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ep29. 파이베브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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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최초의 현자라...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는 듯한 외관, 죽은듯한 눈동자, 힘이 풀린 눈가.
아무리 봐도 현자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강서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 공진호가 북동쪽 황야를 손가락으로 찍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맘때의 기억과 감정이 떠올랐으니까.
'...'
강서가 기억하는 파이베브스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모습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
아니나 다를까, 파이베브스는 문을 열고 들어온 강서 일행을 보면서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한 번 쳐다 본 뒤 다시 눈을 내리깔고 멍한 상태로 돌아갔다.
“내가 아는 게 맞다면 마우레니아와의 전투에서 지고 나서 저런 상태가 되었다고 하더군. 정신은 완전히 놓은 상태고 실어증에 걸린 상태다. 아마 정신에 간섭하는 마법에 당한 거겠지.”
공진호의 설명과는 조금 달랐다.
파이베브스는 정신간섭 마법을 당한 적도 없었고, 실어증에 걸리지도 않았다.
다만 파이베브스는 완전히 의지를 잃은 상태였다.
‘처음으로 마우레니아와 조우한 생애...였지.’
매번 레어 가디언들을 이기지 못하고 용궁 밖에서 죽어나가다가 수십 번의 도전 끝에 처음으로 마지막 보스인 ‘마우레니아’를 조우한 생애였다.
그 막대한 힘에 무력감을 느낀 생애.
그만큼 그때 당시의 강서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마우레니아가 가진 힘 자체가 수십번을 도전해온 강서에게 처음으로 ‘못하겠다.’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으니까.
사실 윤회의 저주로 인한 절망감과 스트레스도 절정에 달했던 생애였다.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어떻게든 붙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리자 머리의 퓨즈가 나가버린 상태이리라.
"..."
강서는 파이베브스의 모습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가죠.”
덤덤하지만 조금은 먹먹한 아우라가 강서의 몸에 맴돌았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아우라의 강서.
가면으로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린은 그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강서는 가장 먼저 오두막에서 몸을 돌렸다.
“그냥 가도 돼요?”
하린이 강서에게 물었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오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본래 강서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파이베브스와 함께 마우레니아를 처치하러 가기 위함이었다.
마우레니아를 사냥하는 그의 활약상을 보이고 싶기도 했고, 원래 마우레니아를 처치하는 것은 파이베브스였으니까.
하지만 파이베브스를 조우한 순간 그 생각은 사라졌다.
지금의 상태로는 설득도 불가능 했고,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고통스럽더라도 필요한 과정중에 하나였으니까.
지금 과거의 자신이 이겨내야 할 큰 고비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지금 가지고 있는 부담감과 막막함만 해도 엄청난 막연함일 테지만 이후에도 강서는 수백 수천 번의 회귀를 더 해야 했다.
마우레니아 만큼이나 아득해보이는 적이 수두룩빽빽하게 널린 것이 과거 자신이 나아가야할 길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끝까지 걸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순간도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럼 마우레니아의 레어로 가는 건가?”
공진호의 물음에 강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마우레니아의 레어로 향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강서일행이 곧바로 마우레니아의 레어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은 강서의 일행도 공략단에 속해 있었으니, <공략>을 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
마우레니아를 처치하는 것은 그 중간에 끼어있는 수행과제를 클리어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바로, 영역 가디언을 제압하는 것.
사실 가장 깔끔한 것은 1차 공략 시에도 시도했던 렙틸리스를 사냥하는 것이었지만, 렙틸리스는 이미 누군가가 포획해간 상태.
공략단은 다른 영역 가디언을 제압해야했다. 공진호는 그 다른영역의 가디언으로 <남야령>을 수호하는 영역가디언 <베이런>을 택했다.
렙틸리스보다 더 작은 덩치를 가졌지만 훨씬 빠른 스피드를 가진 남야령의 영역가디언 <베이런>.
난관을 예상했던 공진호였지만, 그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에헴...그럼 이제 그, 천공관을…”
“네, 여기 있습니다.”
“천공관이 다시 내손으로...”
“1년간은 아무런 조건없이 사용하셔도 돼요.”
“알겠네!”
강서가 천공관을 빌미로 도서관장을 공략단의 전력으로 들이게 되었고,
“최초의 현자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니...”
“...네 아마, 마음껏 보실 수 있을 거에요.”
“고맙네, 내가 그 연금술과 마법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비법을...혹시 조심해야 할 말이나 그런게 있나?"
“아뇨, 뭐 딱히...”
“알겠네! 고맙네 자네!”
최초의 현자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겠다는 조건으로 최후의 연금술사를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
하린은 기뻐하는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마우레니아의 레어를 쳐다보고 있는 강서를 빤히 쳐다보았다.
“...? 왜요?”
하린의 시선을 느낀 강서가 하린에게 물었다.
“천공관은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빌려주는 거고...최초의 현자에게서 뭘 배운다는 게 불가능한 상태인 것 같았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강서는 한마디를 남겼다.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가끔 보면 착한 건지 나쁜 건지 진짜 모르겠다니까요.”
어깨를 으쓱인 강서는 다시 마우레니아의 레어 <용궁>을 쳐다보았다.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마우레니아의 <용궁>은 아단대륙 중앙에 있는 단 산맥의 산자락에 위치한 거대한 동굴이었다.
‘궁’이라는 이름보다는 ‘굴’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외관.
공략단이 수행과제를 클리어하기 위해 선택한 <남야령>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육안으로 보더라도 그리 멀지않게 느껴지는 위치.
강서가 그곳을 바라보는 동안 공략단을 지휘해 제압한 <베이런>을 완전히 속박시킨 공진호가 다가 왔다.
조금은 굳어진 듯한 얼굴을 한 채 다가온 공진호는 강서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었다.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였다.
“전생과 너무 달라.”
"..."
“렙틸리스도 보아하니 서부폴리스에서 포획한 게 아니더군. 그리고 동부 폴리스가 항마괴수들로 초토화 된 것 까지. 게다가 북부와 남부도 연락해본 결과 전생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더군.”
베이런을 제압하며 공진호가 계속 생각했던 것이었다.
전생에 비해 변수가 너무나도 많아진 것.
예측할 수 있는 범주를 점점 넘어서고 있었다.
“저 안쪽에 뭐 주의 할 부분은 없나?”
아직까지는 다행히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남부와 북부 폴리스도 전생에서 공진호가 기억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달라지는 부분은 분명 있었지만, 공진호의 느낌이 맞다면, 아단대륙은 <아발론제국>과 <해안도시 포고숄>과 비교 했을 때에도 조금 더 궤를 벗어난 느낌이 있었다.
때문에 공진호는 강서에게 물었다. 이런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진호에게는 미래예지능력을 가진(?) 강서가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히 강서는 미래예지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미리 정찰대를 보내는 건 어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공진호가 제안했다.
많은 변수가 생겨난 만큼, 변수에 대해 잘 알지 못 할 경우에는 사고가 날 수 있었다.
동부폴리스의 항마괴수 건만 하더라도, 마법사클래스의 헌터가 갔다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진입하려는 것은 명실상부한 이곳 아단대륙의 최대 위험지.
마우레니아의 용궁이었다. 위험이 낭자한 곳에 무조건 밀어넣는다고 클리어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본계와 연락을 주고받는 상태.
큰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그 영향이 일파만파로 퍼지며 공략단 자체에 대한 반감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공략을 계속 진행할 수 없다.’
공략을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을 때에 찾아오는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공진호는 그것을 주의 해야했다.
지금 당장은 공략을 계속해야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설득하는데에 어려움이 있었으니까.
“좋네요.”
강서는 공진호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한 명이 손을 들며 대화에 참여했다.
“제가 갈게요.”
“...박하린.”
바로 하린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다가온 것이었다.
하린을 보고 잠시 생각하던 공진호는 승낙의 표시를 했다.
“몇 명 더 뽑아서 다녀오지.”
“그래요.”
일사천리로 진행된 정찰대의 조직.
공진호는 곧바로 베이런의 포획에 대한 일처리를 마치고 공략단을 소집했다.
그리고 정찰대가 올 때 까지 각자 공대장의 지휘아래 이곳을 벗어나지 말고, 유사시의 지휘는 4공대장이 맞는다는 지령을 내렸다.
그렇게 공략단에게 공지한 후 공진호는 두 사람을 더 데려왔다.
"싸부!”
"역시 판다님 쪽에 붙어 움직일 걸 그랬네요. 이번엔 연금술을 강탈하셨다면서요?”
바로 상아탑의 탑주인 수혁과 델타 피미아였다.
수혁은 상아탑의 일처리로 뒤늦게 3공대로 합류했고 델타는 2공대의 부공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에 보는 델타의 모습에 강서는 반가움을 표했다.
델타는 앳된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어엿한 청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건장한 그의 몸에서 풍기는 에너지는 주변사람에게도 충분히 느껴질 만한 것이었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우선 바로 출발하지. 우리의 목적은 사냥이 아니라 확인과 복귀다.”
공진호는 두 사람의 회포를 끊고 용궁을 가리켰다. 강서와 델타는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공진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찰대의 인물 중에 발목을 잡을 만한 인원은 없었다. 일단 이동하기 시작하자 마우레니아의 레어로 도착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
레어 앞에 선 5명의 정찰대 중에 가장 긴장한 것은 하린이었다.
강서같은 경우에는 이미 파이베브스 그런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딱히 볼일이 없었고, 다른 인물들에게는 이곳이 그 이전의 아발론, 포고숄과 그닥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하린은 달랐다.
이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할아버지에 대한 흔적을 알 수 있다는 것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강서는 하린에게 말해주었다.
‘마우레니아라면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마우레니아는 징크스가 있거든요. 사람을 죽이면 신격을 잃게 됩니다.’
마우레니아의 징크스에 대해서.
때문에 하린은 더욱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
그렇게 마우레니아의 용궁에 진입하려 하는 그 순간-
공진호와 강서의 얼굴이 동시에 심각해졌다.
“이게 왜...”
두 사람은 표정을 굳힘과 동시에 몸을 용궁 안쪽으로 움직였다.
수혁과, 델타, 하린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움직인 것이었다.
당황한 세 사람도 뒤늦게 두 사람을 따라 용궁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쪽에는-
“맙소사...”
가슴이 반으로 찢어 발겨진 채 누워있는 고대룡 마우레니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