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ep37. 신들의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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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비밀유지를 당부하는 하린 할아버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냈다.
-???: (전 세계로 생중계 되며)이거 비밀인데...?
-비밀좌ㅋㅋㅋㅋㅋ
-???: 우리 40억명끼리만 알자구!
할아버지만 모르는 그 상황이 해학적으로 느껴졌고, 방송을 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입장에 자신이 놓인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지가 공감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웃는 것이기도 했다.
누구라도 웃을만한 상황.
때문에 사람들은 강서가 ‘이 모습이 방송으로 나가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그가 웃음을 터트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린의 할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 더더욱 심각한 표정. 새파랗게 느껴질 정도로 얼굴을 굳혔다.
“아…"
그리고 망연자실한 탄성을 뱉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
[속보, 하프라인 완전히 사라져]
[인공위성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진 하프라인.]
[하프라인 붕괴 회복인가, 아니면...]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
그건 보통 한 개인의 삶이 급격하게 변화했을 때 사용하는 말이었다. 그 개인에 대중들의 관심이 엄청나게 늘었다던가 하는 상황이 있을 때에 말이다.
세상이 실제로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오랜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십 수년간,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하프라인이 갑자기 붕괴되었던 것.
말 그대로 갑자기였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소요시간도, 잔해도 없이 하프라인이 사라져 버렸다.
이전까지 하프라인 바깥은 다양한 차원과 시간 축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무너진 하프라인 너머에는 이전 지구의 모습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인간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는 것 말고는 이전의 지구와 완전히 같은 풍경.
그 당황스러운 일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하프라인 바깥, 정말로 지구인가.]
[헌터협회 탐사대 파견. 지구의 절반은 인류에게 득이 될 것인가.]
헌터협회에서는 급한 대로 탐사대를 꾸려 하프라인 너머를 향해 헌터들을 보내었다.
전 세계적으로 우선 일반인의 접근은 금지하고 있었고, 이미 <균열>을 통해 한번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굳이 목숨을 걸고 호기심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누구도 하프라인의 붕괴의 명백한 원인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사람들은 어렴풋하게나마 무엇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제목: 이거 아무리 봐도 기점이 판다좌아니냐?
하린 할아버지라는 양반이 지었던 표정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이거ㄹㅇ
-그 일곱 신인가 뭔가 그거 때문인 거 아님?
-이런건 본인 등판해야되는데 판다좌는 으디감?
강서와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그런 어렴풋한 짐작. 강서의 방송내용을 직접 보거나 전해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탐사대의 결과를 기다리는 기사들이 많기도 했고.
제목: 어쨌든 하프라인이 무너졌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건 감조차 오지 않네.
-기다리면 방구석에서 다 알 수 있음ㅇㅇ
-ㄹㅇㅋㅋ 하던 데로 하셈
-방송인들이 어련히 다 알려줄 듯
-일단은 탐사대 기다려보는 게 최선이지.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며 시간이 조금 지나고, 탐사대가 돌아오기로 한 시간이 되었지만, 헌터협회는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탐사대를 파견한지 만 하루가 지난 시점.
24시간이 되었는데도 탐사대가 돌아왔다는 기사나 헌터협회의 발표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헌터협히가 그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탐사대 복귀 실패? 헌터협회 질문에도 묵묵부답.]
[지구의 절반은 지옥이 되었나.]
헌터협회를 비난하는 기사들과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민원들이 빗발쳤지만, 헌터협회는 계속해서 응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헌터협회 권력의 남용. 알 권리 보장 안 해.]
[빗발치는 비난에도 굳게 닫힌 철옹성.]
하지만 헌터협회에서 어떤 공식입장을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외의 곳에서 하프라인이었던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
.
.
제목: 야 판다작 방송켬
ㄹㅇ
***
“일단 오기는 했는데...”
하프라인 너머, 아직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회복된 땅을 둘러보며, 강서가 중얼거렸다.
강서는 하린의 할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곧바로 지구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본래 하린과, 하린의 할아버지와 같이 있었으니 당연히 같이 도착했어야 맞았지만, 이상하게도 지구에 도착한 것은 강서 혼자 뿐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린의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차원이동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
가진 능력이 속한 집단 <역린>에서도 수위에 드는 하린의 할아버지는 본래라면 차원이동 정도로 힘을 소진하지는 않았을 터였지만, 애초에 그 공간에 하린과 강서를 데려올 때부터 조금의 무리를 했었던 것이다.
때문에 당장 운용할 수 있는 최대가 강서 한 명 정도를 이동시키는 정도.
하린과 하린의 할아버지는 강서와 함께 넘어오지 못하고 강서만이 이곳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그 마저도 라오의 힘을 빌어서 온 것이었으니 하마터면 강서조차도 지구로 이동하지 못할 뻔한 급한 상황이었다.
지구에 도착한 강서는 지구로 이동하기 전 하린의 할아버지의 당부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뭘 하더라도 승산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자네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같은 목표를 가진 일곱 창조신을 동시에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어.’
"..."
‘다만 나는 자네를 지구로 이동시켜주도록 하지.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얻기 위해선...지구로 가야하니까. 창세의 기록이 남아있는 이 고서도 지구에서 발견이 되었고, 지구는 창조신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몇 안되는 세계이니. 자네를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거네, 먼저는 이곳을 찾을 거고. ’
뚜렷한 방법은 없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잡아보기 위해서는 지구로 가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서는 우선 먼저 넘어왔다.
‘자네의 위치가 처음 노출된 곳은 이곳이니 먼저는 이 차원의 틈새를 찾을 거야. 내가 지금 비상 연락을 취해 두었으니. 역린의 다른 단원들도 곧 이곳으로 올거야. 하린이도 곧 보내도록 하지. 자네가 세계의 보루라네. 명심하게.’
하린의 할아버지는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강서를 곧바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강서가 지구로 넘어왔던 것.
“흠...”
그렇게 별다른 설명 없이 도망치듯 넘어오게 되었으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강서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하린의 할아버지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렇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던 강서는 문득 시야에 들어온 풍경을 두리번거렸다.
“지구...”
그리고 중얼거렸다.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어 있길래 평범한 숲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무들의 모양이 현대의 그것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점.
식물들은 무성히 존재했지만 움직이는 동물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지구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세세히 따져보자 뭔가 이상한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확실히 일반적인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강서는 스마트워치로 GPS를 찍어 보려다가 이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려 했다.
그러던 와중
“아-"
강서의 눈에 트프리치tv의 앱이 들어왔다.
강서가 사라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찾아 보는 것보다 시청자들에게 물어보는 편이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러...”
그때였다.
[크큭, 겨우 두 번째에 찾아 버렸구만.]
크지는 않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심상치않은 기운에 강서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세 번째나 네 번째 뭐 여섯 번째여도 괜찮았을 것 같기는 한데.]
그곳에는 마치 흑백 영상을 보는 것처럼 색이 존재하지 않는 한 생명체가 강서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강서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보는 순간 한 단어가 떠올랐다.
“교만...”
[겸손이기도 하다. 오랜만이군 이강서. 오랜만이야.]
교만의 덩어리. 아니 교만 그 자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말투 하나에서 몸짓 하나에서 새어나오는 ‘교만의 기품’이 그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리고 고서에 나와 있는 창조신의 이름은 ‘교만 곧 겸손’이라고 했으나, 지금 그의 모습에서 ‘겸손’이라는 성질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꽁꽁 싸맨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답답하군. 그래도 예전이 더 나아.]
하린의 할아버지가 미리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의 존재는 다른 평범한 신격의 존재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근원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달까.
세계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거운 존재감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확실히 창조신이라고 불릴만한 무게의 존재감이었다.
[방심하지마라. 교만은 저 개자식을 죽여버린 후의 일이다.]
또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노”
이번에는 조금 익숙한 기운이었다.
데미안과 함께 두 번째 금제를 풀어내며 마주쳤던 <분노의 신 사탄>의 기운.
하지만 회고에서 느꼈던 것은 단지 흉내를 낸 것뿐이었다는 듯 회고 속에서 봉인했던 사탄의 모습과는 외양도 다르고 존재감도 달랐다.
아득한 격차.
강서는 그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아득한 격차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한 명 한 명의 존재들을 바라보았다.
교만, 분노, 탐욕, 질투, 색욕, 식탐, 나태
한 존재, 한 존재가 지금까지 만났던 신격의 존재들과는 말그대로 궤를 달리했다. 각자의 특성에 따라 풍기는 아우라는 전혀 달랐지만.
근원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격을 가지고 있는 육중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왜 그들이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하린의 할아버지는 이곳이 도피처라고 했지만, 강서가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창조신들이 나타났다.
게다가 교만의 신이 중얼거린 말.
‘오랜만이다...’
그 말은 교만의 신을 강서가 이전에 만난 적 있다는 말.
그리고 강서의 생각이 맞다면, 강서가 이전에 이들을 만난 적이-
‘한 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