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ep28. 항마괴수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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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폴리스 중앙의 거대한 장벽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쪽 끝자락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강서일행의 기본 스테이터스 자체가 B 이상의 투급.
때문에 강서는 이미 한 번 먼 거리를 날아와 아직 공간밟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라오를 기다리는 대신 그곳까지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항마괴수’
강서는 장벽아래서 보았던 몬스터와 가디언들을 떠올렸다.
비교적 적은 수의 가디언들의 몸에 새겨진 것은 분명 다양한 마법진들. 그것은 마법실험의 흔적이었다.
“아까 그것들...”
영상을 찍고 있는 설희가 중얼거렸다.
하린과 강서의 비해 뒤늦게 장벽에 올라가 더 일찍 내려온 그녀였지만, 짧은 시간에 담긴만큼 항마괴수의 임팩트는 더욱 컸다.
-그 예전에 말했던 항마괴수.
-ㅇㅇ 그 저세상 가로베기로 베어버린 놈이랑 똑같네.
사람들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본계인 지구에 존재했던 던전의 몬스터들.
장벽아래의 것들은 그 가운데 강서가 항마괴수라고 부른 마력저항 속성을 가진 몬스터들의 모습과 동일한 것이었다.
“분명 항마괴수라고 말씀하셨던 그 몬스터들과 같은 모습이네요.”
설희도 강서가 말했던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강서에게 다큐를 찍겠노라고 이야기한 후에 강서에 대해서 공부하며 큐튜브에 올라와 있는 ‘판다’의 클립 영상들을 모두 시청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가운데 강서가 언급했던 ‘항마괴수’에 대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것.
설희의 물음에 강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저도 장벽 위로 올라갔을 때 까지는 몰랐는데 항마괴수라면 지금의 사태도 설명이 되네요.”
“...설명이 된다고요?”
설희가 반문했다. 설희의 물음은 곧 시청자들의 궁금증 이기도 했다.
“네, 항마괴수라면 분명 아단대륙의 마법사들이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어떤 마법을 쓰더라도 그 몬스터와 가디언들에게 피해를 주진 못했을 거니까요. 저 장벽을 세우는 정도가 최선이었을 겁니다.”
"..."
“특히, 이곳 동부 폴리스에서는 연금술이 특히 발달한 곳이니까 더 저항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킹금술이라...
-마법이면 킹금술 뚝딱아닌가.
-금? 이제 와서?
익숙한 단어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도서관장이 ‘<최후의 연금술사>를 찾아가라’는 말을 했을 때에도 반응이 있었지만 강서의 입에서 직접 나온 쪽의 반응이 훨씬 강했다.
그때. 듣고만 있던 하린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도 이곳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연금술에 대해서라면 탑주님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상아탑주인 수혁을 칭하는 말이었다. 강서가 자리를 비운 동안 하린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 바로 상아탑주인 수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게 되었고, 그 가운데 나온 ‘연금술’에 관한 기억이 하린에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하린의 말.
“지구에서도 연금술을 연구했고, 실제 마탑에서 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린의 말에 설희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금은 헌터들이 판치고 몬스터들이 나타나며 수많은 변혁을 거친 현대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광물 중 하나였다.
특히 마도공학도구의 경우 금이 거의 필수 재료로 들어갔는데 그것은 현대과학의 기술과 마법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광물 중 하나가 바로 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례로 지금 착용하고 있는 ‘스마트 워치’에도 금이 들어갔으니 그 중요성이 낮아지기는커녕 올라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
때문에 하린이 말한 ‘연금술’이야기는 더 파격적이었다.
그러한 금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했을 뿐더러 하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만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연금술을 연구하여 금을 만들어 내기는 했다고 하더라고요.”
설희는 그 말에 의아함이 들었다.
하린의 말대로 금을 만들어낼 기술력이 개발되었다면, 금의 가격에 큰 변동을 주었어야 옳은 것.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금의 가격은 꾸준히 올라가기만 했을 뿐 크게 요동친 적은 없었다. 설희의 기억에 연금술이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본 적도 없었고.
‘혹시...’
그러다 문득 설희의 머릿속에 스쳐간 생각.
“그러면 혹시 조절해서 만들고 있는 건가요?”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금의 물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면 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은 당연한 일. 금을 만들 기술력이 생겼다면 그 가치를 어느 정도 유지해가며 푸는 것이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린은 설희의 추측에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설희의 추측이 틀렸기 때문이었다.
마탑에서 금을 만들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나 ‘안’ 만드는 이유는 바로 그 제작의 효율성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포기 한 거라고 했어요. 금 1kg을 만들기 위해서 들어가는 재료의 값이 만든 금의 가격과 비슷할뿐더러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정말 적지 않다고 했거든요.”
“금 1kg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마법사의 인력이 상당한데, 그 정도 가치를 들일만한 일이 아닌 거죠. 나중에 금의 가치가 많이 올라가면 모를까...”
쉽게 비유하자면, 100원 동전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기술력과 노동력의 합산이 1000원 정도라고 할까.
마탑이 성공했음에도 ‘연금술’을 해냈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런 반쪽짜리 연금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와 그럼 킹금술은 이미 있는 거네.
-역시 킹-갓탑;;
-지금이야 가성비가 안 맞는데 나중에는 또 모르지.
사람들이 마탑의 기술력에 새삼 감탄하는 가운데 덤덤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조금 다르기는 한데...’
하린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서는 사람들이 아단대륙의 <연금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설명할 부분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추가로 설명을 해주기에는 애매한 타이밍이었다.
“도착했네요.”
이제 막 목적지에 도착한 참이었으니까.
강서의 말에 하린과 설희가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강서는 나중에 더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앞을 보았다.
장벽위에서 보았던 것보다 체계적인 형태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그나마 성한 건물 몇 개를 보수한 것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꽤 크기가 있는 돔형태의 건물이 중앙에 있었고 건물이라 했던 사방의 것들은 돔을 둘러싼 기둥들이었다.
기둥들에는 모두 기괴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결정적으로 돔에 달려 있는 문형태의 물건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하린과 설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부터는 조심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이곳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초토화 되어있었고, 중앙의 장벽 너머에는 항마괴수들이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도시가 사라지고 어쩌면 세계가 망해버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신전의 가호가 서려 원주민으로부터 나름 우호적인 환대를 받는다 치더라도, 그것은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 할 때 적용되는 법.
경계가 최고조일 지금 같은 상태에서는 다가오는 모든 것이 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마법진.
하린이 상아탑과 교류하며 본 그 어떤 마법진 보다도 더 기괴하게 생긴 것이었다.
마법진의 기본인 원형조차도 보이지 않는 그 기괴한 마법진에 모든 사람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와…
-잘못 만지면 막 사라지거나 하는 거 아냐?
-본인 27살 현재 B급 마탑소속. 저런 마법진 본적 없음
-최소 7서클 마법은 되어보이는데.
마법진을 눈앞에 두고 하린이 주저하고 있는 동안.
강서는 서서히 문에 다가섰다.
강서가 아니라면 진작에 말렸을 하린이었지만, 이미 반복된 수십번의 어이없음(?)에 적응된 하린은 강서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미 ‘야바위 맞추기’라는 어이없는 스킬까지 선보인 강서가 손짓 한번에 ‘마법진 지우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
하지만 그 기괴한 마법진이 앞에 선 강서가 한 일은 의외로 일반인다운(?) 행동이었다.
똑똑-
계십니까-
평범하기 그지없는 방문의사의 표현.
"...?"
-네?
-그야 당연히 계시겠죠. 근데…
-....?
하지만 놀랍게도 그 자연스러운 강서의 행동은 문을 여는 정답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강서가 문을 두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돔의 문이 열리게 된 것.
“누구세요?”
돔의 문이 열리며 이제 막 10살이 넘은 듯한 어린 꼬마아이가 나왔다.
“이계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최후의 연금술사’라 불리는 분을 찾아왔는데...”
“아!!"
강서의 말에 꼬마가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마치 미리 이계민(異界民)에 대해서 미리 언질이라도 들은 듯 꼬마의 얼굴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안내해 드릴게요.”
***
“이계분들이래.”
“진짜? 연금술사님이 말씀하셨던 그분들?”
“근데 말씀하신 것보다 적은 것 같은데...”
돔 안쪽의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공간확장마법이 걸려있었는지, 돔크기의 수배에 달하는 넓이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꼬마는 그 사람들을 가로질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돔 내부에서 가장 깊숙한 곳. 연금술사가 있는 듯한 그곳으로 강서일행을 안내했다.
하린은 이동하며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강서에게 물었다.
“아무 효과도 없는 거면 그 바깥쪽에 있는 마법진은 왜 그려져 있는 거에요?”
“원래라면 꽤나 효과가 마법진이었을 겁니다. 그 기괴한 무늬는 아단대륙 전통 연금술의 특징이거든요. 그런데 아까는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아마 그 마법진까지 지속해서 운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겁니다.”
강서의 말이 사실이었다. 본래부터 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력을 쏟을 여유가 없어 현재는 운용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강서의 말에 이제가 이해가 간다는 듯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에요!”
꼬마가 강서일행을 안내해주고 고개를 꾸벅였다.
고맙다는 표시로 꼬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뭄은 강서는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그리고 문 안쪽에는 한쪽 팔이 잘린 채 흙의자에 기대어 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오셨는가....이계민이여.”
적어도 도서관장만큼 나이가 있어 보이는 ‘최후의 연금술사’는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몸상태였다.
언뜻 보기에도 심각한 상태. 잘려나간 어깻죽지는 응급처치가 되어있었지만 잘려나간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고,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했다.
설희는 그 모습을 보며 헙-하고 숨을 들이켰다.
강서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다짜고짜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지만 나에게 시간이 얼마 없네... 부탁이...”
힘겹게 말을 꺼내놓는 노인.
노인의 말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힘이 빠져나갔다. 그를 바라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은 강서는 갑자기 돌발행동을 했다.
말 그대로 돌발행동을 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행위.
바로 들고 있던 불그를 역수(逆手)로 쥔 것.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에게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묻습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같이 종잡을 수 없는 미친놈은 처음이라고 당황해합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아저씨...!!”
“지금...”
연금술사의 가슴팍에 불그를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