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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51화 (151/191)
  • 151화. < ep34. 무극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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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할 말이 없군.”

    강서가 하린과 함께 제5 차원문 너머로 넘어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공진호가 중얼거렸다.

    심기일전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이미 먼저 들어와 있다는 강서의 말은 공진호에게 꽤나 허탈한 것이었다.

    공진호가 차원문을 넘어왔을 때, 언뜻 보기에도 그건 힘이 빠져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하하...미리 말을 할 걸...그랬네요.”

    공진호가 무슨 느낌을 느끼고 있는지 공감할 수 있었던 하린만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됐다. 이쪽은 누구지?”

    공진호가 데미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어왔다. 양쪽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강서 옆에 서 있는 데미안.

    데미안은 무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선을 건네 오는 공진호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주었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 잠시 고민하던 강서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슬쩍 들어보였다.

    "...?"

    처음에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 공진호였지만, 이내 강서가 든 검이 어떤 검인지 눈치 채었다.

    “아, 뽑았군.”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눈치 채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에도 뽑힌 적이 없었는데.’

    공진호의 전생에서도 무명검은 뽑힌 적이 없었다. 때문에 검이 뽑힌 모습도, 데미안의 인간형(人間形)도 처음 보는 공진호였지만 의외로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검의 형상화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무극에서도 형상화를 사용할 수 있는 검이 존재했으니까.

    “귀한 검이었군.”

    그렇게 데미안에 대한 짧은 감상평을 남기고 공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마치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손을 턱에 댄 채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이어진 정적.

    “이대로 가지.”

    “...네?”

    “이대로 공략을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말이다.”

    공진호가 문득 내뱉은 말은 파격적이었다. 하린이 한 번 되물었지만 공진호는 바꿀 생각이 없다는 듯 단언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멋대로 제5차원문을 들어온 것은 분명 하린과 강서였다.

    하지만 들어온다는 것과 공략을 진행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 하린과 강서가 이 제5차원문에 들어온 것은 어디까지나 답사를 위한 것이었고, 공략진행을 위함이 아니었다.

    3명이서 아니, 많이 쳐줘서 4명이라 치더라도 4명이서 공략진행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하린이 기억하는 공략들에서는 그건 불가능한 것이었다.

    특히나 하린이 아는 공진호의 성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공진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로 그게 나을 것이라 생각한 것처럼.

    “...이곳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

    “판다, 너라도 이곳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을 거다. 나는 지금까지 수 십 년 동안 이곳을 연구하고 대비해왔지."

    강서를 돌아보고 그렇게 말한 공진호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곳에 자욱한 쇠 냄새. 너희들도 분명 느껴질 꺼다.”

    양손을 펴며 이야기를 시작한 공진호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거 아나? 쇠에는 냄새가 없다는 거.”

    “당연히 몰랐겠지. 상식의 범주에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정확히 15분 전 데미안이 설명해준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공진호.

    그런 공진호를 세 사람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맡는 냄새는 무슨 냄새냐는 질문을 하겠지.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이건...”

    “피부기름이 산화된 뒤 금속 이온에 의해 분해되면서 생겨나는 냄새죠.”

    "....?"

    마치 들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하린을 바라보는 공진호.

    “이정도로 강하게 냄새가 베이는 것은 더욱 오랫동안 두 성분이 접촉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런 물질은 피밖에 없죠. 피냄새 역시 피부조직의 기름성분이 헤모글로빈에 있는 철 이온에 의해 분해되면서 나타나는 거고요.”

    "..."

    데미안으로부터 미리 들은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여 이야기한 하린.

    공진호는 벙찐 표정으로 하린을 바라보았다.

    “...혹시 화학석,박사 뭐 그런 거했나?”

    “고졸이에요.”

    "...크흠. 잘 알고 있군.”

    민망한 듯 헛기침을 내뱉은 공진호가 상황을 무마하려 설명을 덧붙이려 했지만,

    “그럼 왜 피냄새가 나는지 아나? 이곳은-”

    그리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무극이죠. 세계.....동양의 최고의 검사, 무의 정점들이 모여 살았다는 제2망록시기의 전설적인 국가. 무의 극한을 추구하는 나라이다 보니 항상 적수를 찾아 다녔는데, 주변 국가는 무극(武極)과의 대립을 꺼려했고 항상 피해 다녔기 때문에 종래에는 자기들끼리의 혈투로 멸망했다고...아까 데미안님이 다 이야기 해줬어요.”

    "..."

    이어진 하린의 말에 공진호가 완전히 입을 다물어버렸다. 자신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강점을 내세워 팀을 리드할 카리스마를 보여주려했지만...타이밍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강서와 데미안은 여전히 공진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눈빛이었다.

    데미안은 자비없는 무표정. 그리고 강서는 약간의 미안함이(?) 서린 눈으로 공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눈을 고정한 채로 먼저 입을 연 것은 데미안이었다.

    [아까 공략, 공략하더니 요즘은 개그도 공략을 하나보군.]

    "..."

    [포지션은 코미디언인가?]

    강서는 데미안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웬일이에요?”

    이상한 일이었다.

    공진호가 방송을 켤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적으로도 그리고 공진호의 성향적으로도 의외의 선택이었다.

    “방송...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강서나 하린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본래 두 사람이 만난 처음이 방송이기도 했고, 두 사람 다 각자의 이유로 좋아했기 때문.

    오히려 방송을 하지 않고 공략단에 참여 하는 쪽이 더 어색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방송이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

    저번 3차원문 공략으로 공략 중 통신 금지조항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진호가 먼저 방송제의를 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필요하니까.”

    공진호가 방송을 제의한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 방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공진호가 본래 공략 중 통신 금지조항을 만든 것은 공략단원 개개인이 본게에서 얽힌 이해관게에 공략자체가 휘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수많은 수를 일일이 감시하며 확인할 수는 없었으니 연락할 수단을 아예 끊어버린 것.

    하지만 이 제5차원문의 경우에는 경우가 조금 달랐다. 어차피 강서, 하린, 공진호 이렇게 세사람만이 공략에 참여하기로 한 상태.

    돈이나 권력같은 이해관계에 휘둘릴 사람들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한두명 정도는 충분히 통제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아직 말하지 않은 부분이지만...보면서 깨달았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직접 보는 게 효과는 제일이겠지.”

    공진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린의 스마트워치에 턱짓을 했다.

    “네, 뭐...”

    하린은 뭔가 잘 모르겠다는 듯 말을 흘리며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반응이 폭발적일 것임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금 공략단장인 공진호는 물론이고 강서와 하린까지 차원문을 넘어와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으니까.

    심지어 상아탑주인 수혁조차도 강서와 하린이 이곳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으니 일반인들은 이 사실에 얼마나 놀라할지 하린은 감이 오지 않았다.

    차원문을 넘어오기 전, 제5차원문 공략에 대한 여론이 어떠했는지 기억하는 하린은 그 부분을 걱정한 것이었다.

    넘어온 것에서 모자라 3명이서 공략을 하리란 것을 알게 되면 트프리치tv의 서버가 다운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린은 방송을 켰다.

    -판-하

    -킹랜만이자너;;

    -복귀하고 잠적 중인거 아니었나?

    -님들 여기가 오크반도임?

    .

    .

    .

    .

    .

    반응은 역시나 뜨거웠다. 순식간에 숫자들이 올라가기 시작하며 시청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하린은 그 화면을 공진호와 강서에게 보내 주었고, 데미안을 그것을 흥미 있게 바라보았다.

    [신기한 물건이군. 동시심상전송마법인가?]

    “조금 다르지만 얼추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특이한 구조군.]

    “마도 공학이라고, 마법만 사용한 것과는 조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처음 보시는....”

    강서는 데미안에게 간략하게 설명를 덧붙여주며 공진호를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뭔가 인사라도 했을 터였지만 공진호가 도착하기 전 전화로 했던 말을 기억한 것이었다.

    ‘이번 만큼은 내 말에 따라 줘야한다. 정말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우선은 무조건적으로.’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우선은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이 방송도 뭔가 공진호가 노리는 점이 있으리라 하고 말이다. 아니다 다를까 공진호는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다운 말투로.

    “공략단장이다.”

    -???

    -급 전개 무엇.

    -오늘은 어디? 왜 때문에 공략단장이 있음???

    “모두가 반대하던 제 5차원문 공략을 시작하겠다. 그동안 공략현장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을 지양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적으로 직접 공략현장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공진호가 말을 꺼내자 잠시 채팅창이 얼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돌발 발언에 보고있던 시청자들 모두 잠시 멍해졌던 것이었다.

    하린이 처음 그의 말을 들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평소에도 행동거지가 무겁기로 유명한 공진호. 시청자들은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사람들은 다양하게 공략에 대한 우려들을 표해왔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공략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공진호를 나름 잘 아는 하린조차도 그가 갑작스럽게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추측하지 못했으니까.

    그간 보여왔던 조심스럽고 철저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사람들의 우려.

    -아니 말이 됨 ?3명 공략 트루?

    -아니 이건 솔직히 객기지 아니지 않냐.

    -이게 최선입니까?

    -본인이 가는 건 막지 않겠지만...적어도 공략단 정비는 하고 가야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알던 공략단장은 어디로...

    -도대체 이렇게 하는 근거가 뭐임? 갑자기 방송도 켜고 내가 잘 알지는 않지만...

    하지만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공진호가 이 제5차원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또 계획을 얼마나 철저히 세웠는지.

    -이건 솔직히 말리는 게 도리다;;

    -나와요. 이거 진짜 걱정되서 하는 말이라니까?

    -판다랑 하린이라도 보내셈;;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올라오는 채팅들을 그저 지켜보고 있던 공진호.

    그의 눈이 살며시 감겼다.

    ‘드디어 오늘이군.’

    3초정도 감겨있던 그의 눈이 다시 뜨여졌다.

    뜨여진 그의 눈에는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서려있었다.

    무언가. 결연이라고 표현하면 비슷할까. 이글거리는 끓어오름이 공진호의 눈동자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장한 표정을 짓고, 조금은 다른 눈을 한 공진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다음 말은.

    “나는 이번이 두 번째 삶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내뱉던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기에 충분했다.

    .

    .

    .

    .

    .

    .'...?"

    물론 그 비장한 표정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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