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ep31. 오크들의 신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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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훗, 올해 번제는 우리가 틀림없이 우승이겠군.」
우라우라가 엄청난 크기의 검치 호랑이를 쓰러트리며 중얼거렸다.
「족장, 이정도면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다.」
「족장말대로 이쪽이 검치호랑이 이동루트인 것 같다.」
우라우라는 이번 번제 행사에서 가장 좋은 제물을 바치는 것은 자신들이리라 자신했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우라족이 잡은 검치 호랑이는 생츄어리에서도 굉장히 보기 드문 종이었고, 발견했다 치더라도 그 몸의 민첩함과 순발력 때문에 잡기가 정말 쉽지 않은 종류의 사냥감이었으니까.
사실상 오크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생츄어리 내에서도 최상위의 포식자군에 속했다.
게다가 크기까지도 거대한 편이었으니, 우라우라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나은 제물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사냥감이었다.
「성산으로 간다.」
쓰러진 검치호랑이의 급소에 창을 다시 한 번 찔러 넣어 죽음을 확인한 우라우라는 부족원들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부족원들은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들것에 검치 호랑이를 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꾸준히 움직인 부족원들은 우라우라가 말한 ‘성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번제가 진행된 2일차의 밤이었다.
공식적으로 생츄어리에 진입한지 딱 하루 언저리를 지나고 있는 시점, 지금까지의 번제를 보았을 때에도 그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성산이란 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 생츄어리에 존재하는 3개의 성산 중 우라우라가 향한 곳은 우라가 거하는 ‘심장성산’이었다.
「거의 다온 것 같다 족장.」
완만한 경사의 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우라족의 걸음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사냥감은 크고 희귀할수록.
번제 제사는 빠르면 빠를수록.
그런 것이 좋았다.
심장성산의 지척에 도달하자, 고개를 돌려 검치호랑이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우라우라는 손을 펴 보였다.
이동을 정지하라는 의미의 신호였다.
「지금부터는 내가 혼자 움직인다.」
우라가 말을 하자 부족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치호랑이를 내려놓았다. 우라우라는 자신이 부족장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검치호랑이가 놓인 들것을 혼자서 들어보였다.
「크읍-」
그건 누가 보더라도 혼자 들기에 무리가 있는 중량이었지만, 우라우라는 기합소리를 내면서도 가볍게 들것을 들어올렸다.
우라우라는 그렇게 검치 호랑이를 들고 완만한 높이의 심장성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번제가 이루어지는 곳은 성산의 꼭대기.
생츄어리에 존재하는 각 성산마다 신이 거하는 자리는 달랐지만, 심장성산의 꼭대기에 존재하는 심장바위가 바로 ‘심장의 신 우라’가 거하는 곳이었다.
‘이상한 놈이 끼어들긴 했지만...이건 무조건 우리가 우승이다.’
우라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번제에서 우승하는 것은 당장에 표시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번제에서 얻은 우승은 그 한해동안 오크 부족으로 하여금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우선 번제에서 우승한다는 것 자체가 부족원들의 전체적인 전력강화와 같은 이야기였다. 신으로부터 부여 받는 <오우라>를 더욱 강대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부족의 크기가 커지고, 균형이 이루어지며 예전보다 쟁투가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족 간 다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크반도라는 한정된 영토 안에서 애매한 위치의 영토권이나, 사냥을 할 권리와 같은 중요한 쟁점에 있어서 부족의 전력상승은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잘만하면 필로스족 놈들의 북부호수를 차지할 수도 있겠지. 후후.」
우라우라는 번제에서 우승했을 때를 상상하며 정상의 심장바위에 도착했다. 심장바위가 눈에 들어오자 우라우라는 숨을 한 번 몰아쉬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신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우라족의 부족장으로서의 권리이자 책임.
우라족이 섬기는 ‘심장의 신 우라’를 조우하는 순간.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을 느끼며 우라우라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 씩.
저벅저벅-
검치호랑이를 든 무게 덕분에 발소리를 크게 줄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 정심하여 우라우라는 심장바위로 다가갔다.
「....?」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본래 이정도로 지척에 다가오면 심장의 신 우라의 목소리라도 들리기 마련.
하지만 심장바위가 우라우라의 열걸음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심장의 신 우라의 목소리도, 모습도, 심지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우라우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검치호랑이를 들고 있었던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 때문이리라 애써 위안하며 서두른 우라우라.
우라우라는 검치 호랑이를 심장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검치호랑이를 내려놓으며 다시금 열린 우라우라의 시야에는-
「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필로스족의 족장 람필로스와 림족의 족장 쿤림도 각자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성산에 올라갔다가 그대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텅 빈 산꼭대기에 제물들을 내려놓고 말이다.
당연히 그 이유는 우라우라가 겪은 것처럼 그들의 성산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각자의 성산에 모두 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공유한 부족장들은 침음성을 감출 수 없었다.
번제가 속행될 수 없는 사상 초유의 사태.
‘신들이 사라졌다.’
한마디의 말이었지만 그 영향은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선 세 명의 부족장들은 생츄어리에서 빠져 나왔다.
세 명의 부족장이 생츄어리를 빠져 나온 이유는 오늘이 번제기간의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번제를 시작한지 만 3일이 지나게 되면 번제기간이 끝나게 되고 그 이후에 <생츄어리>에 남아있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대에 여러 부족이 존재할 때에는 이따금씩 생츄어리를 향해 도전을 한 오크들도 있었지만, 그들 중 다시 오크반도로 돌아온 오크는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한 번도 전례가 없던 일이라 가늠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생츄어리를 나오며 부족장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한 가지 의문.
‘판다족.’
그들과 함께 들어간 강서는 생츄어리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
「내가 뿔의 성산에 올라갔을 때 이미 ‘림’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곳에서 곧장 오는 중이니 아마 그곳으로 오지는 않았을 것.」
림을 섬긴다는 말을 듣고 강서를 기다려 본 <쿤 림>이었지만, 결국 쿤림은 강서를 만나지 못한 채 생츄어리에서 나오게 되었다.
무언가 일이 틀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한 상황이었다.
「…」
다른 오크족장들 보다 조금은 동요가 적어보이는 필로스족의 족장은 잠시 자리를 지키다 조용히 필로스족의 막사로 들어갔다.
묘한 분위기의 상황에 강서 일행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사실 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강서는 돌아오지 않은 시점에 다른 부족장들이 모두 돌아왔으니 자연스럽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한 것.
“뭐죠? 왜 아저씨만 안 오는 거죠?”
“그러게요. 3일째라면...오늘 나와야 맞는데.”
그리고 작금의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정한 것은 공진호의 한마디였다.
“확실히. 지금 나오지 않는다면 뭔가 문제가 생긴 거다.”
"...?"
번제 기간 3일이 지난 후에 생츄어리는 죽음의 숲으로 변한다. 허락받지 못한 존재가 들어간다면 엄청난 디버프와 함께 모든 신체에 제약을 받게 된다.”
공진호의 표정이 상황의 심각함을 증명했다.
"...!!"
그리고 공진호의 말에 뒤이어 들린 정체모를 괴성.
쿠아아아악!!
모든 일행들의 시선이 생츄어리로 향했다. 그리고 모든 오크들도 소리가 난 생츄어리를 쳐다보았다.
번제 기간동안 멀리서 사냥소리가 들려오기는 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짐승의 괴성.
하지만 방금 그 소리는 단순한 짐승의 울음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무언가 다른...
“가봐야겠어요.”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하린이었다. 하린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생츄어리가 있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오크 부족장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괴성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지만, 움찔거릴 뿐 하린처럼 생츄어리 안으로 뛰어 들어가지는 못했다.
어릴 적부터 새겨진 학습의 결과였다. 번제 기간 외에는 <생츄어리>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선대의 선대부터 내려오던 전통.
그들을 한 번 쳐다본 채 하린은 생츄어리 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하린의 뒤를 따라 당연히.
“사건발생 사건발생~! 3일 동안 팔씨름만 하느라 심심했는데.”
“우선 저희도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가만히 있으면 더 모를 것 같네요.”
"..."
다른 일행들도 움직였다.
“아저씨!”
하린이 큰 목소리로 강서를 불렀다. 뒤쪽에서 다른 일행들이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발을 맞춰서 움직일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거리가 꽤 있었지만 괘념치 않고 계속 달려 나간 하린.
소리가 크게 들렸던 만큼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십수초.
하린은 멀리서 희끄무리한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
하린은 그 물체를 보며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다른 게 아니라 그 <속도>때문이었다.
공략단에서 가장 빠르다는 델타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엄청난 속도.
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잔상을 남기며 물체는 날아오고 있었다.
한참 멀리 있었지만 순식간에 자신의 지척으로 날아오는 그 물체를 보며 하린은 검집을 잡았다.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공진호의 말을 보아 이 숲의 생물이라면 당장 공격을 해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게다가 그 기세가-
"...응?"
하린은 그 물체의 기세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었다.
그 물체는 하린을 노리고 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경동(輕動)하며 흔들리는 그 움직임은 겁에 질린 채 무언가로부터 도망가고 있는 작태.
그리고 그 등에는 익숙한 무언가가 꽂혀있었다.
“...불그?”
‘아.’
물체, 아니 그 생물이 달고 있는 익숙한 창에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파악한 하린은 자신의 검집을 손에서 놓았다.
그리고 몸을 낮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아, 하린님. 그 녀석 좀 붙잡아주세요.”
역시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강서가 그 생물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한참 몸을 숙이고 생물의 움직임에 집중하던 하린.
하린은 그 생물이 자신의 자리에 도달하기 직전고 자리에서 도약하며 ‘불그’를 잡아채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을 거부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자신은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라며 당신을 시험합니다.]
이전에 해안도시 포고숄에서 수혁이 쥐었을 때와 같은 현상.
불그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격이 있는 자들만이 그 창을 다룰 수 있었고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 창신을 쥐었을 때에는-
쿠구구국-!
“꾸에에엑!”
그 무게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하린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게가 늘어나게 되며 정체불명의 생물은 땅바닥에 꽂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하린님 아니었으면 그 끔찍한 소리를 두 번은 더 들을 뻔 했네요.”
바깥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른다는 듯이, 태연하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강서.
“어떻게 된 거에요?”
이제 강서에게 완전히 적응한 하린도 마치 ‘오늘 날씨는 어떤가요?’하고 물어보는 듯 가볍게 설명을 요구했다.
“아, ‘우라림필로스’라고 해서... 이 생츄어리의 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