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ep31. 오크들의 신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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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종족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쿤 림의 말이 끝나자 강서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움직였다.
“아아, 캄파시아드?(아아, 들리십니까?)”
강서는 하린과 우라우라가 팔씨름을 벌인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위에서 목청을 가다듬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강서가 바라보는 방향은 림족이 모여있는 방향이었다. 림족을 향해 외친 강서의 목소리는 모두에게 닿았고 강서는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애두락 노네드란 테할마리 마나코아틀라(사실 림족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뭐하려는 수작이지?」
강서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쿤림은 강서를 째려보았다.
동시에 자신의 뿔을 통해 공유하는 림족만의 오우라 네트워크로 하나의 메시지를 공유했다.
‘무슨 말을 하든 절대 듣지 말아라.’
우라족을 무시하기는 했지만, 쿤 림은 내심 강서를 인정하고 있었다. 보통이 아니라고 말이다.
아무리 꾀를 썼다지만, 그런 꾀를 직접 벌이고 판을 짤만한 담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강서의 말에 충분히 경계를 준 것이리라.
재차 메시지를 보내며 강서의 말에 주의하라 지시한 림족 족장 <쿤 림>.
하지만 강서 일행이 그것을 말릴 방법은 없었다.
강서가 말한 덕분에 림족이 뿔로 생각을 공유하는 그들만의 오우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당장에 뿔을 잘라버리지도 못할 노릇이니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달리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고 했는가.
강서는 뿔의 오우라를 이용한 림족들 만의 오우라 네트워크가 활성화 되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러 기다린 것이었다. 쿤 림이 무슨 말을 하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기도 했고, 원래 생각이라는 것이 억지로 막으려 하면 더 나는 법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쿤 림의 말은 몇몇 림족 오크들에게는 오히려 ‘호기심’을 증대시키는 반대방식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강서는 그거면 충분했다.
모든 사람들이 듣지 않더라도, 한두 명의 림족 오크만 강서의 말을 듣고 동요한다면 그 뿔을 통해 모두가 그 메시지를 공유할 테니 말이다.
우선 쿤 림의 명령으로 모든 인접한 림족 오크들의 오우라 네트워크가 활성화 되어 있는 상태. 그거면 충분했다.
‘먹히려나.’
강서가 고안한 방법은 미리 예고한 대로 ‘포퓰리즘’이었다. 대중의 인기를 통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
강서는 <오크>들에게 먹히는 비장의 카드를 한 장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은 일종의 <밑밥>을 까는 중이었다. 좌중을 한 번 둘러본 강서는 천천히 밑밥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실이라고는 단 1%도 포함되지 않은 강서의 머릿속 스토리라인을.
“킨투다스 림조크 세이키 드라베마 코아틀(사실 저희는 같은 부족입니다.)”
강서가 덤덤히 뱉은 한마디는 강서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하던 림족 오크뿐만이 아니라, 자리한 모든 오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뭐?」
「...림족과 저 판..뭐시기 족이 같은 부족이라고?」
대부분의 오크들이 강서의 말에 의심 반 충격 반의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건 순도 105%짜리 거짓말이었으니까.
“캉차 파타투를리오 마덴드 바바세이 판-다 비부다크(지금은 갈라진 부족이지만 저희 오크반도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림 족과 저희 판다족은 같은 부족이었습니다.)”
강서의 말을 들으며 울그락 불그락한 표정을 지은 <쿤 림>이 강서를 따라 바위 위로 올라왔다.
「이 자의 말은 거짓이다! 우리 림족은 형제부족을 둔 적이 없다.」
그리고 강서의 말을 부정하며 외쳤다. 쿤 림의 말이 사실이었다. 오크가 많았던 이전 시대에서는 형제부족을 둔 부족들도 종종 있었다.
같은 핏줄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부족끼리 항상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사시에는 일종의 연합부족의 형태로 운영되는 부족사이의 관계.
하지만 림족은 한 번도 형제 부족을 둔 적이 없었다. 림족에서 유용하는 오우라 네트워크가, 다른 부족과는 연결될 수 없다는 게 큰 이유였고, 무엇보다 같은 핏줄을 공유하는 오크부족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서는 끄떡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미우나 고우나 바르니 리졸테이우스(물론 바로 말한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증거를 가져왔습니다.)”
강서는 갑자기 허공을 세 번 두드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익숙한 푸른 마력이 감돌고 그곳에서 <라오>가 튀어나왔다.
캬-오
강서는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을 두드린 강서의 주먹 위에 내려앉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캬오?
라오는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생물들이 자신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자 강서를 보며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강서일행에게는 굉장히 익숙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저 차원의 틈에서 쉬고 있던 라오가 강서의 부름에 응답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림족의 반응은 강서일행과 전혀 달랐다.
「맙소사…」
「신이시여...」
모든 림족들이 라오를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우라족과 필로스족도 놀라고 있었는데, 그들은 라오를 보고 있지는 않았고 두려워하는 림족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의 형상과...」
라오의 머리에 달려있는 뿔 때문이었다. 분명 림족 오크들은 라오를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라오의 뿔과 똑같은 형태의 뿔을 매번 봐 왔기 때문이었다.
림 부족의 신.
<물의 신: 림>이 라오와 굉장히 유사한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림족 오크들은 두려워하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림 부족의 족장인 <쿤 림>조차도 제대로 라오를 쳐다보지 못하며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물론 오크어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강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강서일행들의 눈에는 그것이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비춰졌다.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거임?? 누가 세줄 요약좀
-1.킹-판다가 허공을 두드림 2.허공에서 라오가 나옴 3.오크들: 우오아!
-ㅋㅋㅋㅋㅋㅋ귀우오아 ㅇㅈㄹ 뭐 누가 번역이라도 해줘야 알아듣지.
“그러게요...이게 무슨 상황인지.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걸까요?”
하린의 중얼거리는 말에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공진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포퓰리즘...내 생각에는 지금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네? 장사요? 갑자기 라오를 꺼내서요?”
“림족의 뿔들과 그 부족장의 뿔을 비교해 봐라.”
공진호의 말에 하린이 고개를 돌려 림족의 뿔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 둘러본 후에 하린은 공진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훨씬...깔끔하네요.”
“그렇지. 림족의 뿔은 잘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그 성능과 지위에 유리하고 부족 내 인기도 좌우된다. 인간의 얼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
확실히 공진호의 말처럼 부족장 쿤 림의 뿔은 결을 따라 잘 가다듬어져 있었고, 더 날카롭고 윤기있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라오의 뿔은...부족장보다도 훨씬 영롱하게 유지되지.”
“그럼...”
“그래, 지금 뿔을 다듬는 관리법을 알려주려 하는 것이다. 반응을 보면 그게 분명해. 저렇게 눈을 가리는 것은 뿔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빛이 난다는 의미의 리액션일거다.”
-ㅋㅋㅋㅋㅋ갑자기 장사를 한다고?-킹-판다 구두닦이 업계도 점령...
-속보) 라오 구두 잘닦아...
공진호는 말을 하며 점점 더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말은 사실과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캄챠 타트라 누스 판-다족 이베리노 가냄(이 분은 <림>신님의 후예이십니다. 지금은 저희 판-다족에서 보필하고 있죠.)”
"..."
“리막 타투스 림 오맘칼베 메양 자라투타스(뿔의 신 <림>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부족에게 그 증표로 후예를 한 명씩 맡겨주셨습니다. 아마 림족도 한 분을 모시고 있을 겁니다.)
강서의 말은 계속 되었고 강서의 말에 림족의 일원들이 점점 더 동요하고 있었다.
일반 부족원 입장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정말 까마득한 존재였다. 신을 직접 가까이 마주한 적이 있지도 않았고, 대화를 해본 일도 없었다.
당장에 부족장만하더라도 넘볼 수 없는 지위의 것이었는데, 오우라를 허락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그보다도 더욱 대단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후예를 맡겼다는 강서의 말을 할 때 즈음에 부족장인 <쿤 림>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채었다.
「...」
당장 마주했을 때에는 그 외양이 너무 같아서 놀라 자동으로 고개가 숙여졌지만, 어딘지 모를 찜찜함이 쿤림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특유의 위엄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이었던 림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했던 부족장 <쿤 림>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림>에게서 느껴졌던 일종의 <격>을 마주했던 것이었다.
그 일반적인 것과는 다른 특유의 <신격>의 느낌이 라오에게서는 느껴지지 않는 것에 의구심이 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 입 밖으로 꺼내서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쿤림은 대신 다시 한 번 <오우라 네트워크>를 활성화 시켰다.
‘섬기는 신이 같다고 해서 저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다른 생물도 <림>님을 섬길 수 있다.’
‘만약 진실로 형제부족이었다면 왜 지금까지 우리 림족을 돕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들의 머리에는 우리 ’림족의 상징‘인 ’뿔‘이 없다. 그래도 저들이 우리의 형제라 할 수 있겠는가!’
수면아래서 외치는 쿤림의 열정적인 발언은 림 족의 오크들이 조금이나마 다시 정신을 차리도록 만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은 여전했으나, 쿤림의 말에 반응하며 머리에 달린 뿔이 반짝이는 오크들이 늘어났다.
‘신’을 언급함으로써 강서의 말은 큰 동요를 불러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부족장의 영향력을 뛰어넘지는 못한 상태.
하지만 강서가 준비한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라오를 다시 돌려보낸 강서는
“케찰 포카치프 다가티 머거보즈아(또 하나의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림신을 섬기는 부족들의 전통 요리 방식이죠.)”
「전통요리…?」
강서의 요리 발언에 쿤 림이 고개를 갸웃했다.
라오를 꺼낸 부분에 대해서는 쿤림도 정말 당황했다. 실제로 자신조차 동요할 정도로. 하지만 이번에 말한 ‘전통요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쿤 림이 알기로 림족의 특별한 전통요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있다고 손 치더라도 그 요리 먹는다고 없던 부족 간의 끈끈함이 생길 리도 없었다.
“투이 킴 만세이(바로 ‘튀김’입니다.)”
강서는 마지막 말과 함께 한 쪽 구석에 있던 수혁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미리 강서가 언질해 둔 것이 있었는지, 수혁은 어디선가 거대한 항아리 하나를 가져와 강서가 있는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강서는 아공간을 열어 거대한 병을 꺼낸 뒤 그곳에 ‘의문의 액체’ 하나를 쏟아 붇기 시작했다.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델타가 코를 킁킁 거리던 중얼 거렸다.
“이건 식용유 냄새 같은데...뭘 하려는 거지?”
강서가 액체를 다 들이 붓자 항아리는 미리 처리해둔 마법장치에 의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펄펄 끓는 식용유에 강서는 언제 썰어 놓았는지 얇게 잘린 감자들을 집어 넣었다.
「무슨 수작이지...?」
쿤 림으로는 강서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요리방식은 분명해 보였지만, 쿤림으로서는 처음 보는 그 방식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코끝에서 일렁이는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에 왠지 모를 위기감을 느꼈을 뿐.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이변은, 감자를 걷어 올린 강서가 감자칩 하나를 들어 쿤림에게 내밀고, 홀린 듯 입을 벌린 쿤 림의 입 안에서 바스락-소리가 났을 때.
지구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X카칩’의 맛이, 그 행복감이 <오우라 네트워크>로 퍼져 나간 그때에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