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ep26. 조우(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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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오키아’의 공략 건과 함께 <판다>라는 이름이 등장했을 때, 공진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간이 지나 잊혔다고 하기에는 꽤나 거대한 이슈였고, 회귀 전 자신의 기억 속에 <판다>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갈 수 있었다.
회귀했다고 해서 겪었던 모든 내용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었으니.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진호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판다의 유명세가 단순히 한국에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타국에서도 그의 행보에 관심을 보일 정도로 ‘판다’라는 호칭은 유명세를 탔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거듭하며 ‘판다’라는 이름이 세계에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그 특유의 괴랄한 정보력과 놀라운 사냥방법.
공진호가 전생(前生)에 본 적이 없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만큼 ‘판다’라는 이름이 내뿜는 색은 강렬했으니까.
모두가 판다의 매력에 빠지며 ‘판다’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할 때, 공진호는 확신했다.
‘뭔가 다르다.’
회귀한 자신의 존재 차제가 변수가 된 것인지 아니면, ‘판다’자체가 시공의 선을 넘은 변수인 것인지는 확신할수 없었지만, 적어도 판다라는 인물이 전생에 그만한 인물은 아니었으리라.
갑자기 나타난 변수가 당황스러울 수 있었지만 공진호는 당황하기보다 미소를 지었다. ‘변수’는 공진호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진호의 목표는 전생(前生)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시 되는 목표는 제 5문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전생(前生)에서, 그러니까 공진호가 회귀하기 전.
인류는 다섯 번째 문을 넘지 못했다.
<제5문 마각(魔閣)>에서 수행과제를 클리어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헌터가 몰살당했기 때문.
공진호는 그 모든 장면을 두 눈으로 보았다. 모두 똑똑히 보고나서. 재앙(災强)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이전.
공진호는 자신의 고유능력 ‘시계태엽’을 통해 과거로 돌아온 것.
공진호는 또다시 5문에서 몰살당하지 않기 위해 더 탄탄한 헌터 체계를 조직화해야 했고, 더 많은 수의 헌터를 확보해야했다.
인재를 발굴해야했고, 스스로의 기억 속에 있는 정보를 통해 최대한 효율적인 루트를 타야 했다.
포기한다면 재앙(災數)이 찾아올 것이고, 변하는 것 없이 똑같다면 또다시 제5문에서 모든 인류가 멸망할 것이었으니까.
세계의 다른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여러 변수들을 확보해야 했다.
실제로 공진호는 회귀와 동시에 작업을 시작하여 많은 부분에 손을 써두었다.
잠재력이 있으나 꽃피우지 못했던 ‘갈진혁’과 같은 인물들을 미리 확보했다.
본래라면 악인 길드가 되었을 4대 길드 중 하나 ‘천명(天命)’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그 외에도 많은 길드들이 조직화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헌터 협회를 통해 공식적인 공략단을 조직했다.
그런데, 그런 갖은 노력으로 일구어 낸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판다’가 만들어 낸 변수들이 많았다.
마탑의 일개 지부였던 마탑의 한국지부가 ‘판다’와 만나며 ‘상아탑(象牙塔)’이라는 새로운 모양의 기업형 단체를 만들었다.
방안에 찌그러져 있었을 샬롯의 동생 델타를 ‘판다’가 S급 헌터로 만들었다.
전생에 아무도 알지 못하던 하린을 ‘판다’가 S급 헌터로 만들었다.
제1문을 전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돌파해냈다.
그 외에도 그가 공유한 수많은 헌팅관련 정보들과 노하우는 헌터의 기반을 더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회귀한 공진호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변수들과 비견될 정도의 일들을 혼자서 해낸 인물이 바로 ‘판다’였던 것.
공진호는 처음에 판다의 행보를 보며 그가 자신과 같은 회귀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여주는 것마다 모두 ‘직접’경험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었고, 아주 미래에 발견되는 정보들도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사건을 거듭할수록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판다’가 보여주는 것들 중에는 공진호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정보들도 존재했기 때문.
본래부터 어느정도 회귀에 대한 생각을 염두에 두고 정보들을 정리하며 준비하던 공진호였기 때문에, 공진호가 알지 못하는 정보라는 것은 곧 전생에도 밝혀진 적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게 공진호가 내린 결론은-고도의 능력을 가진 미래예지 능력자.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전개를 미리 본다던가,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시험’해 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진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판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지금까지도 헌터들은 그의 덕을 보기도 했고.
“네가 나와 함께하면 여러모로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네가 상상치도 못한 것들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 왜냐면 난 회귀자니까.”
때문에 공진호는 강서에게 자신이 회귀자라는 것을 밝혔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 법. 기브앤 테이크랄까.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판다가 아는 만큼, 판다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있으리라.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 윈윈(win-win)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다’의 의사였지만, 공진호는 판다가 적어도 ‘회귀’라는 말에 놀라며 호기심을 갖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확실히- 공진호의 생각대로 놀라기는 했다.
"오-"
하지만 뭐랄까.
그 뱉은 감탄사가 충격을 먹은 놀라움이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반가움 반, 놀라움 반에 어색함이 조금 가미된 애매한 것이라고나 할까.
“몇 회차에요?”
이어진 물음에 공진호는 의문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회차...?”
몇 회차냐니. 공진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차라리 안 믿으면 안 믿었지 몇 번째 회귀냐고 묻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능력 중 회귀와 비스무리한 능력이라도 밝혀진 것은 없었다.
각성자가 나타난 상황 자체가 소설같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건 정말로 어떤 ‘선’을 넘어가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몇 번 째냐니.
그렇게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한참이 지나서야, 공진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무려 고성능 예지능력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당연히 자신이 먼저 보자고 한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왔을 터.
그렇다면 그 예지능력을 이용해 자신이 ‘회귀’에 관한 언급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작금의 이 ‘회차’ 질문은 자신을 당황시키기 위해 미리 준비해온 <판다>의 수작이리라.
‘정말 보통이 아니군...’
고개를 한 번 가로저은 공진호는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대답했다.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회귀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수집해 두었지. 그래서 충분히 도움...”
공진호가 말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강서가 공진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진호는 당황했다.
본래라면 이 <고유결계:흑막>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지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공간이고 몸 자체가 넘어 온다기 보다는 사념체로 흑색의 공간을 부유(浮滿)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인간적인 본능이 행동을 거부하기 때문.
하지만 강서는 오히려 흑막을 펼친 공진호보다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공진호 앞에 섰다. 그리고-
툭툭-
공진호의 왼쪽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더니 자애로운 어머니(?)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장님 힘내시고요. 언제든지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개에 괴상한 표정을 지은 공진호.
강서는 손에 들고 있던 흑장상주(黑帳上珠)를 손가락으로 툭하고 건드렸다.
[<고유결계:흑막>이 해제됩니다.]
그러자 고유결계가 해제되며, 풍경이 다시 공략소의 단장실로 바뀌었다.
“여기 혹시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상아탑주님이 공략단 추천서 써주셨습니다. 이건 여기 두고 갈게요. 관련된 연락은 그쪽으로 해주시면 돼요.”
강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하더니, 단장실을 떠났다.
"..."
당연히 공진호는 알지 못했지만, 강서가 수천 개의 세계를 넘나들며 경험한 시간관련 능력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강서의 ‘윤회의 저주’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되지 않는 두어 번 짜리 단일 회귀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애초에 본인이 넘사벽 수준의 회귀전생자인 강서입장에서 이제 와서 회귀자가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자신이 경험한 ‘회귀’의 무게를 알기에 조금의 연민(懷惑)이 남을 뿐.
“굉장히 고단수야 짐작할 수가 없군...”
공진호는 여전히, 조금도-사실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
[판다, 공략단 합류]
[판다, 거침없는 행보 이번에는 어떤 모습일까.]
강서가 복귀하며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 사건들은 모두 시간의 텀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래서 뭉쳐진 사건들의 볼륨은 거대했지만 실상 지나간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 포고숄의 건으로 달아오른 사람들의 반응이 식지 않은 상태.
거기에 강서의 공략단 참여 소식이 공식 발표되자 다시금 ‘판다’라는 이름자체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공략단에 판다가 참여한다는 사실은 분명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호성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의외로 오래가지 못했다.
[공략단 지침상 공략과정 공개불가]
[공략수칙, 공략중 차원간 통신 금지조항.]
[많은 곳에서 불만의 목소리 표출.]
공략단이 기존에 세운 공략지침 상.
공략과정의 생중계와, 차원 간 연락이 불가능했다.
그 말은 즉 판다가 무언가를 하더라도 그것을 즉시 볼 수 없을뿐더러 상황조차 즉시즉시 전달받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사람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사실 이것은 강서가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던전방송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판다가 참여하게 되며 더욱 불타오르게 된 것.
‘공략 중 차원 간 통신금지’조항은 공진호가 전생(前生)의 공략단의 조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헌터들의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기도 했고, 수많은 준비를 거치고 공략을 시도하는 지금은 공략 중에 문제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공진호가 겪었던 전생은 그렇지 않았다.
잔혹한 장면이 그대로 보내지기라도 한다면 분명 그것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다.
또, 그대로 방송을 하게 되면 헌터들이 온전히 공략에 집중하지 못하고 화면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쓰며 공략의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만든 조항이었다.
공진호가 생각하기에 필요하다 생각하여 둔 것.
하지만 한번 차오른 불만은 쉽게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리고 모아진 불만들은 곧,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공략단 이분화, 여론 급증]
[공략단 꼭 한 팀으로 운영되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