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64화 (164/191)
  • 164화. < ep35. 2번째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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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앞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관중들이 침묵했다.

    “크아악!”

    펜 제이스의 팔이 뜯겨 나간다.

    10어절 언저리밖에 되지 않는 짧은 단락의 문장이었지만, 그 상황이 가진 파급력은 상당했다.

    먼저는 팬 제이스.

    펜 가문은 아오하시아에서도 꽤나 유명한 축에 드는 가문이었다. 펜 가문의 선조가 아오하시아라는 국가를 이루는 데 일조한 개국공신이기도 하고, 가문의 실력 자체가 전체적으로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삼남인 펜 제이스를 제외하고, 장남과 차남, 그리고 장녀와 차녀까지 모두 성지 갈보아에서 <사탄>에 도전한 전적이 있는.

    그러니까 모두가 검투대회에서 4강에 들었던 가문이었다.

    팔을 뜯긴 장본인이 그런 출중한 인물이었고, 팔을 뜯어낸 것이 아카데미의 학생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검투 대회라는 것이 생사의 기로를 가르고 목숨이 걸린 일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사람이 죽음에 이르거나 회복 불능의 상처를 가지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검투대회에서도 팔이 잘리는 정도의 일은 ‘사고’라고 칭했다.

    정교하게 짜인 룰에, 긴박한 전투 중에서도 심각한 상황까지 이르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갖가지 규칙들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년들은 그 룰들을 무시하고 단번에 펜 제이스의 팔을 뜯어 버렸다.

    어떻게 한 것인지 보고도 믿기지 않는 찰나에 일어난 일. 너무나도 충격적인 결과에 사람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침묵했다.

    -....

    그리고 그 침묵이 이어짐과 동시에-

    뭔가 겪어본 적 없던 이상한 기류가 경기장 전체를 감쌌다. 심상치 않았다.

    눈으로 보이지도, 뚜렷하게 피부로 와닿는 것도 아니었지만, 스멀스멀 온몸을 타고 기어드는 것만 같은 기묘한 아우라.

    두근-

    그 근원지는 다름 아닌 펜 제이스의 팔을 뜯어낸 검은 소년의 심장이었다.

    소년의 심장에서 시작된 박동에 경기장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듯 타고 나가 사람들의 박동에 영향을 준 것이었다.

    두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가 경기장 내에 차올랐다. 침묵이 한 박자 더 길어졌고 기묘한 정적의 끝에서는-

    두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최고다!!! 화끈하다!!!

    -이게 검투지.

    -크으으, 목숨을 건 혈투라면 당연히! 내가 이걸 보려고 그 멀리서-

    누가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검은색 아우라가 사람들을 덮고, 소년의 심장에서 퍼져나온 파동이 사람들에게 전이 되자 상황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

    첫 전투 이후로 소년의 이야기는 아오하시아 전역에 퍼져나갔다. 처음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소년의 잔인한 처사에 진저리를 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분위기 달라졌다.

    펜 제이스의 팔을 뜯어버린 아카데미 소년.

    사실 여부를 떠나 거리에서 떠들어 댈 만한 소문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오하시아에서 누구나 아는 이야기가 되었고,

    저잣거리에서 ‘검은 소년 이야기’를 듣고 직접 플라비우스 경기장에 찾아온 사람들이 그의 경기를 직접 보며 분위기는 급격한 속도로 달라졌다.

    소년의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은 첫날에 일어났던 기묘한 일을 똑같이 받았다.

    소년의 심장에서 나온 검은 아우라의 파동이 그들의 심장에도 전이되었고, 그 파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소년의 본능적인 검투에 매료되었다.

    한번 방향을 틀어 흐르기 시작한 기묘한 분위기는 점점 유속을 높여가며 아오하시아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야 어제 봤냐? 어제는 상처는 없었는데 거의 죽기 직전까지 패놨다던데.

    -진행자도 말리지를 못하던데. 너무 매력적이야 야수같은 그...

    그동안 있었던 플라비우스 검투대회에서는 언제나 힘과 명예 그리고 정의가 균형있게 중시되어왔다.

    단순히 힘으로 짓누른다고 플라비우스의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정의롭다고 해서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오하시아라는 나라가 지향해온 바가 플라비우스에 녹아났기 때문에 플라비우스에서 ‘스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모두 세 가지를 충족하는 완성형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경우는 케이스가 달랐다.

    힘.

    오랜 기간 검투대회에서 활약해온 스타들을 단번에 짓눌러버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사람들을 매혹시킨 것이었다.

    정의를 위해 규칙을 준수하고, 명예를 위해 잔인함을 멀리하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소년의 전투에 새로운 감흥을 느낀 것이었다.

    물론 그 근간에는 소년의 심장으로부터 퍼져나온 기이한 검은 파동이 있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아는 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검은 신드롬.

    사람들은 그 기이한 현상을 그렇게 불렀다.

    흑발흑안의 아카데미 출신 소년.

    그 소년이 가진 기이한 힘과 판을 뒤엎어버리는 듯한 잔인한 전투스타일이 어우러지며, 억압되어있던 사람들의 파괴본능을 자극시켰다.

    사람들의 기대 덕분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소년은 검투대회에서 계속 승승장구해왔다.

    소년의 이어진 승세는 내내 끊이지 않았고, 소년의 이야기는 점점 아오하시아를 넘어 대륙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검은 소년에 대한 소문이 아오하시아를 너머 외국(外國)의 사람들에게도 닿았을 때, 소년은 8강에 올랐다.

    -와아아아!

    -죽여버려!!

    사람들은 경기장 위로 올라온 검은 소년을 보며 소리를 외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몇 번의 경기 동안 소년의 전투 스타일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소년의 전투상대를 이제 상대로 보지 않았다. 그저 소년의 야수성에 집어 삼켜질 사냥감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사냥감으로 무대에 오른 상대는-

    “드디어 찾았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데미안: 역시, 다시 봐도 재수 없는 얼굴이야.

    데미안과 강서, 아니 데미안의 몸을 하고 있는 강서였다.

    ***

    2번째 금제를 해제하며, 강서는 다시 한 번 금제에 마련된 회고에 빠져들었다.

    강서를 뒤덮은 검은 물질이 강서의 금제 속에 마련되어 있는 <데미안 시절 기억>의 촉발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강서가 검은 물질로 완전히 뒤덮임이고, 강서는 부지불식간에 제2 망록시기에 도착해있었다.

    두 번째 금제 속 강서의 몸은 다름 아닌 <데미안>이었다. 검은바지를 입고 상체에는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데미안 특유의 옷차림을 한 채로 말이다.

    첫 번째 회고에서 나무꾼의 몸에 빙의된 것과 같이, 정신만이 빙의된 것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다르게 강서는 그 결계 안에서 꽤 오랜 시간을 헤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동안과는 다르게 시스템이 그 어떠한 지시도, 메시지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데미안과 ‘아오하시아’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

    강서가 2번째 금제를 풀기이전 어림짐작한 것은 데미안이 과거 자신의 생 중에 하나였다는 것뿐이었다.

    어떤 생애였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알기는커녕, 당장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

    그렇게 목적지 없이 수일을 돌아다니다 간신히 한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고, 강서는 그 마을에서 도움을 받은 후에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아오하시아로 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오하시아로 향하던 도중,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스템 메시지가 갑자기 강서의 눈앞에 떠올랐다.

    "...음?"

    [스마트 워치와 동기화됩니다.]

    [기존의 연계방식이 새로운 형태도 배치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굉장히 익숙한 창이 하나 떠올랐다.

    -데미안: 이건 또 뭐야.

    다름 아닌 트프리치tv의 UI.

    강서가 하린과 방송을 할 때마다 보고는 했던 그 트프리치tv와 똑같이 생긴 채팅창이 다시 강서의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강서는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지 않았고, 트프리치tv의 방송을 키지도 않았기 때문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건 모두 데미안이 벌인 일이었다.

    데미안이 스마트워치를 가격하며 회고 속으로 들어와 있는 강서와 동기화 된 것.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현상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핵심적인 소스를 제공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사건을 벌인 장본인이 데미안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창에서 데미안이라고 적혀있는 닉네임의 누군가가 채팅을 하나 치고 있었다.

    -데미안: 흠...결계 안으로 들어온 건가?

    “데미안씨?”

    -데미안: 그래, 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뭐, 잘됐군. 이렇게 되면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겠네.

    데미안은 채팅을 통해 자신도 이 현상의 영문을 모른다는 사실을 밝혔다.

    밖에 있었던 데미안도 모르는 현상을 강서가 이해할 수 없을 터. 두 사람은 원인을 알지 못한채 일어난 현상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데미안: 뭘 하고 있었지?

    사건의 원인을 찾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거라 판단한 데미안은 강서에게 현 상황의 설명을 요구했다.

    “아오하시아로 이동 중에 있었습니다. 그 전과는 다르게 뭘 해야 하는 지가 전혀 나오지가 않아서 일단 그 쪽으로...”

    강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도 정확히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띠링!

    "...?"

    *

    [지역: 지구(제2망록시기) ]

    [퀘스트내용: 대륙최강국 아오하시아가 아직 창설되기 전에, 그곳은 고대 신 ‘사탄’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부활을 위해 박동하고 있는 고대신 사탄의 영지 ‘아오하시아’를 찾아, 사탄을 봉인하십시오.]

    *

    -데미안: 이제 알겠네. 뭐해야 될지.

    .

    .

    .

    .

    .

    .

    .

    .

    .

    .

    "..."

    -데미안: 이 녀석이 <숙주>다. 사탄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놈이지.

    그렇게 아오하시아에 도착한 강서는 검투대회를 준비하라는 데미안의 조언에 따라 예선전에 참가 했고, 예선전을 가뿐히 이겨 검투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데미안이 말한 <숙주>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아오하시아전역에 <검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그 소년이었던 것이다.

    대진표가 맞아 떨어져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검투장 내에서 만날 수 있었고, 강서는 검투장에서 자연스럽게 소년을 제압하며 그의 내부에 있다는 씨앗을 취하려 하였다.

    데미안이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자, 그럼 경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땡-!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데미안은 묵묵부답이 되었다.

    “데미안씨?”

    -데미안:...

    <사탄의 씨앗>이라는 것을 어떻게 취하면 되는지를 강서가 물었을 때.

    데미안 우선 맞붙어 보면 알게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항상 도움을 주었던 데미안이었으니 그 말을 믿고 준비없이 무대에 오른 강서였지만.

    -데미안:...

    데미안은 정작 <숙주>와의 싸움이 시작되자 조용해졌다.

    그리고 조용한 가운데서.

    두근-

    소년의 심장박동에 맞춰, 강서의 심장이 조금씩 박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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