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38화 (138/191)
  • 138화. < ep31. 오크들의 신 (2) >

    ========================

    “신이요?”

    수혁이 물었다. 강서는 여전히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이요.”

    "..."

    “오크반도에 거주하는 세 오크부족은 각자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라족과 림족 필로스족 모두 각자가 섬기는 신에게 힘을 받아 <오우라>를 사용하죠.”

    세 명의 신.

    강서가 꺼낸 그 말은 일행으로 하여금 오크반도의 난이도를 확 절감하게 했다.

    그간 한 세계에서 겪었던 신격의 존재는, 항상 하나.

    아발론의 경우 리치왕. 그리고 포고숄의 경우에는 크라켄.

    그리고 아단대륙에서도 결국 신격을 빼앗긴 채 발견되기는 했지만, 마우레니아 정도가 유일하게 신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결국 돌아보면, 그간 경험한 차원문 너머의 세계들 중 하나 이상의 신이 존재했던 세계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오크반도의 경우, 강서의 말이 사실이라면 존재하는 신은 총 셋이었다.

    단순히 수치만으로 비교하더라도 세배의 전력이 차이나는 상황.

    ‘통일…’

    그것이 더욱 강서 일행에게 와닿게 느껴진 것은, 강서일행이 신전의 메시지로부터 부여받은 퀘스트가 다름아닌 오크반도 통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세 명의 신과 부딪혀야 할지도 몰랐다.

    아니, 수혁은 분명 이번에도 부딪히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신격을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으니, 통일을 하라는 말은 신격과 싸우라는 말을 분명 조금 다르게 표현한 것 이리라.

    그때, 한참을 묵묵히 입 다물고 있던 공진호가 강서의 말에 보충설명을 더했다.

    “부족의 이름도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에서 따온 거다. 우라, 림, 필로스 모두 부족에서 섬기는 신의 이름이지.”

    공진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여러 모로 이 4번째 차원 <오크반도>가 공진호에게 꺼림칙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에서 보다 공진호가 말을 아끼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에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

    이미 앞서 들은 ‘필로스족의 염원이 오크반도의 통일’이었다는 사실 조차도 공진호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준 상태였다.

    물론 강서가 없었다면 가장 먼저 앞서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강서가 같이 있었기에, 공진호는 자연스럽게 조용한 포지션을 지키게 되었다.

    공진호가 기억하기에 전생(前生)에서는 해결하는 방식도 그 결과도 어딘가 이상하리만치 걸리는 곳이 바로 이 오크반도였다.

    ‘오크’라는 존재 자체가 생소한 것이 그 이유일 수도 있었지만, 그 때문만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꽤 있었던 것.

    어쩌면 그 이상한 점들을 강서가 풀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공진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공략단장님 말대로, 오크 부족들이 믿는 신들은 어금니신 <필로스>, 물의 신 <림>, 심장의 신 <우라>가 있습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각자의 상징성을 하나씩 가지고 있죠.”

    "..."

    "아까 물어보니, 마침 지금이 번제기간이라고 하더라고요.”

    번제(播祭).

    번제는 1년에 한 번 오크반도에서 열리는 것으로, 세 오크부족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말 그대로 구워서 제물로 바친다는 의미를 가진 번제(播祭)는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는 오크부족 사이의 투쟁심도 일단 차치해 둘 정도로 오크부족 전체가 신성히 여기는 연례의식이었다.

    강서와 워그 필로스의 대화가 길어졌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본래 다른 방법을 계획하고 있던 강서가, 워그필로스와의 대화를 거치며 지금이 번제기간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그에 따라 번제를 이용하기로 계획을 바꾼 것이었다.

    “이 번제 기간을 잘만 이용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통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아저씨 혹시...”

    가만히 듣고 있던 하린이 갑자기 입을 열며 강서를 불러왔다.

    강서는 하린이 무엇을 말하려는 지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님의 할아버지...인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하얀 귀신이라 불린 그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린이 물으려 했던 것은 ‘하얀 귀신’의 행방.

    “얼마 전에 우리와 비슷한 체형을 가진 한 남성이 이곳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전신에 하얀색을 두르고 있었고요.”

    "..."

    “처음에는 놀랐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가 오크를 처음보고 느끼는 생소한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이겠죠. 뭐 의외로 그 분은 오크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요.”

    “흠...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라...”

    강서는 워그필로스로부터 들은 그 이야기에서 하얀귀신에 대한 윤곽을 어느 정도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었다.

    외형이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니 마니, 무력이 어느정도니 하는 것들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단대륙에서도 하얀 귀신이 건드려 놓은 것은 신격을 가진 마우레니아 뿐. 다른 그 누구도 직접 건드린 존재가 없었다.

    그리고 이곳 오크반도에서도 일반 오크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니, 하얀귀신이 차원을 찢어가며 이동하는 이유에는 분명 ‘신격’이 연루되어 있으리라.

    “그분은 저희와 다르게 꽤나 큰 굉음을 동반하며 넘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넘어온 순간에 이미 근처에 각 부족의 정찰대가 도착해 있었고요.”

    "..."

    “본래 필로스족이나 림족이나, 섣불리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가장 먼저 하얀 귀신에게 달려든 것은 우라족이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그저 지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우라족이 그냥 갈 수 없다며 붙잡은 거죠.”

    “우라족...”

    “달려든 우라족 오크들 중 죽은 이는 없었지만, 모두가 빈사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린은 그 말과 함께 마우레니아에 가슴팍에 있던 상처를 떠올렸다. 따라한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괴랄한 검격.

    하린은 그것을 떠올리며 자부심이나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하린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다름 아닌 걱정.

    달라지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하얀 귀신이 하린의 할아버지가 맞고 할아버지와 다시 조우하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많이 바뀐 것은 하린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걱정은 어쩔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실력이 많이 달라진 만큼 그의 인성이나 품격은...

    많이 달라져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델타군이 달려들었을 때에도 곧바로 전력을 다했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체형이라는 것만으로도 경계대상이었다고.”

    “훗, 그럼 그렇지.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리가 없지. 아까 왕자님이랬나?”

    델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결국 그 분도, 우라족을 단번에 털어내고서 신들의 땅 <생츄어리>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생츄어리는 바로-”

    강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앞에 자욱한 수풀을 한 손으로 걷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대한 기암괴석들과 함께 지금까지 보았던 숲은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의 거대한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견 보기에도 자연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공간.

    “우리가 번제기간 내에 들어가야 하는 곳이죠.”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강서가 목적했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강서는 뒤를 돌아보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저를 믿으시나요?”

    “네?”

    "응?"

    갑작스러운 질문에 하린과 델타가 반문했다. 잠깐 생각을 하던 두 명은 마지못해 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수혁과 진호는 멈칫하며 침묵을 지켰다.

    "잠시 연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

    생츄어리.

    생츄어리는 그 어떤 존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 아무리 오크부족의 우두머리라 하는 부족장이라 하더라도 이 생츄어리에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츄어리는 부족전체가 섬기는 <신>들이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생츄어리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접근한 자는 부족에서 쫓겨나게 되고, 쫓겨나는 즉시 <오우라>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오우라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결국 부족 밖에서 힘없이 죽게 된다.

    그런데 이 생츄어리에 출입할 수 있는 날이 1년에 딱 3일 있었다.

    그것이 바로 강서가 말한 <번제기간>이었다.

    .

    .

    .

    .

    .

    「뭐? 하얀 귀신과 같은 체형을 가진 놈을 생츄어리 앞에서 발견했다고?」

    우라족의 부족장 우라우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번제>의 첫날 듣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이었기 때문.

    당황한 우라우라는 우선 대기를 명령했다. 하지만, 정찰대는 뭐가 잘못 되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뻐끔거렸다.

    「일단 두어라, 너희들이 가서는 결투가 성립될 수가 없는 상대다. 하얀 귀신이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렸다? 다른 놈이라면 더욱 강력할지도...」

    「그것이...한 명이 아니다 족장.」

    「뭣이...?!」

    하얀 귀신에게 쪽도 못써보고 당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긍지가 많이 훼손된 우라족이었다. 다시 한 번 부딪혔다가는 부족의 긍지가 땅바닥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노릇.

    부족장인 우라우라가 더더욱 이번 번제에 힘을 쏟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한번 떨어진 긍지와 기세를 다시 올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만큼 하얀귀신과 같은 존재가 다시금 나타났다고 하니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라우라의 걱정과는 다르게 그건 그리 걱정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미 사로잡았다. 꽁꽁 묶어서 막사 밖에 놓았다. 데려오나?」

    「...?」

    우라우라는 자신의 부족원이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사로잡았다고?」

    멀리서긴 했지만 우라우라는 굉음을 듣고 직접 현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하얀 귀신의 무력을 목격했다.

    그건 저항 가능한 정도의 무력이 아니었다. 오우라를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썰려나갈.

    부족장인 자신조차도 이기기는커녕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할 정도의 무력이었다. 그런데 그런 하얀 귀신과 같은 것으로 보이는 생물을 사로잡았다 하니 당장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우라우라는 계속 생각하기 보다 우선 부족원의 말대로 직접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간 곳에는.

    「우라족은 어떻게 매번 늦냐? 아주 굼뱅이나 다를 바도 없는 종족이야.」

    「...왔나.」

    림족과 필로스족의 족장들도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흰색과 검은 색이 어우러진 요상한 가면들을 쓰고 있는 한 무리의 생물들이 있었다.

    이미 밧줄들로 꽁꽁 묶여 있는 그들은 우라우라가 기억하는 하얀귀신의 체형과 굉장히 비슷했다.

    온몸이 하얗다는 점에서는 달랐지만, 몸의 크기나 생김새는 굉장히 비슷했다.

    「하얀 귀신?」

    우라우라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가면을 쓰고 있는 생물 중 하나가 말했다.

    그리고 그 생물이 꺼낸 말은 굉장히 유창한 <오크어>였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세 종족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종족. 판-다족의 오크들입니다.」

    「....다른 종족이라고?」

    「네, 저희가 이곳에 온 목적은-」

    「<번제의 참가>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