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소소한 꿀팁방송-104화 (104/191)

104화. < ep23. 포고숄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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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형 진짜 안 왔어.”

갈진혁이 중얼거렸다. 그건 분명 끝까지 오지 않은 강서를 칭하는 것이리라.

그의 온 몸은 포고숄의 청수(靑水)와 찐득한 흑색 점액질덩어리가 가득 묻어있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으며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조금의 화상흔적도 있었다.

흑사장(黑沙場)의 주인. 마수 카라스를 잡느라 생긴 흔적들이었다. 카라스는 본래 B급 헌터 한명이 탱킹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

그나마 길잡이의 그 갈진혁이기에 간신히 혼자서 버텨낸 것이었지, 아마 일반적인 B급 헌터 였으면 탱킹이고 뭐고 10초면 절명(絶命)을 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갈진혁은 피해를 감수하고 혼자서 탱킹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섣부르게 호흡을 맡겼다가는 괜히 송장을 쳤을지도, 자칫하면 자신도 관속에 박힐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훨씬 힘드네...’

갈진혁의 예상만큼 <마수: 카라스>를 잡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참석해서 같이 싸우리라 생각한 강서가 오지 않기도 했고.

공략당시를 생각하면 옛 저녁 해치웠어야 했지만, 부차적인 것들을 모두 합쳐 마수 카라스를 잡아내는 데에 반나절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배는 길어진 시간이었다. 공략단에 직접 참여했었기 때문에 그것은 누구보다도 갈진혁이 잘 알았다.

물론 공진호의 유무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기본적인 전력에서의 차이가 너무났다. 탱킹을 어떻게든 갈진혁이 버티더라도 그에게 어울려줄 딜러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각 분야에서 수위에 드는 헌터란 헌터는 모두 공략단에 참여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에 비하면 ‘전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수준.

축구로 따지면 1부 리그를 제외하고 국가대표를 뽑은 격이랄까.

그나마도 강서가 알려준 <진동타격>이 아니었다면 아마 3시간은 더 걸렸으리라.

한숨을 내쉰 갈진혁은 눈앞에 있는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마수: 카라스>를 처치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를 위한 제2지령을 클리어합니다.]

[제3지령까지 남은 시간 23:58:12]

제 3지령.

필히 그것은 백사장(白沙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흑사장을 막 클리어한 시점이기에 갈진혁은 직감할 수 있었다.

‘못 깬다.’

지금 수준으로 백사장을 클리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흑사장이 일찍 열린 것처럼 백사장의 열리는 시간도 당겨진다면 더더욱 그럴뿐더러, 24시간 동안의 휴식시간을 모두 주더라도 지금의 전력으로 백사장을 깨는 것은 불가능 했다.

죽었다 깨어난 사람이 있다면 또 모를까.

***

[포고숄, 이대로 괜찮은가.]

[연이어 일어난 사고(事故).]

[길잡이 14시간의 사투만에 간신히 흑사장해결.]

흑사장은 무사히 클리어되었지만, 사람들은 안도하기보단 우려를 표했다.

-갈진혁이 개 열심히 하긴 하던데...백사장은...

-그러게 14시간이면 백사장은 불가능한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녹사장과 흑사장 간의 갭만큼. 흑사장과 백사장 사이에도 난이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

-거 뭐 그냥 한번 실패할 수도 있는 거 아님?

ㄴ백밀물을 그대로 처 맞는다고? 미친 건가?

ㄴ미쳤습니까? 휴먼?

-백밀물은 공략단 때도 한 번도 없었음.

-ㄹㅇ이건 무뇌충 티 팍팍 흩뿌렸자너;;

-청수에 빠지면 뒤져요.

게다가 백사장 클리어하지 못했을 때 몰려오는 대밀물, 일명 <백밀물>은 공략단이 처음 포고숄을 공략할 때에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시도할 때 마다 적어도 백사장은 클리어 했으니까.

4가지 형색의 모래사장(沙場)을 클리어 할 때마다 대밀물이 약화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마지막 모래사장. 적사장(赤沙場) 단계에서의 대밀물인 <적밀물>은 비교적 약한 수준이었다. 포고숄의 하층을 한 번 덮고 빠져나가는 수준.

물질적인 피해는 피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인명피해는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것보다 더 큰 수준의 대밀물. 얼마만큼의 피해를 가져올지 감도 오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마 포고숄에 존재하는 그 어떤 헌터도 그 피해를 가늠하지 못하리라.

딱 한사람만 빼고.

[<마수: 카라스>를 처치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를 위한 제2지령을 클리어합니다.]

다행히 강서의 생각대로 해안가의 헌터들은 흑사장을 클리어 해냈다. 강서는 흑사장을 클리어하는 동안 포고숄 상층부의 동해 절벽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갈진혁과 헤어진 바로 그 자리였다.

<개연성>이라는 것의 발생을 막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또 그 <개연성 초과>로 무언가 패널티를 받을지도 몰랐지만. 강서는 사람들을 믿었다. 흑사장 정도(?)는 얼마든지 클리어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전에도 한 적 있다고 했으니까 징크스도 알고 있을 거고...그러면 크게 어렵지는 않지.’

강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털었다.

갈진혁과 무리들이 흑사장을 클리어하는 동안 강서가 한일은 딱 한가지였다.

8중 금제의 첫 단추를 풀지 말지에 대한 고민.

갈진혁이 가고 나서 혼자 고민하던 강서는 문득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프리치tv의 익명게시판.

하린의 집에서는 항상 로그인이 되어 있었지만, 새로 발급받은 강서의 스마트워치에는 트프리치tv와의 아이디연동이 되어있지 않았다.

때문에 자연스레 아이디가 없어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익명게시판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강서는 먼지 익명게시판을 둘러보며 게시판의 분위기를 보았다.

[아ㅋㅋㅋ본인 방금 A급 헌터되는 상상함ㅋㅋㅋㅋㅅㅌㅊ?]

[흑사장 간신히 깸;; 포고숄 멸망 각]

[인증]

여러 게시글들이 있었지만 ‘본인~’으로 시작하는 게시글의 댓글이 가장 많았다. 강서는 그 글의 문체를 따라 글을 하나 올렸다.

제목: 아ㅋㅋㅋ귀본인 방금 8중 금제 걸린 상상함ㅋㅋㅋㅋㅅㅌㅊ?

글쓴이 : O O

본인이 건 금제인데 푸는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음

근데 안 풀면 포고숄 멸망각 아ㅋㅋㅋㅋ

우선 바지만 입은 애늙은이 쉑 찬성에 한 표ㅋㅋㅋㅋㅋ

하지만 어림도 없지ㅋㅋㅋ 투표는 만19세부터

의견이랑 투표 고고

'흐음...'

우선 양식에 맞추어(?) 글을 작성한 강서는 댓글을 기다릴 양으로 잠시 다른 글들을 둘러보려 했다. 하지만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강서의 글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오."

-ㅋㅋㅋㅋ미친 당연히 풀어야지 ㅅㅂ 3중도 아니고 8중이라니

-자체제약 플레이 미쳐 따리;;

양식에 정확히 맞추어 쓴 글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강서의 글은 순식간에 여러 댓글을 달고 익명게시판내의 베스트 글로 올라갔다.

-엌ㅋㅋㅋ본인은 그런 거 상상도 못함. 8중금제라니

-8중 금제면 ㅅㅂㅋㅋㅋㅋ숨은 쉴 수 있냐 일단 하나 풀고 숨부터 쉬자

ㄴ숨쉬기에 금제를 걸어 버리자너;;

-본인은 사실 지구에서 8000년 째 살고 있는 고인물 쉑임. 근데 난 반대;; 본인이 일진짱 먹어야 됨;;

ㄴㅋㅋㅋㅋㅋ듀오하면 세계정복 ㅆ가능

ㄴ환장듀옼ㅋㅋㅋㅋ

강서는 우선 사이트를 닫았다. 마지막에 어느 정도 사람들의 댓글을 달고 나서 찬성과 반대를 계수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할 일이 있었다.

‘분명...백사장부터는 어려울 거라고 했지.’

귀족회의실을 방문하는 중에 갈진혁이 말했다. 헌터들의 현재전력으로는 백사장을 클리어할지 확신할 수 없고, 사실 상 불가능이라 보는 게 맞다고.

그것 때문에 굳이 갈진혁이 귀족회의를 방문한 것이었다. 공진호가 갈진혁에게 말해둔 ‘해결책’이 바로 제왕의식이었으니까.

하지만 갈진혁은 제왕의식을 시행하지 못하고 다시 흑사장을 막으러 내려갔다.

그건 순전히 강서의 의견 때문이었다. 강서의 생각에는 단순히 ‘제왕의식’을 펼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었으니까.

물론 어림잡아 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미룬 일이니 만큼 강서는 책임질 생각이 있었다.

흑사장이 마무리 된 지금 강서가 다시 걸음을 옮겨 귀족 회의실로 향한 게 바로 그 방증이리라.

끼익-

“생각보다 빠르게 왔군. 뭔가 더 있는 줄 알았는데.”

“흑사장이 열린 게 예정보다 빨랐습니다.”

“뭐 그렇긴 하지. 그럼 우린 시작하도록 하겠다.”

귀족들은 강서의 끄덕임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강서는 귀족회의실을 떠나기 전,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 까지만 제왕의식 시행을 미뤄달라고 이야기 해 둔 상태였다.

강서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제왕의식의 재개를 의미했다.

평균신장 3M의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신전에 온 듯한 장관.

인간의 형체라기보다는 신상(神像)에 더 가까워 보이는 그들의 거체가 하나씩 귀족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귀족회의실에서 나선 모든 귀족들의 손에는 물건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었다. 새 하얀색으로 물들인 그것들의 정체는 바로 의식용으로 가져온 제기(祭器).

제왕 의식들 위한 제기들이었다.

제기를 들고 귀족들이 향한 곳은 아이러니 하게도 강서가 있던 동쪽 해안절벽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해안 절벽에는-

“전하, 열 한 번째 제왕의식을 거행하기로 준비했나이다.”

10살 남짓한 자그마한 소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모두 그 소년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귀족들의 입에서 나온 ‘전하’라는 말에서 누구나 소년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귀족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

무덤덤했지만 단순한 표정은 아니었다. 눈에는 어렴풋이 비추이는 그것은 분명 ‘삶에 대한 미련’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알아차리려 하지 않았다. 그의 고귀한 희생은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귀족들이 고개를 다시 들고 해안절벽에 제기들을 늘어놓는 동안. 강서는 천천히 자그마한 왕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세요.”

소년의 목소리는 왕의 것이라기에는 너무 앳된 것이었다. 위엄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당연한 일이었다. 포고숄에서 <왕>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은 이곳에 있는 귀족들 밖에 없었다.

귀족들이 일부러 왕의 존재를 숨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알려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것. 계층 간의 교류도 없다시피 하다보니 자연스레 비밀이 된 것이었다.

실제로 하층과 중층에 사는 사냥꾼이나 평민들은 100여 년 전 창 한 자루만 들고 바다로 홀로 걸어 들어간 <아르고르>를 마지막 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숨겨져서 희생을 위해 예비된 왕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왕의 카리스마를 이 소년에게서 느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냥 이것저것 조금 아는 사람입니다.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할 말이요?”

“혹시 제왕의식(祭王儀式)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제왕의식...”

강서의 질문에 소년은 잠시 생각을 하다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를 제물로 바치는 거죠. 포고숄의 초대왕 <아르고르>께서 그랬던 것처럼. 저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리는 거에요. 그러면 이 포고숄에 10년간은 대밀물과 대썰물이 일어나지 않겠죠. 전에도 그랬으니.”

“잘 알고 계시네요.”

“...전 그걸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그 이계인(異界人)들이 크라켄을 물리쳤다기에 기대했는데 결국...”

소년이 말한 것처럼 제왕의식이란 왕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선왕의 유지를 잇는다는 명목 하에 핏줄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효과가 있었기에, 포고숄을 구하기 위한다는 것보다 더 유의미한 명분은 없었기에. 이렇게 11번째 제왕의식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몬스터들이, 마수들이 득시글거릴 바다 아래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그 막막한 대해(大海)에서 스러지는 것. 그것이 소년의 역할이었다.

복잡한 표정의 소년에게 강서는 의미심장 한마디를 건네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닙니다.>”

"...?"

“이 말을 기억하세요. 그럼 살 수 있습니다.”

강서가 한 걸음 물러나자 귀족들이 제기에서 손을 놓고 자리를 잡았다.

"..."

제사의 중심을 맡은 귀족이 강서를 내려다보더니 의식용 양피지를 꺼내들고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선왕 아르고르께서 남기신 유지를 따라 바다의 수호를....”

따분하기 그지없는 허례가 마무리 되고 양피지를 내려놓았다.

모든 귀족이 자신의 앞에 있는 제기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소년.

타이밍이랄 것도 없었다. 소년이 절벽 아래로 스러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풍당도, 풍덩도 아닌 애매한 물소리가 울리며 귀족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귀족들의 눈에 보인 것은-

"...?"

“아니 저..."

“신성한 의식을...”

죽음의 바다라고도 칭하는 청수를 향해, 맨몸으로 뛰어 드는 강서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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