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 ep35. 2번째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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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안 됐는데?”
일반적으로 아오하시아 국립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아오하시아 출신이 아닌 외지 출신의 아이들이었다.
아오하시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보통 그 가문 내에서 교육을 받았고, 사교모임 같은 경우에도 나라 차원에서 주도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따로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던 것.
그렇게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 것은 아오하시아의 주민들이 모두 세계 각지에서 한가닥 한다는 가문들로 구성이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모여들었기에 각자의 가문마다 충분히 검증된 전통 교육 방식이 존재했던 것이다.
때문에 아카데미에 속한 아이들은 대부분 국립 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모두 이수하고 3년이 지나고 나서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진로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별다른 가문의 지도를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미친 거지...검투대회 예선전을 통과못하면 10년간은 재신청 못할 텐데.”
“원래 들어올 때부터 이상한 애 같기는 했잖아. 말도 잘 못하고...”
하지만 북문을 통해 들어온 흑발의 소년.
아카데미 아이들이 부르기로 일명 ‘검둥이’는 달랐다. 아카데미에 입학수속 절차를 마치고 채 1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검투대회에 참가신청서를 내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검투대회는 아오하시아에서 이루어지는 대회 중 가장 성스러운 행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성스러운 행사의 준비과정이었다.
성지 갈보아에 꽂혀있는 고대 신의 검을 뽑을 사람을 정하기 위해 하는 것이 바로 검투대회였던 것.
아오하시아의 창설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인 행사였다.
때문에 각지에서 이 검투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고, 참가하지 않더라도 구경을 하기 위해 오기도 했다.
소년이 북문을 통해 들어올 때 많은 사람들이 아오하시아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검투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중요한 행사이니만큼 검투대회의 투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엄선되어 결정되었다.
그 누구나 참가를 신청할 수는 있었지만, 실제 투기장의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미리 예선전을 거쳐 검증된 사람들 뿐.
게다가 한번 예선전에서 떨어진 사람은 검투대회에 10년간은 다시 참가신청을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 가능성을 열어두는 동시에 무분별한 신청을 방지하기 위한 아오하시아의 조치였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사람들은 ‘검둥이’가 검투대회를 신청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약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나이로 예선전을 통과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통과했다는데?”
“뭐...? 아니, 그게 말이 돼?”
“그야 당연히 말이 안되지. 근데 통과했데.”
아카데미에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검둥이’가 검투대회 예선전에 통과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검투대회의 예선전은 해마다 그 방식이 달랐고, 내용은 검투대회가 열리는 날 때까지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렇게 허술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
예선전을 통과하고 투기장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검투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문 검투사들이었다.
때문에 해마다 투기장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검투대회의 묘미가 새로 나타나는 신성을 발견하는 것일 정도로 검투대회는 고인물들의 잔치였다.
그렇게 신성이 올라가기 쉽지 않다는 것은 당연히 예선전 또한 쉽지 않다는 이야기. 아카데미 학생들 입장에서는 검둥이가 잘못 짜여진 예선전에 운좋게 통과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너무 대충 짠 거 아니야? 검투대회 예선전에 그렇게 쉽게 통과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거기 한 번 올라가 보는 게 목표인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 데...이번에만 방식을 잘못 짠 거 아니야?”
“음...그건 아닌 것 같은 게 우리 작년에 졸업하신 칸 선배님 알지?”
“당연히 알지. 그걸 말이라고 해? 우리 아카데미 출신 중에서도 손에 꼽는 실력자잖아. 물론 언젠간 내가 뛰어넘을 사람이지만...”
“그 선배 떨어졌데.”
“응?"
“리버 가문의 차남도 이번에 떨어졌다고 하던데.”
"..."
하지만 그 여론도 오래가지 못했다. 검투대회에 참가할 거라고 예상되던 촉망받는 인재들이 줄줄이 예선전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아카데미 밖에서는 역대 최상 난이도의 예선전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상황.
그렇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검투대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신사숙녀 여러분. 아오하시아의 검투대회 ‘플라비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와아아!!
검투장을 가득 메운 환호성 소리와 함께 검투대회가 시작되었다. 16강도 아니고 8강도 아니었지만,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을 증명하듯 검투장은 가득 차 있었다.
진행자는 분명 육성이었지만, 특수한 기술이 있는 것인지 환호성 소리에 뭍히지 않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선, 거두절미하고 여러분들께서 기다리시는 예선전의 종목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검투대회의 시작은 예선전의 종목발표와 함께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플라비우스의 첫날임에도 사람이 붐비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어려웠던 예선전의 종목이 무엇인지 직접 듣고 알고 싶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찾아와 있었던 것이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이번 예선전의 난이도는 상당했는데요. 때문에 새롭게 검투대회의 스타로 떠오를 거라 예상되었던 많은 유망주들이 예선전에서 탈락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도 듣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정도로 야성적인 방식의 예선전이 치러진 것은 플라비우스에서도 굉장히 오랜만이었습니다.”
진행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인지 많은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번 예선전의 종목은-”
꿀꺽-
“원형 경기장 투쟁이었습니다!”
진행자의 말에 경기장 전체에 애매한 분위기가 흘렀다.
기대를 가지고 온 것보다는 너무나도 일반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선전의 종목 중 가장 흔하게 치러진 것이 바로 투쟁방식.
플라비우스에서 실제 진행하는 검투의 방식을 그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 것이다.
“특별한 것은 10인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거죠.”
하지만 진행자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진행자의 말에 조용해지던 플라비우스 경기장 내부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어디선가 시작된 환호성이 다시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단순한 투쟁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과 10인 서바이벌 원형 투쟁이라는 것인 전혀 궤를 달리하는 이야기였던 것.
서바이벌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예측 불가능성과 긴장감이 경기장 내 사람들에게 공유되며 다시 경기장이 달아올랐다.
-와 뭐라고? 10인 서바이벌?
-10명? 10명을 몰아넣고 살아남은 사람이 올라간 거야?
-야 이건 그냥 싸움 실력으로 되는 게 아닌데...
-유명한 사람이 더 불리하잖아? 그 사람부터 떨어트리려고 할테니까.
와아아아!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경기장에는 새로 올라온 신성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많이 되는데요~?”
와아아아아!
얼른 시작이나 해라!!
“하하하, 제가 방해꾼이 된 것 같은 느낌이네요. 그럼 원하시는 대로 앞말은 싹 다 잘라버리고 나서 바로 경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매해 달라지는 예선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검투대회의 방식은 매년 동일했다.
검을 든 두 사람이 나와서 검투를 벌이고, 먼저 항복하거나 전투불능 상태가 된 쪽이 지는 것이었다.
첫 번째 경기는 5년이 넘도록 검투대회에 나오고 있는 베테랑 검투사와 예선전에서 새롭게 올라온 외지 출신의 한 청년이었다.
새로운 신성이 등장했다며 사람들이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예선전의 변수가 많았기에 운좋게 올라왔지만, 실제 실력은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을 두어 번 맞부딪히고 그가 별거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베테랑 검투사가 청년의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첫경기는 종료되었다.
우우우우!
“하하, 여러분 조금은 싱거운 경기였지만 이 또한 저희의 검투스타 ‘링 차르’님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
격이 떨어졌다!!
아오하시아의 플라비우스에 저런 찌꺼기가 올라오다니!!
경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차오르자 진행자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잠재우려 했지만, 그것이 쉽게 되지 않았다.
결국 진행자가 선택한 것은 빠른 진행, 다음 경기가 괜찮다면 사람들의 비난조 목소리도 줄어들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바로 다음 경기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경기는-”
하지만, 다음 경기를 소개하려던 진행자의 목소리가 멈칫했다.
‘이게 뭐야...’
아카데미 출신과 아오하시아의 근본 있는 가문의 검투대회 10년 차 베테랑.
누가 보더라도 앞의 경기가 되풀이될 것 같은 매치업이었다.
‘...아니 잠깐만 이거 출신이 아니잖아.’
심지어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라, 아카데미에 재학중이라는 표기가 되어있었다. 아카데미아에 재학 중이라는 것은 아직 졸업조차 못한 핏덩이라는 뜻.
‘장난하나..이거 짠 새끼...’
그와 같은 대진표를 만든 인물을 비난하며, 한숨을 한 번 내쉰 진행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음 경기를 소개했다.
“다음 경기는 우리 아오하시아의 유명한 가문이시죠. 펜 가문의 삼남 펜 제이스님과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죠. 현재 아카데미에 재학중이고요. 이름은...”
진행자의 예상대로 사람들의 비난 어린 소리는 더욱 거세어졌다.
-대진표 누가 짰냐!!!
-진행자 나가라!!
-이게 경기야? 당연히 펜 제이스가 이기지.
어찌 되었든 소개와 함께 원형 경기장의 무대 위로 오른 두 사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검을 들었다.
주변은 비난 어린 목소리로 가득했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평온해 보였다. 중년 특유의 중후함을 가지고 있는 펜 제이스는 주변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 소년을 향해 말을 건네왔다.
“훌륭하군. 이번이 특이 케이스라고는 하지만 아카데미에 다니는 중에 검투대회 예선전을 통과하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지는 않을 거다. 나도 이번이 10년 째라...이번에도 4강에 들지 못하면 가문에서 꼴찌로 <사탄>에 도전하게 되는 거거든.”
소년은 펜 제이스가 건네온 말에 따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와는 다른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을 뿐.
“눈빛은 쓸만하군.”
땡-!
그렇게 아무도 검은 소년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가운데에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비난으로 가득 찼던 경기장이 종소리와 함께 조용해졌고,
그리고 그 종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
-....맙소사
-이게....
펜 제이스의 오른 팔이 검은 소년의 손에 의해 뜯겨져 나갔다.
***
경기장 한 쪽. 짙은 어두움이 가리고 있는 검투사 대기실에서 한 인물이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