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 ep27. 아단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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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미친놈아!!!”
강서를 일갈하며 문을 열고 나온 인사는 역시 ‘도서관장’이었다. 강서가 말했던 도서관의 주인.
“이눔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무기를 들고 와서 행패야!!”
문을 정상적으로 두드릴 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심상치 않은 무기를 들자 바로 튀어나오는 도서관장의 행태.
강서가 ‘서부폴리스 최고의 지식인이니’, ‘서부폴리스 최고의 장서량이니’라고 설명하며 열심히 쌓아놓았던 기대감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
"..."
설희와 하린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도서관장을 쳐다보았다. 마치 ‘진짜 이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듯한 표정.
확실히 도서관장의 외관은 여러모로 대단했다.
검은 티라고는 한 자락도 보이지 않게 새어버린 머리칼. 키만큼 자라 늘어진 수염. 좀 낡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고풍스러운 로브.
그가 겪은 세월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한 눈에 알 수 있으리라.
-ㅋㅋㅋㅋㅋ바로 튀어나오죠?
-잡았죠?
-ㅋㅋㅋㅋㅋ판다식 벨튀 수준ㅋㅋ
-벨튀. ‘벨누를 때 튀어나와라.’의 줄임말.
-zzzzzz
하지만 세월에 걸맞은 기품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두드릴 때는 안 나오고 무기를 들자 다급하게 뛰쳐나오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지저분한 옹졸함(?)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
심지어 문을 열며 나온 도서관장의 어투에는 다급함까지 서려 있었기에 지식인으로서의 여유나 기품같은 것은 문이 열리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안 던지고 뭐하냐며 당신을 재촉합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어차피 죽지는 않을 거라며 괜찮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판다라고 합니다.”
강서가 재촉하는 불그를 오른쪽 땅에 꽂아 놓고 도서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문을 부수려 했던 강서가 갑작스럽게 인사를 건네오자,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인 ‘도서관장’이었지만 이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거 사람이 좀 문을 늦게 열어줄 수도 있지. 젊은 사람이라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원래 이 나이쯤 되면 문 앞까지가 천리길이야.”
변명을 하며 인사를 받아주는 도서관장.
‘음?’
하지만 하린은 그 모습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분명 인사를 한 것은 강서였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도서관장의 눈이 강서가 아니라 ‘불그’로 향해있었기 때문.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서는 고개를 들고 도서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대화를 좀 나눌 수 있을까요?”
***
“우와...”
하린이 낸 소리였다. 강서가 말한 <도서관>의 내부로 들어오면서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서부 폴리스의 접객숙소에서 봤던 공간확장 마법도 하린이 본 적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생물이 들어가지 못하는 ‘아공간’의 경우에는 그래도 본계(지구)에서도 많이 발전된 형태였지만, 생물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내부에서 확장시키는 마법은 <서부 폴리스>의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야 말로 마법대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수준.
하지만 도서관장의 공간 확장은 그보다 더했다.
아니 공간의 비율측면에서는 거의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크기였다.
서부폴리스 최대의 장서량이라는 강서의 설명이 사실이었다.
도서관 안에 있는 책장하나하나가 웬만한 낮은 건물 한 채와 비슷한 높이로 뻗어 있었고, 그런 책장들이 족히 십 수개는 되었다.
그만한 책장들이 모두 들어가고도 여유있을 정도의 크기.
“에헴.”
하린의 감탄소리에 도서관장이 만족스러운 헛기침을 내었다.
“본적 없는 수준일 게다. 장담하건데 서부폴리스의 원로 나부랭이들도 이정도의 공간확장 마법은 못해. <중첩>과 <지속>의 속성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것은 이곳 서부폴리스에서 나뿐이다.”
자기의 마법실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소개였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데 뭐라 대꾸할 수도 없는 노릇.
하린은 주변을 둘러보며 도서관의 크기에 순수이 감탄하기로 했다.
...그 도서관의 주인이 눈앞에 노인네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최대한 배제시키고 말이다.
-와 근데 스케일이 확실히 다르기는 하다. 이정도면 거의 뭐... 책장 하나가 도서관 급인데.
-내가 평생 읽은 단어 수보다 많을 듯.
ㄴㅋㅋㅋㅋㅋㅋㅋ
ㄴㅆㅇㅈ
ㄴ글자수로 따져도 못 비빌듯ㅋㅋㅋㅋ
책장 사이를 지나 도서관장이 강서일행을 안내한 곳은 널찍한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었다.
평범한 테이블의 수배에 달하는 넓이.
도서관장이 책을 읽다가 튀어나온 것인지 그곳에는 이미 수백 권의 책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차 대접이나 손님맞이 같은 것은 없었다.
강서일행이 들어와 있는 곳이 <서부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이곳은 누구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오직 도서관장 자신을 위한 1인 도서관. 본래라면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 날고 긴다는 서부폴리스의 원로들조차도 이곳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또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으니까.
“그래 물어볼 것이 뭔가?”
테이블근처로 간 도서관장은 허공에 떠있는 마법방석에 올라앉더니 강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고 이내 강서가 던진 대답에 내쉬던 숨을 멈추었다.
“천공관(天公觀)을 통해 관찰하신 내용 중 ‘이계흔’에 대한 기록이 있는지 여쭤보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
흰색 눈썹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놀란 사람은 도서관장뿐이 아니었다.
포인트는 조금 달랐지만 하린도 강서의 말에 그를 쳐다보았다.
‘이계흔...’
이계의 흔적. 그것은 필히 상태창의 메시지가 보여주었던 ‘지구의 흔적’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럼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강서가 폴리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도서관>을 찾아온 이유는 하린의 할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지구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던 것.
물론 온전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역시...우연이 아니었구만.”
도서관장이 조금은 진지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공관이 뭔데?
-나는 모름.
-나도 모름. 근데 일단 분위기상 판-다 해야할 것 같은데.
-니네가 아는 게 있긴 하냐?
ㄴㅆㅇㅈㅋㅋㅋㅋ
“그 천공관이라는 게 뭔데 그렇게 놀라는 거에요?”
소설희가 댓글의 흐름을 보고 눈치 있게 질문했다. 당연히 그녀 자신이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소설희가 물은 대상은 강서였지만, 대답은 강서가 아니라 도서관장이 했다.
강서의 담담한 어투에서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서가 그 이름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
“하늘에서 이 마법대륙. 아단 전역을 살펴보는 관찰 마법의 정수지.”
“음...마법의 정수라기에는 아티팩트죠.”
자신의 말에 틀린 점을 굳이(?) 집어내는 강서를 보며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낸 도서관장이 강서의 말을 인정했다.
“그래 천공관이라는 아티팩트가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관찰하고, 내가 그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지."
“그렇다면...”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한 번 쓰다듬었다. 도서관장의 기세가 바뀌었다.
“이계흔이라...비슷한 기록을 본 것 같기도 하고...”
"...!"
하린의 눈이 커졌다. 비슷한 기록을 본 것 같다는 도서관장의 말에서 할아버지를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의 실마리를 잡은 것.
“무슨 기록이죠? 혹시 지금 볼 수 있나요?”
하린이 한 발 앞서며 도서관장에게 물었다.
하린이 한발 앞서 나오자 강서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며 하린을 앞세웠다. 그러면서 뭔가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기록 혹시 직접 볼 수 있나요?”
“직접 볼 수는 없지. 천공관(天公觀)은 나같이 허락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네. 자네가 그 작자보다 마법이해도가 뛰어나면 모를까.”
“그럼 그 내용이라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 가 기억이 잘 나지를 않네.”
“이…"
천년 묵은 능구렁이가 사람이 된다면 이러할까.
도서관장은 하린의 간절한 목소리를 즐기듯 애태우며 의미없는 문답을 이어갔다.
아마 도서관장만이 천공관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하린은 진작에 검을 빼어 들었으리라.
실제로 하린은 흥분한 상태였다.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고 얼굴이 조금씩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 급한 성격이 아닌 하린이었기에, 강서는 그녀가 지금 얼마나 급함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서는 끼어들지 않았다.
“이익...”
눈앞에 있는 저 도서관장이라는 작자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강서였기 때문.
도서관장은 절대로 상대의 화를 터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린의 화가 정점에 달해 터지기 직전.
“좋아. 알려주지. 검술가 아가씨.”
도서관장의 입에서 나온 승낙의 한마디가 하린의 온도를 식혔다.
하지만 하린은 곧바로 표정을 피지 못했다. 도서관장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여전히 그의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내가 그 ‘이계흔’에 대한 것을 알려준다면 아가씨는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나?”
“어떤 제안이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린은 결의 굳은 표정으로 도서관장에게 말했다.
그러자 도서관장의 손가락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이동해 하린의 시선이 도착한 곳에는-
“심상치 않은 물건이더군. 저 물건은 어떤가 나한테 줄 수 있겠나?”
강서의 손에 쥐여져 있는 불그가 있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벙찐 표정을 짓습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노망난 노친네의 물욕어린 얼굴을 비난합니다.]
“저건 제게 아니라...”
“어허...저게 아니면 어렵다네. 다른 건 별로 흥미가 안가.”
강서가 불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불그는 도서관장의 시선에 격렬하게 반응 하며 징-하고 몸을 떨어댔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다 늙은 노인이 어딜 넘보냐며 당신에게 당장 거절할 것을 요구합니다.]
강서가 왼손을 얹어 불그를 가로로 들었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거절의 손길은 아니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에게 당장 거절할 것을 요구합니다.]
강서가 양손으로 불그를 받쳐 들자 도서관장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하린의 얼굴에는 당황이 서렸다.
강서의 얼굴은 태연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에게 지금 당장 거절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태연한 얼굴 그대로 도서관장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좋습니다.”
[‘바다를 꿰뚫는 가시창’이 당신에게 제발 거절해줄 것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