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 ep34. 무극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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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호의 뜬금없는 삿대질에 강서는 무슨 말이냐는 듯 ‘네? 저요?’하고 반문했지만, 공진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성큼성큼 강서에게로 다가갔다.
마치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 것처럼 비장한 말들을 쏟아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강서에게로 모든 관심과 책임을 옮겨버리는 그의 행동.
무장의 입장에서는 그 전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굉장히 익숙한 장면이었다.
-네고 가능한가요?
-(판매 완료)
-???: 예? 저(를)요?
-ㅋㅋㅋㅋㅋㅋㅋ그냥 팔아치워 버렸자너::
이전에도 한 번 다른 이들 앞에서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서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간 공진호는 그의 팔을 잡아끌며 등을 떠밀고 강서를 앞으로 향하게 했다.
무장은 그 모습을 보며 당치 않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뭔가 시간을 끌고 싶은 것 같은데. 의미 없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돌아가려고 했다.
마치 장난하는 것과 같은 공진호의 모습에 더 상대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이기도 했고, 봉인의 탑이 해제됐을 때 말 그대로 바로 달려온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 바로 돌아가 봐야하기도 했다.
몸을 돌리는 무장을 확인하고 공진호는 강서를 돌아보았다.
강서의 눈에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미리 이야기 된 것이 전혀 없었으니 강서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갑자기 공진호가 싸움을 붙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게다가 무장의 언행이나 하린에게 딱히 살수(殺手)를 사용하지 않은 점에서 강서는 그가 그리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중간에 말한 것에서 강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는 호적수(好敵手)를 찾았다는 기쁨에 대련을 신청해 온 것이었고 말이다.
그런 강서를 위해 공진호가 준비한 말이 있었다.
"인류가 멸망한 이유나 다름없는 녀석이다."
"...!"
인류멸망.
공진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 한마디에 강서가 멈칫했다. 경히 여길 수 없는 단어였다.
물론 공진호가 말했다고 해서 바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단어였지만, 공진호의 편을 들어주는 이가 있었다.
[나쁘지 않군.]
공진호가 강서를 붙잡아 설득하려는 동시에, 데미안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린이 무장과 칼을 맞부딪히는 시점부터 이미 데미안의 몸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이유는 굉장히 간단했다. 데미안의 몸이 더 이상 사람의 몸으로 남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래 형상화(形象化)라는 것은 에고소드 중에서도 기간이 오래되어 의지가 굉장히 강하게 남아있는 존재들만이 가능한 것.
사실 형상화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검들은 상당한 양의 정신집중을 요했다. 백제가 형상화를 하지 못하는 것도 500년이라는 기간이 형상화(形象化)를 이루어내기 부족한 기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검마다 가지고 있는 사적(史的)과 그 존재의 의미에 따라 수준히 많이 갈리었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랬다.
게다가 데미안이 유지하고 있는 형상(形狀)은 인간형. 형상화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것이었다.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데미안의 시선을 끄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무장.
하린을 향해 쇄도하는 무장의 검격을 보며 데미안은 오랜만에 끓어오르는 자신의 투욕(關慾)을 느꼈다.
오랜 기간 자신을 뽑을 수 있는 주인을 기다리며 잠재워 있던 투욕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무장의 검과 부딪혀 보고 싶다는 욕구가 끓어 오르며 자연스레 형상화를 유지하기 위한 데미안의 정신 에너지가 분산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몸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호오, 쓸만한 검인가보군.”
이번에는 무장도 반응이 있었다. 데미안의 형상화(形象化)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같이있는 일행의 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몸이 흐려지며 입자들이 강서의 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며 데미안이 예사로운 검이 아닌 것을 눈치챈 것이다.
점점 흩어지던 데미안의 형상은 완전히 소멸되었고, 데미안의 형상이 소멸됨과 동시에 강서의 손에 들려있는 데미안의 본체(本體)가 검은 빛을 은은히 내뿜기 시작했다.
묵직한 존재감을 자아내는 데미안의 자태는 결국 무장의 철회(撤回)를 이끌어 내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그냥 한 말이 아니었군."
사실 하린의 백제(白帝)만 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검이었다. 기간이야 어찌되었든 에고소드의 범주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검(好劍)이라는 평을 받을 만한 검.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서 무극의 수준에서는 그리 눈에 띄는 것이 아니었다. 무극에서 에고소드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데미안은 달랐다. 형상화(形象化)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평범한 에고소드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것.
무극에서는 의지를 가진 검을 양검(良劍)이라 불렀고, 그리고 데미안처럼 형상화를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검을 명검(名劍)이라 불렀다.
“명검이군.”
[마음에 들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기싸움에 끼어버린 강서는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했지만 결국 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돼요?”
하는 수 없다는 듯 진호에게 말을 건넨 강서.
공진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강서에게 말했다.
“적당히 검을 받아내기만 하면 된다. 메시지에도 나왔듯이 무장이 만족하기만 하면 되니. 이긴다면 금상첨화지만...그럴 수는 없겠지.”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서가 데미안을 올려 쥐게 되고, 무장과 강서의 대치가 일어났다.
무장의 시선은 강서가 아닌 데미안을 향해 있었다. 검은 빛을 피어 올리는 데미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먼저 검을 움직이는 것은 무장이었다. 무장은 검을 당기며 한 보(步)를 앞으로 걸었다.
무장의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고, 스치듯 걸음을 내딛었을 때, 무장의 검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시작은 하린을 상대할 때와 똑같았다.
챙!
날아드는 방향에 5번의 변주를 주었다.
검이 움직이기 시작한 방향은 분명 위에서 아래였지만, 강서의 몸을 향해 짓쳐들어올 때에는 그 방향이 아래에서 위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는 4번의 방향전환이 있었고 말이다.
마치 무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무장의 검은 한번을 막아낸 강서에게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 정도의 변주가 들어가 있는 검을 막아내는 것은 일반적인 검을 막아내는 것과 달랐다. 일반적으로는 검을 휘두르는 검로에 변주를 준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물리적인 법칙아래, 인간이 가진 한계아래에서 그 한계가 정해졌다.
하지만 무장의 검은 달랐다. 일단 뻗어진 검이 지척에 도달할 때 까지는, 도저히 어느 방향으로 휘둘러질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챙!챙!
게다가 연속해서 날아드는 무장의 검을 감각적으로 막아낸 강서는 무장의 검격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
단순히 느낌이나 기분같은 것이 아니었다. 휘둘러지는 무장의 검격을 받아내면서, 그의 손에 남아있는 힘의 여분을 느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스로 검을 막아내는 강서를 보며 무장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호오, 그래도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는 아니었군. 조금 더 실력을 봐주지.”
그 말과 동시에 강서에게 날아드는 검격의 수준이 변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조금 이상했다.
"...음?"
하린이 무장의 손에서 이루어진 검격의 변화에 고개를 갸우뚱 했다. 분명 무장의 말을 들었을 때에는 더 강력하고 변칙적으로 공격할 것 같았지만, 이후에 이어진 검격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변검이 줄어들었는데요?”
하린의 말대로였다. 무장의 표현으로 오각(五角)이던 검의 변주가 4각으로 줄어들었다. 다섯 번을 꺽이던 검이 네 번을 꺽이게 된 셈.
일반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건 실력을 더 보기 보다 오히려 더 약하게 공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진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변주가 줄어든 것이 다가 아니다. 일견 보기에는 검이 더 가벼워 보일 수 있겠지만...!!”
무장의 이어진 검격에서 하린은 공진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변검이라는 것은 검이 감당해야할 리스크를 손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기술과 근력 모두 필요한 것이지. 특히 저 무장이 펼치는 것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부하되는 힘을 쥐기 위해서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해야한다.”
"..."
“즉, 그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 검격과 검격 사이의 텀이 더 길었다는 말이지.”
“호오 지식은 괜찮구나. 확실히 저 소녀보다는 자네들이 더 경지가 있나보군.”
하린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번의 베기와 그다음 베기 사이의 텀이 그리도 짧아질 수 있을 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몰아치는 무장의 검격은 눈으로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검의 극에 이르면 검격의 잔상만을 볼 수 있고 본체는 보지 못한다는 말. 그 말을 직접 경험하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강서조차도 그 검격을 막기에 힘겨워 보였다. 그 검격을 반겨주는 것은 오직-
[간만에 괜찮은 검이군. 피빠진 검이라 별 맛은 없지만.]
데미안뿐이었다.
확실히 그건 강서에게도 빠른 검이었다.
'...'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몰아치는 검격. 심지어 속도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3각.
"크흐흐."
2각
“크하하핫.”
무장의 손에서 펼쳐지는 변주의 개수가 줄어들수록 무장의 검격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이내 강서가 한 번 받아내기 조차 어려운 검이 되었다. 데미안의 힘을 빌어 가까스로 검을 가져다 대고는 있었지만 반격의 기미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일방적인 합의 반복.
‘뭔가...’
손잡이를 쥔 강서의 손아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서의 표정은 당황하고 힘들어하는 표정 보다는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감당해내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무장의 검들은 강서도 받아내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 높은 검격들이었다.
다만 검격을 직접 받아내는 강서만이 가질 수 있는 묘한 의구심.
영겁의 기간동안 강서와 함께해온 본능이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서는 그 본능의 이야기를 믿어보기로 했다.
1각.
“이것도 받아보게나!!”
단 한 번의 휘어짐을 가진 채로 그어지는 무장의 검격.
그 검격앞에서 강서는-
“...어, 어 아저씨!!!!”
피를 흘려가며 붙잡고 있던 검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