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ep32. 할아버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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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이 사라졌다는 소식.
상아탑의 총무가 부하직원에게 들은 보고는 그것이었다.
“아니 그게 하늘로 솟아 땅으로 꺼져...”
우선 보고를 한 부하직원을 물리고, 총무는 사무실의 컴퓨터를 켰다.
요약된 보고사항을 듣기는 했지만 더 자세한 내막과 이야기를 알기 위함이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마탑이 아직 얻지 못한 정보도 얼마든지 실시간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삐빅-
소리를 내며 켜진 컴퓨터를 조작한 총무.
아니나 다를까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자 그가 원하는 정보들이 천지에 깔려있었다. 뜨겁게 달궈진 인터넷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신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라진 신전 어디로?]
[원인모를 사건들의 연쇄. 헌터협회 무용지물설.]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들을 읽어보며 총무는 자세한 정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요약 정리된 보고의 틈새를 메꿀만한 세세한 정보들.
"...후."
메인이 되는 갈래의 기사들을 모두 읽고 총무는 생각에 빠졌다. 사건의 정황은 파악했지만, 신전이 사라진 원인도 알 수 없었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세계 각지에 퍼져 있던 신전들이 모두 사라졌고, 그 부지에는 텅 빈 공터만 남아있었다. 본래부터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못하는 외지에 존재하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감쪽같을 정도’로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조사결과.
물론 신전이 남긴 흔적이 건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신전에서 신을 모시던 ‘신관’이라는 직업도 분명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신관을 통해서도 이 일의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의 기억이 모두 지워져 있었기 때문.
[속보. ‘바다의 신’을 섬기던 신관 단독인터뷰.]
총무는 포털사이트 기사 중 상위에 링크된 하나의 글을 클릭했다. 그 기사는 별다른 첨부 글 없이 영상과 제목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총무가 영상의 재생버튼을 클릭하자 한 여자가 카메라에 잡혔다.
조악한 모자이크가 씌워져 있어 명확히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카메라가 한 대상을 정확히 잡고 있었기에 그녀가 제목에서 말하는 신관임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라기에는 조금 초라한 주변.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인터뷰의 형식은 갖추고 있었지만 이건 연예인의 인터뷰가 아니라 사람들의 궁금증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취재였으니까.
카메라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신관님, 바다의 신님은 어떻게 된 거죠?」
「네?」
「바다의 신이요.」
「아니아니, 잠깐만요. 바다의 신은 둘째 치고 신관이라뇨. 저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양손을 내저으며 카메라를 자신이 신관임을 부정하는 여성. 하지만 카메라밖의 목소리는 그것을 수긍하지 않고 다시 되물었다.
「바다의 신에 대해서 모르신다고요? 신전은요?」
「아니, 모른다니까요? 신전은 또 무슨 말이에요? 저는 헌터에요 헌터. 던전을 다니는 헌터요. 그래도 꽤 유명한데...」
영상은 거기서 마무리 되었다.
“...블라이스.”
영상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었지만 총무는 목소리만 듣고도 그녀가 누구인 지 알 수 있었다.
총무가 그녀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었을 뿐.
아마 영상을 본 사람 중에서 신관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알고 있었으리라. 그녀는 신관중에서 가장 뛰어난 외모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신관 특유의 냉담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날카로운 분위기 덕분에, 본인의 활동이 없더라도 쉴 새 없이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던 그녀였다.
헌데.
“기억을 잃었다...”
영상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신관과 신전에 대한 기억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하루사이에 신전이 사라진 것처럼 그녀의 신관으로서의 기억도 아예 상실되어 버린 것.
영상이 올라온 지가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것인지 그 영상의 댓글은 폭발적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야 팩트냐? 블라이스 신관같은데
ㄴ222 내가 블빠2년차인데 블라이스 맞음.
-아니 기억이 사라지는 거야 차고 넘치는 게 각성자니까 말은 되는 데 그럼 지금 모든 신관들 기억이 다 지워진거야?
-ㅇㅇ블라이스 아니어도 다 지워진 듯. 우리 집근처 구름의 신전 신관도 아무기억 없다더라.
-와 이게 무슨 일이야 하루아침에...
.
.
.
.
-그래도 신전의 차원문은 아직 멀쩡하던데.
ㄴㄹㅇ?
ㄴㅇㅇ멀쩡함.
불행 중 다행인지.
신전이 설치해 놓은 신전의 제1문부터 제3문까지는 아직 건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여전히 오는 것도 가는 것도 가능한 상황.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계속 신전의 차원문이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낙관적인 것이었다.
언제 멈추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장은 작동된다는 것에 위안을 받으며 최대한 빨리 대책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구나.”
총무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며 숨을 내쉬었다.
즉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당장눈에 보이는 피해나 위협이 없었기에 사회의 동요는 비교적 적었다. 때문에 총무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들이 인간에게서 돌아서지 않은 게 어디야-
하며 말이다.
하지만 알았을까. 그것은 단지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뿐이었음을.
***
"할아버지..."
중얼거리는 하린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일행들이 전부 하린을 쳐다보았다. 하린의 입에서 나온 할아버지라는 말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일행들이 느끼기에 자신들이 목도한 그 백발백의(白髮白衣)의 노인은 굉장히 굉장한 인물이었으니까.
“...느껴지는 기세가 이건 뭐...사부도 지겠는데?”
멀리서 보기만 했을 뿐이었지만, 느껴지는 강함에 델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순히 외양이나 분위기에서 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궤를 달리하는 <격>의 차이였다.
말하자면 신격을 얻은 인간의 위엄이랄까.
헤아릴 수 없는 간극에서 오는 위압감. 그 공포감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기에 호승심이 강한 델타조차도 그 노인에게 만큼은 싸워보고 싶다는 의지가 일어나지 않았다.
“확실한가?”
공진호가 하린에게 재차 물었다. 마우레니아의 가슴팍을 갈랐을 때부터 예사 사람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직접 목도했을 때의 충격은 그로서도 꽤나 강렬한 것이었다.
‘한 명.’
공진호가 이 정도의 강함을 느껴본 것은 전생을 통틀어 딱 한 번 뿐이었으니까.
“네, 확실해요.”
하린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확실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을 보고 있던 강서는 입을 열었다.
“그럼 가보죠. 딱히 뭔가를 하고 계신 것 같지는 않네요.”
강서의 말대로 노인은 설산 너머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 딱히 어떤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
"..."
하린의 할아버지라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감을 뒤로 한 채 일행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일단 이동하기 시작하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하린의 심장은 더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강서일행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강서일행이 접근하는 방향의 반대 방향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하린이 두어번 ‘할아버지’라는 말을 외쳐보았지만, 노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의문을 느끼면서도 계속 접근하던 강서일행. 그렇게 거리는 꽤나 가까워져 이제 노인의 외양이 정확하게 보일 정도가 되었다.
일부를 올려 묶은 백발의 머리. 입고 있는 흰 옷은 꽤나 오래되어 보였지만, 낡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풍스러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인의 외양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어느 순간-
"...!!!"
갑자기 노인의 몸이 휙-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스릉-
노인의 허리춤에 있던 2개의 검 중 하나가 뽑혀 나왔다.
“어, 어...잠깐 이거!”
“할아버지!”
갑작스러운 쇳소리에 델타가 당황스럽다는 듯 뒷걸음질을 쳤고 하린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다시금 불렀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하린의 할아버지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검을 그어버렸다.
촤악-
피할 새도 없이 뻗어진 검격에 강서일행이 당황해 했지만, 다행히 검격은 곧바로 몸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비스듬하게 기울여 넣은 그 검격은 강서일행의 딱 한 걸음 앞.
그곳에 선을 새겨 넣었다. 마치 그것을 넘어오지 말라는 듯이.
“왜...!"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분명 접근할 때 까지만 해도 강서일행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듯이 행동했지만, 일정 범위 안에 들어가자마자 건네 온 공격이었으니까.
하린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공격을 해왔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하린의 의문을 뒤로한 채, 나머지 일행들은 조용히 자신의 무기들을 꺼내들어 경계태세를 취했다.
수혁은 메모라이즈 페이퍼 킷을 열어놓았고 델타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낮추고 있었다.
그리고 강서는-
'...공간절삭.’
진심으로 휘두른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강서는 노인의 검격에 담긴 묘리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강서의 전생 중 하나. 오도아게르의 첫 번째 검. <공간절삭>이었으니까.
강서는 노인이 왜 그 검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우선 그 고민은 제쳐두기로 했다. 당장에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노인의 표정은 한단어로 표현이 가능했다. 무심(無心)
아무런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 그 자체였다. 오랜만에 만난 손녀를 보는 시선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얼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하린은 하염없이 노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하린의 할아버지가 맞긴 한 건지 노인의 시선도 하린을 향하고 있기는 했다.
때문에 더 하린은 혼란했다.
할아버지가 맞다면, 왜 이런 식으로 대응을 하는지.
본래 자신이 기억하던 할아버지의 성격과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기에,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입은 굳게 닫혀 열릴 줄을 몰랐다. 그 어떤 해명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강서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할아버지가 왜 손녀를 공격하는 모르겠다.’같은 일차원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강서가 느낀 괴리감은 바로 노인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의문의 괴리감.
수많은 생을 거친 강서이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존재하고 있으나 존재하고 있지 않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 괴리.
그때였다.
강서의 손에 쥐여있던 불그가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하나의 메시지를 강서에게 보내왔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인을 보며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인이 ‘미안하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마리는 의외의 곳에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