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ep23. 포고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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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갈진혁이 귀족회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포고숄의 산꼭대기인 <천루>라는 곳에서 회의를 한다는 것과 포고숄의 국정을 그들이 도맡아 본다는 것뿐이었다.
포고숄을 공략하던 3년 동안에도 공진호는 그 어떤 사유로도 헌터들과 귀족들이 마주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귀족들의 얼굴들을 본 것은 오직 공진호 뿐.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그들을 왜 보지 못하게 했는지는 갈진혁으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지형의 높이에 따라 상,중,하층으로 나뉘는 포고숄의 특성과 그들이 상층에 거주하는 것을 비추어 보았을 때, 꽤나 권위적이고 권력에 익숙한 인물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리고 그런 갈진혁의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본래 이계민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본인은 그리 달갑지 않았소. 우리 선대 왕께서 남기신 유지를 흐트러트릴 뿐 아니라,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 자체가 우리 포고숄 왕국의 긍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2년간은 크라켄의 몸부림을 막지 않았소?”
“그리고 방금 대썰물이 또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크라켄을 잡았다고 한 그것이 사실 거짓말 이었던 거요.”
"흐흠..."
귀족회의실에 강서와 갈진혁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미 열띤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실상은 토론이라기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는 문책이 대화의 중심이었지만.
“어쨌든, 이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대왕께서 남기신 유지를 우리가 그대로 잇는 수 밖에요. 아래에 있는 우민들을...”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강서와 갈진혁의 기척을 느낀 것인지 대화를 멈추었다. 그리고 시선을 옮겨 갈진혁과 강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갈진혁도 그들을 보며-
“오우야...”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크네...”
그들의 몸집이 모두 3m에 달하는 거인들이었기 때문.
포고숄 주민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포고숄의 주민들은 평균키가 160정도로 현대인들보다 조금 작은 수준.
귀족이라 불리는 이들만이 거대한 몸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갈진혁과 강서를 향한 그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대썰물이 일어난 작금의 상황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래 공진호는 크라켄을 잡는다는 미명하에 귀족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었다.
그렇게 협조하에 이루어진 크라켄 사냥에서 분명 공진호는 크라켄을 처치했노라라고 그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크라켄의 증거 중 하나 대썰물이 다시 나타나니 공진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 분노가 대리자인 갈진혁에게 이어진 것이었다.
“낯짝이 너무 뻔뻔하군. 지금 당장 무릎을 조아리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에 공진호의 대리인이라면 지금이게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을 텐데.”
“너희들은 크라켄을 잡겠다며 두 번의 대밀물을 그대로 일으켰다. 그때마다 하층민들을 중층으로 대피시켰지. 그게 얼마나 기존의 질서를 흐트러트렸는지 아나?”
포고숄 공략당시 일어났던 두 번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었다. 공진호의 말에 따르면 실패가 아니라 ‘계획적 측정’이라고 했지만. 공략단은 크라켄을 잡기위해 대썰물을 3번 겪었고 그 중 두 번은 대밀물을 그대로 일으켰다.
그래도 백사장 까지 클리어해 많이 약화된 <대 밀물>이었지만, 귀족이 말한 것처럼 <대 밀물>은 포고숄의 <하층>을 전부 덮을 정도로 높은 파도를 몰고왔다.
그 과정에서 귀족이 말하는 질서는 바로 <계층구분>이었다.
포고숄에는 사는 지역에 따라 계층이 있었는데, 가장 하층에서는 빈민이, 그리고 중층에는 헌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냥꾼>과 몇 몇 대 상인들이, 그리고 상층에는 오직 귀족들만이 살았다.
계층간의 경계에는 야트막한 벽이 있었고 이동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층에 살아야 할 인물들이 잠시나마 중층에 올라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귀족의 질책에도 갈진혁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본래 공진호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본적이 없었지만, 적어도 이 상황에서 그가 사과를 할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
“등치는 산만한 양반들이 왜이리 속이 좁아. 사람죽은 것도 아니고 질서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어깨를 으쓱인 갈진혁은 오히려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 여기 뭔가 대책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까지 아주 뻔뻔하기 그지없군. 공진호라는 작자가 돌아오면 전하게나. 이제 협조는 없다고.”
갈진혁을 흘겨본 귀족은 다른 귀족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열한 번째 제왕의식을 발의합니다.”
“찬성합니다.”
“찬성하네.”
그러자 다른 귀족들도 하나둘씩 <제왕의식>에 찬성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자리한 모든 귀족들이 찬성의 의미를 내비치자 처음 입을 연 귀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장일치로 제왕의식을...”
갈진혁은 제왕의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공진호가 말했던 <대책>이라는 것이 이 <제왕의식>이겠거니 하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을 뿐.
공진호가 분명 ‘고까워하면서도 하긴 할거다.’라고 이야기 했었으니까.
그때, 귀족의 말을 막아서는 목소리가 있었다.
“잠시만요.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강서였다.
***
귀족 회의실에서 나오며 갈진혁이 강서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제왕의식이라는 게 뭐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 뒤로 강서는 귀족들을 설득했다.
3M나 되는 귀족들의 시선들을 한 몸에 받으며 강서는 여유롭게 이야기를 꺼낸 강서는 결국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제왕의식은 미뤄지게 되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갈진혁으로서는 짐작할 방도가 없었다.
제왕의식에 대해 묻는 갈진혁을 향해 강서는 되물었다.
“음...포고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그냥 섬도시이고, 밀물과 썰물이 있다 정도.계층이나 문화적인 부분 조금이랑.”
아발론제국의 경우 이미 많은 부분 교류가 일어나 사실상 모르는 정보가 없을 정도였지만, 포고숄은 공략을 마치고 아직 2년이 채 되지 않은 곳이었다.
오히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더 이상하리라.
“포고숄은 원래 조금 더 큰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원래 크기보다는 많이 작죠.”
“응, 그건 알고 있어. 100년 전에는 더 컸었다고. 근데 여기 역사기록은 많이 안 남아 있어서 얼마나 컸는지는 다 모르더라고..”
게다가 갈진혁의 말대로 포고숄의 역사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층에 사는 평, 빈민들의 경우에는 100년 안쪽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중층에 산다는 대상인과 사냥꾼들은 조금 더 알고 있기는 했으나 100년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원주민이 알지 못하는 데 헌터가 그보다 더 알 수는 없는 노릇.
갈진혁의 지식도 딱 그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음...포고숄도 원래는 아발론 제국 정도 되었습니다.”
“....뭐?”
강서의 말에 갈진혁이 반문했다.
리치왕이 죽고 나서, 리치왕이 점령했던 많은 왕국들의 영토는 소유자 없는 땅이 되었다.
당연히 유일하게 남은 제국인 아발론 제국이 그것들을 모두 점령하게 되었고, 아발론제국의 현재 영토는 사실상 ‘대륙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크기였다.
하지만 지금 갈진혁이 밟고 있는 이 땅 포고숄은 해봐야 한국의 제주도 크기의 섬.
단순한 크기차이로 생각하기에는 갭이 너무 컸다. 당장 상상하기로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정도.
“그 정도면 100배가 넘지 않아? 가늠도 잘 안되는데...”
“포고숄도 원래는 아발론처럼 대륙전체를 점령하던 왕국이었습니다. 굉장히 번성했었고, 딱히 대적자도 없었던 국가였죠.”
강서는 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이 향하는 방향은 서해안(西海岸)의 반대인 동해 <해식절벽> 쪽이었다
동고서저의 지형을 가진 포고숄의 특성상. 서해안은 모두 하층에 존재했지만 동쪽 해식절벽을 따라 형성된 동해안의 일부는 상층에 존재하기도 했다.
“그렇게 번영하던 어느 날 포고숄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원인모를 이유로, 또 엄청난 속도로 대썰물과 대밀물이 일어나기 시작한 거죠.”
"..."
“그 원인이 크라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대륙의 반이 잠겨있을 때였습니다.”
강서의 목소리에는 아련함이 서려있었다. 마치 과거를 떠올리듯.
“포고숄에서는 원인을 알아차리자마자 군대를 편성해 크라켄을 토벌하려 했지만, 신격을 얻은 존재를 물리치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척의 배가 파편으로 나뉘었고 대밀물은 파도와 함께 대륙을 더 빠르게 집어삼켰죠.”
해식절벽 앞에 도달한 강서는 절벽위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때 모두가 만류하는 가운데 포고숄의 왕이 창 한 자루를 들고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자신이 크라켄을 처치해 보이겠다고요.”
“그건 알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
갈진혁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라를 지킨 선왕의 이야기.
창 한 자루를 들고 크라켄을 잡기 위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위대한 영웅왕.
그 왕을 기리기 위해 지금까지도 포고숄은 다음 왕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사냥꾼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근데 그게 제왕의식이랑 무슨 상관이야?”
“사실 지난 100년간 왕들...”
꾸르릉-
그 순간, 익숙한 굉음이 갈진혁의 귓가에 꽂혀 들어왔다. 제왕의식에 대해 설명하려던 강서의 목소리도 멈추었다.
동시에 나타나는 메시지.
[지역: 해안도시 포고숄]
[퀘스트내용: 대밀물과 대썰물의 원인이던 <신수:크라켄>을 처치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대썰물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후 찾아올 대밀물로부터 해안도시 포고숄을 지키십시오.]
[퀘스트를 위한 두 번째 지령이 활성화 됩니다.]
*
[제2지령: 흑사장(黑沙場)을 점령하라.]
[내용: 썰물이 일어나며 드러난 검은빛 모래사장의 주인을 처치하십시오. ]
[보상: 개인보상, 제2지령]
[남은시간: 24:00:00]
[※지령을 성공할 때마다 <대밀물>의 위력이 약화됩니다.]
*
갈진혁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흑사장. 공략당시에는 하루씩 텀을 두고 나타났었다. 정확히 24시간의 쉬는 시간이 있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갈진혁은 스마트 워치의 시간을 확인했다.
‘3시간.’
단 3시간이었다. 녹사장이 클리어 된 뒤 3시간의 텀을 누고 흑사장이 나타난 것. 갈진혁의 몸은 이미 서해안 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말이 되냐...”
변수에 덮친 변수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공략단에서도 이정도의 변수는 일어난 적이 없었다.
흑사장 부터는 갈진혁도 직접 참여해야하는 정도의 난이도. 대충 부딪혀서 될 것이 아니었다.
갈진혁은 발을 떼며 강서를 바라보았다. 녹사장에서 강서의 수혜를 톡톡히 본 만큼. 이번에도 강서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
“제왕의식 이야기는 이거 마치고 나서 마저 해주고...흑사장은 좀 빡센데. 도와줄 거지?”
사실 그건 물음이라기보다는 출발하자는 신호의 의미였다. 갈진혁은 강서가 이번에도 당연히 같이 갈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저는 조금 이따가 가볼게요. 확인할 게 좀 있어서.”
"...?"
갈진혁의 예상과 다르게 강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흑사장에서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
“먼저, 가보세요.”
“왜...아니 지금....아이씨.”
갈진혁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외쳤다.
“꼭 와! 이번에도 뭔가 필요해!”
강서는 고개를 끄덕여 갈진혁을 보냈다. 갈진혁은 전력으로 움직여 강서와 함께 있던 자리를 떴다.
강서는 갈진혁이 자리를 뜨고나서 중얼거렸다.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갈진혁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의 강서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당연히 같이 갔을 테니까.
사실 강서도 흑사장에 가려했다.
[과도한 개연성 초과로 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됩니다.]
강서의 눈앞에 또다시 나타난 그 ‘개연성’이라는 단어만 아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