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 ep28. 항마괴수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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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을 10% 소모합니다.]
불그가 노인을 향해 자신을 내지르는 강서를 보고 ‘미친놈’이라 말한 것은, 강서가 그 자신의 신격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을 것이라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신격에 이르는 무기라는 것은 물리자연적 법칙을 주재하는 세계의 조각 중 하나.
어떤 한 분야에 있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도 가볍게 일으킬 수 있었다.
그 중에 불그가 가진 신격은 <억제의 신격>. 제대로만 다룬다면 찌른다하여도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제대로’다루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신격에 이른 무기를 제대로 다룬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사람을 찌르고도 죽이지 않을 정도의 처치는 사실 불그에 ‘통달했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것.
포고숄에서 <크라켄>을 봉인할 때와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때에는 불그가 전력을 다하더라도 상대 또한 신격을 가진 존재이기에 죽을 수가 없었던 것.
그보다 훨씬 허약하다고 할 수 있는 인간을 찌르고도 물리적 법칙을 배제한 체 단순히 <억제의 능력>만 활성화 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크라켄을 처치하고 나서 ‘청수(消水)’에 흩어져 있던 신격의 조각까지 끌어 모아 더욱이 온전해진 ‘불그’를 제대로 다룬 다는 것.
그건 이미 강서를 미친놈이라 단정 지은 불그 입장에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냈습니다.
-???: 이게 안 죽네;;
-ㄹㅇ;;
강서가 찌른 창에도 ‘최후의 연금술사’라 불린 인물은 죽지 않았다. 가슴 한가운데에 불그가 꽂히고도 말이다.
‘최후의 연금술사’는 꽂히는 순간 정신을 잃으며 기절하긴 했지만, 멀쩡히 숨을 쉬고 있었다.
게다가 강서가 불그를 다시 뽑았을 때에 분명히 남아 있어야 할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설희가 시청자들을 대신해 물어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기 때문.
하지만 강서는 오히려 자신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강서의 입장에서야 처음 보이는 것도 아니고 특별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딱히 특별한 건 없는데요. 크라켄 때도 그랬잖아요?”
“아니 그거랑 이거는 경우가...!!”
크라켄 때와 뭐가 다르냐며 묻는 강서의 태연한 표정에 괜히 울컥한(?) 설희가 되물으려 했지만 이내 숨을 내쉬며 항의를 포기했다.
옆에서 하린이 그녀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기 때문.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하린은 설희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고 빗겨 쓰고 있는 강서의 가면을 내려 강서의 얼굴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그냥 가면 쓰고 다니는게 나을 것 같아요. 아저씨. 그 왜 놀랐는지 모르겠다는 태연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뭔가 자괴감이 들어요.”
고개를 가로저은 하린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숨소리가 편안해졌어.’
불그가 노인의 가슴을 관통하고 나서 노인의 숨소리가 확실히 편안해진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서가 창을 꽂는 순간 노인의 몸 전체에 희미한 마력이 일어나더니 한순간 크기를 줄여 노인의 비어있는 왼쪽 어깻죽지에 자리 잡았다.
하린은 걸음을 옮겨 노인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잘려나간 어깻죽지에 자리잡은 마력의 덩어리는 투박한 세모문양을 형성하고 있었다.
정 삼각형 모양의 투박한 문양을 관찰하는 하린을 보며 강서가 입을 열었다.
“저주입니다.”
“저주요?”
강서의 말에 하린이 의아함을 나타내었다. ‘저주’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느낌과 지금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이 많이 달랐기 때문.
“저주라고 하기에는...”
하린의 주 분야가 마법은 아니었지만 마력을 다루고 느끼는 것에 한정한다면 하린도 꽤 마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몇 없는 S급 헌터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하린이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노인의 어깻죽지에 자리잡은 문양의 마력이 저주로 보이지 않았다.
저주같은 찐득거리고 악한 느낌이라기 보단 오히려 정결하고 정돈된 느낌에 가까웠기 때문.
하린의 생각을 눈치 채었는지 하린의 말줄임에 강서가 말을 붙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최후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을 가진 ‘리만데로나’라는 분에게만 저주로 적용되죠.”
“제가 한 일은 그 마력을 최대한 억제시킨 것이고요.”
강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불그를 들어보였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에게 뭐하던 놈이냐고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불그는 계속해서 강서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오직 불그만이 강서가 무엇을 한 것인지 ‘정확하게’알고 있었기 때문.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의 테크닉에 소름이 끼친다며 초면이 맞냐고 묻습니다.]
강서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불그를 바닥에 꽂아 놓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강서의 스킬목록에 있던 마법 중 하나 <리프레쉬>가 발동되어 노인의 전신을 훑었다.
"으으..."
정신을 깨우는 마법에, 온몸을 엷게 떨며 신음소리를 낸 노인.
최후의 연금술사, 리만데로나가 눈을 떴다.
정신이 돌아온 리만데로나의 눈빛은 종전에 그것과는 전혀 다른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에 자신도 놀란 것인지 판다가면을 쓰고 있는 강서와 자신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리고 이내 왼쪽 어깻죽지를 오른손이 덮었을 때에는 그의 눈이 더욱 커졌다. 가슴을 찌른 강서의 공격이 문양이 가진 힘을 억제시켰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어떻게 역천의 문양을 억제한 거지?”
리만데로나의 질문에 강서는 대답 없이 불그를 가리켰다. 불그의 성능이 그것이라는 의미였다.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습니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묻는 거다. 역천의 문양을 완전히도 아니고 적당히 억제한다는 게...”
리만데로나와 강서의 대화를 듣다못한 설희가 물어왔다. 의미를 알 듯 말 듯한 오묘한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낀 것이었다.
“그...역천의 문양이 도대체 뭔가요? 제대로 이해할 수가...”
그리고 그런 설희의 물음에 강서가 입을 열었다.
“역천이란 하늘을 거스르는 성질, 쉽게 말해 자연의 이치를 비트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비트는 힘이요?”
“네.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비틀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힘을 바로 역천(逆天)이라고 합니다.”
비트는 힘-
역천에 대한 강서의 설명을 듣고 단어를 다시 한 번 되뇌인 하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치를 비튼다...원래의 성질을 벗어난다...’
역천(逆天).
처음 접하는 단어이기에 무언가 새로운 개념을 생각했지만, 하린은 강서가 설명한 역천(逆天)이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개념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강서의 설명에서 하린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천(逆天)을 다른 말로 마법이라고도 하죠.”
“이 아단 대륙의 사람들이 모두 엄청난 마법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역천의 문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양이 마법의 재능을 부여하죠.”
강서의 설명이 끝나자 뭔가 오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설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서를 바라보고 있었고, 하린도 그러했다.
강서의 설명에서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그럼 그걸 억제 했는데 왜 몸이 좋아지는 거죠? 분명 이분이 그 최후의? 연금술사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마법의 재능을 억제하면 오히려 더 안 좋아지는 거 아닌가요...?”
하린과 설희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리만데로나의 몸에 새겨진 문양이 ‘마법적 재능’을 의미한다면, 그것이 억제되었을 때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아야 정상.
하지만 오히려 ‘리만데로나’는 강서가 그 마법적 재능을 억제 했을 때에 더 몸에 생기가 돌았다.
한마디로 말해 방금 강서가 한 일은 ‘연금술사의 마법적 재능을 억제하는 일’이었다.
듣고 있던 하린과 설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좋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하린과 설희의 물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바로 ‘최후의 연금술사’라고 칭함을 받는 ‘리만데로나’ 자신이었다.
“우선 내 몸 상태를 호전시켜준 것은 고맙다만...오히려 내가 이해할 수가 없군. 너희들이 온 이계(異界)에서는 연금술사와 마법사를 똑같이 취급하는 건가?”
.
.
.
.
.
.
"...?"
“쉽게 말해 연금술사와 마법사는 전혀 다른 개념. 즉 상극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하린과 설희과 강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연금술과 마법을 하나의 계통으로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아단대륙에서 연금술과 마법은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역천(逆天)이라는 말처럼, 마법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면,
연금술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
지구에서의 개념과는 꽤나 다른 것이었다.
“이 역천의 문양은 마법의 감응도와 숙련도를 상향시켜주는 문양이죠. 그런데 이 양쪽은 체내 마력회로가 정 반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동시에 배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리만데로나님의 역천의 문양을 억제하는 것이 신체를 호전시킨 거죠. 이 문양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연금술사에게는 독이니까요.”
연금술사와 마법사가 다르다는 강서의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나서도 하린과 설희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연금술 그 자체였다.
“금을 만들어 내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 거에요?”
하린이 물어왔다.
하린의 의문은 사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강서의 설명에 따르면 연금술과 마법은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회로의 문제로 양쪽 다 배울 수 없는.
하지만 하린은 자신에게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무조건 ‘마법’을 고를 자신이 있었다.
“좀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마법으로도 금은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꽤 어렵다 하더라도 마법 그자체와 비견될 것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
실제로 지구에서는 마법으로도 금을 만들어내는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
하린의 물음에 강서가 탄성을 뱉었다. 연금술에 대해 말하다가 자신이 빼먹은 설명을 떠올린 것이었다.
“조금 다릅니다. 아단 대륙의 연금술은 단순히 금이라는 광물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