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46화 (146/191)
  • 146화. < ep32. 할아버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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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실마리는 굉장히 의외의 곳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인을 보며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인이 ‘미안하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불그가 강서를 향해서 말을 건네 온 것.

    '...'

    분명 노인의 입은 여전히 다물어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불그는 강서에게 노인이 ‘미안하다’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고 전한 상태.

    상황의 아귀는 대강 맞아 떨어졌다.

    노인의 시선이 하린에게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무엇을 미안해하는지는 정확히 모르더라도, 노인이 용건이 있다면 그건 하린 뿐이리라.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강서.

    강서는 입을 열어 불그가 전해준 그의 말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

    “...라고 하시네요.”

    갑작스러운 강서의 반말에 돌아본 하린은 이어진 강서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라며 노인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아본 노인의 모습은 여전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랐는데, 그것은 바로 노인의 시선이었다. 하린을 향해있던 시선이 강서에게로 옮겨간 것. 강서의 말이 노인의 이목을 끈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바라보아도 강서의 눈에 비치는 노인은 입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너무 굳게 닫혀있는 입술 덕분에 말할 의향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게 본심이 아니라는 건가.’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말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표정변화 또한 없다는 것이었다. 불그는 분명 그가 ‘미안하다’라고 말을 건네 왔다 했지만, 노인의 얼굴 그 어느 곳에도 그러한 기색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그 말의 일말의 감정이라도 얼굴에 묻어났더라면 하린이 당장이라도 노인에게 달려들었으리라.

    애초에 검으로 그은 선을 기준으로 이렇게 어정쩡한 대치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로 노인의 얼굴에서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

    “...진짜에요?”

    하린이 반신반의 하며 강서에게 물었다.

    강서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내말을 들을 수 있는 겐가?’고 물어오는 노인의 말을 전합니다.]

    불그의 메시지를 통한 대화였기에 유기적인 대화는 어려운 상태였지만, 노인의 말을 알아듣는 정도는 가능했다.

    때문에 강서는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노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그가 감정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아니 생각보다 그 감정이 격하다는 것을 말이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하린이가 많이 컸다고 이야기하는 노인의 말을 전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하린이가 생각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칭찬하는 노인의 말을 전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하린이가 남자들을 한 무더기를 끌고 다닌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노인의 말을 전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장 다가가서 안아줄 수 없어 아쉽다는 노인의 말을 전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하린이에게 하트를 뿅뽕.....

    .

    .

    .

    .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자신은 구X번역기가 아니라며 분노합니다.]

    처음에는 선의로 말을 전달해주던 불그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노인의 팔불출 발언에 화를 내었다.

    강서역시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기 그지없는, ‘하얀 귀신’이라고 불렸을 정도의 섬뜩함을 지닌 그 노인이 하린을 보자마자 날려댄 게 무려 ‘하트뿅뽕’이었으니까.

    강서는 차라리 그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잠시 하린을 바라보고.

    “왜요? 뭐래요? 뭐라고 하고 있는 거에요?”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 찬 하린의 눈빛에 차마 노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었던 강서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네?”

    강서는 하린의 질문에 더 대꾸하는 대신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말을 할 수 없으신 겁니까?”

    강서의 질문에도 노인은 여전히 부동(不動)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움직임조차도 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노인이 그렇게 가만히 있는 이유는-

    미리 불그가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인의 <표현>이 징크스로 묶여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말’만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인의 모든 <표현>이 징크스에 의해 막혀있었다. 웃는 것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고작해야 신기인 불그가 노인의 생각을 관망하는 방법 밖에는 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강서는 맨 처음 불그가 ‘징크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떠오른 ‘징크스’라는 말에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님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징크스.’

    징크스라는 것은 비범한 격을 얻었을 때에 수반되는 제약. 그것이 노인의 표현을 옭아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노인에게서 징크스에 응당한 <신격>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니까.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즉, 신격에 도달했다는 의미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노인의 겉으로 느껴지는 힘의 크기는 굉장히 강력했다. 힘을 어느정도 갈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가정했을 시에는 당장 강서도 노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서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징크스에도 수준이 있었다.

    웬만해서는 충족하기 어려운 기괴한 조건부터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조심해야할 정도로 강력한 징크스.

    노인이 가지고 있는 징크스는 굉장히 강력한 편이었다.

    겉으로 <표현> 그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이외의 수많은 것은 포기해야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강력한 징크스를 얻으면서 신격의 조각조차 얻지 못했다는 것은 뭔가....

    ‘…아.’

    강서는 문득 노인을 보며 자신이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노인이 징크스를 대가로 얻은 것은 격의 성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어린 것이 미련하다고 노인을 꾸짖습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힘에 눈이 먼 놈이라고 노인을 꾸짖습니다.]

    노인이 징크스를 대가로 얻은 것은 ‘힘’ 그 자체였다. 다른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직 ‘무력’의 성장을 얻은 것.

    보통의 경우와는 굉장히 많이 다른 것이었다.

    한 차원에서도 극한에 다다른 존재들. 그 중에서도 그 세계의 역사 속에서 손에 꼽는 존재들만이 ‘신격’에 도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신격’이라는 것은 존재 그 자체의 가치를 끌어 올리는 것을 의미했다. 수명부터 무력까지. 범인 이상의 것으로 위치시키는 것.

    실제로 신격의 조각을 가진 존재들은 명확한 수명의 제약이 없었다. 수명의 제약이 있다면, 다시 부활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고, 적어도 ‘자연사’하지 않는다는 것.

    신격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바로 그것이었다. 필멸자(必滅者)에서 벗어나는 것.

    하지만 하린의 할아버지는 달랐다.

    신격에 도달할 자격을 얻었음에도, 격의 상승을 포기하고 쉽게 말에 힘에 ‘몰빵’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불그가 같은 신격의 존재의 입장에서 그를 꾸짖은 것이었다. 인간이나 생물이나 무기나.

    언젠가는 스러질 수 있는 존재.

    그것을 벗어날 기회를 얻었음에도 기회를 발로 차버리고, 무력만을 탐했으니 괜히 마음속 어딘가에서 안타까움이 튀어 나온 것이었다.

    영생의 목전에서 어리석게도 힘을 택했으니.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인이 당신을 부른다고 전달합니다.]

    ‘나를?’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에게 ‘선 밖의 존재’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선 밖의 존재’이기 때문에 당신의 접근은 괜찮다고 이야기합니다.]

    불그가 노인의 부름을 전해왔다. 노인이 불그를 통해 강서를 부른 것이었다. 기껏 검까지 휘둘러가며 못오게 막아놓고 강서를 부르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으나.

    강서는 노인이 그어놓은 검흔을 지나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 어,...사부 거기 건너가도 되는 거야? 넘어가면 안 된다며.”

    “아뇨.”

    델타가 물어오자 강서는 손을 뒤로 펴 보이며 일행의 접근을 막았다.

    “여러분들은 아직 넘어오면 안 된다고 하네요. 우선은 제 말을 따라주세요.”

    “뭐? 그런 게 어딨어.”

    “잠시만요. 아저씨가 저렇게 말하는 이유는 있을 거에요. 우선은.”

    델타가 무작정 강서을 뒤따라오려 했으나. 의외로 그것을 말린 것은 하린이었다.

    그만큼 강서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강서가 행동하는 것에는 그에 응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강서를 가장 오래 봐 온 만큼.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해온 만큼. 강서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하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충분히 동요할 만한 상황에서도 강서의 말을 따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일행들은 100여미터가 떨어진 검흔 밖에서 기다리고.

    강서 혼자서 자박자박 눈소리를 내며 노인에게 접근했다.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만이 적막히 울리기를 몇 번.

    강서가 노인의 앞에 도착하자 노인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중 한 자루를 풀어 강서에게 건네었다.

    불러놓고 다짜고짜 검을 전달해달라는 것은 꽤나 당혹스러울 법했지만, 강서는 예상했다는 듯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강서가 걸어가는 와중에도 하린에게로 향하는 노인의 눈길에서 무언가 부탁할 것 같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으니까.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하린이에게 전달해 달라는 노인의 말을 전달합니다.]

    강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검을 받아들었다.

    비범한 검이었다. 잡는 순간 묵직하게 느껴지는 검의 아우라는 그것이 예사 검이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선 밖의 사람이라는 게 무슨 말이죠?”

    검을 내려 쥐며 강서가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불그가 다시 한 번 진동을 울리며 노인의 말을 전달해왔다.

    그리고 노인이 전달해 온 노인의 말은-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도 윤회의 선을 벗어났다’는 노인의 말을 전달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에게 ‘윤회의 선’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

    노인의 말에 강서가 적지않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가면을 쓰고 있어 밖으로 표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을 마주한 노인이라면 아마 강서가 얼마나 놀랐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윤회의 저주.’

    조금은 다른 말이었지만 ‘윤회’라는 단어에서 강서는 단번에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노인이 말하는 윤회의 선을 벗어났다는 것은 윤회의 저주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리라.

    그리고 그 말이 강서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그 앞에 붙어있는 ‘당신도’라는 말 때문이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하린을 잘 부탁한다는 노인의 말을 전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주는 것도 없이 부탁만 한다며 염치없는 노인을 비난합니다.]

    노인은 강서에게 그 말을 남긴 뒤 허리춤에 있는 다른 검을 뽑아 들었다.

    "어? 할아버지!!!”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그 검으로 허공을 베었다. 그러자-

    스팟-

    공간이 갈라지며 허공이 베어졌다.

    이전에 마법대륙 ‘아단’에서 오크반도로 넘어왔을 때 강서가 다시 만들었던 <차원균열>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용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리에 있는 일행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이동하려는 그의 움직임에 강서가 급히 그를 말리려 했지만-

    “ 잠깐만요.”

    노인의 몸이 이미 균열너머로 반쯤 이동한 상태였다. ‘윤회의 저주’에 대한 정보를 더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강서는 다급히 손을 뻗었다.

    그렇게 손을 뻗은 강서는 간신히 그의 검집 끝을 잡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쑤욱-

    검집에 따라 그의 몸이 딸려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검집 만이 노인의 허리춤에서 빠져나왔다.

    돌아가는 노인의 고개.

    노인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무표정인 채로 시선만을 강서에게 향한 채 노인의 몸은 차원의 균열 너머로 이동했다.

    .

    .

    .

    .

    .

    .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검집을 가져가면 어떡하냐 이 개..’라는 노인의 마지막 말을 전달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방금 징크스가 깨질 뻔했다며 당신을 칭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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