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10화 (110/191)
  • 110화. < ep26. 조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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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효율의 에너지가 감지됩니다]

    크라켄의 격하된 신격에 <헤타이로>가 반응했다. 신수 가루다를 처치할 당시에는 헤타이로가 신격을 단숨에 집어삼켰지만,

    그건 <불그>가 바다와 바다생물을 대상으로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과 같은 <특전>이었다.

    일시적으로 격하된 크라켄의 신격이라도 그 본질은 <신격>.

    특전이 발휘된 가루다 때와 동일한 성능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물론 어디까지나 동일한 성능을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헤타이로의 본 성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헤타이로가 가동됩니다.]

    [<파도의 신격>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합니다.]

    [주의! 대상으로 일정거리 이상 떨어질 경우 가동이 정지됩니다.]

    [완료까지 남은 시간 00:37:59]

    헤타이로가 새하얀 빛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크라켄의 전신에서 반짝이는 빛무리가 뿜어져 나와 헤타이로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헤타이로가 크라켄의 신격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

    그때부터는 강서의 원맨쇼였다.

    헤타이로와 강서를 잡기위해 날아다니는 수십 개의 다리사이.

    한번 한번의 휘두름이 자연재해에 가까운 충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강서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크라켄의 그 흉포한 일격들을 가볍게 피해 다녔다.

    마치 자기 앞마당을 뛰놀 듯 이곳저곳으로 피하는 와중에도 강서는 신격을 흡수하는 헤타이로의 가동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난장판 가운데서 일정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며 움직이는 강서의 모습은 포고숄의 뭇사람이 경이롭다 느낄 정도의 몸놀림이었다.

    키에에엑!

    크라켄의 비명소리가 계속해서 울려오는 가운데 강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성이 있었다면 더 어려웠겠지.’

    크라켄의 상태가 그러했다. 본능에 가까운 판단으로 움직임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

    기이한 일이었다. 본래 신수라는 것은 신격이 이른 존재.

    그렇게 지고한 위치에 올라간 존재가 이성이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았고, 아우헤타이로가 사냥한 <가루다>의 경우에도 정확히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화도 가능했고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크라켄은 이성을 잃게 되었는가?

    그 해답은 포고숄에서 오직 강서와 <신기:불그>만이 알고 있으리라.

    ‘차원.’

    포고숄에 존재하는 이계(異界)의 존재는 헌터들뿐만이 아니었다.

    크라켄과 <신기:불그>도 100여년 전, 이계로부터 포고숄로 이동된 이계(異界)의 존재였다.

    과거, 강서가 포고숄의 21대왕 ‘로레지아’로 환생했을 시절. 불그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크라켄과 불그는 100여 년 전에도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였다.

    누군가에게 던져진 <신기:불그>는 크라켄에게 쏘아졌고, 크라켄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그>를 피하기 위해 차원을 넘었다.

    하지만 차원과 관련된 신격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크라켄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차원을 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본래라면 신격을 잃어야 했으나, 크라켄은 대신 자신의 ‘이성’을 제물로 신격을 보존하였다.

    그렇게 이성을 잃게 된 크라켄은 하찮은 미물 수준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그게 작금의 결과였다.

    헤타이로가 별탈없이 신격을 녹여낼 수 있는 것도 아마 크라켄의 저항의지가 본능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그 뿐만 아니라 정말 여러 가지가 맞물린 상태였다.

    적당한 시기의 대밀물.

    강서의 등장.

    <신기:불그>의 포획(?)

    <신기:헤타이로>

    강서가 개연성을 제물로 불그를 던질 수 있다는 것.

    크라켄의 이성이 없는 상태.

    등등.

    여러 가지 중 하나면 겹치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크라켄을 잡는 데에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강서는 더 오래 걸렸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상념을 하며 크라켄의 공격을 피해 다니던 강서가 문득 눈을 바로 떴다.

    그리고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마지막으로 착지한 크레켄의 다리 위에 멈춰 섰다.

    “...어?”

    강서의 유려한 몸놀림을 홀린 듯 바라보던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강서를 바라보았다. 크라켄의 다리가 더 이상 강서를 노리고 있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문득 거대한 산 하나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이 세상의 일부가 지워 진 것 같은 기분.

    그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실제로 산만한 크기의 무언가가, 오랫동안 포고숄을 옥죄고 괴롭히던 거대한 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크라켄>이 처치되었습니다.]

    [수행과제가 종결되었습니다.]

    ***

    ‘사건의 연속이다.’

    그 이상 이번 포고숄의 사건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텀을 두고 차례로 일어나도 놀라자빠질 사건들이 단시간에, 그것도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단순히 손가락으로 세어도 한손에 다 꼽지 못하는 숫자의 사건들에 사람들은 경악을 반복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언론에서 조차도 어느 기사에 주로 초점을 맞춰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엄청난 양의 기사들이 다양한 주제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만큼은 일치하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이 내용의 이슈는 바로 ‘판다’의 등장 그 자체였다는 것.

    실종. 사실상 사망상태.

    아발론제국에서 아키두스가 리치왕을 해치움과 동시에 사라졌던 판다가 다시금 나타난 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5년간

    한국 마탑. 지금은 상아탑을 이름이 수정된 강서의 후원처에서도 판다의 행방을 찾는 언론의 질문에 줄곧 고개를 젓고 있었다.

    실제로 모르기도 했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S급 헌터 하린도 강서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고 알려왔다.

    그렇게 지나온 5년이었다.

    그 판다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은 자명한 사실.

    게다가 죽음이 경각에 달했던 아키두스가 자신의 몸을 찌름과 동시에 나타난 빛무리가 강서의 실종 시에도 똑같이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돌아온다는 것. 그것이 가장 충격적이라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제목: [리치왕: 해치웠나..?]

    크라켄: 안 돼! 그 부활주문을 외치면 안 된다고!

    -판-다 어림도 없짘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ㅋ판다좌는 복귀도 예술

    ㄴ 녹사장 풍물놀이남이 판다일 줄이야...

    ㄴ 맨 얼굴로 복귀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해치웠나 ㅇㅈㄹㅋㅋㅋㅋ

    -오늘부터 1일 1판다다

    강서가 판다라는 판단에 더 이상 이견은 없었다.

    대부분이 그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상아탑의 전신인 마탑 한국지부시절부터 함께한 총무의 태도가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

    게다가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정황들이 그가 판다라는 것을 증명했다.

    오도아게르의 공간절삭이라던가, 설명하는 방식. 등등

    사실 녹사장 풍물놀이남의 태도나 말투가 ‘판다’와 비슷한 것 같다는 의견은 사실 강서가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부터 나오고 있기도 했고,

    판다방송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오프닝 멘트 ‘안녕하세요 판다입니다.’가 너무도 싱크로율이 높았던 것이 어느 정도 결정적이었다.

    [상아탑, 판다 공식인정]

    [후원 계약 여전히 유효. 상아탑 보물을 되찾다.]

    [5년간의 비밀 밝혀지나.]

    상아탑이 강서를 ‘판다’로 공식 인정하고 나서 그나마 남아있던 의심의 눈초리도 완전히 제거되었다.

    판다의 정체가 공개되며 가장 많은 수혜를 입은 것은 소설희의 SSH헌터 방송국이었다.

    판다의 복귀가 알려지며 큐튜브에 등재되어 있던 기존의 판다방송 영상들이 다시금 회고되며 인기차트에 랭크되었다.

    그리고 녹사장 풍물놀이남의 영상들도 분명 많은 임팩트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었던 영상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판다의 복귀영상’이었다.

    판다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내가 판다노라’하고 발표한 그 영상이 보고 싶었던 것. 심지어 크라켄을 사냥하는 모습까지 함께 찍힌 영상이었다.

    복귀가 알려진 뒤 아직 얼마가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공식발표나 인터뷰 같은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태.

    게다가 생중계가 이루어진 것은 고작해야 1시간 가량. 당연히 본 사람보다 보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런 가운데서 돌아온 판다는 어떤가, 멀쩡한가, 여전히 강한가, 여전히 웃긴가(?) 등등.

    다양한 기대감이 해소해 줄 수 있는 것은 판다의 복귀영상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소설희의 SSH헌터방송국뿐이었다.

    소설희는 기자경력이 있는 헌터인 만큼 언론의 흐름을 짐작하고 있었고, 그만큼 거대한 관심을 당면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소설희는 영상을 잘라 2부작으로 편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단번에 올리기보다 일부씩. 그것도 SSH헌터방송국의 사이트에만 올렸다.

    생중계 그대로를 올린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본래 목적했던 다큐의 질감이 잘 느껴질 수 있는 톤의 필터와 편집, 촬영기법을 이용한 것.

    가장 먼저 공개한 영상은 예고편이였다.

    예고편은 정말 짧게 임팩트 있게 구성되었다.

    소설희는 기자시절 습관으로 자신이 입을 열기 전 소지한 소형 녹음기를 켜는 습관이 있었다.

    때문에 영상은 검은 화면에 소리만 나오는 형식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된 거죠. 녹사장 풍물놀이남 님. 실제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칭호는 어떻게 안 되는 건가요?」

    「넵.」

    「부탁드릴게요. 간단한 자기소개만 해주시고 나서는 제가 없다고 생각하셔도 돼요! 이미 몇 번 촬영하는 동안에 다른 분들은 만족하셨어요. 나름 B급이라 제 몸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흐릿하게 잡히는 화면.

    녹사장 풍물놀이남이라고 알려진 사내의 얼굴이 화면 가운데 잡히며 흐릿함이 어느 정도 제거될 때쯤.

    이어지는 충격적인 발언.

    「안녕하세요. 판다입니다.」

    그 20초가량의 검은 화면와 3초간 강서의 얼굴.

    그것이 예고편의 전부였다. 그렇기에 반응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아니 감독님. 미치셨어요?

    -아니 이건좀;;

    -아니 이제 시작할 것 같은데 왜...

    -아닠ㅋㅋㅋㅋㅋㅋㅋ 아 감독 아

    -감독님 절단마공 사용한 혐의로 잡혀갔다고 합니다. 글 내려주세요. 아니;;

    -아니 이게 무슨 다큐야 영화 예고편도 이렇게는 안 만듦;;

    끝없이 이어지는 ‘아니’의 향연.

    물론 그것은 모두 소설희의 계산 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영상은 SSH헌터 방송국에서 밖에 볼 수 없는 구조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송국을 찾아 들어오게 되었고, 자연스레 검색어에도 올라가며 소설희의 헌터 방송국은 전례 없을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

    -야 근데 판다 어디 다녀 온 거냐. 어디 숨어서 폐관 수련 같은 거 한 건가

    -ㅇㅇ크라켄 때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ㅋㅋㅋㅋㅋ웃긴 건원래 얼마나 강했는지를 몰라서 강해진지도 모르겠음;;

    ㄴㅋㅋㅋㅋㅋㅋㅋㅇㄱㄹㅇ

    ㄴ투급 측정하면 ‘띡! 판다입니다.’ 나올 듯

    ㄴㅋㅋㅋㅋㅋ

    생중계를 이미 본 사람들은 헌터 방송국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궁금증을 표하며 여러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공백의 5년간 ‘판다가 무엇을 했느냐’ 였다.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상아탑과 하린에게조차 숨기며 하려한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

    하지만 상아탑 측에서는 그와 관련된 질문에 어떠한 공식적인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총무가 선택한 결정이었다.

    사실상 발표를 하려고 해도 어려운 것이 정말 ‘공백’을 겪은 것은 강서였다.

    지나간 시간이 5년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었으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발표라고는 해봐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정도가 될 것이 뻔했다.

    게다가 총무로서는 단독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없었던 것이.

    강서와 이야기라도 가능했으면 이야기를 한 뒤 무언가 답변을 만들어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다. 궁금증은 오래 끌면 좋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다.

    "또…"

    크라켄이 처치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강서는 총무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마디 문장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잠깐 할 일이 있어서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습니다.’

    크라켄이 처치되었다는 문구에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총무는 그 말을 듣고 수초가 지난 후에 강서를 다시 찾았지만, 그때는 강서가 이미 크라켄에 꽂혀있던 <신기:불그>를 뽑아들고 사라진 뒤였다.

    그 뒤에도 총무는 갑작스레 사라진 강서의 행방을 찾았지만 어디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강서가 또 다시 행방불명의 상태가 된 것.

    물론 이번에는 본인이 돌아오리라 예고를 하고 떠났다는 것이 달랐지만, 5년 만에 찾은 판다를 다시 잃어버린(?) 총무의 입장에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서가 다시 사라진 상태에서.

    공략단이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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