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30화 (130/191)

130화. < ep29. 파이베브스(1) >

======================

"..."

“미안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어요.”

"..."

하늘에서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던 물체는 다름 아닌 공진호였다.

공략단에 있는 대부분은 그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는 <공중도약>이라는 공진호의 스킬을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강서가 그것을 처음 본다는 것.

하린은 보는 순간 그것이 공진호 인줄 알아차렸지만, 채 말리기도 전에 강서가 쳐버린 것이었다.

다행히 강서에게 가격당하기 직전 공진호가 방어스킬을 활성화 시켰고, 강서도 묘한 타격감에 손을 멈칫했기에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지만,

그 엄청난 속도가 충돌했는데 피해를 제로로 만들 수는 없는 법.

공진호는 욱신거리는 팔뚝을 연신 주무르고 있었다.

풉-

하린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본래 도리대로라면 참아내야 맞았지만, 그동안의 공진호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갭이 있었기에 웃음을 자아낸 것이다.

공진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하린을 쏘아 보았다. 그리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쉬며 강서를 보았다.

“그럴 리가. 고의가 아닐 리가 없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진호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강서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강서가 ‘미래예지능력자’라고 찰떡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

그래서 서부 폴리스에서 ‘마우레니아를 사냥하러 왔다.’고 이야기하는 건부터 해서 지금의 이 폭력(?) 건까지 강서가 고의로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험을 해보고 있는 거겠지.’

공진호 그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기에 공진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강서와 공진 호의 관계는 굉장히 애매모호한 관계였다.

강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 딱히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웠고, 솔직히 말하자면 공진호가 일방적으로 강서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도움이 될 거라고 이야기 했으나 아직 공진호는 강서에게 무언가 보여준 것이 없었다.

공진호는 강서가 자신을 골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상황을 꼬아서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

“곧 증명해주지.”

"....?"

물론 강서의 실제 의견은 전혀 단 1mg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공진호의 생각이라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대충 아는 사이인 것 같으니,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함세.”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된 듯하자 리만데로나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장 강서에게 묻고 싶은 것을 지금까지 참은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종전에 그가 겪은 상황은, 자신이 최후의 연금술사라 믿어왔던 지난 수십 년간의 신념을 산산히 부숴 놓았으니까.

“자네 마우레니아와 맞선 후 실종된 <최초의 현자>와 아는 사이인가?”

리만데로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일하게 마우레니아와 1대1로 맞섰던 인물 ‘최초의 현자’가 아니라면 연금술이 이어질 통로는 자신 이외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리만데로나의 그 추측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역시”

강서는 그 최초의 현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파이베브스.’

아단대륙에서 강서가 부여받았던 생의 이름.

파이베브스가 ‘최초의 현자’라고 불린 회차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이 아닐 텐데...’

그것아 한 번이 아니라는 것.

사실 강서가 이곳 동부폴리스를 찾아온 것은 ‘파이베브스’에 대한 흔적을 더 찾기 위해서였다.

도서관장과의 대화를 통해 꽤나 후반 회차라는 사실을 알아내었지만, 정확히 어떤 회차인지를 알지는 못했던 것.

천공관을 이용해 미리 아단대륙 전역의 기록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파이베브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파이베브스의 후반 회차라면, 마우레니아의 레어 안에 있는 레어 가디언들도 손쉽게 이길 수 있는 마법적 능력을 갖춘 때였다. 아마 천공관의 기록에서 자신을 지우거나 감추는 일은 눈감고 숨 쉬는 것보다 쉽게 할 수 있었으리라.

어쨌든,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하린을 돕는 겸해서 오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모르는 것 같은데...’

강서에게 최초의 현자에 대해 아냐고 묻는 것을 보아 동부폴리스의 패자(顯者) ‘리만데로나’조차도 파이베브스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도 파이베브스의 위치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강서의 머릿속에 하나가 스쳐갔다.

리만데로나에 의하면 지금 이 세계에서의 ‘파이베브스’는 아마 마우레니아의 레어에 직접 쳐들어간 듯했다.

물론 마우레니아를 처치한 <파이베브스>의 마지막 생애에서도 레어로 직접 쳐들어갔고, 쳐들어갔다가 살아남은 회차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부분 죽었었는데...’

마우레니아의 레어로 직접 쳐들어간 회차에서 파이베브스는 대부분 죽어나갔다.

그 말은 즉슨, 지금 이 세계가 그 파이베브스가 죽은 후의 ‘아단대륙’을 복사해온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그럴 경우 강서는 이곳에 큰 볼일이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강서가 계속해서 차원문을 다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의 과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혼자 싸워왔던 그 사투들을 사람들이 알게 될 때에 느끼는 어렴풋한 위안과 조금의 만족감.

그리고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일종의 사명감(使命感).

그것들이 아니라면, 만약 이 세계에 파이베브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린의 것이 해결 되는대로 바로 다음 차원문으로 향할 것이었다. 강서는 당장의 수행과제를 모두 클리어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아니, 내가 알 리가 있나. 나는 그가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해 왔네...오히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네만.”

"..."

'역시.'

최초의 현자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리만데로나의 말에 강서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의외의 곳에서 길이 열렸다.

“후후...최초의 현자가 존재하는 위치라면 내가 잘 알고 있지.”

바로 공진호가 입을 열었던 것. 공진호가 쓸모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강서가 그를 보며 놀란 눈을 하였다.

물론 판다가면에 가려져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진호는 작은 구멍 너머로 보이는 강서의 눈에서 그 미묘한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강서의 반응을 보고 한 층 더 자신만만한 기색을 내뿜은 공진호는 갑자기 등에서 지도를 한 장 꺼내들었다.

“이건 서부 폴리스에서 구한 아단대륙의 지도다.”

그리고 가로세로 50cm남짓한 그 지도에서 공진호는 자신 있게 한 지점을 찍어내었다.

“정확히 이곳. 이곳에 그 ‘최초의 현자’가 있다.”

처음으로 공진호가 도움이 된 순간이었다.

***

공진호가 가리킨 위치로 이동한사람은 총 세 사람이었다.

강서와, 하린과, 그리고 공진호.

라오가 <공간밟기>를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완전히 기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 번 이동하는 데에 제약이 있었기에 세 사람이 이동하는 것이 한계였고, 세 사람만이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자 설희가 가장 먼저 자처하여 자신이 남을 것을 이야기 했다.

‘어차피 저는 전력에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제가 빠질게요. 대신....이건 꼭 들고 가주세요.’

설희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촬영장비를 건네었고, 얼떨결에 하린은 예전과 같이 방송담당을 맡게 되었다.

물론 강서가 사라진 뒤에도 얼마간 방송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하린은 능숙하게 화면을 잡을 수 있었다.

캬오-

-그냥 쌩 허허벌판인 것 같은데.

-흙으로 돌아갔다는 뜻인가.

-???

라오의 <공간밟기>를 이용해 공진호가 찍은 지점으로 이동하자, 갈색의 땅이 펼쳐졌다.

공진호가 찍은 지점은 동북쪽 방향의 외곽에 있는 황무지였다.

땅은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주변에 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온통 갈색과 주황색 만이 존재하는 말 그대로 ‘죽은 땅’이었다.

두리번 거리는 하린을 보며, 공진호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건...”

공진호가 가리키는 곳을 하린이 유심히 바라보자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땅과 지평선까지 이어진 황무지 때문에 목재로 된 오두막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작은 건물이 존재했다.

강서는 조금은 굳어진 얼굴로 그 오두막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린의 어깨에 올라와 있던 라오는 강서의 어깨로 폴짝 뛰어 올라탔다.

굳어진 얼굴인 것은 하린도 마찬가지였다.

리만데로나로부터 들은 차원마법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사실 만들어낸 차원마법이 아니라네.’

‘네?’

‘연금술 연구의 일종이었지. 현자의 금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진법과 수년간 농축시킨 연금술의 기운을 모아 만들어진 제단. 나는 거기서 현자의 금을 완성할 것이라 생각했네. 하지만 튀어나온 것은 현자의 금이 아니라 사람이더군.’

‘사람이요?’

‘그래, 나만큼 나이를 먹은 노인. 우리가 불러낸 것은 아니고, 차원을 따라 오다가 강한 힘이 느껴지는 곳으로 급격히 방향을 튼 것 같았네.’

‘그는 이동이 되자마자 곧바로 마우레니아가 있는 용궁의 방향으로 달려가더군. 내 생각에는 아마 차원이동을 한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 아니었나 하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뒤로는 행방을 모르고. 최초의 현자와 같이 아무 소식도 소문도 남지 않은 거지.’

이야기를 들으며 하린은 그것이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빠르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기대감과, 걱정과, 설레임과 등등 많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오가며 하린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어쨌든, 강서에게 할아버지 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자, 강서는 그럼 ‘최초의 현자’를 만난 뒤에 바로 마우레니아의 용궁으로 향하자고 이야기 했다.

사실 하린이 이야기 하지 않았어도 강서가 그럴 생각이었다. 최초의 현자가 정말로 살아있는 것이라면 그를 보는 것만으로 강서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다만 강서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점점 복제된 이 세계가, 파이베브스의 몇 번째 회차를 모방한 것인지 감이 오고 있었기 때문.

오두막 앞에 도착한 강서는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안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강서는 그것에서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직감하며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잡았다.

공진호는 문을 열려는 강서에게 말했다.

“확실히 최초의 현자라고 불리는 인물이었다.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 같더군.”

"..."

“하지만...”

공진호의 말은 끝맺음 지어지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기 대문이었다.

문이 열린 곳에서는 회백색 죽은 눈동자의 한 노인이 멍한 눈으로 강서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