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 ep28. 항마괴수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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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폴리스로 이동한 강서와 하린, 그리고 설희.
폴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것처럼, 그리고 서부폴리스처럼 그곳은 본래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거리.
단순히 한적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건물이 부서진 잔해가 가득했고 비릿한 피냄새가 가득히 퍼져있었다.
보이는 모든 지역은 황폐화 되어 있었고 건물의 잔해에서 본래 사람이 살았던 공간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사람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파편들의 흔적에서 무언가 힘의 격돌이 있었던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전후관계를 파악할만한 단서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또 하나의 이상한 점.
“저 벽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벽면이 솟아 있었다. 자연스럽게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그 벽에 붙어 있는 건물의 잔해도 있었으니 마법이든 무엇이든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
그 기괴한 장면들에 하린은 침음성을 흘렸다.
공기 중 느껴지는 짙은 혈향에서 일이 벌어진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는 상태.
그나마 강서에게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것이 무슨 일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단서가 부족한 상태. 강서는 우선 말을 아꼈다.
확실한 것은 강서가 경험했던 회차 중 이렇게 동부폴리스 한 가운데가 황폐화 된 적은 없었다는 것.
강서는 혹시 몰라 천공관을 활성화 시켜보았다. 완벽한 파악은 불가능해도 천공관의 기록으로 대략의 이유를 짐작 할 수 있을 거란 예상에서였다.
하지만.
[최근 기록이 없습니다.]
최근 기록이 없었다.
동부 폴리스와 관련된 최근 약 1주일간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우레니아의 레어 ‘용궁’을 관찰했을 때와 같은 메시지였다.
기록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천공관이 꿰뚫을 수 없는 정도의 마력 장벽을 설비했다는 말과 같았다. 때문에 이상한 일이었다.
‘그만한 기술력이...’
본래 동부는 그만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마우레니아의 마력장벽 수준의 것을 상시로 운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동부폴리스의 전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
마법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천공관이 ‘아무런’기록을 못할 정도의 마법력은 가지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상시는 아니리라. 강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곳 동부 폴리스가 다른 곳에 비해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것은 마법의 분야 중에서도 ‘연금술’ 일정한 대가를 제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마술이었다.
때문에 목적이 명확하고, 재료만 충분하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 일시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동부폴리스.
강서는 일주일 전부터 강화된 마력의 장벽이 단순히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부폴리스에서 지금의 이 사태를 가리기 위해 일부러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흠...”
“아저씨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세요?”
하린이 강서에게 물었다. 그녀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동부의 ‘최후의 연금술사’만 찾아가면 할아버지에 대한 명확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동부폴리스로 이동한 지금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으니까.
강서가 고개를 가로젓자 하린은 아무리봐도 수상해 보이는 거대한 벽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저기 좀 올라갔다 와 볼게요.”
당장 아래에서 둘러보는 전경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때문에 하린은 벽 위에 올라가 동부전체를 내려다보려고 한 것.
“같이 가봐요.”
강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벽면에 발을 짚었지만 이내 다시 올라가려던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음?"
쿵-
벽면 너머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벽면을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
“제길...”
공진호가 첨탑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누구나 그의 표정을 보았다면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서가 마우레니아를 잡으러 왔다는 공략단의 목표를 그대로 밝히면서 사실 공략단과 폴리스간의 협상은 불가능해진 상태.
공진호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타이르든 첨탑에 있는 서부 폴리스의 원로들이 공진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물론 공진호도 처음부터 마우레니아의 사냥을 꺼내들지는 않았다.
강서가 말을 잘못한 것이라면서 공략단의 목표는 이 세계의 탐구와 더 나은 ‘아단대륙’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괜히 원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이 없는 이 아단 대륙에서 ‘권력’에 가장 익숙하고 ‘정치’에 능숙한 것이 바로 이 원로들.
마우레니아라는 이름 자체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마우레니아를 사냥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전면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완강한 태도로 공략단과의 협업을 거부했다.
그들의 마음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공진호가 1차적으로 포기하고 첨탑을 나온 것.
‘먼저 보내는 게 아니었어.’
강서가 본 미래(?)가 무엇인지 공진호는 알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그를 보낸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하며 공진호는 어딘가로 향했다.
첨탑을 나와 공진호가 향한 곳은 접객 숙소가 아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하린과 강서가 방문했던, 도서관이었다. 공진호도 도서관장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
<아티팩트:천공관>의 존재를 알고 있는 공진호 입장에서도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도서관장의 협조가 있느냐 없느냐는 서부폴리스 원로들의 의견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도서관에 도착해 어딘가 애처로운 표정의 도서관장과 간략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뭐라고?”
“없다고 했네.”
그에게 <아티팩트:천공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그게 어디로 가나?”
“그거야 자네들이 알겠지. 그 판다라는 놈이 내 천공관을 따갔는데.”
“놀리러 온 겐가?”
어딘가 삐진(?) 듯한 도서관장의 말투에서 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공진호는 도서관장에게 되물었다.
“그 사람 어디로 갔나?”
“거 이계에서 온 사람은 예의가 없나? 이 꼬박꼬박 반말은....동부 폴리스.”
혀를 끌끌 차면서도 도서관장은 공진호에게 답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공진호는 오후에 첨탑을 나오며 들었던 동부 공대의 보고를 기억해냈다.
[이쪽은 동부폴리스라고 표시된 지역까지는 도착했네. 헌데 눈 씻고 찾아봐도 진입을 할 수 없군. 계속 대기 중인데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고 말이야. 어디선가 작게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하는 것 같은데 도저히 어딘지를 감지할 수가 없군. 이상한 노릇이야.]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더.
‘렙틸리스가 서부폴리스에 없다.’
아무도 모르게 첨탑 지하에 존재하는 지하던전을 확인한 공진호는 그곳에 ‘렙틸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래라면 포획된 가디언이 한창 마법실험을 당하고 있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예외없이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서부폴리스의 지하던전에는 렙틸리스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일반 가디언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공진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의 표정을 본 도서관장은 한마디를 남기며 문을 닫았다.
“자네들, 그러니까 그 이계민(異界民)들이 오고 나서 일이 묘하게 돌아가는 모양이구만. 동부도 마력장벽이 강해지더니...쯧쯧.”
턱-
문이 닫히고 나서 공진호는 생각에 잠겼다.
‘동부의 마력장벽이 강해졌다.’
도서관장이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공진호는 그 내용에 집중했다.
동부의 마력장벽이 강해졌고, 동부 공대의 말에 따르면 폴리스에서 쿵쿵-소리가들린다고 했다. 게다가 폴리스 밖에 대기하는 이계민들을 보면서도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그 안쪽에서 뭔가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공진호는 숨을 한 번 몰아쉬며 몸을 움직였다. 당장 서부폴리스의 협조를 얻지 못하는 상태라면 이곳에 머물러서 얻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뭔가 변수가 생긴듯한 동부 사건의 원인을 알아보는 편이 과제를 클리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일단은...”
남부와 북부의 공대는 아직 폴리스에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공진호는 동부로 가겠다는 연락을 동부공대의 공대장에게 남기며 움직일 채비를 했다.
‘어디까지 틀어진 건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단정지을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건 점점 일이 공진호 자신의 손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
"맙소사..."
처음에는 튕겨져 나왔지만, 하린은 벽면에 검을 박아 넣으며 벽면의 위로 향할 수 있었다.
족히 100m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거대한 벽 위로 올라간 하린의 눈에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동부폴리스 전역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높이.
하린은 동부 폴리스 전역을 둘러보며 탄성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벽은 정확하게 동부폴리스를 북쪽과 남쪽으로 절반 가르고 있었다.
“아저씨 이게...”
그리고 하린과 강서가 올라온 지역의 반대쪽. 그러니까 벽 너머 북쪽에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건물의 잔해조차도 없었다. 파편조차도 밟혀 모래로 변한 듯 평평한 땅이 되어 있었고, 벽의 바로 아래쪽에서는 수많은 가디언과 몬스터들이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그들이 몸을 부딪히며 만들어낸 소리가 바로 종전에 하린이 들었던 쿵쿵- 소리였던 것.
벽면에 몸을 부딪히는 가디언과 몬스터들 모두 몸에 마법실험의 흔적을 새기고 있었다.
수많은 마법진이 몸에 그려져 있고 종종 쇠사슬을 몸에 감고 있었다.
엄청난 수의 무리들이 벽면 아래서 자신의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항마괴수네요.”
강서가 역시-라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강서는 몬스터들을 잠시 내려 보다가 남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도 그쪽은 사정이 나았다.
아래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그나마 멀쩡한 지역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개미보다 더 작은 크기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벽면의 역할은 이 항마괴수들을 막는 용도였던 모양이라 생각하며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폐화가된 지역을 보며 강서가 예상했던 것처럼. 동부 폴리스가 항마괴수의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항마괴수가 지하던전에서 풀려나는 일이야 강서가 경험한 회차들 중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이었지만, 동부폴리스는 마법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회차를 반복하면서도 한 번도 항마괴수에게 공격당하는 참사를 겪지는 않았던 것.
"흠..."
소리를 흘린 강서는 남쪽을 가리키며 하린에게 말했다.
“일단 가보죠. 저쪽으로 이게 어떤 상황인지는 이야기를 해봐야 알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