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 ep38. 그것도 모르십니까.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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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는 죽었습니다.”
검은 화면, 어두운 조명 아래 한 사람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정확히 그것이 사실이냐는 양. 고저없이 말을 뱉었다.
그녀의 단호한 발언 후에는 곧바로 짤막한 영상이 틀어졌다. 영상의 내용은 간단했다. 강서가 죽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지는 장면이었다.
일곱 신이 <므깃도>라는 하프라인 너머의 어느 공간에서 강서를 묶어두고 주문을 외우는 그 장면이 틀어지고 있었다. 판다 가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기력함.
주문이 수어 번 반복되고, 그 목소리가 더욱더 비장해져,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영상은 점멸해버렸다.
중요한 것은 그 점멸하기 직전의 모습. 화면이 흐릿한 것과 별개로 판다의 몸 자체가 흐릿해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고 여성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의 명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발언이 아닙니다, 저는 물론 그를 존경합니다. 그의 덕분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다만-”
여전히 단호한 목소리.
“객관적인 사실을 우리는 바로 인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성은 판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듯 곧은 눈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것을 남겼고,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와 관련된 당연한 이야기들은 다음 시간에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눈빛은 그대로 정면을 향하고, 2초 가량 유지된 뒤.
“고생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났다.
그러자 얼음장 같은 눈빛을 하고 있던 여성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앞으로 90도 기울어졌다.
함께한 촬영진의 노고에 감사하는 그녀 특유의 인사 자세.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생방송이 종료되자. 종전에 방송을 통해 전달된 그 분위기는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온화해졌다.
“와...정말 지유씨는 보면 시사언론인이 아니라 배우 같아요... 이게 빈말이 아니라 나중에 생각 있으면 그쪽으로도 생각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새로 팀에 합류하게 된 카메라 팀의 한 스태프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처음 촬영에 참여한 것은 아니고 두 번째로 참여한 것이었지만.
전에 느꼈던 한지유의 아우라가 이번에 훨씬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향한 그의 칭찬은 스튜디오를 떠나 회식에 가서도 멈추지 않았다.
“진짜, 깜은 따로 있다는 말이 맞다니까요?”
“감사해요.”
“특히 오늘은 더 했어요. 진짜 말도 안되는 분위기였는데....왜 다들 보는 눈이 없으실까... 제가 영화촬영도 많이 다녀서 아는데 진짜 이건 배우의 아우라...”
계속되는 카메라팀 스태프의 칭찬에 한지유는 조금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배우는 못할 거에요.”
“에이, 진짜...”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계속해서 그녀를 칭찬하려던 그 스태프는, 순간 팀의 분위기를 눈치채며 말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이라도 동조해 줄 만한 말이었는 데, 자신의 말에 동조를 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순도100% 진심이었는데도.
한지유가 배우로서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에 그 누구도 동의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으이구, 이놈아. 새로 들어왔으면 분위기 파악부터 하지.”
그를 제외한 촬영팀 전원이 그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카메라 전반을 담당하는 촬영감독이 그의 머리를 장난스레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그의 말에서 틀린 점을 집어주었다
“한지유씨가 배우에 재능이 있었으면 진작에 그쪽 길로 갔겠지, 경력이 몇 년이고 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아니...그럼 아까 그건 어떻게 설명이 돼요? 그건 진짜 제가 촬영하면서 베테랑 급에서만 느꼈던 아우라라고요. ‘확신’이라는 감정을 그만큼 정확하게 짚어내는 건 아무나 하는...”
“그니까 이 화상아. 그래서 안 된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 감독의 말에 촬영감독팀의 신규 스태프 박현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감독의 말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한지유씨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 게 아니야. 거짓말 못 하기로 방송 쪽에서는 소문이 자자한 데. 애초에 아나운서 안 하고 이렇게 우리 시사프로그램만 하고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인데.”
“네...?”
“보도할 내용이 위에서 정해져서 내려오는 뉴스에서 자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입도 뻥긋 못하는 아나운서. 쓸 수가 없겠지. 그래서 이 시청자 풀 좁은 시사프로그램만 하고 있는 거란 말이다. 이 자식아.”
술기운이 올라 조금은 날것의 말투였지만, 이미 프로그램을 몇 년간 같이 진행해온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에 한지유는 그것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조금 숙이며 ‘풋-’하고 웃어 보였다.
“맞아요. 제가 너무 고집이 세서 그런 거에요.”
“그래서 현철씨도 미리 들으셨겠지만, 우리 ‘그것도 모르십니까.’의 방송내용을 구성하는 대부분에 제가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요.”
“그래, 말도 자기가 하고, 짜기도 자기가 하고, 조심해라 너. 아직은 아니지만 언제 카메라 뺐길지 몰라.”
카메라 감독의 우스갯소리에 박현철을 제외한 모두가 ‘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카메라팀의 신규 스태프 박현철이 종전에 방송을 촬영하던 스튜디오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정도로 농도짙은 확신.’
사실 판다의 생사여부는 확실히 확인된 것이 없었다. 아니, 생사여부는 커녕 하프라인 너머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조차도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없었다.
헌터협회에서 파견했던 탐사대가 다시 돌아왔다는 내용의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협회 측에서 정식으로 발표된 것이 없으니 단순한 찌라시로 치부되었을 뿐.
마지막이 마지막이니만큼,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관적일지 몰라도.
판다는 아직 확실하게 죽었다 판단되지도, 살았다고 증명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애매한 여론에 비해, 박현철의 기억 속 한지유의 모습은 판다가 죽었다고 너무도 확신을 하는 모습이었다.
한치의 의심없이,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확신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한 말투.
어떻게, 무슨 근거로 판다가 죽었다고 주장하는가.
박현철에 머릿속에 아직까지 자리 잡은 의문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까지고 머릿속에만 자리 잡고 있지 않았다.
상황에 그리 옳은 질문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술기운에 힘을 받은 박현철은 그 생각을 꺼내었다.
“그…"
"..."
“판다가 죽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박현철의 질문에 한지유가 그를 돌아보았다.
노려보거나 감정이 담겨있는 시선은 아니었다. 다만 그 시선은 방송 중에 보았던 그 확신에 찬 눈빛과 같았다.
“전(前) 미대륙 남부 과거 칠레였던 지역.”
한지유는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평양 북부에 새로 융기된 위피섬.”
"..."
“유럽의 흑해 동부지역, 전(前) 아프리카 대륙 동부 마다가스카르섬, 대서양 중앙 미확인 섬, 북아메리카 그린란드. 그리고 태평양 정상에 떠 있는 정체모를 땅까지. 일곱의 신이 버젓이 이 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지유가 옮은 일곱 지역은, 판다가 사라진 후 일곱신이 거처를 정한 곳이었다.
판다의 행방은 찾지 못했고, 므깃도라는 곳도 정확히 어디인지 파악해내지 못했지만.
일곱 신들의 자취만큼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각자 갈라져 지구의 땅, 그 중에서도 하프라인이 붕괴된 그 지역을 넘어오지 않고 거점을 잡았고, 현재에도 지구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구를 반으로 쪼개 나눠쓰고 있는 상태.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된 사람들은 처음 강서의 화면이 종료된 이후, 세계가 멸망한다느니, 곧 죽는다느니 일대에 혼란이 일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구를 부수든 사람을 죽이든 무엇이든 할거라고 생각했던 일곱 신이 의외로 하프라인조차 넘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버젓이 지구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
한지유는 그 부분에서 확신을 했다.
강서가 살아있다면, 일곱신에게도 무언가 문제가 생겼어야 했다. 힘의 충돌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지구는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판다님이 살아있다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
“정보를 많이 알고 계시고, 또 다들 그렇게 느끼겠지만...그 분이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한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하지만...그 상황에서 판다님이 아직 살아있고, 다른 일곱 신들도 지구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이...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
"무의미한 확률이에요. 더 이상 그분이 살아 계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그분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에요-
조금은 씁쓸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
[단순히 그의 명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발언이 아닙...]
파앗-
시사 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를 보고 있던 하린이 스마트워치와 연동되어 있는 리모트 컨트롤 기능을 이용해 화면을 종료시켰다.
"..."
강서가 행방불명 된 지 벌써 한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차원의 틈새에서 뒤늦게 따라온 하린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강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때였다.
하린의 할아버지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곱신은 차원의 틈새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지구로 향했고, 그 때문에 본래 강서를 가장 지키려던 계획이 틀어지고 도리어 강서가 일곱신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일곱 신.”
하린이 중얼거렸다.
일곱신은 보란 듯이 지구에 자리를 잡았다.
하프라인 너머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각자가 자신들 만의 거처를 마련했고,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치 지구에 눌러 앉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하린의 뒤를 따라 지구로 넘어오게 된 하린의 할아버지는 그런 글들의 행태를 보며 ‘기회’라고 이야기했다.
‘차원에 예속된 게 분명하다. 아무래도 그 청년과의 전투에서 뭔가 엄청난 것을 한 것 같은데...그것이 너무 개연성을 초과하는 일이라, 창조신 임에도 불구하고 그 초과된 개연성을 충족시킬 때까지 지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거지. 도대체 뭘 했길래...’
하린은 할아버지에게 강서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었지만 그조차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때문에 강서가 죽었는지, 어쩐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전체적인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관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하린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눈 앞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그 아저씨인데....’
그렇게 방안에서 혼자 생각을 하고 있던 하린에게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스마트워치를 터치해서 전화를 받은 하린.
전화를 걸어온 것은 뜻밖의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시사프로그램 ‘그것도 모르십니까.’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