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 ep34. 무극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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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의 판단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니 단순히 놀랐다고 하기에도 부족할 만큼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다. 검을 들고 대련을 하는 중에 검을 내려놓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그런 일을 하겠는가.
하지만 강서의 기행(奇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서는 오히려 날아오는 무장의 검을 향해 목을 움직였다.
마치 ‘어디 한번 베어봐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장의 검은 앞선 어느 때보다 빠르게 날아들었다. 5각에서 2각까지 각도가 꺾이는 변주의 횟수를 줄이면서 속도가 더더욱 빨라진 것이다.
찰나의 순간,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강서의 목은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면 승부를 걸지 말라 했던가.
뿌드드득-
당장이라도 강서의 목을 날려버릴 듯 날아들던 무장의 검이 강서의 목을 목전에 두고 기괴하게 꺾였다.
단순한 방향전환이 아니었다.
강서가 숨이라도 들이쉰다면 피가 흘러나왔을지도 모를 정도의 지척거리. 그 가까운 거리에서 무장은 검격의 방향을 역으로 돌렸다.
베어지던 방향을 그대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 것이었다. 다시 한번 해보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은 기예에 가까운 칼놀림이었다.
기괴할 정도로 급격한 힘의 전환에 무장에게도 리스크가 있어 보였다.
확실히 검을 꺾는 순간에 근육이 꼬이는 것인지 아니면 뼈에 무리가 온 것인지 뿌득거리는 소리가 났고, 무장은 회수한 검을 놓아버리며 오른팔을 부여잡았다.
“크으윽-"
하린은 그 상황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강서는 무장의 검을 막지 않았는지, 그리고 무장은 왜 자신의 팔에 무리가 오는 것을 감수해가며 강서의 목을 치지 않았는지 말이다.
전후 관계만을 보아서는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미친놈.]
데미안이 강서에 대해 짤막한 감상평을 남겼다.
어떻게 본다면 너무한 말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데미안의 그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무장의 검에 무방비로 자신의 몸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미친 짓’이었으니까.
[뭐, 어차피 피맛도 안 나는 검에 기대도 안 했지만.]
무장이 팔뚝을 부여잡고 잠시 몸을 추슬렀다.
손을 다 덮을 정도로 긴 소매를 가진 비단옷이라 무장의 팔이 어떤 상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흔들리는 소매 사이에서 무장의 손이 보라색으로 물든 것은 볼 수 있었다.
“역시...”
“역시...?”
강서의 중얼거리는 말을 하린이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꾸며낸 살의(殺意)였군요.”
강서가 뱉은 한마디가 작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강서의 본능이 계속해서 강서에게 외치던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무장의 검격에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강서는 그것에 배팅을 한 것이었다.
검합이 계속되며 데미안이 중얼거린 ‘피맛’이라는 것도 정확히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피맛이 나지 않는다는 데미안의 표현은, 검이라면 느껴져야 할 혈향(血香)이 검에서 느껴지지 않기에 하는 말이었다.
처음 무극으로 넘어왔을 때 보다는 조금 옅어졌지만, 아직도 주변에 피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무극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혈향.
하지만 데미안이 느끼기에는 유일하게 무장의 검에서는 피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살(殺)을 위한 휘두름이었지만, 검의 날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흉포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꽤나 정교하게 흉내 낸 살의였기에 처음에는 강서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검과 검을 나누며 그 횟수가 늘어갈수록 강서의 본능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휘두르는 검이라면 그에 응당한 흉포함이 담겨 있어야 했으나, 무장의 검에는 그것이 없었다. 정교하게 흉내 낸 살의 안에 감추었지만, 그 기저에 잠재되어있는 본의(本意)까지 숨기어 내지는 못 했던 것이다.
무장의 검은-
“직접 베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데....맞나요?”
대련을 위한 검이었다.
***
봉인의 탑을 만든 고대왕 무휼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존재였다. 말을 떼기전에 먼저 무술을 익혔고, 수저를 들기 전에 검을 먼저 들었다.
두 발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전에 주먹을 내지르는 법을 먼저 배웠고, 자신에게 향하는 선의와 악의를 본능의 수준에서 구분해내었다.
무(武)의 극을 추구하는 무극의 특성상, 당연히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자랐고, 무휼은 항상 사람들의 기대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죽음의 위협도 적지 않았다. 암살시도나 독살시도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무극의 전통 상 15세부터는 결투에 참여할 수 있었고, 양측이 모두 동의한 정당한 결투라면 그 안에서 죽음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합법이었으니 말이다.
동나이 대에서 최강으로 추앙받던 무휼은 당연하게도 수많은 이들의 결투대상이 되었고, 무휼은 그들의 결투신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결투신청들은 오히려 무휼의 실력을 키우는 데에 일조했다.
죽음을 경각에 둔 상황을 무수히 겪으며, 무휼은 무극 내에서 그 누구보다 강한 자가 되었다.
무휼의 나이가 19살에 달했을 때에, 무극 내에 더이상 무휼의 적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더 이상 무휼에게 결투신청을 걸어 오지 않았다.
아니 걸만한 사람들은 모두 무휼과의 결투에서 지고 죽은 상태였으니 걸어올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리라.
그렇게 19살이 되어 회의감에 빠진 무휼은 무극을 나서게 된다. 세상의 강자를 찾아보고 오겠다며 말이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며 ‘적어도 겨울이 5번 오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 한 무휼은 생각보다 빠르게 무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살. 자기가 무극을 떠난 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에 무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돌아온 고대왕 무휼이 왕위에 등극하며 한 첫 마디가 바로 ‘세상에는 많은 강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무휼은 세상의 강자를 찾으며 만난 세 명의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서방 끝자락에 위치한 아하샤라는 나라에는 검을 귀신같이 쓰는 소년이 있었다. 약관이 채 되지 않은 그 소년의 검술은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生物)을 죽이기 위해 탄생한 것 같았다. 살귀(殺鬼)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그 검을 마주하고야 알겠더군.’
‘아하샤와 무극의 중간에 므깃도라는 지역이 있었다. 나라도 뭣도 아닌 것들이 주변 나라의 의뢰를 처리해주며 생계를 이어가는 떠돌이 집단의 정착지였다. 허나 실력 하나만큼은 무극보다도 뛰어나다. 므깃도의 떠돌이들의 실력이 어지간한 무극의 방파 일원보다 나았다. 특이한 것은 그곳에도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의 실력은 나조차도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검을 자유자재로 꺾어대며 초식도 무엇도 없이 생각대로 검을 움직였다. 이기어검에 달한 듯한 기술이었지.’
‘남만에도 가보았다. 우리가 남쪽의 오랑캐라 업신여기는 그 지역에도 역시 강자가 있더군. 여성의 몸으로 검의 극에 이른 이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검을 단 세합도 버티지 못 했다. 장담하건데 그녀가 세상 제일의 강자일 것이다.’
무극에서의 신뢰도와 인지도가 상당한 무휼의 말이었지만, 무극의 사람들은 그 말을 쉬이 믿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무극의 근처 국가들은 모두 멸망했고, 비교적 지근거리에 있는 다른 국가들도 무극에게 시비를 걸어오려 하지 않았다.
무극이 세워지고 나서 그 기간이 기백년에 달하니 당연히 무극의 적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다른 강자를 찾을 생각은 없었고 강자가 있다면 이 무극의 강자가 세상 제일의 강자라 생각을 해 온 것이다.
실제로 무휼이 처음 세상의 강자를 찾으로 기행을 떠난다 했을 때에도, 당신이 제일 강하다며 말렸을 정도이니 그들의 자만감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어쨌든, 그렇게 20살의 나이에 기행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자리에 앉은 무휼은 굉장이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일을 하나 벌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봉인의 탑>을 만드는 일이었다. 방파 중심의 무술 계승 체제를 폐지해 버리고 각자가 자신의 검로를 최대한 찾으며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검의 극에 그나마 가까이 닿았던 무휼의 입장에서는 그 무술 비급이라는 것들이 오히려 무극의 가능성을 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선을 그 비급에만 두고 자신의 무술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비급을 건 결투와 그 비급을 얻게 되면 뭐든지 해결될 것이라는 무한한 신뢰.
그것이 무극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휼이 기행을 떠나며 얻은 것은 체제의 안정성 보다 자유의 가능성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무휼의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았다.
무휼이 봉인의 탑 설립을 강행하며 방파의 수장들은 거세게 반대했고,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방파의 수장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큰 충격을 받은 무극의 일원들은 무휼의 의도를 오해하게 된다.
‘아, 목숨을 건 결투가 계속되면 누구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구나.’
봉인의 탑은 구실일 뿐이고 무휼이 진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결투가 계속될 시에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휼이 왕위에 등극할 때에 한창 대두되었던 것이 그 문제이기도 했고, 무휼은 그저 언급했던 것이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무극만큼 결투를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무휼의 의도를 오해한 사람들은 방파의 수뇌부끼리 미리 이야기해서 하나의 룰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이 바로 비살(非殺)의 법.
무휼에 존재하는 몇 안되는 법 중의 하나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한 무술은 허락될 수 없다. 그와 같은 책이 있다면 봉인의 탑에 추가 적재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무휼의 말을 곡해한 것과, 인구수 감소 등등의 문제가 겹쳐져 만들어낸 기이한 결론이었다.
분명 효과적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한 도구가 검이었고, 효과적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것이 검술이었지만, 이 비살의 법을 기점으로 무극의 방향성은 변하게 되었다.
‘최고의 무(武)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으나 살리는 것을 택하는 것.’
이라는 이상한 모토가 무극의 국훈이 되었다. 물론 오랜시간동안 다른 나라들과 떨어져 지내온 무극의 특성상 이것이 다른 나라에 퍼지지는 않았지만, 무극의 내부에서는 누구든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장의 검이 강서를 베지 못한 이유였고, 동시에-
인류가 멸망한 이유였다.
“그래서 내 전생에서는 무극이 남만에 의해 멸망당했다. 그 위대하신 무휼왕이 언급한 그 여성검사에 의해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