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 ep28. 항마괴수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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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단대륙에서 일컫는 연금술과 지구에서 말하는 연금술은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광물을 만들어 내는 건 자기들도 할 수 있다는 하린의 말에 ‘최후의 연금술사’는 조금은 어이없어 보이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허허...광물이라...”
그러면서 오른손을 펼쳐보인 ‘리만데로나’는 마력과는 또 다른 오묘한 느낌을 뿜어내었다.
투명하고 정순한 기운의 덩어리는 리만데로나의 손안에서 넘실거리더니 조금씩 모여 희뿌연 안개를 만들어 내었다.
“보아하니 ‘연금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군. 하기야 이제 연금술을 사용하는 사람도 나밖에 남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인가.”
중얼거린 리만데로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 그 돌멩이를 오른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폈다.
휘익-
그러자 한차례 바람이 일더니 기운들이 돌멩이를 에워싸기 시작했고, 점점 응축된 기운은 점점 하나의 빛깔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깔은-
"...!!"
놀랍게도 금색을 띠고 있었다.
돌멩이의 크기 자체는 본래보다 훨씬 작아졌지만, 짙은 노란색을 가진 그 광물은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라 분명 금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금을 만들어 낸 리만데로나.
그에게는 실제로 별거 아닌 일이었다.
“이 정도는 연금술이 아니라 마법으로도 할 수 있다. ‘연금술을 완성한다’는 의미는 이런 단순한 일이 아니야.”
리만데로나의 말에 하린과 설희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금을 만드는 일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리만데로나의 말에서 ‘연금술이 추구하는 본의(本意)’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
리만데로나는 눈을 돌려 판다가면을 쓴 강서를 흘끔 쳐다보더니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연금술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진짜 완성품은 바로-”
"..."
“현금이다.”
진지한 목소리로 리만데로나가 이야기 한 것은 의외로 익숙한 현대의 물건이었다.
-어...그래요 현금이 좋긴 하지...
-그치 부모님 선물도 현금이 최고긴 한데...
-네?
-그럼 연금술이 아니라 현금술이 맞는 건가.
설희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노란색과 초록색의 뭉치들을 흩어버리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강서를 쳐다보았지만, 강서는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현금... 이요?”
다시 한 번 되묻는 하린의 말에 잠시 멈칫한 강서는 그녀들이 ‘현금’이라는 단어를 오해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그 돈 말할 때 현금이 아닙니다.”
“아…"
강서의 말에서 왜인지 안도감을(?) 얻은 설희와 하린.
“여기서 말하는 현금은 <현자의 금>을 이야기합니다.”
강서의 말에 리만데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원하는 무엇이든 이루어 준다는 <현자의 금>. 그것을 만드는 것이 연금술의 추구하는 완성이다.”
리만데로나는 당당하게 이야기 했지만 그 말에는 조금의 씁쓸함이 끼어 있었다.
“뭐...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지.”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지은 리만데로나는 조금 처진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어쨌든 고맙다. 몸이 그 지경까지 가버려서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이제 연금술도 다시 사용할수 있고, 몸 상태도 꽤나 좋아졌군.”
“네 다행이네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강서였다.
“근데...아까 하시려는 말씀이 있지 않으셨나요?”
리만데로나에게 강서가 물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초췌한 몰골로 시간이 없다며 부탁을 하려던 리만데로나의 말을 기억한 것이었다.
리만데로나는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내가 아는 바가 맞다면 자네들. 그러니까 이계민들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두 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맞아요. 이번이 두 번째죠.”
하린이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좀 보았는데 실력이 상당하더군. 특히 우리 세계에서는 발달하지 않은 무투(武圖)를 가지고 있었어.”
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리만데로나의 말처럼 이곳 아단대륙에서는 무투가 발달하지는 않았다.
몸을 움직이는 것 보다는 지식을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단대륙 원주민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앉아서 연구하는 일을 주로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연금술 그리고 역천의 문양이 새겨진 어느 시점이후로 부터는 마법이 성행하며 무투가 성장할 기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이들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들은 무투를 구사할 수가 없네.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평생 마법을 공부한 사람은 넘쳐나는 수준이지만, 무투를 10년이라도 노력해본 사람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걸세.”
단순히 약세인 수준이 아니라 그쪽 방면으로는 전혀 연구나 도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실제로 쓰일 일도 많지 않았고 아직 마법도 다 개척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투를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에 모자리 천하게 까지 취급을 당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마법에 있어서는 누구나 성공을 보장받았다. 아단대륙의 모든 인물에게는 역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 무투를 선택하고 기르는 괴짜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독이 되어 이렇게 되어버렸지.”
바깥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다. 항마괴수에게 완전히 쓸려나간 동부폴리스 자체가 그 약점의 증거나 다름없었다.
“저 놈들에게는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더군. 심지어 우리는 연금술 그 자체에 집중하다보니 마법을 그다지 연구하지도 않아서...이런 실전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팔을 제물로 저 장벽하나 세우는 정도가 다였지.”
“이미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염치없지만... 부탁을 하나하려고 했던 것은 저 괴물들로부터 이 돔을 지켜내 달라는 것이었네.”
리만데로나의 말에 하린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종전에 보았던 항마괴수들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하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영역가디언인 렙틸리스의 수준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겠지만, 대신 그들은 숫자가 엄청났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일반 가디언들에게 마법저항능력까지 추가된 상태.
게다가 단순히 사냥이 아니라 무려 지키는 것이었다. 하나를 사냥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난이도였다.
“물론 그냥 도와달라는 것은 아니네.”
리만데로나가 다시 한 번 진지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내가 왜 ‘최후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지 아나?”
“당연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아단대륙에 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포기했지.”
“포기요?”
설희가 물었다.
“그래, 이 아단대륙에 무투가 발달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지. 역천의 문양이 모든 사람에게 새겨지며, 아단 대륙에 있는 모든 사람은 마법에 재능을 갖게 되었다. 마법에 한해서라면 노력을 하는 만큼 성취가 있다는 보장을 받은 거지.”
"..."
“하지만 연금술은 그런 보장이 없다. 배운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
역천의 문양이 부여하는 것은 오직 마법의 재능.
연금술에게는 전혀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역천의 문양은 연금술을 배우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역천의 문양을 가진다는 것 자체는 체내 마력회로를 더 원활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이건 오히려 연금술을 배우는 데 독이 된다. 그래서 내가 연금술을 구사하면 할수록 몸이 안 좋아졌던 것이고.”
“아."
이야기가 거기까지 진행되자 하린은 리만데로나가 하려는 이야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배우는 사람의 수가 가치를 결정 짓는 것은 아니네. 물론 마법을 연구하는 다른 폴리스 놈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연금술은 절대 마법에 밀리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현자의 금>만 완성한다면...”
리만데로나는 말을 줄였지만 자리한 모든 사람들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쨌든, 자네들에게는 역천의 문양이 없지. 그렇다는 것은 연금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네. 만약 자네들이 나를 도와준다면 내가 친히 연금술을 가르쳐 주지.”
"..."
설희와 하린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확실히. 돌멩이를 간단히 금으로 바꾼 그 기운은 이들이 경험한 적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마력>이라고 부르는 기운과는 또다른 느낌의 것.
그리고 생소한 것은 그만큼. 더 가치가 있어 보이는 법이었다.
“저는...없다고 생각하세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설희였다.
설희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본래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무대 위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욕심이 나는 것은 그 ‘연금술’이라는 것을 배우는 모습을 배우는 영상을 담아내는 것.
굳이 따지자면 설희는 하린과 강서가 거래에 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오잉?! 판다의 상태가...
-이계의 연금술 획득!!
-???: 뭐? 원래 하려던 일을 하면 연금술을 알려준다고?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강서의 성격상. 이런 상황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하린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온 본래의 목적을 생각하고 있던 것.
왔을 때 보이는 참상에 압도당하여 잠시 이야기가 샛길로 샜지만, 강서일행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이런 동부폴리스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함도, 연금술을 배우기 위함도 아니었다.
“전 좋아요. 도와드릴 수 있어요. 대신...”
바로 하린의 할아버지를 찾기 위한 것.
“얼마 전, 차원과 관련된 마법이 이곳에서 발생했다고 들었어요. 일이 해결되면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주세요.”
“...도서관장놈을 만나고 왔나보군.”
리만데로나는 하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얼마든지. 자네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면 다 들어줄 수 있네. 저 항마 괴수들은 내가 손을 쓸 수가 없어서 말이지...그럼 간단하게 어떻게 된 건지...”
리만데로나가 말을 이으려던 그때였다.
쿵- 콰과광-
엄청난 크기의 굉음이 울리며 천지가 뒤흔들렸다.
돔 전체가 진동하며 돔내부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크악-
좀 강력하다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천지가 뒤집어질 정도의 굉음과 흔들림.
강서일행은 그 흔들림 가운데 빠르게 돔 안쪽에서 바깥으로 움직였다.
굉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
벌컥-
“장벽이...”
"..."
강서는 돔의 정문을 열었다.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장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장벽은 무너져 내렸고, 거대한 잔해들을 짓밟으며 빽빽한 수의 <항마괴수>들이 돔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리만데로나가 중얼거렸다.
"...연금술이 활약을 할 시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