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29화 (129/191)
  • 129화. < ep28. 항마괴수 (6) >

    ======================

    본래라면 ‘장벽을 세우자’는 하린의 말이 정답이었다.

    레이드를 하던 대규모 전투를 하던, 지형은 전투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

    전투와 레이드가 공통으로 취급하는 가장 기본이 바로,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주변 환경을 조성하거나 그런 지형으로 상대를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투의 경우 돔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변 지형을 임의로 바꿀 수가 없는 상황.

    게다가 불리한 지형이기까지 했다.

    아직 힘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시점에서 최소한 불리하지는 않도록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것.

    하지만 그럼에도 리만데로나는 이전의 장벽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 하다고 했다.

    '...'

    하린의 시선이 리만데로나의 잘려나간 팔로 향했다. 언급하기로, 리만데로나는 자신의 팔을 희생해서 장벽을 세웠다고 했다.

    하지만 하린은 그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종전의 장벽이 거대한 것은 맞았다. 그 많은 항마괴수를 모두 막을 정도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의 크기와, 내구도를 가진 장벽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마법으로 한다면 그만한 건 아니어도 장벽을 올릴 수 있지 않아요? 저는 그 정도 마법 못하지만 아저씨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하린은 그에 못지않은 마법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본래 공략단도 레이드를 시도하기 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 뒤에 사냥을 하는 방식을 취해왔으니까.

    때문에 그게 팔을 희생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는지가 의문이 들었던 것.

    하지만 하린의 반문에도 리만데로나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리만데로나가 그렇게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분명 존재했다.

    “마력으로 올린다면 훨씬 더 쉬운 일이겠지만, 마력으로 만들어낸 장벽은 아마 1분도 못 버틸 거라네."

    “1분을 못 버틴다고요? 그럴 리가...”

    리만데로나의 말에 하린이 설마 그러겠냐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문득 하린의 머릿속에도 하나의 사실이 스쳐갔다.

    ‘항마괴수.’

    강서는 온몸에 마법진이 새겨진 그 가디언과 몬스터들에게 ‘항마괴수’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마법에 저항하는 능력이 단순히 방어용도가 아니었어. 저 녀석들의 몸에 부딪히는 순간 마법자체가 흩어지더군. 그리고 그렇게 마법 자체가 흩어질 경우에는 장벽을 억지로 붙잡아두고 있던 마력이 힘을 잃으니 당연히 내구도가 형편없어질 수밖에.”

    결론적으로 마력으로 끌어올려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내가 한 일은 연금술을 이용해 땅이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끌어올린 것이네. 자네 무기에 한 것처럼 말이지.”

    "..."

    “본래 언젠가 융기할 예정이었던 지층을 조금 더 빠르게 활성화 시킨 것이지. 장벽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니 가파른 각도를 유도하면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아무나 할 수...”

    말을 하던 리만데로나의 입이 순간 멈추었다.

    '....!!!'

    굉장히 익숙하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기운이 자신의 주변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돌연 눈을 크게 뜬 리만데로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단순히 기운이 느껴진다.’ 정도의 개념이 아니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너무도 강대한 기운.

    리만데로나가 쇠약한 몸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지금 다룰 수 있는 기운보다도 더욱 강대한 <연금술>의 기운.

    “이쪽에도 괜찮은 지층이 있네요. 아까보다는 작지만 좀 버틸 수 있는 하나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 기운이 자리한 곳은 당연하게도(?) 강서의 손이었다.

    [개연성을 5% 소모하여 목록 외 스킬 <연금술>을 일정 시간동안 활성화합니다.]

    [남은 개연성: 85%]

    ‘너무 남발하면 안 되니까...’

    항마괴수를 막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테지만 고민을 하고 가장 적절한 것을 찾을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강서는 당장 눈앞에서 한 번 항마괴수를 막아낸 장벽을 생각하며 리만데로나가 했었던 방법을 따라 한 번 더 장벽을 세우기로 했다.

    물론 스킬목록에 없는 <연금술>을 사용하느라 소모되는 개연성이 있기는 했지만 비교적 적은 양이었기 때문에 감수하기로 한 것.

    "..."

    강서로서는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한 것뿐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강서의 오른손에 피어오른 선명한 흰색 기운.

    그것은 리만데로나가 피어 올렸던 기운보다도 훨씬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을 강서는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 ...킹금술이 왜 거기서 나와?

    -아, 이제 보니까 같은 킹씨였네. 킹금술이랑, 킹-갓 판다랑.

    -ㅋㅋㅋㅋㅋㅋ 킹 씨 ㅇㅈㄹ 같은 성씨면 되는 거임?

    -???: 원래 다 할 줄 아는 거 아니에요?

    하린은 그런 강서의 모습을 보며 못 말리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젓고 있었고, 설희는 강서의 힘순찐(?) 연출에 흥분한 듯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가면쓰고 그러고 있으니까 처음 돌멩이 들고 있을 때 생각나네요.”

    “그런가요.”

    툭 내뱉는 하린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 강서는 이내 오른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리며 땅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궁-

    굉음을 동반한 흔들림과 함께 강서의 손 닿은 부분을 필두로 벽이 하나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도....”

    그 광경을 보며 ‘말도 안된다’는 말조차도 다 끝맺지 못한 리만데로나가 털썩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자신이 틀림없이 최후의 연금술사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리만데로나의 입장에서 그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없었던 것.

    ‘설마...’

    굉음과 함께 올라간 장벽은, 동부폴리스를 반으로 가르던 리만데로나의 장벽보다는 낮았다. 미리 말한 대로 예정된 지층의 잠재력 자체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있었던 것.

    그래도 작다고 할만한 높이는 아니었다. 꽤나 준수한 높이의 벽.

    벽은 돔의 앞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길게 뻗어있는 형태였다. 벽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우측으로는 진입할 수 없고 왼쪽으로 크게 돌아야지만 돔으로 향할 수 있었다.

    강서는 그곳에서 뛰어내리며 하린에게 말했다.

    “하린님이 막아주세요. 제가 무거워지지 않도록 전열을 흐트러트릴 게요.”

    하린은 강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헤임달 소드>를 바로 들었다.

    ***

    -와...진짜 설마설마 했는데

    -이게 되네.

    -S급이랑 규격 외랑 있으니까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오는구나..

    -아니 상식적으로 두 명이서 보스급 수십을 쳐막는다는 게 이 두 사람 말고 해당사항이 있는 거냐?

    수성전은 예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 하린의 전력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을 뿐더러 연금술의 영향으로 평소보다 더 향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것은 역시 강서였다.

    하린이 장벽 옆에서 돔으로 들어오는 항마괴수들을 막았다면, 강서가 한 일은 불그를 들고 항마괴수 사이를 종횡무진 하며 전열을 흐트러트려 놓은 것이었다.

    적재적소에 날아드는 불그의 창질에 항마괴수간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고, 자연스레 하린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줄어들었다.

    물리적인 피해는 하나도 없었다.

    전투를 시작한 직후 하린이 평소보다 가벼운 검의 무게에 어깨를 삐끗한 것 말고는 물리적인 타격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분간 진행된 일방적인 전투 끝에 항마괴수들은 모두 바닥에 드러눕게 되었다.

    설희가 참여할 틈조차 없었다.

    B급 헌터이니 만큼 어느 정도 전력이 될 수도 있었고 설희 스스로도 도움이 되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서 낄법한 틈이 전혀 보이지가 않았던 것.

    설희는 그저 촬영으로 그들의 활약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강서다 다수(多數)를 상대로 사냥하는 것은 처음 담는 장면이었으니까.

    하지만 설희 보다 더 놀란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최후의 연금술사’ 리만데로나였다.

    “자네 어떻게...아니...”

    강서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한 리만데로나는 30분이 지난 후에도 같은 눈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저냥 지레짐작으로 ‘최후’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

    최후라는 것은. 정말로 최후이기 때문에 붙인 것이었다. 아단 대륙 그 어디에도 더 이상 남아있는 ‘연금술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때문에 리만데로나는 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 이외에 연금술사가 존재한다면 딱 한사람 밖에 가능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최초의 현자.’

    사실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아단대륙의 인물 중에서는 마법과 연금술을 모두 통달한 사람이 있었다.

    서로 배척적인 회로를 가진 두 술법을 자유자제로 이용하고 심지어 마법과 연금술을 동시에 구사한다는 괴랄한 능력을 가진 그 인물.

    ‘하지만 분명...’

    리만데로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도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리만데로나는 그의 끝을 본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잠깐...얘기 좀 하지.”

    어딘가 생각이 많아보이는 표정으로 리만데로나가 강서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리고 강서는 그렇게 될 리만데로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린의 할아버지를 찾겠다는 목적도 분명 있었지만, 강서가 이 아단대륙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였던 ‘파이베브스’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서는 리만데로나의 상태를 보며 그가 파이베브스를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래 실력보다..’

    파이베브스의 손을 거치지 않은 리만데로나도 분명 ‘최후의 연금술사’라는 칭호를 얻기는 했지만 아까의 장벽을 세울 정도의 실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리만데로나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던 것.

    강서가 연금술을 사용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굳이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사장되었다 생각한 연금술을 사용하는 자신을 본다면 당연히 리만데로나는 ‘파이베브스’를 떠올릴 것이었기에.

    그렇게 리만데로나와 강서가 이야기를 하려는데 어디선가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렸다.

    "...?"

    강서는 그 갑작스럽고 이질적인 소리에 고개를 돌려 상공을 쳐다보았다. 돔의 상공에서 무언가 남색의 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파아아-

    강서는 순간 고민했다.

    ‘남은 항마괴수가...’

    항마괴수는 아니었다. 항마괴수를 모두 처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강서가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확인 사살을 시켰고, 모두 죽은 것이 확실했으니까.

    게다가 항마괴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였다. 아무리 강서가 제약을 걸었다 하더라도 한 번에 정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

    ‘그렇다면...레어 가디언의 공격일수도...’

    생물인지 아니면 공격의 투사체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대로 땅에 떨어지면 돔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강서는 즉시 불그를 들고 자리에서 도약했다.

    “아저씨 잠깐...”

    그 물체가 누구인지(?) 아는 하린이 튀어 오른 강서를 뒤늦게 말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강서는 내려오는 남색덩어리를 불그의 창신을 이용해 가격했다.

    정확한 타격으로 남색덩어리의 중앙을 가격한 강서는 그대로 창신을 장벽 쪽으로 휘둘렀다.

    강서가 세워 올린 장벽의 중앙으로 쳐낸 것.

    그리고 창신에 맞은 남색의 덩어리는 그대로 장벽을 향해 날아갔다.

    하나의 소리를 남기고.

    “크헉-”

    .

    .

    .

    .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