지만, 그것이 의미없는 다툼이라는 것은 두 사람 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휴...됐다 됐어. 이제와서 그게 무슨 의미야. 망하면 다 같이 망하는 거지. 그나마 우리야 얼굴이라도 안 깠으니 좀 괜찮은 편이지 한지유씨는...”
메인 작가의 말처럼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는 것은 한지유였다. 아무래도 ‘그것도 모르십니까’가 한지유 한 사람의 진행으로 구성되기 때문이기도 했고, 거짓말을 못하는 그녀의 성격은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쌓은 이미지가 그나마 완충작용을 해서 그렇게 심각한 인격적 모독까지 가해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올곧게 살아오며 여지껏 받아본 적 없는 수준의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어떡하죠...”
정말로 답이 없다는 듯 메인작가를 바라보는 서브작가.
하지만 메인작가도 고개를 가로 저을 뿐 특별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그때였다.
뚜루루루-
그것도 모르십니까 팀의 취재용 전화기가 울렸다.
"좀 잠잠하다 했더니 또 왔네."
9시부터 12시까지 끊임없이 울리던 전화기였다. 당장 발언에 대한 사과를 하라는 항의 전화를 비롯해서, 욕설, 비난까지.
점심시간이 되어 좀 잠잠하다 했더니 다시금 울리게 된 것이었다.
“됐어 받지마. 점심시간에는 합법이니까.”
아침 내내 전화를 받은 서브작가를 안쓰럽게 바라본 메인작가는 그녀를 만류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뚜루루루-
전화벨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한 번 걸려오고 말 줄 알았지만,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
한사람이 계속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
참다못한 메인 작가가 직접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받았다.
“네, 감사합니다. 시사 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판다’편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그럼 그렇지.’
뻔하디 뻔한 주제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지 않게, 속으로 한숨을 내쉰 작가는 오전에 수백 통의 전화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FM을 그대로 실천했다.
“우선 방송된 부분에 있어서 불편하게 해드린 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방송의 구성과정과, 논란이 되고있는 해당 발언에 대해서는 공식 사과문을 고려중에 있으며, 결정된 사항은 다음 방송을 통해...”
-아, 아뇨아뇨. 저는 그 말에 불만을 표현하려 전화를 건 게 아니고요.
“네? 그럼...”
-판다는 살아있습니다.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실 특별할 것 없는 말이었다.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 확실해서 잠시 멈칫했지만, 오전에도 수없이 들어왔던 말과 다른 것이 없다고 메인작가는 생각했다.
‘판다가 살아있다.’
결국 방송된 내용에 대한 반박.
불만을 표현하려 한 게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이 남자의 말하는 방식일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당신들의 말이 틀렸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 메인 작가는 생각했다.
-...제가 봤어요.
남자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
“시사프로그램에서 저를 왜...”
하린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그녀가 보고 있던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 팀이었다.
하린도 그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챙겨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하린도 종종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고 조금 전에도 그 방송의 재방영을 보고 있었기 때문.
뿐만 아니라 tv에서 방영하고 있던 내용이 판다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그것도 모르십니까’라는 이름은 하린의 머릿속에 확실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십니까’팀은 전화를 통해 다짜고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하린에게 찾아가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하려던 하린이었지만, 이미 자신의 숙소 앞이라는 말과 함께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는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린이 문을 열자 앞에 서 있는 것은 두 명의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메인작가 박지영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보조작가고요.”
판다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하린은 이들이 순수한 의도로 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판다와 친했던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온 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여드릴 게 있는 데 잠깐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
하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비켜주었다.
.
.
.
.
.
.
“...먼저 말씀드리지만, 논란이 되고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어느 쪽의 의견도 들지 않을 겁니다.”
하린은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고, 하린은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강서를 떠올리며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본능이 그 판단을 유예시키고 있었다.
단순히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기저에서부터 판단을 가로막는 느낌이 있었다.
강서가 죽었을 리 없다는.
'...'
그녀가 경험한 ‘판다’라는 이름은 그리 쉽게 스러질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한 달이 좀 지난 시점이에요. 그 무엇도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니저러니 떠드는 것은...그리 좋은 처사라고는 보이지 않아서요.”
하린의 말이 바로 여론과 동일한 것이었다. 여러 정황을 통해 그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상당수였지만, 판다라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며 믿지 않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우선하고 있는 목표가 있었다.
강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그녀도 몰랐다. 어떤 것도 100% 확신할 수 없었다.
당장 고민해서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하린은,
아직 지구에 자리하고 있는 일곱 신을 처치하는 것.
그것에 집중했다.
‘정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예상이 맞다면 지구에 예속되면서 힘을 많이 잃어버렸을 게야. 창조신의 격을 잃은 것 같구나. 더 알아보기는 해야겠지만, 우리는 최종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 섣불리 움직이지 말거라.’
하린의 할아버지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지구를 떠난 상태였다.
그가 속한 단체 <역린>에서 해결책을 만들어오기 위해서였다.
강서의 죽음도 죽음이었지만, 도리어 이것이 고서에 적혀있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강서의 희생으로(?) 일곱 신이 지구에 묶이고, 힘이 약해져 있을 거라 예상되는 지금이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적기라 생각한 것.
하린은 그 <역린>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하린을 보며 메인작가 박지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어떤 말을 해달라고 부탁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말씀드렸듯이 직접 보여드릴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박지영 작가는 하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을 했다는 둣, 손 사례를 치며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영상 하나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 뒤 하린과 자신이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위치를 조정했다.
화면 속은 굉장히 울창한 숲이었다.
“하프라인 경계지역입니다.”
"...!"
하프라인 경계지역.
하프라인의 상징적인 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 경계지역 만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 경계 너머에 ‘판다’를 죽였으리라 추측되는 일곱 신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그 일곱 신이 하프라인을 넘어와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다행인 일이었지만, 때문에 하프라인 반절은 지구의 사람들과 전혀 상관없는 땅이 되었다.
화면 속 울창한 숲 가운데에는 폭이 3m가량 되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중간에 보이는 저 물은 호주 필리포스강에서 뻗어 나간 물줄기입니다. 동시에 하프라인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도 하죠.”
메인 작가의 말처럼 하프라인의 경계를 의미하는 희미한 연녹빛 장막이 물줄기 위로 펴져 있었다.
“잘 보세요. 여기 16초부터-”
"..."
[읏차-]
메인 작가가 말한 16초의 지점에서 갑자기 장막이 넘실거렸다. 그와 함께 희미한 소리와 잔상이 잠깐 비추었는데.
“맙소사...”
하린은 보는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잔상이 없고 소리만 들렸더라도 확신할 수 있었으리라.
“아무래도 맞는 것 같죠?”
그건 분명히 판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