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ep25. 컴백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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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켄이 나타나자 갈진혁과 강서는 가장 먼저 뒤쪽에 남아있던 헌터들을 차원문 너머로 돌려보냈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전력일뿐더러 오히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에 둘 다 동의 한 것.
그리고 돌려보낸 뒤 갈진혁은 강서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신창 불그가 크라켄을 해결할 열쇠이고, 총무와 함께 나타난 아이가 바로 포고숄의 왕이라는 등등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 꼬마애가 포고숄의 왕이라고?”
“네 그렇죠.”
“포고숄에 왕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는데...”
그건 공략단에서도 공진호 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갈진혁이 모르는 것도 당연한 일.
짝-
손바닥을 마주쳐 의아해 하는 갈진혁의 정신을 일깨운 강서가 입을 열었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우선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총무님 말씀드린 부분은 다 된 거죠?”
촤아아악!
크라켄이 다리를 흔들며 파도를 만들어 내는 가운데,
지친기색이 역력한 채로 총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창: 불그>에 감겨있는 메모라이즈 페이퍼를 가리켰다.
동해절벽에서 일어난 제왕의식 직후. 바닷속에서 <신창: 불그>를 잡아챈 강서는 그길로 상아탑으로 향했다.
그때는 이미 백사장이 열린 상태로 많은 헌터들이 차원문을 통해 귀환하거나 길잡이와 함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상아탑으로 향한 강서는 총무에게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복잡한 마법진을 하나 그려 보이며, 그것과 같은 마법진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게 어떤 마법진인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총무는 남은 시간동안 메모라이즈 페이퍼에 마법진을 새겨 넣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강서가 말한 대로 페이퍼를 ‘불그’에 감은 채 포고숄의 왕, 로아에게 쥐어준 것.
“저 정도로 복잡하고 기괴한 마법진은 처음 봤습니다...시간 맞추느라 진땀을 뺐네요.”
총무의 말은 진심이었다. 단순히 따라 그리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총무는 그 마법이 무슨 의미인지 단 한 자락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아, 네 부등다면진을 이용한 다중중첩마법진인데 양자물리변형에 대한 마법적원리만 이해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이제 마법도 조금 자유로우니까 나중에 알려드릴 수 있어요.”
"..."
”마도공학적 원리이해만 어느 정도 바탕이 되어주면 전자기학이나 선형 대수학적 지식같은 부분은 제가 중강중간 보충해드릴 수 있으니까.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 거에요.“
강서의 말도 안 되는(?) 격려에 ‘아뇨 못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얼굴로 대신한 총무였지만 강서가 그것을 알아챌 리가 없었다.
강서의 머릿속에서 침묵은 곧 긍정.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에에엑!
비명같은 울음소리가 울리며 크라켄의 다리들이 포고숄의 해안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초가 급한 상황.
더 지체되면 미리 중층으로 대피시켜놓은 포고숄의 주민들이 말 그대로 쓸려나갈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우선 움직이겠습니다. 포고숄 정상으로 이동할게요. 크라켄 쪽 시야를 먼저 확보해야 됩니다.”
미리 크라켄을 잡는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들은 갈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리쳤다.
“난 여기 남을게. 차원문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 말에 강서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크라켄의 다리 중 하나가. 차원문이 있는 지형 위로 내리찍혔다.
갈진혁은 순간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세 가지 검 중 한 가지를 뽑아내었다.
강서가 빌렸던 검과는 또 다른 검.
짙은 검은색으로 장식된 검은 날카로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견고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고유능력: 검명(劍名)>이 활성화됩니다.]
[검명(劍名): 검의 이름을 통해 검이 가진 힘을 이끌어 냅니다.]
“흑경검, 발검”
[<흑경검>이 <고유능력: 검명(劍名)>에 반응합니다]
갈진혁이 꺼내든 검은 직접 크라켄의 다리와 맞붙은 것은 아니었지만, 엷은 장막을 형성하며 크라켄의 다리와 대치했다.
끄그그극-
묵직한 대치음을 내며 갈진혁의 다리가 땅을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차원문을 통해 한명의 여성이 튀어 들어온 것은-
"...?"
“아하하... 안녕하세요.”
“이런 미친...”
갈진혁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보며 욕지거리를 했다.
“다 내보냈더니. 사람이 왜 들어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갈진혁은 모든 헌터를 내보내고 그들을 통해 차원문으로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으라는 말까지 분명 전해둔 상태.
공략소의 이름으로 전해두었으니 그것은 헌터협회에게도 분명 전달 되었을리라.
그렇다는 것은 눈앞의 영성은 그 인파들을 헤치고 헌터협회의 만류를 무시하며 들어왔다는 말이 되었다.
‘도대체 왜...?’
갈진혁은 그 진의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했지만, 그것을 물어볼만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다만 갈진혁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강서를 향해 이 짐을 좀 데려가라고 외치는 것뿐이었다.
“여기 하나 더 데려가!!”
***
“야 백사장 포기 했다는데?”
“뭐?”
공략소가 포고숄을 포기했다는 그 놀라운 소식에 소설희가 본능적으로 반문했다.
소설희.
그녀는 굉장히 특이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물론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보통은 그렇게 불리곤 했다.
본래직업이 기자였던 그녀는 기자활동을 하던 도중. 우연한 사고로 던전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길로 각성을 하게 된 헌터였다.
얼떨결에 하게 된 각성이었지만, 소설희는 꽤나 헌터로서의 자질이 출중한 편이었다.
가진 근력의 1.5배의 힘을 낸다는 준수한 고유능력을 가진 그는 늦은 각성에도 불구하고 헌터계의 선두에 서게 되었고, 결국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B급 헌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특이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B급에 오른 그녀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헌터방송국을 설립했기 때문이었다.
헌터방송국.
소설희가 최초로 시도한 분야였다. 소설희가 설립한 SSH헌터방송국은 여타 다른 일반적인 방송국들과는 달리 C급 이상의 베테랑 헌터들을 주 취재 대상으로 삼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C급 이상의 헌터들은 포고숄에 출입을 하게 되고, 일반인이 주가 되는 기자들은 당연히 그곳에 출입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C급 이상 헌터들과 관련된 자료들은 그 헌터들의 길드를 통한 공식 발표나 인터뷰로밖에 구성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희는 단순히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담아내고 싶었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헌터의 이면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혹자들은 처음 헌터 방송국이 설립되었을 때 비판을 했다.
헌터들이 직접 방송을 켜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실제로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터방송국에서도 생중계를 좋아했고, 댓글을 다는 기능들은 기존의 인터넷 방송의 것을 차용했으니까.
하지만 실제 헌터 방송국이 운영이 되면서는 그 비판점이 수그러들었다.
-어...정확히 집지는 못하겠는데 굳이 말하자면...분위기?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비유하자면, 예능과 다큐멘터리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베테랑 고위헌터 중에 방송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기도 했고, 인터넷 방송의 경우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를테면 B급의 스쿼드가 C급의 몬스터를 사냥한다던가. 두 배수의 스쿼드를 이루어 사냥을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최전선에서 사냥을 하는 경우 그렇게 안전을 보장한 채 사냥을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고, 공략단의 경우에는 사냥 한 번 한 번이 목숨을 건 사투였다.
그것을 직접 모두 보고들은 소설희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삶을 다큐로 찍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최전선에서 예능을 찍어대던 헌터도 있었지만.
그렇게 몇 명의 다큐를 찍어내며 헌터 방송국은 큰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소설희의 최종적인 목표는 공략단의 공략 영상을 다큐 실시간으로 찍어내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공략중 통신도 막혀있는 상태였지만, 헌터방송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최근 소설희의 시선은 ‘이슈’를 향해있었다.
[포고숄에 당한 위기, 차원문을 넘어오는 헌터 속출]
[포고숄 정말로 무너지나. 공략소측 무대응]
[공략소 백사장 포기 선언. 포고숄 사실상 무력화.]
[예상치 못한 위기, 공략단장 우리는 정말 그를 신뢰할 수 있는가.]
최근의 이슈는 단연 ‘포고숄’그 자체였다.
하루가 다르게, 아니 하루에 두세 번은 포고숄과 관련된 새로운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대썰물, 녹사장, 진동타격, 흑사장, 백사장, 갈진혁, 공략소 등등 검색순위에 올라오는 다양한 키워드 들이 그 화제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소설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녹사장 풍물놀이남.’
다른 모든 기사들은 포고숄의 사건과 관련된 기사에 초점에 맞추고 있을 때, 유일하게 인물자체가 기사거리가 된 인물이었다.
소설희는 오랜만에 자신의 ‘기자로서의 촉’이 선 것을 느꼈다.
무명, 정체불명, 사냥법의 혁명. 심상치 않은 사람이었다.
‘녹사장 풍물놀이남’은 소설희의 시선을 끌었다.
본래라면 이슈가 터지자마자 달려갔을 소설희이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현장에서 뛰는 만큼 준수한 전신방어구가 필수 요소였는데, 이전의 촬영을 하다 그만 청수(靑水)를 뒤집어 써 버려서 통째로 수리를 맡겨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기에, 딱히 비상용의 아이템도 없었다.
하지만 공략소에서 백사장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소설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했다.
아니 더 가만히 있는 것은 미래의 자신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야 진수야 네 꺼 방어구 좀 빌릴게.”
“응? 뭔 소리야. 네꺼 맡길 때 내 것도 같이 맡겼잖아.”
SSH헌터 방송국의 구성원은 B급 헌터 소설희와 그녀의 친구인 C급 헌터 박수혜 아직 둘 뿐이었다.
많은 부분을 외주를 맡기느라 번거롭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우선은 촬영에 힘을 써서 시장을 개척하자는 소설희의 의견이었다.
“내 꺼는 훼손도가 심해서 처음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린 다 했거든. 대충 됐겠지 니꺼는 그리 안 심했잖아.”
“야 너 설마 지금 포고숄가려고? 이 미친x아 거기 지금 도시 자체가 붕괴되기 직전이라는 데 거길 가서 뭐....”
“그럼 가볼게! 생중계 할 테니까 신호 잘 받아!”
“야! 야 이...뒤쪽 판 떼기가 생으로 날아갔는데 그게 안 심한 거면...야! 야아!”
소설희는 박수혜의 말을 무시하고 방어구를 찾으러 달려갔다. 본래 단골인 곳에 맡겨놓았기 때문에 방어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이 방어구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방송장비들을 챙기고 소설희가 차원문 앞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수많은 헌터들이 나와있는 상태였다.
나올 사람은 다 나온 것이었는지, 차원문에서 넘어오는 헌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침울한 분위기였지만 소설희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차원문을 보자마자 곧장 달려갔다.
차원문이 아직 닫히지 않은 것을 보아서는 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백사장을 포기한다는 말을 한 시점과 시간을 계산해보면 빠듯했다.
어쩌면 지났을 지도.
“어, 어,어!”
“저 사람 뭐야! 아가씨 그 너머에 대밀물 덮쳤어요!”
“내가 1분 남았을 때, 넘어왔는데 이미 1분 넘었어!”
“저 방금 갈진혁님이 보내서 나왔는데 대밀물은 해결됐지만 크라켄이 나타나서...”
아직 기사로도 나오지 않은 따끈따끈한 정보들이 들려왔지만 소설희는 그들을 무시하고 달려들었다.
소설희는 그런 누구나 알게 될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방송국을 차린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차원문 너머의 최전선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것 소설희는 그녀의 장기인 강력한 근력을 이용해 차원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헌터협회 소속으로 보이는 몇 명의 헌터들이 급하게 뛰어왔지만, 그때는 이미 소설희가 차원문 바로 앞에 도달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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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거죠. 녹사장 풍물놀이남 님. 실제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칭호는 어떻게 안 되는 건가요?”
“넵.”
소설희는 정상으로 이동하는 도중 간단하게 자신이 어떻게 넘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물론 설명을 한다고 해서 이해가 되는 범주의 것은 아니었지만, 기를 쓰고 남겠다는 사람을 굳이 돌려보낼 생각도 시간도 없었다.
방해만 되지 않는 다면 크게 상관이 없기도 했고.
“부탁드릴게요. 간단한 자기소개만 해주시고 나서는 제가 없다고 생각하셔도 돼요! 이미 몇 번 촬영하는 동안에 다른 분들은 만족하셨어요. 나름 B급이라 제몸도 지킬 수 있습니다!”
정상에 도착한 뒤.
고개를 숙이며 다큐멘터리 촬영을 부탁하는 소설희에게 강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는 머릿속에 어디사는 누군가가 떠올라 한숨을 한 번 더 뱉었다.
소설희는 촬영 장비를 통해 잡히는 화면을 보며 배경에서 느껴지는 긴박감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였다. 그녀가 원하는 장면이.
크라켄의 다리가 날아다니고 사방에서 파공음이 들려왔다. 헌터로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헌터들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들이 모두 대피했다는 스토리까지 추가된다면 이건 더할 나위 없이 ‘헌터들의 날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헌터들이 접한 최전선의 이야기. 게다가 최근에 가장 핫한 ‘녹사장 풍물놀이남.’
소설희는 끓어오르는 고양감에 몸부림을 쳤다.
화면의 구도를 잡은 뒤, ‘녹사장 풍물놀이 남’을 향해 OK사인을 보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강서가 자기소개랍시고 습관적으로 내뱉은 한마디가-
너무 큰 파란을 몰고 왔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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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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