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ep26. 조우(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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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단의 이분화.
사람들이 말하는 공략단의 이분화는 쉽게 말해, 공진호의 팀과 판다의 팀을 따로 나누자는 말이었다.
공진호는 공진호대로 기존의 것을 운영하고, 판다는 판다의 팀을 새로 꾸려 공략을 진행하자는 것.
그래서 공진호의 공략단은 기존 룰대로, 판다의 공략단은 새로운 룰을 짜서 공략을 하자는 말이었다.
사실 그건 기존 공략단의 행보를 보아 했을 때, 터무니없을 정도로 불필요한 일이었다.
공략단이 딱히 분열을 일으킨 적도 없었고, 현재의 공략단은 공진호의 지휘아래 조직적으로 잘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
게다가 팀을 하나 더 만든다는 말은 그만큼 인원이 분배된다는 것. 당연히 하나로 뭉친 힘보다 분열된 힘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제 살을 깎아먹는 일이 될 수도 있는 판단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판다’의 공략영상을 보고 싶어서 뿐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의외로 공진호는 해당 조항을 폐지하거나 공략단을 이분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분화라...”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前生)에서 보다 통신금지 조항의 필요성이 많이 낮아졌기 때문.
안전성, 속도, 유지도, 신뢰도, 조직력.
공략단은 그 모든 분야에서 전생보다 우월했고, 공략에 유의미한 전력자체가 전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았고 능력도 더 뛰어났다.
자연스레 공략과정 자체에 여유가 늘어났고, 생명의 위협을 거론하기에는 꽤나 안정된 레이드를 진행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전생에는 꼭 필요했던 ‘공략 중 차원 간 통신금지조항’이 현생에서는 크게 필요하지 않은 조항이 된 것.
거기서 끝이 아니라 심지어 공략단 내부에서도 ‘통신금지조항’을 폐지하는 데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찬성하는 자들은 대부분 던전방송을 경험한 적이 있거나 즐겨 보는 사람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공략’이라는 딱딱한 주제 안에 방송요소가 들어가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통신 금지조항’을 삭제하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상황.
바깥의 목소리뿐이라면 모를까 공략단 내부에서 잡음이 나오는 상황에서의 강행은 더 큰 도박수였다.
불평과 불만은 또 다른 불평과 불만을 낳으며 종래에는 공략단의 내부분열을 야기할 수 있었으니까.
주어진 상황에서 공진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첫째는 공략단을 향한 안 좋은 여론을 잠재우며 ‘통신금지조항’을 삭제하고 판다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 확실히 ‘판다’라는 전력을 기존 공략단에 얹을 수 있었고, 작금의 불리한 상황도 어느 정도 덮을 수 있었다.
대신, 아무리 공략단원들을 엄선했다 하더라도 사람이 모인 곳에는 미친놈 한명쯤 있기 마련.
방송을 과도하게 신경 쓰다가 일을 망치는 문제가 적어도 한 번은 생길 것이었다.
둘째는 여론대로 공략단을 두 팀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것. 의외로 공진호는 이것을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본래 공진호는 일이 자신의 손아귀 밖에 놀아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계획적으로 회귀한 만큼, 회귀당시에 가져오려는 지식들이 많았고, 그 지식들을 유효하게 사용하려면 관련된 변수들은 적은 것이 좋았다.
다만 변수가 회귀자인 공진호의 존재자체가 변수가 되기 때문에, 완전히 변수를 없앨 수는 없으므로 공진호는 적어도 큰 맥락에서 놓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 것.
만들어진 변수를 좇아 틀어질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모든 일이 자신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판다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그 괴랄할 정도의 미래 예지능력을(?) 바탕을 가지고 있는 판다가 전력으로 합류하게 된다면, 공진호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었고, 또 이분화된 팀도 공진호에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잘 이끌 수도 있었기 때문. 꽤나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공진호가 단장실 집무용 책상에 앉아 고민을 하는 동안 갈진혁은 그의 집무실 앞을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용무가 있는 모양이었지만, 공진호가 무언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굳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냥 돌아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횟수가 쌓이자 갈진혁도 답답했는지 먼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최근 이슈?”
"..."
무엇을 고민하고 있냐는 의미의 질문이었다. 공진호가 따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갈진혁은 공진호의 얼굴에서 ‘그 고민이 맞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갈진혁은 가져온 문서 하나를 공진호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무거나 정하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
깊은 생각을 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그저 갈진혁의 생각을 말한 것.
갈진혁은 실제로 어느 쪽을 택하든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합하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흠.”
공진호에게 묘한 화두를 하나 던졌다.
‘아무거나...’
판다가 ‘미래예지능력자’라는 것이 공진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
‘아마 이 상황도 이다음의 상황도 보았겠지.’
공진호는 생각했다.
그의 추측이 맞다면 ‘판다’는 공진호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지, 그리고 공략단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도 미리 보았으리라.
그 ‘미래예지능력’으로 말이다.
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다가 공진호에게 아무 터치도 하지 않은 채 돌아간 것은 공진호가 하게 되는 선택이 판다 입장에서 긍정적이라는 의미.
그리고 판다에게 긍정적이라는 것은 곧 공략단과 헌터 전체를 보았을 때에도 좋은 방향일 것이었다.
지금까지 판다가 걸어온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는 헌터들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
결론적으로, 그리고 운명적으로.
공진호의 고민과 상관없이.
공진호가 하게 되는 선택이 어떤 것이든.
최종적으로는 그것이 헌터 전체에게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었다. 판다가 이미 본 미래일 테니까.
‘그렇다면...’
“갈진혁-”
“왜?"
이제 막 단장실 문을 나서려던 갈진혁을 공진호가 불러세웠다. 갈진혁은 그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았고 돌아 본 곳에는-
“네가 이기면 ‘통신 금지조항 삭제.’, 내가 이기면 ‘공략단 이분화’다.”
공진호가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그 주먹을 보고 갈진혁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이걸 가위바위보로 결정한다고? 그렇게 심각하게 몇 시간을 고민해놓고?”
“단순한 가위바위보가 아니다. 조금 더 운명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하지만 고개를 내젓는 공진호의 표정은 더 없이 진지했다.
“뭔 소리야? 가위바위보 하는데 운명론이 왜 나와?”
“3판 2선제다.”
그렇게 갈진혁의 활약 아래-
판다와 공진호는 한 팀이 되었다.
***
일단 한 팀이 되기로 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판다, 공략단 공식 합류]
[통신금지조항 삭제결정]
[올라간 위험부담, 공략단 징계수위 상승결정.]
예정된 시간이 이르기 전에 공략단장인 공진호는 통신금지조항 삭제를 발표함과 동시에 강서의 합류를 언론에 알렸다.
그리고 포고숄 관련 건들에 대한 간단한 해명을 남긴 뒤, 자세한 사항은 공략일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 이야기 했다.
일들이 정리되자 공략단은 곧바로 제3문 <마법대륙 아단>의 공략을 재개했다.
"룰은 발표된 ‘통신금지조항’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 동일하다. 차원도약 후 집결. 그리고 전송한 거점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유행동은 일부 허락되나 공식공략일정에 참가하지 않을 경우 공략단에서 퇴출이다. 그 외에는...”
제3차원문. 마법대륙 아단으로 향하는 차원앞에서 공진호는 모인 공략단을 향해 공략단의 수칙들을 다시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공진호에게 있지 않았다.
“오, 판다다. 실물 처음...”
“저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지금은 내가 더 강하지 않을까.”
“음...좀 뭔가 생각했던 거보다 그렇게 포스가 있지는 않은데.”
공진호의 우측에 강서에게 모든 시선이 향해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략단에 있는 인물들 중에는 판다의 팬도 있었고, 그에 대해 듣기만 했던 인물도 있었다.
판다의 팬은 오랜만에 판다를 보며 옛날을 떠올리고 있었고, 판다라는 이름에 대해 듣기만 했던 사람들은 그에 대한 호기심으로 강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판다에게 관심이 가고 있었던 것.
물론 제3문 공략의 재개도 물론 중차대한 사항이기는 했지만, 따분한 수칙 설명보다는 아무래도 화제의 인물에게 눈이 더 갈 수 밖에 없었다.
강서는 전처럼 얼굴을 가리지는 않았지만 머리위쪽에 판다가면을 빗겨 쓰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판다의 정체가 강서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다 알려진 마당에 더 이상 정체를 감출 필요도, 그럴 수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판다’라고 부르는 데, 정작 판다가면이 없는 모양새에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가면을 걸치고 있던 것.
“여기까지. 수칙설명을 마치고 나와 판다가 먼저 가도록 하지. 배정된 순서대로 따라 들어오도록.”
설명을 마친 공진호가 강서에게 눈짓을 하며 차원문을 넘어갔다.
공진호의 눈짓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서도 차원문을 넘어갔다.
***
휴식 차원에서 공략단이 본계로 돌아가 있는 동안, 하린은 여전히 마법대륙 <아단>에 남아있었다.
“후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간다고 해서 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제3문 아단에 진입할 때, 하린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나타났다.
말 그대로 새로운 메시지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새로운 메시지.
하지만 하린은 그 메시지를 보며 더 없는 반가움을 느꼈다. 편지의 내용 때문이었다.
[지구의 흔적이 감지됩니다.]
1문과 2문을 거치면서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던 메시지. 지구의 흔적이 감지된다는 메시지였다.
지구의 흔적.
하린으로서는 그 말에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하린이 하프라인 바깥으로 향하려 했던 이유자체가 바로 이것.
할아버지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메시지가 말한 지구의 흔적이 할아버지라고 단정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하린의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때문에 그 ‘흔적’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남은 것이었다.
“캬오-”
상념에 빠진 하린을 라오의 울음소리가 깨웠다.
"음?"
뭔가 이상한 기색의 라오를 보고 하린의 의문성을 내었다.
라오의 울음소리가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게다가 장난의 기색도 없었다.
고개를 쳐들고 정확히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라오는 귀를 접었다 폈다 움직이고 있었고 뿔에는 황금빛이 맴돌고 있었다. 그건 라오가 자신의 고유능력인 <공간밟기>를 실현하기전에 하는 특유의 행동이었다.
“갑자기? 라오 너 어디가려고?”
그 기색을 알아차린 하린이 라오를 말리려 하였으나 그럴 새도 없이 라오는 하린의 어깨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라오가 공간밟기를 실현한 지 채 5초가 되지 않아 하린의 눈앞에 푸른색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
그리고 그 푸른색 구멍 안에서-
라오와 함께 익숙한 인물이 한 명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