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 ep27. 아단 (7) >
====================
“아저씨..”
하린이 불그를 내미는 강서를 돌아보며 소리를 흘렸다.
나름 감동적인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하린의 목소리에 서린 것은 그게 아니었다.
물론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덩어리는 ‘이해할 수 없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마 하린은 이해가 가지 않았으리라. 포고숄에서 불그를 보지못한 하린은 불그가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했다.
도서관장이라는 작자가 갑자기 그것을 왜 탐내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강서는 또 왜 고민없이 불그를 내미는 지조차도 하나도 알지 못했다.
불그가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서관장은 탐내고 강서는 가볍게 내밀고 있으니 이 상황을 말려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상황.
걸린 것이 할아버지에 대한 흔적이니 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린의 고민은 쓸데 없는 일이었다. 상황의 진행은 이미 하린의 손아귀 안에 있지 않았으니까.
작금의 상황이 하린에게 이해가 가든, 가지 않든지 간에 강서가 불그를 두 손으로 든 시점부터 이미 상황은 하린의 생각 밖에서 흘러 가고 있었다.
“후후후...”
도서관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테이블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도서관장의 손앞에 푸른빛 마력의 흔(癌)이 생기더니. 테이블 위에 쌓여 있던 많은 책들이 순식간에 허공에 떠오르며 책장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수백 권의 책이 단번에 떠오르며 제자리를 찾아가자 안 그래도 거대했던 테이블이 더 거대해 보였다.
빠르게 흘러가는 상황의 흐름 속에서 정신을 차린 소설희가 강서에게 물었다.
“그거 되게 귀한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막 줘도 되는 거에요?”
불그를 가리켜 한 말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니 강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당연히 불그가 굉장히 귀한 물건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포고숄을 공포에 빠트렸던 그 ‘크라켄’을 잡아낸 무기였다.
물론 굳이 분류하자면 크라켄을 마무리 지은 것은 ‘헤타이로’였지만, 엄연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불그’.
그만한 무기를 고민도 없이 내밀어 버리니 하린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강서의 지금 행태는 이해가 불가능 했다.
-저걸 그냥 넘겨버린다고?
-한 번 던지게 해주고 정보 받아야 좀 비슷할 것 같은데.
-크라켄: ???
-이건 불그 입장도 들어봐야한다.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실시간으로 모든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에 강서와 하린이 ‘지구의 흔적’이라는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은 시청자들도 알고 있었다.
도서관장이 말한 ‘이계흔’에 대한 기록이 하린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불그’를 가볍게 내민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보 하나와 ‘신기(神器)’를 바꾼다는 말이었으니까.
“좋아 그럼 그 물건을 여기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자네 손으로 직접.”
도서관장이 화색을 지으며 테이블을 가리켰다. 강서는 도서관장의 말대로 순순히 불그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지금 뭐하는 거냐며 당신에게 묻습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지금 자신을 버리는 거냐며 재차 묻습니다.]
불그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강서.
상황을 보고 있는 사람들 모두 불그를 아까워했으나 강서의 얼굴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이 나타나지 않았다.
-뭐, 그만큼 중요할 수도 있지.
-좀, 솔직히 나는 이해가 안가기는 한데.
고개를 끄덕이며 개인에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강서의 선택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이었지, 누구도 그걸 ‘틀린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기면 되지.’
강서는 불그를 순순히 준 것이 아니었다. 정보가 불그만큼 가치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정보인지도 아직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강서는 이길 자신이 있었을 뿐이었다.
도서관장과의 내기에.
“좋아,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 후후후.”
도서관장이 허공에서 내려와 테이블 위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테이블이 갑자기 푸른빛을 내며 강서일행의 눈앞에 메시지를 떠올렸다.
[<아티팩트:승부의 제단>이 활성화 됩니다.]
그 빛을 보며 도서관장이 묘하게 흥분한 기색을 뿜어내었다.
“크으...내가 이 맛에 내기를 못 끊지.”
도서관장의 표정과 갑작스럽게 빛을 내는 테이블을 보며 하린과 설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서관장은 입가에 지닌 미소를 유지한 채 설명해주었다.
“이건 그냥 테이블이 아니라 ‘승부의 제단’이라는 아티팩트다. 양쪽이 합의 하에 공정한 내기를 할 수 있는 아티팩트지. 방금 테이블을 치우며 날아간 책들은 모두 그 이전에 나와 내기를 했던 사람의 것이라네.”
“내기요?”
“그래, 이번의 경우에는 ‘이계흔’에 대한 천공관(天公觀)의 기록과 그 무기를 건 내기가 되겠지.”
승부의 제단이라고 불린 테이블이 다시 한 번 푸른빛을 내뿜으며 불그를 감쌌다.
내기.
금품을 거는 등 일정한 약속 아래에서 승부를 다투는 행위.
도서관장의 입에서 나온 내기는 분명 그 내기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모두가 갑작스러운 내기 발언에 당황해 하고 있었지만,
강서는 그것을 어느 정도 짐작했는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도서관장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도서관장님이 가지고 계신 책들의 장서량은 사실 일반사람이 평생을 모으더라도 모을 수 없는 양입니다. 이곳 서부 폴리스에서 양쪽이 합의 하지 않는 한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
“불공정한 거래를 했다고 소문이 나는 측은 사회적으로 더 이상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단 낙인이 찍히면 서부폴리스 전역에 그 이름이 퍼지게 되죠.”
“잘 아는 군 젊은이.”
어깨를 으쓱인 강서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양쪽의 합의만 있다면 어떤 거래든 성립한다는 말이죠.”
“크헐헐, 맞네 맞아. 이 젊은이 말대로 ‘내기’도 거래의 일종이지. 이쪽 서부놈들이 점잖은 걸 너무 좋아해서 나 찾아오는 놈들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 빠진 놈들은 종종 찾아오게 된다네.”
도서관장은 마음에 든다는 듯 크게 한번 웃음 터트리며 테이블에 놓인 불그를 바라보았다.
“저 승부의 제단이 가진 내기방식은 간단하네. 이긴 측이 제물 두 가지를 모두 가져가는 거지. 진측은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거고.”
"....!"
“쉽게 말해 내가 이기면 창도 정보도 내 것. 자네들이 이긴다면 창도 정보도 자네들 것이 되는 거지.”
샤약-
<아티팩트: 승부의 제단> 위에 푸른 마력이 형태를 갖추더니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승부의 제물 간의 가치가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내기를 계속하시겠습니까?]
신기 불그와 도서관장이 제공하려는 정보의 가치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일종의 경고문이었다.
불공평한데 계속 하겠냐는 한 번의 확인 절차. 여기서 승낙한다면 꼼짝없이 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좋은데. 뭐, 원하는 게 더 있는가?”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선심 쓰듯 도서관장이 던진 말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아직 웃음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아티팩트: 승부의 제단>이 떠올린 메시지를 보며 도서관장은 오히려 더 활짝 웃었다. 그 메시지가 오히려 ‘불그’의 가치를 더욱 증명해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도서관장은 불그의 가치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강서가 갈무리해둔 신격의 기운과 ‘중첩 침묵 마법’덕분에 일견(一見)으로 그 신격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 물건이 가진 외양과 아우라가 심상치 않았고, 그와 관련된 ‘탐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천공관을 통한 ‘이계흔’에 대한 기록도 분명 가벼운 가치는 아닐 터. 그것과 무려 ‘현저한’ 차이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내기로 걸린 창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문에 도서관장은 거리낌 없이 더 원하는 게 있냐며 강서에게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강서의 대답은 그런 도서관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게 만들었다.
“음...천공관은 어떤가요?”
"....!!"
<아티팩트:천공관> 그 자체를 걸고 내기를 하자는 말이었다.
'....'
천공관은 도서관장이 가진 가장 큰 무기.
서부폴리스의 원로들이 도서관장을 마음에 안 들어 하면서도 그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천공관이었다.
서부폴리스의 정보력이자 도서관장의 상징에 가까운 물건.
도서관장은 깊은 숨을 한번 내쉬면서 강서를 노려보았다.
“후후후...”
그러더니 이내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 없었지만 강서의 도발(?)이 도서관장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킨 것.
“크크크크, 이런 큰 판에서 빼면 내가 <도서관장>이라는 타이틀도 따지 못했겠지. 심장 떨려하며 하는 제대로 된 승부는 오랜만이군. 대신 종목은 내가 결정해도 되겠나?”
“좋습니다.”
“자네 마음에 들어. 승부사 기질이 있구만.”
도서관장은 마법방석에 앉은 채로 도서관의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장을 너머 더욱 올라가서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불투명한 정육면체모양 상자가 하나 나왔다. 도서관장은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고 내려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테이블이 다시 한 번 푸른빛을 내었다.
“불만은 남지 않을 거네. 내가 무조건 이긴다던가 하는 사기를 치는 건 이 ‘승부의 제단’에서 모두 판별해 줄 테니까. 모든 건 순전히 운과 실력대로.”
그때 쉴 새 없이 흘러가는 흐름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하린이 강서를 말리려 했지만-
“잠깐 이거 아저씨 진짜 할 거에요...? 저 때문에 그런 거면 안 그래도 되요. 굳이 그 천공관이라는 거 없어도 직접 발로 뛰어서 찾으면…"
그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내기종목 결정.]
상자를 내려놓으며 뿜어져 나온 제단의 푸른 마력이 짤막한 문장 하나를 형성했기 때문.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자신을 정말로 버리는 거냐며 울먹입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름판 판돈으로 전락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합니다.]
이미 내기는 시작된 참이었다.
“종목은 아까 결정한다고 하셨죠?”
“그렇지.”
종목에 대해 묻는 강서에게 도서관장은 손가락을 튕기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굉장히 익숙한 물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컵 몇 개와 작은 주사위 하나.
그리고 <내기>라는 타이틀.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다.
“야바위라고 혹시 해본 적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