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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06화 (106/191)
  • 106화. < ep24. 해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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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가 횡으로 휘두른 검격.

    <오도아게르의 공간절삭>은 포고숄을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오던 대밀물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드높은 해일의 위쪽 반은 공중에서 힘을 잃으며 추락했다.

    그래도 바다에 붙어있는 아래쪽 반은 <촤악>소리를 내며 바다를 일렁였지만, 반 쪼가리가 난 대밀물은 결국 포고숄의 육지에 발을 딛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직 차원문을 넘지 않았던 헌터들이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략단에 참여하지도 않은 무명의 헌터가 휘두른 손짓에서 일어난 일이라기에는 너무 과한 것이었으니까.

    그런 광경을 생경한 그들로서는 그저 스러지는 대밀물과 강서를 번갈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하지만 정작 그 검격을 이루어낸 강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휘두른 갈진혁의 검을 그대로 붙잡은 채 멈춰있었다.

    검격을 휘두른 리스크는 아니었다.

    다만 금제가 해제된 결과로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

    [<금제:8위의 약속>의 <첫 번째 약속> 해제됩니다.]

    [<첫번째 약속: 냐태의 비밀>을 일부 회고합니다]

    금제가 해제되며 나타난 하나의 상태창과 함께 강서의 시야에서 해일이 사라졌다.

    강서가 베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강서의 시야가 더 이상 포고숄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서의 시야 안에는 전경과 배경의 구분 없는 혼돈만이 존재했다.

    무(無)의 공간속.

    그 혼돈한 모양새는 점점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니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기괴하고 다양한 색채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완성해낸 것은 하나의 기억이었다.

    마치 제3자의 시선으로, 사람을 만든 신의 시야가 이러할까.

    영화처럼 연속된 장면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강서가 본 것은 하나의 생(生)이었다.

    가장 먼저 본 것은 한 거대한 나무 아래에 놓여있는 알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나무 아래 작은 알이 놓여있었다.

    몇 초가 지나자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

    알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옆에 있는 나무를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무의 크기를 비교했을 때, 더없이 무의미한 행위였지만, 아이는 계속해서 나무를 가격했다.

    남자의 모습이 아기에서 성인까지 변하는 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강서의 느낌으로는 그저 몇 초간.

    성인이 되는 동안 남자가 한 일은 오직 먹는 것, 자는 것, 그리고 나무를 때리는 것뿐이었다.

    남자가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하늘에서 사과 하나가 떨어졌고, 남자는 그 사과를 먹은 뒤 나무를 가격했다.

    나무를 일정시간동안 가격하면 남자는 다시 잠에 들었고, 다시 일어나서 나무를 때린다.

    같은 행위의 반복.

    하루 쉴 법도 했지만 남자는 밤이 되면 잤고, 낮이 되면 나무를 가격했다.

    남자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새하얀 빛무리가 남자와 나무를 감싸고 있었을 뿐.

    남자의 세계에는 오직 남자와 나무 이 둘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남자가 할 다른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100배속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들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나무를 가격하고, 자고, 사과를 먹고.

    나무를 가격하고, 자고, 사과를 먹고.

    나무를 가격하고, 자고, 사과를 먹고.

    나무를 가격하고, 자고, 사과를 먹고.

    그렇게 셀 수 없을 정도의 반복을 거치던 어느 날. 문득 남자의 세계에 나귀를 탄 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이상하다는 눈을 하고는 남자에게 물었다.

    [왜 그 거대한 나무를 때리는 것이요?]

    [무너뜨리기 위해서입니다.]

    [거, 자네 몸뚱이보다 수천 배는 큰 나무를 그렇게 주먹으로 때린다고 해서 되겠소?]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귀 뒤의 짐더미에서 도끼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의 앞에 던져 주었다.

    그리고는 남자의 세계를 떠났다.

    남자는 노인이 주고 간 도끼를 주워들고 이번에는 도끼질을 시작했다.

    도끼 쪽이 능률이 훨씬 좋았다.

    남자가 수천, 수만 번 주먹질을 하며 파낸 깊이를 파내는 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보는 사람마저 따분해 질 정도의 지독한 반복.

    도끼질을 하고, 자고, 사과를 먹고.

    그렇게 반복이 되며 점점 깎여 나가는 나무였지만, 남자가 말한 목표.

    ‘무너뜨린다.’에 도달하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남자가 가격하고 있는 나무의 밑동은 단순히 크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남자의 세계에는 나무와 남자밖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비교하기가 어려웠지만 남자 수천 명이 손을 잡고 둘러싸더라도 다 감싸기 어려울 정도의 크기였다.

    남자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계속 나무의 밑동에 도끼질을 하기만 했다.

    그렇게 수일이 지나다가-

    [회고를 종료합니다.]

    [일정 시점에 달하면 회고가 재개됩니다.]

    강서의 시야가 돌아왔다.

    '...'

    결말을 보지 못해 밍숭맹숭한 기분인 것도 있었지만, 강서에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상태창에서 이야기한 것은 분명 <회고>.

    회고라는 것은 기억을 되돌아보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강서의 기억 속에는 그 장면들이 없었다. 완벽히 처음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건 상식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수번을, 많으면 수십 수백 번을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하나의 인생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을 집어낼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직접 보는 순간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재개된다라...’

    우선 끝까지 보아야 뭘 추측을 하든 말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지금 당장에 해야 할 일이 있기도 했고.

    “도대체...”

    갈진혁의 목소리가 강서에게 물어왔다.

    무엇을 묻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에서 갈진혁의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서에게는 편안하게 대화나 주고받을 여유가 없었다. 대밀물을 가른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잠시만요.”

    갈진혁의 물음에 가볍게 손을 펴 보이고 강서가 한 일은, 눈앞을 덮고 있는 무수한 양의 상태창들을 치우는 것이었다.

    강서로서도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메시지들이 눈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신의 격이 한층 격상됩니다. 해당세계에 대한 개연성을 100%확보합니다.]

    [<오도아게르의 공간절삭>의 강제시행으로 개연성이 15% 소모되었습니다.]

    [해당 세계에 남은 개연성 : 85%]

    [마법의 구속이 해제됩니다.]

    [보유스킬 1,093,701개의 스킬 中 143,003개의 스킬이 해방됩니다.]

    .

    .

    .

    .

    .

    강서는 눈앞에 뜬 메시지 창을 모두 치워버렸다. 꽤나 중요해 보이는 것들도 몇 가지가 있었지만,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강서는 갈진혁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어 갈진혁에게 돌려주었다.

    “여기요. 검이 괜찮네요.”

    “미리 준비를 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이게 저 대밀물 해결한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거든요."

    "...응?"

    끝난 게 아니라는 강서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갈진혁이 정신을 차리며 반문했다.

    끝난 게 아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갈진혁도 곧 알 수 있었다.

    강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대밀물이 강제로 소멸됩니다.]

    [에너지의 갑작스러운 소멸로 적사장(赤沙場)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재편성된 신전의 지령이 뒤이어 나타났다.

    [지역: 해안도시 포고숄]

    [퀘스트내용: 대밀물이 소멸되고 <적사장(赤沙場)>이 드러났습니다. 적사장에서 다시 나타난 크라켄을 처치하십시오.]

    [퀘스트를 위한 마지막 지령이 활성화 됩니다.]

    *

    [제4지령: 적사장(白沙場)을 점령하라.]

    [내용: 썰물이 일어나며 드러난 핏빛 모래사장의 주인을 처치하십시오.]

    [보상: 개인보상, 퀘스트 클리에 [남은시간: 24:00:00]

    *

    메시지가 나타남과 동시에 아직 차원문을 넘어가지 않은 헌터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크라켄이 다시 나타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들이 침음성을 흘린 이유는 크라켄이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크라켄이 다시 나타난 것은 대썰물이 다시 출물한 시점에서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다만 그들이 그렇게 고개를 쳐들며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히 말해-

    크라켄의 크기가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저 크기가...”

    포고숄 공략당시의 공략단과, 지금 공략을 나가있는 제3문 <아단>의 공략단의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5년 전의 고위 헌터가 대부분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

    그래서 이 자리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 갈진혁을 제외하고는 크라켄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크기의 고가 하늘에 닿았고 중심으로부터 반경 1Km 정도를 몸으로 다 덮을 만큼 거대한 괴수였다.’

    라고 남겨놓은 공략단의 일지에서 그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상상해보았을 뿐.

    그런데 그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한 크기를 직접 목도하니 의지 밖의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에 갈진혁이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그래도 작아졌네.”

    갈진혁의 말에 이제는 거의 기괴한 표정을 짓는 헌터들을 뒤로한 채, 강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서의 기억 속 크라켄도 저것보다 컸다.

    “아마 회복중인 것 같습니다. 원래의 힘을 다 회복하지는 못했네요.”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었는데 회복이라니...”

    갈진혁은 포고숄의 공략을 성공했던 때를 떠올렸다.

    2년 전 크라켄의 그 거대한 머리를 공진호가 반으로 가른 것을 갈진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멀쩡히 회복해 다시 나타난 크라켄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던 갈진혁은 문득 공략단장 공진호가 했던 한마디가 떠올랐다.

    그가 크라켄의 머리를 가르며 탐탁지 않은 표정과 함께 내뱉은 한마디.

    [신창 불그를 찾아야 하는데...]

    그때 갈진혁은 그 신창 불그라는 것에 대해 물었지만 공진호는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았다.

    다만-

    [그런 무기가 있다. 잘만 쓰면 크라켄을 소멸시켜버릴.]

    한마디를 남겼을 뿐.

    크라켄을 단번에 소멸시킬 수 있는 무기.

    그때는 그 ‘소멸’이라는 말이 와 닿지 않았지만, 크라켄이 다시 나타난 지금 갈진혁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크라켄의 머리를 가르는 것은 임시방편이었고, 그 ‘신창 불그’라는 것을 찾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크라켄은 부활할 것임을.

    ‘그래서 그렇게 포고숄을 뒤지고 다녔구나.’

    실제로 크라켄을 죽인 뒤, 제3문 공략을 떠나기 전까지.

    공진호는 길드 ‘길잡이’에서 포고숄의 탐색을 주로 맡아보는 팀을 구성해 운영했다.

    “신창 불그...”

    하지만 결국 길잡이는 2년간 도시 전체를 뒤져도 창을 찾지 못했다.

    그 창을 찾았다면 해결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괜한 아쉬움에 중얼거린 갈진혁.

    “네? 뭐라고요?”

    "...?"

    그때 갑자기, 갈진혁의 말에 강서가 반문을 했다.

    “그 예전에 공략단장이 신창 불그라고 크라켄 잡는데 도움이 되는 창을...”

    예상치 못한 강서의 반응에 갈진혁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얼버무리려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면서 두 명의 인영이 강서 옆에 착륙했다.

    한명은 갈진혁에게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상아탑의 총무였다. 그는 어딘가 피폐해 보이는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보는 소년이었는데, 갈진혁은 이상하게도 둘 중 소년의 쪽으로 시선이 계속 갔다.

    갈진혁의 취향이 그런 쪽(?)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소년의 손에 쥐어져 있는 창 한 자루가-

    “아, 불그 아시는구나.”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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