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54화 (154/191)

154화. < ep34. 무극 (5) >

====================

-ㅋㅋㅋㅋㅋㅋ고럼 비급보단 에이급이 나은 거지

-이건ㅋㅋㅋㅋㄹㅇ 몰카가 아니면 해당사항이 있는 이야기냐?

-???: 이게 무극에서 제일가는 무공서 비급....?

강서가 흙더미 속에서 꺼내든 비급은 공진호의 입을 꿰매고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었다.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그 ‘비급’이 ‘B급’을 의미하는 것일 줄을.

"..."

가장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것은 공진호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공진호가 ‘무극’을 클리어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비급(秘哀)’이었기 때문.

사실 <봉인의 탑>에 쌓여있는 수많은 서적들에 비해 ‘비급’의 가치가 뛰어나게 높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낮은 축에 속했다.

물론 제2 망록시기 당시 존재하던 모든 무공 서적 중에서 수준을 따지자면 ‘비급’도 굉장한 가치를 가지겠지만, 최고의 무공서적들 그 중에서도 한 종파의 중심이 될 정도로 중요한 서적을 모아놓은 <봉인의 탑 >안에서는 비교적 높지 않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것.

쉽게 말해 공진호가 고른 책은 봉인의 탑 안에서는 그저 그런 책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진호가 굳이 이 ‘비급(秘音)’이라는 책을 골라서 뽑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비급’이 봉인의 탑 내부에서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책이었다는 것.

나머지 고서들은 모두 고대의 언어로 적혀 있어 공진호도, 그리고 이 무극의 현재 국민들도 읽지 못했다. 사실상 있더라도 무용지물인 것.

"..."

때문에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책인 비급을 애타게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강서가 그런 공진호를 보고 비웃듯 벽속에서 ‘에이급’을 꺼내들었던 것.

공진호는 강서가 벽면에서 꺼낸 ‘에이급’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작금의 상황을 부정하며 다급히 강서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강서의 손에서 낚아채듯 무공서를 빼앗아 들고 펼쳐보았다.

“그럴 리가...”

책의 내용을 보며 말도 안 된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던 공진호는 책으로 눈을 고정한 채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갔다.

"B급이 있길래...그러면 A급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요. 이왕이면 좋은 게 좋잖아요?”

"..."

공진호는 강서가 넘긴 책을 보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책의 내용이 공진호가 노린 B급과 같이 한글로 적혀 있었고, 그 내용도 생각보다 충실하게 적혀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지만 그 내용이-

[이 무공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선행하여 ‘비급’이라고 적힌 무공 서적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비급의 무공서적은 신체(身體)의 효과적 운용방법과 함께 가장 기초적인 초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당서적이 담고 있는 기본 초식은 그것을 기반한 연계동작을 담고 있다. 에이급을 모두 취득한 무인은 해당 서적보다 상위에 있는...]

비급보다 상위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

물론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느냐는 무공서적을 읽고 익혀보아야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겉으로 포장되어있는 포장지와, 적혀져 있는 글이 한글이라는 사실을 통해 직감적으로 이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공진호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강서를 쳐다보았지만 강서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이고 공동을 먼저 벗어났다.

공진호는 강서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공동위로 올라갈 때 까지 멍하니 쳐다보았다.

-ㅋㅋㅋㅋ응 안 알려줘~

-???: 이걸 물어본다고? 이 당연한 걸?

-???: 아 설마 진짜 몰라서 물어본 거였어요? 난 또 장난인 줄 알았지.

-에이급이라니ㅋㅋㅋㅋㅋㅋ

얼어버린 공진호의 몸은 하린이 다가와 그의 등을 토닥여 줄 때 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아요. 원래 저 사람이 좀 나빠요. 어떤 의미에서는.”

.

.

.

.

"흠..."

강서가 ‘에이급’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강서가 그 에이급과 비급을 쓴 <저자>였기 때문.

책을 쓴 본인이었기에 비급이라는 말이 ‘b급’을 의미한다는 것도, 그리고 에이급이라는 상위의 서적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봉인의 탑에 실제 존재할 지는 강서도 알지 못했지만 왜인지 그럴 것 같다는 직감에 벽면을 두드려 찾아본 것이었다.

‘묻으면서 같이 묻힌 건가.’

강서가 비급과 에이급을 쓴 것은 시기적으로 ‘무극’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훨씬 이전이었다.

강서가 그 책들을 쓴 것은 다름 아닌 ‘용병왕 오도아게르’의 생을 살적.

무(無)로 시작해서 모든 수행과제를 해결하고 오도아게르의 생(生)을 마감할 때에 유서대신 기념비적으로 남긴 것이 바로 그 서적들이었다.

아무 재능도 없이 시작했던 오도아게르의 생애 특성상 자신들이 최고라 주장하는 수많은 무공들을 직접 만나보았고, 회차를 반복하여 그것들을 하나씩 파훼하며 얻은 노하우를 책들에 녹여낸 것이었다.

그것을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써 놓은 것이 바로 에이급과 비급.

한글로 적혀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수많은 무공들에 대한 파훼법을 녹여내어 초식들을 정하고 적다보니 일차적으로 초식을 정리하는데에는 아무래도 익숙한 한글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

한글로 먼저 적은 뒤 당시에 사용했었던 언어로 번역하여 적어 놓기는 했지만 그 서적은 간데없어지고 한글로 남은 에이급과 비급의 초안이 봉인의 탑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결론적으로 공진호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본래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했던 서적보다도 좋은 무공서적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금의 피눈물이 있기는 했지만...

.

.

.

.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작명센스군.]

강서를 뒤따라 올라온 데미안이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한마디였다.

그 말에 동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사람 뿐.

“...그렇게 별론가요?”

강서가 조심스럽게 데미안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들려온 쪽은 데미안의 쪽이 아니었다.

데미안을 뒤따라 공진호를 부축하며 공동에서 나온 하린이 대답을 한 것.

“그야 당연하죠!! 누가 무공서적에다가 B급이라는 말을 이런 의미로 써놓아요.”

"..."

“이거 쓴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친구 없을 걸요 아마? 에스급이 없다는 게 다행일 정도의 작명센스에요.”

“...아. 에스급...그렇죠.”

어딘가 심히 너무한 말에 강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강서를 유심히 바라보던 데미안은 문득 뭔가를 눈치 챈 듯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의 표정이 그렇게 유의미하게 바뀌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았다는 듯 커진 눈은 하린으로부터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설마!]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기색이 달라진 데미안의 모습에 하린이 걱정하는 듯 물어왔지만 데미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럴 리가 없다. 이정도의 작명센스는...’이라며 무언가를 부정했다.

무엇을 부정하는 지는 몰랐지만 무언가 심각한 사실을 안 것 같았다.

각자가 무언가에 데미지를 입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공진호였다.

“...그래도 예상치 못한 수혜를 입었군. 어쨌든 그 ‘b급’ 보다는 좋은 서적이라는 거니 효과는 확실하겠지. 그래 그 정도면 괜찮지...그 정도면 괜찮아...”

가장 충격을 강하게 받았지만 그동안의 타격에 맷집이 강화되었다고나 할까. 공진호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건 맷집이 강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실제로 시간이 없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공진호가 무극의 공략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 공략 시간.

무극에서의 공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변수.

공진호는 우선 기존의 계획해 놓은 대로 펼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공진호를 포함한 일행들이 무극의 중심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그들의 눈앞에 익숙한 메시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전으로부터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지역: 제2망록시기 무극]

[퀘스트내용: 고대 왕 <무휼>의 갱서 정책으로 오랜 시간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어 왔던 <무극>에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남만에서 올라오는 미확인 된 적으로부터 무극의 소멸을 막으십시오.]

[퀘스트를 위한 첫 번째 지령이 활성화 됩니다.]

*

[제1지령: 무극의 33대 왕 <무장>과 우호적인 관계형성.]

[내용: 무극의 33대 왕 <무장>은 굉장히 호전적인 성격의 사내입니다. 무휼의 대부터 내려오는 그들의 전통을 깨지 않으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십시오.]

[보상: 개인보상, 제2지령]

[남은시간: 24:00:00]

[※퀘스트의 특수성으로 인해 <신전의 가호:호의>가 사라집니다.]

[이계민에 대한 호의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

그것은 다름 아닌 신전의 퀘스트 메세지였다. 차원을 넘나들며 빼먹지 않고 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신전의 퀘스트 메시지.

“이건...”

“흠..."

하지만 지금은 섣불리 뭐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동안 신전이 헌터들에게 제시해 온 것은 항상 헌터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렇기에 본계에 존재하는 신전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오며 공략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헌터들이 하프라인을 넘어 공략을 진행하는 것도 어찌 보면 신전의 제의로 인해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전들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신전의 퀘스트가 헌터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단번에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었다.

쉽게 따르기도, 그렇다고 따르지 않을 이유도 찾지 못하겠지만, 어딘가 껄끄러운 느낌만큼은 남아있는 상태.

“그대로 하도록 하지.”

“...진짜요?”

생각보다 빠른 공진호의 단언에 하린이 놀라며 물었다. 애초에 차원문을 넘어온 것부터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신전에 대한 여론은 굉장히 안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린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공진호의 선택에 있어서 신전은 항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신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상황은 전생에서도 겪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공진호의 선택에 미친 영향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공진호가 그대로 하자고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원래 그렇게 하려 했으니 별달리 신전의 우호적이라거나 그런 오해는 하지 말도록.”

자신의 계획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스마트워치로 스캔해서 서적을 공유하도록하지 비급과...에이급. 이걸 숙지하면서 이동하도록 하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