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35화 (135/191)
  • 135화. < ep30. 이계의 이계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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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와크!

    "...!"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는 강서일행의 기감을 곤두세웠다.

    정말 멀지 않은 거리였다. 당장 움직인다면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정도의 가까운 거리.

    울음소리와 함께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과 함께 하린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분명 강서일행은 인류 전체로 따지더라도 최고라 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쉽게 말해 어디 가서 꿇려본 적도 없고 기가 죽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

    하지만 방금 울음소리와 함께 하린은 자신이 ‘움찔’하며 놀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사실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움찔거림은 단순히 한 찰나의 기분나쁨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초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살갗의 엷은 떨림.

    그리고 역시 그것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었다.

    [<디버프: 오크의 함성>에 영향을 받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저하됩니다.]

    하린 뿐만이 아니었다. 울음소리를 들은 모두가 시스템으로부터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보며 공진호가 중얼거렸다.

    “...역시 오크군.”

    “그렇네요. 아무래도 들어보니까 <필로스 족>인 것 같은데.”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 능력치를 낮추어버리는 괴랄한 스킬이었지만, 공진호가 강서 두 사람의 모습은 태연했다.

    마치 당연한 일을 겪고 있다는 듯, 그 울음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려 하지도, 그리고 마주칠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걸 보다 못한 수혁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오크가 뭡니까?”

    당장 신전의 퀘스트를 보아 유사인종 오크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외의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애초에 강서와 공진호를 제외하고는 오크를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모르는 게 당연했다.

    강서는 이곳 오크반도에서 직접 살았던 생이 있었고, 공진호 같은 경우에는 전생에 4번째 차원문으로 도달한 곳이 바로 오크반도였기에 알고 있는 것이었지 평범한 다른 사람으로서는 오크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

    “인간과 대략적으로는 비슷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고 지성도 있지만...성질이나 세세한 부분은 전혀 다른 유사인종이다. 특히 다루는 힘이 굉장히 독특하고 강력하지.”

    공진호의 간략한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델타가 공진호의 말을 치고 들어왔다.

    “오호?”

    오크가 강하다는 말에 반응한 것이었다. 강서의 수련아닌 수련을 겪으며 자신을 한꺼풀 벗은 델타.

    기존의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전선에 서기 시작하며 델타의 성격은 누나인 샬롯 피미아와 같이 누구보다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DNA속에 숨어있던 싸움광의 유전자가 뒤늦게 발휘된 것이었다.

    델타는 공진호에게 그렇게 되물으며 몸을 웅크렸다.

    “잠깐, 델타...”

    “아직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먼저가면 안됩니다. 우선 같이 이동하는 편이...”

    그런 델타의 성격에 대해 알고 있던 수혁과 하린은 그를 말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타이밍이었다.

    델타는 공략단 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피미아 남매의 일원.

    성격 때문에도, 그 실력 때문에도. 리미트 해제를 활성화 시키고 일단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델타를 말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파앗-

    “강하다면 또 직접 가서 한 번 확인을 해줘야지.”

    델타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박찼다. 도약한 델타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울음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그런 델타를 보며 수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우선 따라가 보죠. 말씀하신 것처럼 강력하다면 델타군 혼자는 힘들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델타군이라면 당하지는 않을 테지만..."

    델타를 어서 뒤따라가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강서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말했다.

    “음... 글쎄요.”

    “이미 늦게 가나 서두르나 똑같을 것 같습니다만...우선 움직여보죠."

    ***

    의미심장한 강서의 말을 뒤로 한 채 움직이기 시작한 일행은 곧 델타 향한 소리의 진원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하린과 수혁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ㅗㅜㅑ...

    -이거 판다가 한 거임. 아무튼 판다임ㅇㅇ

    -저 정도면 뭐 거의 압도적이었던 것 같은데.

    -근데 뭐 이 사람들은 다른 세계 똑 떨어져 있는데 이리 걱정이 안 되냐;; 그냥 옛날 방송 갬성이네.

    델타가 머리만을 땅위에 남겨둔 채 땅에 박혀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게 오크...”

    델타를 땅에 처박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은 파란 피부에 거대한 어금니을 가지고 있었다. 이빨보다는 거의 뿔에 가까워 보이는 어금니에, 괴랄한 신체근육.

    신장은 2M가 조금 안되어 보였으나, 거대한 근육 덕분인지 존재감이 훨씬 강렬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5명이 무리를 짓고 목만 내민 델타의 뒤에 서서 강서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델타는 어딘가 굴욕적인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몸은 멀쩡해. 보다시피 이 신세긴 하지만.”

    그런 델타를 보며 수혁은 눈빛을 고쳤다.

    아무리 델타가 혼자서, 그리고 별다른 준비 없이 달려들었다지만, 델타를 저 정도로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공략단에서도 수위에 드는 델타를 상대로 제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마땅했다.

    그 말은 수혁 앞에 존재하는 5명의 <오크>라는 존재들이 이 세계의 최강자 수준이라거나, 아니면 전체적인 수준이 인류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혁이 다시 한 번 푸른 피부의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눈을 마주치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누홈 쿠게락. 글롬 투라프리.”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모두 신전의 가호에 의해 자동으로 번역되어 들렸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으니.

    “이것도 아무래도 차원문이 없는 탓인 것 같군.”

    공진호의 말이 정답이었다.

    본래 정상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면 존재했을 차원문이 일종의 가호를 덧씌우는 관문으로 작용했던 것.

    그래서 지금까지는 정상적으로 되었으나 이번의 경우 신전의 가호를 받지 못해 말이 자동번역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난감하게 됐네요. 델타군 혹시 먼저 달려들었나요?”

    “...어. 이 녀석들 확실히 뭔가 이상한 힘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눈 깜빡하니까 이상태더라고.”

    “필로스족은 온순하다. 먼저 싸움을 걸지 않으면 당장 위험하지는 않을 거다.”

    "..."

    “그보다 문제는 당장...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공진호는 델타가 걱정되지는 않았다.

    필로스 족은 오크 중에서도 나름 온순한 측에 속했고 움직이는 명분이 명확한 부족이었으니까.

    ‘직계인 것 같은니...’

    게다가 5명 중 델타를 직접 제압한 것으로 보이는 필로스족 오크의 경우 어금니가 2개 나있었다.

    하나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을 보아 그리 오래산 것은 아니었지만, 어금니가 2개 있다는 것은 필로스족의 주축을 이루는 직계 후손이라는 의미.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어느 정도 부족 내 지위가 있는 편이었고 그럴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나 할까.

    더더욱 함부로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의외의 상황이란 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의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공진호에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화가 안 통하니 방법이 없군.’

    처세술에 능한 그였으나, 애초에 대화자체가 단절된 상황을 해결할만한 능력은 그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두 번째 생이라고는 하지만 공진호도 신전의 가호없이 이계로 넘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누홈 쿠게락. 글롬 투라프리”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뱉은 오크.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서에게로 향했다.

    강서는 바로 그 시선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하린은 그 시선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 어이, 팬-더 항상 하던 걸로.

    -(대충 뭐 좀 해보라는 눈빛)

    -선 판-다 후 감상.

    “당장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너라면 가능하지 않나?”

    두 사람이 말을 꺼내고 나서야 ‘아아.’하며 고개를 끄덕인 강서는 두 사람을 지나쳐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공진호와 수혁은 ‘역시’하는 눈빛을 하고는 강서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게 강서의 이미지였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든 예상치 못한 대책을 내놓고 하는 치트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경우에도 공진호와 수혁이 같은 것을 기대한 것이다.

    강서가 가지는 위대한(?)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천천히 걸어간 강서는 대장으로 보이는 이중 어금니의 오크 앞에 섰다.

    “누홈 쿠게락. 글롬 투라.....”

    세 번째로 입을 연 오크였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읍, 크락!!”

    강서가 왼손을 들어 그 어금니를 덥썩 잡았기 때문.

    [특정 조건이 성립되어 오크의 <선술(仙術)>이 무효화됩니다.]

    강서가 어금니를 잡자 그 오크는 이전까지의 평온한 얼굴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굉장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음....?"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의문성을 뱉은 공진호.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내 강서는 잡은 왼손을 당겨 오크의 머리를 아래쪽으로 내리더니 오른 팔꿈치로 오크의 목 어림깨를 강하게 찍어 내렸다.

    "...!!!"

    “크락!!"

    강서가 내리 찍음과 동시에 오크의 동공이 풀리며 땅바닥에 누웠고,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당황하며 강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서는 그들의 어금니를 한 번 한 번 붙잡으며 한명씩 제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오크어 하는 거 아니었어?

    -그렇지...말이 안통하면 바디 랭귀지지;;

    -???: 단언컨대 최고의 언어는 바디 랭귀지입니다.

    “어…"

    하린도 그 모습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강서가 5명을 다 눕히고 나서야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강서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다섯 오크를 잠시 쳐다보더니

    “수혁님 이 오크들 좀 마법으로 묶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델타를 바닥에서 끌어올렸다. 수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강서가 쓰러트린 오크들을 마법으로 묶었다.

    생각보다 너무도 쉽게 해결된 상황. 수혁이고 공진호고 할 것 없이 강서의 갑작스런 무위에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하린이 ‘어...’하는 말 흘림만 반복하다가 이내 간신히 떠오른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오크어 할 줄 아시는 거 아니었어요?”

    하린의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외였던 부분.

    하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맥락상 당연히 강서가 오크어를 해서 오크들을 설득할 줄 알았으니까.

    “오크어 할 줄 아시는 것 아니었어요?”

    그리고 사실 하린의 예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강서는 오크어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만-

    “네, 할 줄 압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쪽이 더 빠르고 좋을 것 같아서.”

    "..."

    말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 태연자약한 목소리에 하린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아까 저 오크들이 한 말이 뭔가요? 누홈 어쩌구하던...”

    “아, 그건. 음...‘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마라. 약속하면 풀어주겠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하시면 돼요."

    하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5년이라는 시간이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강서 하나 만큼은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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