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59화 (159/191)
  • 159화. < ep35. 2번째 >

    ==================

    “야."

    “...야?”

    강서의 말투에 무장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가면에서 뱉는 강서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하대를 할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강서의 이전 행실과 꽤나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서의 갑작스러운 반말에 놀란 것은 무장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하린과 공진호의 쪽이 더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말이라고...?”

    강서가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 발언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항상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동요없이 차분했던 강서가 이번의 경우에는 확실히 동요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답답한 새끼야.]

    데미안도 그와 같았다. 나름대로 근엄한 말투와 기품을 유지하던 데미안도 무장을 보며 답답한 듯 말했다. 표정을 보지 않아도 찌푸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풍기며 말이다.

    두 사람이 동요한 이유는 같았다. 다름 아닌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

    강서가 떠올린 인물은 다름아닌 오도아게르였다. 무극의 고대왕이라던 무휼이 언급했던 용병왕.

    강서는 무장을 보며 그 생애를 떠올렸다. 사실 무장과 오도아게르 시절이 비슷하지는 않았다. 아니 정반대라고 해야 맞았다.

    무장은 핏줄부터 무(武)를 타고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오도아게르는 그 무엇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말그대로 무(無)에서 시작한 인물이었으니까.

    '...'

    하지만 그렇기에, 강서는 더욱 솟구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투웅-!

    검과 검이 부딪힌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여성검사의 검이 궤도를 이탈하며 바닥으로 향했다.

    강서의 갑작스런 개입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는 여성검사. 튕겨져나간 검을 회수하며 강서에게 다음 검을 내그었다.

    촤악-!

    일단 개입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강서의 입장이 여유롭다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검사쪽이 확실히 실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니까.

    강서가 끼어든 것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는 무장의 모습이 순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상단을 향해 내리긋는 검이 강서의 신체에 닿았다.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하며 검을 흘려내는 강서.

    “무리다. 저정도 검술을 펼치는 녀석은 무극에도...그래도 내가 하는 편이 낫다.”

    무장이 다시금 앞으로 나서며 강서 대신 그 검을 막으려 했지만, 강서는 그런 무장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막아섰다.

    “너무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았어.”

    한 마디 한마디에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듯한 강서의 말은 무장의 가슴을 불편하게 비집고 들었다.

    “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니. 얼마나 평화로워?”

    지금까지의 존댓말이 모두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너무도 능숙하게 반말을 하는 강서. 강서의 말에는 심지어 조롱조까지 담겨있었다.

    강서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극이 너무나도 평화로웠다고.

    물론 처음 이동해 왔을 때의 무극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사방에서 피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며 나라 어디서나 피냄새가 난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였으니까.

    그리고 무장의 실력이 증명하는 것처럼 무극 내부에서 검을 이용한 결투는 분명 많았을 것이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무장의 검술은 단순히 검에 대한 이론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으니까.

    그 안에 담긴 많은 묘리와 검에 대한 이해는 분명 그가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하고 대련을 했는지를 알려주었다. 가장 강력해서 왕위를 지키고 있는 만큼.

    무장은 분명 무수한 수련을 거쳐 완성된 검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절박함이 없단 말이야.”

    분명 빠르고 강한 검이었지만, 무장의 검에는 절박함이 없었다. 강서가 평화롭다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무극의 사람들은 그것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저 죽이면 안 된다는 ‘비살의 법’을 핑계 삼아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나약함을 보일 뿐.

    물론 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었고, 그런 정신적인 압박을 무시하고 상대를 벤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강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왕은 그러면 안 되지. 임마”

    왕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이 만큼은 그래서는 안됐다.

    지켜야만 하는 것이 너무도 많은 자리였다. 강서의 기억 속에서 왕이라는 자리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

    “한 번도,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어 그렇게 나약한 거야.”

    자기 마음대로 포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강서는 그렇게 말하며 이어 날아오는 여성검사의 검을 쳐내었다. 검합(劍合)을 반복할수록 강서의 검이 부들부들 떨렸다.

    확실히 몸에 데미지가 쌓이고 있던 것이다.

    그런 강서의 모습을 보며 뭔가 찔리는 말이 있었는지 입을 뻐끔 거리는 무장.

    하지만 그의 입에서 뒤이어 나온 말은 해보겠다 같은 소망어린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비살의 법이란 진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휼왕의 후대에 이미 파훼법이 손실되었다. 정신적으로 제약이 걸려있는 것을 어떻게...”

    “흥. 말도 안되는 소리.”

    변명하는 무장의 말에 강서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강서의 말을 데미안이 받았다.

    [딱봐도 어려운 진도 아니구만. 그 진은 파훼법이 없다.]

    “...뭐?”

    데미안의 말에 무장이 반문했다. 무장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무장이 알고 있기로 한참 전의 선대에 비살의 법이 무극의 모든 인물에게 적용된 시점에서, 그 파훼법을 소멸시켰다고 했다.

    때문에 무장으로서도 진을 해제하거나 하는 고민을 해볼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데미안은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이 진은 분명 그 파훼법이 500년 전에 소실되었다고...”

    “파훼법자체가 없는 진법이다. 아니 진법이라기보다는 저주에 더 가까운 데...”

    "..."

    “그거 의지만 있으면 풀 수 있어, 멍청한 새끼야.”

    강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성검사의 검이 강하게 날아들었다.

    콰앙-!

    이번에는 굉음이 울리며 강서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쿨럭-!”

    강력한 충격에 내부가 진탕이 되었는지, 강서는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뒤로 물러섰다. 당연히 남만의 여검사 <링링>은 강서에게 틈을 주지 않고 짓쳐 들었다.

    날다시피 밀려난 강서가 제대로 중심을 잡기도 전 다음 검을 찔러 들어온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건지 그 검을 막으려던 무장.

    하지만 강서는 이번에도 손을 뻗어 보이며 무장의 개입을 막았다.

    “벨 생각이 없다면, 들지도 마라. 차라리 도망가는 편이 더 왕다운 선택....!!”

    “여유가 넘치는 군.”

    강서가 무장의 개입을 막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링링은 강서를 향해 더 강력한 공격을 가했다.

    강서가 막기 어려운 궤도로 날아드는 검.

    강서는 가까스로 근육을 비틀어가며 검로를 바꾸었다.

    간신히 베어 들어오는 링링의 검에 닿기는 했지만, 그건 ‘방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부족해 보였다.

    콰앙-!

    힘을 완전히 흘려내지 못하고 온전히 받은 강서의 몸이 바닥에 굉음을 내며 튕겼기 때문이었다. 베이는 것보다 더 아플 것 같은 그 굉음에 하린과 공진호는 몸을 움찍했다.

    하린은 거의 검을 뽑기 직전이었다.

    확실히 강서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판-다’라는 인물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심각한 모습.

    강서의 옷가지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으며 링링이 베고 지나간 강서의 몸에는 혈흔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언제나 듬직해 보였던 두 다리와 두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온몸에는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있었다.

    강서는 간신히 데미안을 지탱해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강서의 손은 다시 검을 휘두르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절하고 절박한 모습만큼은 마음에 드는군. 알맞은 대우를 해주지.”

    알맞은 대우를 해주겠다면 눈빛을 다시 바꾼 링링은 검을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저건...”

    하린이 그 모습을 보며 몸을 움직였다.

    링링의 자세가 딱 보아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도의 자세.

    하린도 종종 사용하고는 하는 기술이었다. 움직이는 적을 향해서는 사용하기 어렵지만, 전투 불능 상태거나 고정된 적을 향해서 사용하기에 최적화된 기술.

    그리고 강서의 상태는-

    치이잉-!

    “안 돼!”

    확실히 전투 불능이었다.

    카아앙!

    링링의 검이 검집에서 뽑힘과 함께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들리며 흙먼지가 일었다.

    시야를 가득 메운 흙먼지는 수 초간 하린과 진호의 시야를 가렸고, 강서의 모습까지도 감추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를 수 초.

    흙먼지가 걷히며 강서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

    검격이 닿지는 않은 건지 강서의 모습에서 베인 상처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강서의 몸이 바닥에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싱거운 놈, 묘하게 검을 흘리길래 뭔가 보여줄 줄 알았더니.”

    가장 충격적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장이었다.

    분명 링링에게 이길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충분히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운 강서의 모습에서 그동안 자신에게 없던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입을 앙다문 채 눈빛이 바뀐 무장이 다시 한 번 검을 빼어 들었다.

    “호오, 기세가 바뀌었군. 이제 싸울 생각이 있나? 어차피 베지도 못할 거면서. 쿡쿡”

    "..."

    링링은 무장을 비웃었지만, 링링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무장의 눈에서 무언가 바뀐 것을 링링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장은 뒤쪽을 돌아보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강서를 바라보고 있는 공진호와 하린을 향해 중얼거렸다.

    “심각한 상태인 것 같지만...혹시 내가 오기전에 깨어난다면 고맙다고 전해 주게. 곧 다시 오지.”

    무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검손잡이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나서 링링을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콰아앙!

    기술따위는 없이 온진히 힘을 담은 검이었다. 무장의 의도는 링링을 밀어내는 것. 몸소 자신을 던져 가르침을 준 강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결투의 장소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무장의 의도대로 링링은 그 검격을 받아내며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콰앙! 쾅!

    그렇게 반복적으로 검을 치며 밀고 나가던 무장은 곧 링링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하린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누워있는 강서를 바라 보았다.

    확실히 심각한 상태였다. 손과 발은 축 늘어져 있었고 코에서는 호흡을 정말 미세하게 흘리고 있었으니까. 외상은 둘째치고 거대한 충격들을 반복적으로 받았으니 내상이 의심되는 상태.

    “우선 맥박부터 확인해보지. 내상을 확인해야 한다.”

    공진호가 강서 옷의 목 부분을 걷어내며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그리고-

    "...응?"

    뭔가 이상하다는 듯 의문성을 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공진호의 반응에 하린이 눈을 마주치며 다급하게 물었다.

    “...왜요? 심각한 거에요? 혹시 뛰지 않는다던가”

    “아니 이건...”

    공진호는 다시 한 번 강서의 목에 손을 대 보았다.

    “이건 무슨 전투를 하지도 않은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그리고 공진호가 강서의 목에 다시 한 번 손을 대는 순간-

    “갔나요?”

    가면 안쪽에서 너무나 말끔한 강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좀 더 헌 거로 입고 올 걸 그랬네요. 이거 아예 처음 입는 새 옷인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