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ep23. 포고숄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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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나타난 대썰물.
크라켄을 잡음으로써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대썰물이 다시 나타나니 사람들은 가장먼저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물론 차원문 너머의 세상이니 실제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헌터가 활동하는 무대 중 하나라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대썰물 크라켄 부활?]
[없어진 줄 알았던 대썰물 만 2년 만에 다시 부활해.]
[나타난 녹사장. 공략소 거짓말했나?]
만 하루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도 수많은 기사들이 올라오며 이계공략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왔다.
공략단의 단장인 ‘공진호’가 부재한 시점.
공략단을 물어뜯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시기였다. 제3문인 <아단공략>에 참여하지 않은 거대 길드의 길드장들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바로 달려들어 여론을 주도하려했다.
기존에 진행되던 공략단의 구성방식 및 지금의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헌터협회에서 이계공략에 관한 모든 것들을 공진호에게 일임하면서 사실상 공략의 구성은 공진호가 정한대로 진행되었는데, 공진호는 다른 의견들을 일절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했다.
물론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할 수 없을 만큼 좋았지만 거대길드들은 자신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부분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런 불만들을 토대로하여 시작된 공략소 물어뜯기.
하지만 공진호의 대리로 공략소의 총괄을 맡아보게 된 길드 ‘길잡이’의 돌격대장 갈진혁도 그리 호락호락한 사내는 아니었다.
쏟아지는 의혹기사에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해명 기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계는 본래 미지의 세계’라는 프레임을 구축하고 ‘30분 만에 녹사장이 클리어 된 점’, ‘공략단이 돌아오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등을 부각시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이계공략소 이미 발빠르게 대처 중]
[이계공략소, “본래 ‘이계’ 자체가 예측할 수 없는 세계 공략소의 역할은 그것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략소 측이 ‘이계는 본래 미지의 세계’라는 프레임을 구축하는 데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것은 공략소 측에서도 예측하지 못했던 <녹사장>의 사건이었다.
포고숄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 창안 된 것도 모자라, 30분 만에 녹사장을 클리어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한 것.
그것을 사람들은 녹사장 사건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녹사장 사건의 주인공은-
더 설명할 것도 없이 강서였다.
녹사장 풍물놀이 남.
그건 녹사장에서 <진동타격>이라는 새로운 사냥방법을 선보인 강서에게 사람들이 붙여준 새로운 이름이었다.
제목: 녹사장 풍물놀이 봤냐
장관인지 가관인지ㅋㅋㅋㅋㅋ 처음 알려준 그 양반은 잘하더만 어째 베테랑이란 헌터들이 치니까 꽹과리소리만 나냐.
-누구는 촉수 처 맞아도 방패만 계속치더라
ㄴㅋㅋㅋㅋㅋㅋ주객전도 수준ㅋㅋㅋㅋ
ㄴ어허 취향 존중 하게나.
-녹사장 환장풍물패ㅋㅋㅋㅋㅋㅋ
정작 풍물놀이 같다고 놀림을 받은 건 강서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그런 광경을 만들어낸 강서에게 그런 칭호가 붙은 것.
녹사장에서 헌터들이 방패를 치는 모습이 화제가 된 것은 단순히 그 장면이 웃기기만 해서가 아니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실제로 조금씩 스토모스가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간혹 비슷한 주파수가 맞아 스토모스의 균형기관에 실제로 영향을 준 것이다.
스토모스가 반응한 것을 본 헌터들은 더 열심히 방패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몇 마리의 스토모스에게 구토를 선사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 장소에서 방송을 하고 있던 던선생을 통해 그 장면들이 모두 생중계되었고, 사람들은 그 웃기면서도 놀라운 광경에 시선을 모은 것이었다.
제목: 녹사장 대 환장파티
그럴 거면 꽹과리를 아예 가져오지 왜 애꿎은 방패랑 검으로 그러는 거임ㅋㅋㅋㅋㅋ
-이거 ㄹㅇ조만간 아이템 하나 나올 듯
-A급 아이템 킹과리.
ㄴ착용제한: 흥이 넘쳐야함
ㄴㅋㅋㅋㅋㅋ흥은ㅅㅂㅋㅋㅋㅋ
ㄴ???: 얼쑤!
-근데 진짜 효과는 있더라. 나중에 대강 감잡은 사람들은 서너번 두드리면 한 번은 반응하는 것 같던데.
강서가 소개한 <진동타격>방식은 공략소에서 정식으로 사냥법을 인정하며 더욱 화제를 모았다.
공략소에서 사냥법이 공식적으로 사용가능하다 인정을 한 뒤, <대썰물>이 갑자기 발생할 당시 자리를 비웠던 헌터들이 소식을 듣고 다시 포고숄을 찾으며 <진동타격>의 효과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칭찬했기 때문.
헌터들의 입장에서 강서가 소개한 진동타격 방식을 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존방식을 유지하는 데에 들어가는 부담 때문이었다.
본래 검에 속성을 매기는 것은 대장장이 클래스 중에서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급 스킬이었다.
그 가격이 비쌀뿐더러, 포고숄에 출입하는 헌터들 모두 화염속성으로 하나씩은 구매했으니 품귀현상이 일어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
나중에는 돈이 있어도 구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대기해야 구매할 수 있었으니 그것이 헌터들에게 얼마나 부담을 주었을지는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게다가 인챈트된 검도 내구도가 있었기 때문이 반(半) 소모품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부러지지 않는 한 다시 회복은 가능했지만, 어디 사냥이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일 리가 있겠는가. 이따금씩 부러진 검을 들고 대장간을 찾는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새로운 무기를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어떤 특별한 무기도 필요 없고, 그 몬스터가 가진 고유의 특정 주파수에 대한 감을 잡기만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사냥법.
그건 가히 혁명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궁금증이 따랐다.
[녹사장 풍물놀이남 그는 누구인가?]
[새로운 사냥법 ‘진동타격’]
[한 번도 수면 위로 드러난 적 없었던 헌터.]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 중 하나. 호기심.
사람들은 포고숄에 ‘혁명’을 일으킨 ‘녹사장 풍물놀이남’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래도 포고숄에 출입할만한 헌터라면 각 국가에서 어느 궤도 이상에 오른 헌터라는 것을 의미했다.
범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는 아니어도, 한 국가 내에서는, 적어도 한 도시에서는 자랑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위치.
-야 근데 녹사장 풍물놀이남 ㄹㅇ신인이야?
ㄴ이건 또 뭔 개소리. 무명 B급보다 시작부터 B급이 더 말이 안됨;;
-그럼 왜 아무도 모르냐...ㄹㅇ어디서 비밀리에 키운 헌터인건가.
하지만 사람들은 ‘녹사장 풍물놀이남’의 얼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헌터들의 사생활까지 낱낱이 추적해 다니는 일명 ‘헌터빠’들도 그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무명(無名).
녹사장 풍물놀이남이라는 명칭이외에 그 어떤 신상도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강서가 항상 판다가면을 쓰고 다녔고, 그의 실제 얼굴을 본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그 손에 꼽는 사람들은 죄다 <공략단>에 참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감을 잡고 있었다.
-야 근데 목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냐?
그의 얼굴은 모르더라도 그의 목소리를.
-근데 녹사장 사건 보면 판다 생각남ㅋㅋㅋㅋ
ㄴ이거 ㄹㅇㅋㅋㅋㅋ그립다.
그가 벌였던 많은 충격적인 사건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까 판다랑 목소리가 좀 비슷한 것 같은데.
ㄴ에이 판다 행색하며 지가 판다라고 나온 놈들이 몇이었는데. 다 구라였잖아.
ㄴ한물간 판다떡밥이지. 고인 능욕하지 마라 저 사람은 자기가 판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강서가 사라진 5년간. 판다가면을 쓰고 강서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자기가 판다인양 행색하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몇 명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빨랐을 테지만.
사람들은 어렴풋이 강서의 모습에서 ‘판다’를 떠올리고 있었다.
***
"..."
공략단장인 공진호가 부재하고 있는 지금.
이계공략소의 총괄 진두지휘를 맡고 있는 사람은 길드 길잡이의 돌격대장이자 B급 헌터인 갈진혁이었다.
그는 지금 상아탑에 방문해 있었다.
본래 거대길드의 우두머리들 간의 직접적인 왕래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길드간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들의 행위 하나가 찌라시가 되고, 그들의 말 한마디가 이슈를 일으켰으니, 피차 불필요한 에너지낭비를 피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일은 서면이나 통화로 대체하던 것.
하지만 그런 암묵적인 룰에도 불구하고 갈진혁은 상아탑에 직접 방문했다. 공략소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그대로 무시하고 말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갈진혁이 상아탑에 방문했지만, 갈진혁이 정작 볼일이 있는 것은 상아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단, 녹음 같은 건 안되는 거지?”
갈진혁이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강서였다. 진동타격 방식에 대한 보고를 듣고 또 영상을 직접 보고나서, 그가 상아탑으로 들어갔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그건 화면속 얼굴이 익숙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그가 가진 <진동타격>방식이 가진 잠재력을 보고 관련된 정보를 좀 더 물으려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네, 아쉽지만 녹음을 하거나 해서는 활용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이게 마력의 파동까지 포함해야 몬스터들의 균형기관에 직접 개입이 가능하거거든요.”
“알겠어.”
고개를 끄덕인 갈진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였다.
“설마 그 ‘녹사장 풍물놀이남’이 형일 줄이야...진짜 놀랐어.”
“...네?”
괴상한 별명에 반문한 강서였지만 갈진혁은 그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나는 이만 일어나 볼게. 형이 알려준 정보들은 아까 말한 대로 헌터들한테 다 뿌려도 되는 거지?”
“그럼요. 상관없습니다. 저도 총무님께 부탁해서 더 정보전달 범위를 넓혀보겠습니다.”
“그럼 가볼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 상황이 좀 예상범주 밖이라. 잘못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귀족나으리들도 보러가야되거든. ”
갈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략단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나르가스의 징크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는지, 나르가스의 위치는 어떻게 알았는지.
사실 아직 강서에 대해 물어볼 것은 많았다. 하지만 그건 강서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나중에도 물어볼 수 있는 일들이었다.
팔자 좋게 앉아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에는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접객실을 나서려던 갈진혁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
‘5년 전...5년 전이라 했지 분명.’
그리고 뒤돌아 강서에게 물으려는 동시에-
“귀족회의로 가신다 했죠?”
강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같이 가요. 도와드릴 부분이 있을 것 같네요.”
***
"후... 쉽지 않구만."
리차드가 아단대륙 용궁 서해령에서 날뛰던 마수 한 마리를 심장을 창으로 찔러누르며 말했다. 전투가 작금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듯 리차드의 어깨에 묻은 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게요. 판다선생님은 렙틸리스를 한번에 터쳐 버리셨는데 역시 똑같이 생겼어도 던전에서 잡던 것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고대룡 마우레니아를 잡는 것도 아니고 용궁 지키는 가디언 4마리 중에 한 마리 잡는데 도대체 시간을 얼마나 쓰는건지..."
"그건 스승님이 대단한 거고, 어쨌든 렙틸리스를 잡고 복귀하려면 며칠은 더 걸릴텐데요 공략단장."
그의 옆에서는 샬롯과 델타가 바닥에 늘어진채 입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공략단장인 공진호는 그들을 한 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속행하겠다. 렙틸리스를 잡고 1차 복귀를 하는 시기는 하루이상 미루지 않도록 하지."