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ep27. 아단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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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이거 해본 적 있나?”
도서관장이 컵 하나에 주사위를 담고 천천히 흔들며 강서에게 물었다. 강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막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해본적은 있습니다.”
“후후...”
도서관장이 야바위라는 말을 꺼낸 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진심이기에 그것을 꺼낸 것이었다.
도서관장은 본래 다른 게임을 꺼내려 했으나 ‘천공관(天公觀)’이 내기물품으로 걸린 이상 설렁설렁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의외의 이야기지만 야바위는 도서관장이 자랑하는 내기종목 중에서도 단연 최고인 주특기였다.
도서관장이라는 이름은 서부폴리스에서 굉장히 유명한 칭호였다.
그 지고하신 ‘원로’님들보다도 더욱 뛰어난 마법실력.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장서량.
심지어 한 개인의 서고가 ‘도서관’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이니 서부폴리스에서는 ‘도서관장’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도서관장과 관련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절대, 도서관장과 내기를 하지 마라. 특히 야바위만큼은.’
소문의 진원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서부폴리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풍문이었다.
도서관장이 야바위를 꺼내놓는 순간. 그 내기는 이미 이길 수 없게 구성된 판이라고.
그리고 그 말은-
타다닥-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공식적으로 도서관장은 야바위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었으니까.
도서관장이 테이블 위에 주사위를 떨어뜨렸다.
“룰은 간단하네. 내가 여기 있는 3개의 컵들을 엎어놓고 그 중 한 곳 안에 주사위를 넣어 놓을 거라네.”
"..."
“그리고 나서 잠시 동안 나는 컵을 섞을 것이고, 자네는 내가 컵을 섞는 장면을 잘 보고 있다가, 주사위가 어디에 있는지 맞추면 된다네.”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의 표시가 떨어지자 도서관장은 컵들을 엎어놓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뭐 할수만 있다면 여러 기술을 사용해도 된다네, 다만 자네가 선택한 컵 안에 주사위가 들어있는 모습을 확인시켜 준다면 자네의 승리지.”
자력의 푸른 잔상이 도서관장의 몸을 감싸고 도서관장은 눈을 감았다 뜨며 강서일행에게 말했다.
“신체강화마법을 좀 걸었네. 이 나이 먹으면 이거 없이는 못하겠더라고.”
중얼거린 도서관장이 테이블 앞에 바로 서자, 은은한 푸른빛이 테이블을 한번 감싸며 허공에 글씨를 나타내었다.
[승부를 시작합니다.]
"..."
“...시작하지.”
도서관장은 컵을 들어 가운데에 주사위가 들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컵들을 섞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리 빠른 속도가 아니었다. 육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로운 속도. 하지만 10여초가 지나고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점점 빨라지는 손놀림. 강서의 얼굴에 긴장의 모습은 없었지만 강서를 제외한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타다닥-
그나마 주사위 구르는 소리가 들렸기에 눈이 쫓아가고 있었으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쫓아가기가 버거워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각이 도움을 주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기잉-
도서관장의 양손은 분명 컵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기묘한 소리가 들리며 마력의 잔상이 테이블 위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나서-
'...!'
‘소리가...’
탁탁-거리며 테이블을 두드리던 주사위의 소리가 사라졌다. 도서관장이 자신의 주변 일정범위 자체에 침묵 마법을 걸어버린 것이었다.
마법진을 그리지도 않았고,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지만, 지고한 경지에 오른 도서관장의 실력은 준비없는 마법시전을 가능케 했다.
컵이 움직이는 속도는 여전히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컵을 움직이는 도서관장의 손이 허공에 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흐릿했던 잔상은 점점 더 명확하게 자신의 상(狀)을 가지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에 이르자 잔상들은 뚜렷함을 넘어 분명해졌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이 잔상(殘像)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로.
그 시점에 이르자 설희와 하린의 눈에 보이는 컵의 개수는 더 이상 3개가 아니었다. 명확한 4개가 되었고 명확한 5개가 되었다.
‘이게 무슨...’
하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린이 보고 있는 것은 잔상과 본체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극한의 속도.
날고 긴다는 공략단의 일원들 중에서도 저 정도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물론 손만을 움직이는 것이 온 몸으로 잔상을 남기는 것 보다는 쉬운 일이겠지만, 저정도로 뚜렷한 잔상을 하린은 본적이 없었다.
게다가-
‘깔끔해.’
잔상 특유의 지저분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노인네(?)가 망설임 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으며 그 경로가 정해져 있다는 뜻.
하지만 패턴의 반복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노인은 단순히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허초(虛招) 를 섞고 있었다.
컵을 드는 듯하다가 손만을 들어올리기도 했고,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컵을 움직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리기도 했다.
아마 하린은 주변의 풍경이 도서관이 아니었고, 이곳이 마법대륙의 서부폴리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저 노인이 마법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단순한 손놀림이라고 폄하하기에는 너무 높은 경지의 움직임이었다.
-와 저게 마법사냐;;
-야바위의 마법사자너;;
-지금이라도 들고 튀자.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소설희의 촬영장비를 통해 중계되는 화면에서만 시청자들의 댓글이 난무했다.
잔상이 하나씩 늘어 더 이상 시선으로 그 컵을 쫓아가겠다는 의지를 잃을 때쯤.
샤악-
뭔가 얇은 한 꺼풀이 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도서관장의 손이 멈추었다. 도서관장은 컵에서 손을 때고 테이블을 두 번 두드렸다.
똑똑-
자신의 차례도 끝났고, 침묵마법도 풀렸다는 의미의 신호였다.
가볍게 울리는 탁음에 설희와 하린이 정신을 차리고 도서관장을 보았다. 도서관장의 입가에는 승리의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맞출 수 있을 리가...’
설희는 도서관장이 낸 노크소리에 자신이 완전히 당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 엄청난 속도에 의지를 잃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마치 현혹되듯 잔상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주사위가 어디 있느냐를 맞추겠다는 생각자체가 잠시 사라졌었다. 말 그대로 정신이 팔린 것.
하린과 설희는 자연스럽게 강서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옳으리라.
도서관장과 하린 그리고 설희까지.
세 사람의 시선이 강서에게 모였다.
그리고 강서의 컵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도서관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황한 그 기색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기술이니 뭐니 해도 맞추기 전까지의 야바위는 결국 심리의 싸움.
시선 한 번에 당황한 기색을 보일 정도의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도서관장이라는 칭호도 얻지 못했으리라.
다만 강서가 정말로 그 움직임을 따라왔다는 점에서 속으로 놀랄 뿐이었다.
‘...이걸 따라오다니.’
도서관장은 강서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투루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해 강서를 이기려 했다.
걸린 물건도 걸린 물건이고 승부의 제단이 표현한 ‘???’라는 표현에서 강서가 내건 창이 <아티팩트:승부의 제단>보다 높은 격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한 도서관장의 야바위 스킬은 보통 사람이 따라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강서는 태연한 얼굴로 주사위가 들어있는 컵을 맞췄다.
고민도 없는 시선. 강서는 주변의 다른 컵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오직 오른쪽에 있는 컵으로 만 시선을 건네고 있었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선택.
명확한 선택이었다. 주저함 없이 곧은 눈.
이건 분명 도서관장의 허초(虛招)들을 모두 꿰뚫고 진짜 움직임을 파악한 것이리라.
하지만.
‘어쩔 수 없나.’
그것이 곧 도서관장의 패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택을 했다면 그 컵을 열어서 직접 나에게 확인시켜주면 된다네.”
풍문에 떠도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도서관장과의 야바위 내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 그리고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도서관장의 ‘섞는 실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의 구조상 단순히 찍더라도 30퍼센트 정도는 맞춰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도서관장이 했던 야바위 경기에서 주사위를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승률 100%. 그건 단순히 섞는 실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도서관장은 그 누구도 감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고 작은 마력을 일으켰다.
마력을 일으켰다기보다는 미리 준비되어있던 마력을 풀었다는 표현이 더 상상하기 쉬우리라.
그리고 그것은 주사위를 ‘옮기기’위해 도서관장이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소범위 무흔(無癌) 텔레포트 마법’
도서관장이 개발해 낸 그만의 고유마법이었다. 일정한 작은 범위의 소규모 공간이동 마법을 아무런 마력의 흔적 없이 일으키는 것.
실제로 도서관장이 일으킨 마법에 <아티팩트: 승부의 제단>이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고, 마법을 시전한 도서관장조차도 마법이 일어났는지 확인이 불가능 했다.
아무런 소음도, 흔적도 남기지 않도록 고안된 마법이었기 때문.
도서관장이 가진 마법 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의 마법 중 하나였다.
이 ‘소범위 무흔 텔레포트 마법’ 덕분에 도서관장이 아직까지 공식적인 ‘야바위 무패 기록’을 소유 할 수 있었고, 내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
도서관장은 강서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미안하네만 젊은이. 들키지 않으면 반칙이 아니지.’
***
“...아저씨 맞출 수 있겠어요?”
하린이 우려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무를 수는 없었고, 졌을 때 손해를 보는 것은 하린이 아니라 불그를 내건 강서였다.
때문에 강서에게 짐만 지운 하린의 입장에서는 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도서관장의 섞는 스킬을 따라가지 못한 하린은 강서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맞출 수 있겠냐는 하린의 물음에 어깨를 한 번 으쓱인 강서는 자신의 스킬 창을 열었다.
강서가 도서관장의 내기에 응한 것은 사실 도박성의 선택이 아니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봤었던 것 같은데...’
[보유스킬 1,093,701개의 스킬 中 143,003개의 스킬이 해방됩니다.]
금제해제와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와 같이, 열어본 강서의 스킬목록에는 수많은 스킬들이 있었다.
강서는 스킬목록을 보며 ‘어떤 스킬’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초를 훑어보던 강서에게 도서관장이 말을 걸어왔다.
“어서 고르게 승부의 제단은 시간을 그렇게 많이 주지 않아.”
강서를 재촉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강서는 시간을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강서가 20여 초간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은 오직 하나의 스킬을 찾기 위함.
"아, 네네 찾았네요. 스킬."
“스킬이요?”
스킬이라는 말에 설희가 반문했다. 이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유용한 스킬이 없었기 때문.
이미 섞는 것도 끝났는데 야바위를 맞추는데 도움이 되는 스킬이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강서가 찾은 스킬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스킬이었다.
왜냐하면 그 스킬은-
[<스킬:야바위 맞추기>를 활성화 하시겠습니까?]
“네, 야바위 맞추기라고...”
이 상황에 특화된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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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