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 ep30. 이계의 이계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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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이게.”
설마 지금 자신의 눈앞에 누워있는 이 용이 고대룡 ‘마우레니아’가 맞느냐는 질문을 하려했던 수혁이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공진호의 표정이 이미 그렇다고 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강서도 가면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개를 용으로 고정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가슴이 찢어 발겨진 채 누워있는 이 용이 공략단이 상대해야할 ‘고대룡 마우레니아’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참 대단한 분이시구만.”
델타가 중얼거렸다.
익명의 누군가를 치하하는 그 말에 모두가 마음속으로 동의했다. 실제로 마우레니아의 몸에 난 상처가 대단한 수준의 것이었기 때문.
마우레니아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10M에 육박하는 엄청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마우레니아의 가슴팍에 난 상처는 그만한 몸을 반으로 가르며 우상단에서 좌하단으로 한 번에 그어진 공격.
그 상처를 제외한다면 몸에 이렇다 할 다른 생채기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단 한 번의 공격에 이만한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은 하린이었다.
“말도 안 돼...”
검을 주로 다루며 S급 헌터라 칭송을 받는 하린 조차도 이정도의 검격을 구사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리더라도 자신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략단의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하린 조차도 구사하지 못할 검격.
‘이정도의 검격이라면...’
하린은 검술에 자신이 있었다.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다. 공략단에서 활동하는 그 어떤 헌터에게도 검술에 있어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 하린이 구사하지 못할 검격이라는 것은 최소한 공략단의 인물이 한 것이 아니라는 말.
“도대체 누가......?”
도대체 누가 한 일인 것 같냐고 물으려는 순간 하린의 눈 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왜요?”
그건 다름 아닌 강서였다.
강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문득, 하린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다름 아닌 강서에 대한 기억이었다.
강서가 하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던 검격. 아그다드를 절반으로 갈라버린 검격, <오도아게르의 공간절삭>을 떠올린 것.
‘그 검격이라면...’
하린이 먼저 강서를 쳐다보자, 다른 사람들도 하린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강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
“이거 혹시...”
뭔가 이상한 사람들의 눈초리에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눈치챈 강서는 고개를 돌려 부정했다.
실제로 이건 강서가 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뇨 저 아니....”
“확실히. 사부정도가 아니라면...”
하지만 주변은 강서의 편(?)이 아니었다. 델타의 중얼거림이 하린의 생각에 확신을 한 층 더하며 사람들의 추측이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렙틸리스도 못 잡았으니 말이지...동부가 뒤 엎어졌는데도 그렇게 태연하게 있던 이유가 있었군.”
심지어 공진호도 강서 범죄자 만들기에 가세하기 시작하자, 졸지에 강서는 변명을 해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난감함에 강서가 머리를 긁적이자 불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쌤통이라며 웃음을 터트립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의 곤란함에 행복함을 느낍니다.]
강서가 난감함을 느끼는 작금의 상황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진동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
졸지에 마우레니아를 몰래 처치한 범죄자(?)가 된 강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돌연 불그를 강하게 움켜쥐고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강서가 도착한 곳은 바로 고대룡 마우레니아가 있는 방향이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강서는 딱 그 한 마디를 하고 마우레니아의 가슴팍에 불그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강서의 그 행동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비추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죽은 마우레니아를 다시 공격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인간으로 따지자면 상반신이 반으로 간신히 하반신에 붙은 채 덜렁거리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깊은 상처였다.
외관이 그 정도였으니 내부의 상태까지 생각하면 살아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의 상처, 게다가 딱히 숨을 쉬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당연히 마우레니아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
실제로 마우레니아는 가슴팍에 불그를 꽂히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서는 묵묵히 창을 꽂아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강서가 불그를 마우레니아의 가슴팍에 꽂은 것은, 동부폴리스에서 ‘최후의 연금술사’를 찔렀을 때와 같이 ‘억제’를 위한 공격이었다.
그리고 마우레니아의 가슴팍에 창을 찔러넣음과 동시에, 강서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역시.’
육안으로는 명확히 판별할 수 없는 내용의 것이었지만, 불그로 찌르고 나서 강서는 확신한 한 가지 사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이미 껍데기가 되었다며 당신에게 공격을 회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마우레니아의 신격이 이미 사라졌다는 것.
단순히 죽어가기 때문이 아니었다. 신격이 소멸되는 것은 단 두 가지의 경우였다.
신격을 잃게 되는 징크스를 충족시켰던가, 아니면 같은 신격의 무기 혹은 존재에게 공격을 당해 소멸했던가.
하지만 마우레니아는 양쪽에 다 속하지 않았다.
징크스를 충족시켰을 때처럼 존재 자체가 격이 낮아진 흔적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공격을 당한 흔적이 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소멸당한 것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그 속에 신격의 조각은 단 한 자락도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으니 불그의 말대로 껍데기만 남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
'...'
강서는 속으로 신격을 다룰 수 있는 누군가가 마우레니아의 신격을 모두 회수해갔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저씨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왜 그러시는 거에요? 뭔가 이유가...”
창을 찔렀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은 마우레니아를 보며 하린이 다가와 강서에게 물었지만 강서는 그 물음에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그를 거꾸로 쥐어들며 마우레니아의 얼굴로 향했다. 그리고는 불그의 창신 반대쪽 끝으로 마우레니아의 얼굴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퍽-
퍽-
“오우...”
인정사정없이 마우레니아의 얼굴을 내리 찍는 강서의 손길에 델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랜만에 보는 강서의 사정없는(?) 모습에 델타의 몸이 과거를 저절로 기억해낸 것이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이쪽의 타격감도 나쁘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영문을 모르는 강서의 공격이었지만, 그 목적을 모르는 입장에서 딱히 강서를 말리기도 애매한 상황. 다른 이들은 강서의 공격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강서의 청아한 타격소리가 공동을 십여 번 울릴 때 쯤.
이변이 일어났다.
"....음?"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의문성을 낸 수혁.
수혁은 고개를 조금 흔들고 눈을 비비더니 다시 한번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공진호가 물었다.
“왜 그러지?”
공진호의 물음에 수혁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눈을 한 채 한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지금 움직이지 않았나요?”
수혁이 가리킨 곳은 마우레니아의 꼬리 끄트머리였다.
미동없이 늘어져 있는 마우레니아의 꼬리.
"...음?"
그리고 그곳을 바라본 공진호도 이내 수혁과 같은 의문성을 내었다.
마우레니아의 꼬리가 강서의 타격음과 함께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
퍼억-
그러다 이전보다 더 강한 타격음이 한번 울려 퍼지더니
움찔-
마우레니아의 몸 전체가 한번 흔들렸다. 충격으로 인한 흔들림이라고 보기에는 마우레니아의 몸이 너무 거대했다 그렇다는 것은.
“이거 설마 지금...죽은 척하고 있는 거야?”
델타의 그 말과 동시에 목소리가 동공을 울렸다.
「그만, 그만!」
그건 정찰대 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낮게 공동을 울리는 마우레니아의 목소리.
다급하게 양손을 내저으며 말리는 그 목소리에 강서의 손도 거두어졌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이제 막 시작인데 여기서 그만하면 어떡하냐며 당신을 질책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어서 폭력을 재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몸을 부르르 떨어대며 더 할 것을 요구하는 불그였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하지 않는 위주의 강서였기에 다시 불그를 쥐어들지는 않았다.
「내가 니들한테 뭐라도 했냐? 무슨 미친놈이 연달아 세 명씩이나..」
***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우레니아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죽은 척을 하고 있던 것.
숨을 쉬지 않고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리 걸어 둔 생명유지마법 덕분이었다.
어찌되었든, 죽지는 않았어도 실제로 몸상태가 죽기 직전의 상태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기에, 마우레니아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정찰대에게 큰 위협을 주지는 못했다.
생명유지 마법을 유지하는 것도 간당간당할 정도의 마우레니아는 정찰대를 위협하기보다 오히려 심문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백발의 노인?”
마우레니아의 이야기에 델타가 반문했다.
「그래. 온통 흰옷을 입고 너희들과 같이 이계에서 온 자 같더군.」
마우레니아의 말에 따르면, 마우레니아의 가슴팍에 엄청난 상흔을 남긴 사람은 백발의 노인.
엄청난 무력을 가진 사내가 와서 다짜고짜 자신의 가슴팍에 상흔을 내어놓고 자신의 신격을 회수해 갔다고 이야기 했다.
델타가 반문을 한 이유는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그러한 외향의 인물이 공략단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
애초에 강서정도가 아니라면 의심이가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략단은 용의자(?) 선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저희 할아버지에요.”
하린이 확신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추측도 아니었고, 망설임도 서려있지 않았다. 그건 분명한 확신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 일거라는 확신.
흰 머리칼에 흰 한복, 그리고 검 한자루.
하린이 기억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같았다.
“어디로 갔죠?”
하린이 마우레니아에게 물었다. 간절함을 갈무리한 하린의 기세는 오히려 날카로워졌다. 주변에서 보기에 섬뜩할 정도로 날이 서 있는 목소리.
「모른다. 공간을 찢더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더군. 그 너머의 세계가 어디인지는 나도 모르지.」
하린이 못 믿겠다는 눈을 하자 마우레니아가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다 잃은 몸이다. 미친 마법쟁이가 와서 레어 가디언들을 다 죽여 놓고, 왠 검쟁이가 와서 신격을 뽑아간 상태인데 뭘 더.」
잃을 게 없으니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에는 설득력이 없었다.
"살고 싶어서 죽은 척 해놓고 똥폼은 무슨...”
델타가 마우레니아의 가슴에 비수를 찌르며 그의 언행불일치를 비꼬았다.
그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강서가 문득 마우레니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혹시 공간을 찢은 게 어딥니까?”
「내 머리가 기대고 있는 우측 부근이다. 하지만 어디를 찢었느냐는 별 소용없을 텐데...」
마우레니아가 그건 왜 묻냐는 듯한 목소리로 강서의 질문에 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강서는 마우레니아가 말한 곳으로 다가서더니 그곳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스킬 하나를 억지로 구현 시켰다.
[개연성을 70%를 소모하여 <스킬:차원추적>을 발동시키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